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십 년 전, 갓난아이였던 이 몸에는 '마음'이라는 것이 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없지도 않았다.
갓 태어난 아기의 눈동자를 떠올려 본다. 마치 꿈에서 막 깨어난 뒤의 아득함과도 같은, 자의식조차 들어서지 않은 순전한 멍함. 무엇인가를 알고 구분하는 '나'라는 문지기가 아직 일어서지 않은 상태였다. 그로부터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이 몸과 마음은 끊임없이 나고 지며 모양을 바꾸었다. 유년의 소년은 청년이 되었고, 다시 노년의 붉은 노을 앞에 섰다. 흘러가는 구름처럼 잠시 생겼다가 사라지는 이 모든 현상을 어찌 항구하다고 하겠는가.
어느 날 머리통을 만지다 보면 서너 살 무렵 동네 골목에서 자전거에 치여 생긴 흉터 자국이 만져진다. 손끝에는 아련한 감촉이 남아있지만, 정작 내 기억 속에는 아무것도 없다. 흉터가 남아있지 않았다면, 혹은 누군가 그날의 소란을 말해주지 않았다면 그것은 내게 일어난 적 없는 사건과 같다. 기억이 없으니 경험도 없고, 주체가 없으니 사건도 성립하지 않는다. 내가 '나'라고 붙들고 있는 생각, 감정, 기억이라는 것이 얼마나 실체 없는 환영인가. 이 명확한 상처 자국이야말로 색(色)·수(受)·상(相)·행(行)·식(識)이라는 오온(五蘊)이 모두 비어있음을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생각과 기억의 거품을 모두 걷어내고 나면 전혀 다른 세계가 열린다. 서너 살 적 자전거에 치이던 그 순간에도, 갓난아이 시절 멍하니 세상을 바라보던 그 순간에도, 그리고 칠십 년이 지난 지금 홀로 찻잔을 들고 있는 이 순간에도 변함없이 존재하는 어떤 감각이 있다. 세월의 파도에 단 한 번도 쓸려가지 않고 늘 그 자리에서 여여(如如)하게 존재하는 어떤 힘. 이 보잘것없는 생명을 밑에서 가만히 지탱하고 있는 아득한 바탕 말이다.
사람들은 이 이름을 붙일 수 없는 존재의 근원을 두고 저마다 다른 표지를 달아왔다. 혹자는 '하느님'이라 불렀고, 혹자는 마음의 참본성인 '자성(自性)'이라 하였다. 에리히 프롬이 파악했듯 구약의 야훼 역시 "나는 스스로 존재하는 자"라는 존재의 근거 그 자체를 뜻했다.
중세의 신비가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는 이 온갖 관념과 형상을 완전히 비워낸 자리를 단순하고도 명징하게 '근저(Grund)', 즉 '영혼의 근저(Seelengrund)'라고 불렀다. 피조물로서의 에고가 완전히 사그라졌을 때 비로소 드러나는 참된 생명력의 자리, 신과 영혼이 조금의 분리도 없이 하나로 만나는 절대의 바닥이다.
서산대사 또한 《선가귀감(禪家