2021/02 22

존재의 법칙, 그리고 책의 목적

“신 의식이 가볍게 주입되는 경험을 한 적이 있는 영적으로 진화된 영혼들은 그 체험이 너무나 아름답고 영광스러워서 결코 잊을 수가 없지만 그것을 인간 언어로 형언하기는 불가능하다고 보고한다. 이 신비로운 체험은 마음의 진동주파수가 이미 높아져서 의식 전체가 신의식의 빛으로 채워질 때 가능해진다. 그것은 지능이나 뇌세포보다는 ‘느낌’과 관련된 어떤 상태다.” (300쪽) 저는 이 대목을 깨달음 체험 또는 견성 체험에 대한 설명으로 이해합니다. 다만 궁금하게 생각했던 것은 우리 존재의 근원이 우주 의식(신 의식)인데 깨달은 이들에게 주입되는 신 의식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뒤에서 그에 대한 답으로 여겨지는 구절을 찾았습니다. 즉 우리 존재 자체는 모두 똑같은 ‘존재의 근원’에서 나왔지만 그것을..

단군신화와 기독교

페이스북에서 개마고원과 단군신화에 대한 글을 읽고 글 한 꼭지 생각났습니다. 즉 단군신화의 심오한 의미가 떠올랐고 처녀 잉태를 고수하는 기독교의 무식한 용감함을 씹고 싶어졌습니다. 호랑이와 곰이 마늘을 먹으며 사람이 되고자 했다는 것은 우리가 '지감, 조식, 금촉'을 집중해서 상당 기간 실행할 때 동물성에 기반한 탐진치를 벗어나 완성된 인간이 됨으로써 세상을 다스려 평화를 조성할 수 있게 된다는 것으로 읽자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람이 되어 환웅과 결합해서 단군을 낳는다는 것은 우리가 동물성을 극복하면 신과 하나가 된다는 메시지가 있는 것으로 읽힙니다. 이런 신화를 지어 구전해 준 선지자란 깨달은 분, 다른 말로 견성하신 분임에 틀림없습니다. 즉 체험을 이야기로 엮은 것이 신화가 된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

단상 2021.02.26

의식 향상과 확실성 문제

“영적 진리 안에서 더 높이 올라갈수록 너희 생각은 더 힘이 강력해진다... 나태에 빠져 영적 의식 에너지가 들어오고 나가는 데 자신을 온전히 내맡김으로써 시소를 타도록 하지 말라... 의식 주파수를 높여 새로운 힘을 얻기 위해 집중해서 ‘존재의 근원’에게로 다가가면 부정적 시기도 크게 줄어들고 그 힘이 약해질 것이다.” (298-299쪽) 얼핏 드는 영감에 또는 허무한 생각에 제대로 명상도 하고 신 의식을 만나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도 초보일 때는 자주 그만두고 싶거나 “이런다고 뭐가 달라질까?”, “이 공부가 사는 데 무슨 소용일까?” 등등 의심이나 부정적 생각이 듭니다. 거기에 빠져버린다면 ‘신 의식’의 짧은 유입을 의심하는 것이고 결국 그것이 발붙이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 공부는 꾸준히..

의식과 존재의 진실

“전자기력은 우주를 이루는, 갠지스 강의 모래알보다 많은 존재들 안에서 고도로 의도적이고 지적인 일을 벌인다.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나는 것일까? 전자기력이 가시적 존재로 만들어낸 것들 중에서 인간 마음이 목적성이나 의미가 없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과학은 이처럼 창조의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측면을 무시해버린다.” (283쪽) ‘존재의 진실’을 보고 깨달았던 선지자들이나 동아시아의 견성자들이 본 진리는 오늘날 지동설과 진화론, 그리고 양자역학 등 과학의 용어로 설명할 수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구태의연한 종교가 고수하는 미신적이고 비과학적인 언설에 대한 반발로 상당수의 과학자들은 모든 것을 물질적으로 설명하려는 유물주의 내지 환원주의에 빠져 버립니다. 그래서 ‘편지’는 현대 과학의 성과를..

양자역학과 기적현상

“너희는 우주가 견고하여 몸과 그 밖의 모든 외부 현상들은 너희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너희는 자신이 존재의 희생양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오히려 그 반대가 진실이다. 너희 나날의 삶은 믿음의 반영이다. 그러니 내가 다시 와서 너희가 더 높은 진실을 깨닫도록 돕는 이 일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이다.” (278쪽) ‘편지’는 양자역학의 성과를 수용하고 있습니다. 즉 “과학자들 말에 따르면 세상의 가시적 질료인 견고한 물질은 사실 에너지 알갱이로 이뤄져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광야에서 바로 이 진실을 체험으로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스도는 ‘티끌의 아물거림’, 즉 하전 입자가 ‘하느님 마음’ 속에서 높은 주파수로 운동한다는 것과 그러므로 ‘하느님 마음’은 보편적이라는 ..

아주 높은 이상과 열정

“너희 존재의 근원과 진실로 만나는 일은 너희가 의식에서 거친 인간적인 에고 동력을 필요한 만큼 충분히 닦아내고, ‘근원‘과의 만남, 그리고 영적인 재생과 활력을 구하면서 일정 시간 이상 명상을 하고 의식 안에서 열정을 다해 강력하게 ’근원‘에 다가가는 일을 규칙적으로 했을 때만 체험할 수 있다.” (276쪽) ​이 말씀 앞뒤로는 ‘근원’과 만나는 일과 그 만남을 구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기도가 채워지는 것은 별개의 것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앞글에 이어 다시 거론하면 소위 ‘긍정적 사고’에 의해 어느 정도 소망이 이뤄지기도 하지만 그것이 ‘존재의 근원’과 만나는 일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동아시아 영성에서 여섯 가지 신통을 얻어 사람들을 놀라게 해주는 것에 그치면 도(道)가 아..

대속론과 깨달음 수행

페이스북에서 친구분 글에 댓글 달고 답글을 얻은 김에 희론을 벌이고 싶어졌습니다. 희론이란 실상 학문적-비학문적 모든 논설입니다. '언어도단 심행처멸'을 추구하신 황벽선사께서 극복하고자 초지일관 노력한 것이 희론이었습니다. 이 점은 또한 교외별전에 치중한 불교전통이기도 합니다(그러나 선종이 교종과 서로 보완한다는 게 보통 수행자에게 답입니다). 각설하고 40년 가까운 가톨릭 생활에서 끝까지 석연치 않던 게 대속론인데 우리 지성 역사에서 그것을 극복하는 노력을 다석 선생이 하셨다는 것을 이정배 님 글에서 알았습니다. 저는 영국의 보통 사람이 쓴 '그리스도의 편지'를 읽고 대속론이 엉터리라는 걸 확신했습니다. 즉 유태인들(실은 그 정도 의식 수준의 지구상 모든 부족들)이 동물의 피를 바쳐 신의 진노를 면하려..

단상 2021.02.20

존재의 근원과 만나는 일

“죽음은 제한된 존재 차원에서 더 밝고 더 강력한 차원으로 넘어가는 행복한 여행을 의미하게 될 것이다. 너희가 영적으로 어느 정도 정화되어 육신의 껍질을 벗어날 때가 되면 너희는 이곳을 떠나서 육체적 제약을 벗어나 사랑과 아름다움과 경이로운 존재감을 누리는 세계로 진입할 것이다.” (274쪽) 지금 인용하는 말씀 바로 앞에서 그리스도는 여태까지 존재했던 선지자들과는 다른 언어로 ‘보편적 실재’ 또는 ‘우주적 존재’를 설명하겠다고 하십니다. 가시 세계뿐 아니라 우리가 알지 못하는 비가시 세계를 만들고 존속시키는 ‘우주 의식’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선지자들은 차안(此岸)과 피안(彼岸)으로 나누었던 것을 이곳에서는 다중 우주 내지 다차원이란 말을 씁니다. 제 짧은 소견으로는 이것이 보다 현대 물리학에 가까운 ..

명상과 불면증 2

엊그제 올린 앞글 '명상과 불면증 1'을 읽고 막 명상을 시작하신 분이, 생각을 끊는 일의 어려움을 토로해 주셨습니다. 처음 제가 시작하던 때와 같은 곤란을 겪으시는 듯했습니다. 삶을 근본에서 혁신하는 일이라 굳센 결의가 있어야 할 겁니다. 저도 처음에 10분을 지나는 게 진짜 일각여삼추였습니다. 하지만 저희 교재는 자세에 신경 쓰지 말고 기도문 외우면서 최대한 편하게 있으라고 하니 그 덕에 5년 이상 매일 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온갖 것에서 멋대로 들어와 앉은 생각들은 그야말로 마귀나 다름 없습니다. 그러니 매일 청소를 하는 것입니다. 이것들을 치워야 경전에서 읽은 말씀들과 느닷없이 들어오는 고귀한 생각, 즉 영감을 만나기 쉽습니다. 연륜이 길든 짧든 의지하기 좋은 기도가 나무아미타불이라 생각합니다. ..

단상 2021.02.19

올바른 신애(神愛)의 길

“너희는 또한 너희가 ‘하느님’이라 부르고 내가 ‘보편적 실재’라 일컫는 에게 여러 종교들이 덧붙여놓은 인간적 속성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온전히 그리고 분명히 이해해야 한다. 예컨대 분노와 위협, 처벌 등 인간적 속성은 오직 인간의 상황에만 어울리는 것이다.” (274쪽) 훌륭한 스승이라면 모두 그렇듯이 제자의 수준에 맞는 용어와 비유를 썼습니다. 그리스도가 유대 신앙의 율법주의적이고 근본주의적 속성을 극복하고 가르침을 듣는 청중을 해방시키기 위해 다양한 수사를 구사하셨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첨단과학과 정보화가 널리 퍼진 오늘날의 청중들이라면 예수 시대는 물론 중세 시대에 통했던 말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수정해서 알아듣는 것이 당연한 일이겠습니다. 생사여탈권을 가진 군주처럼 신을 상상할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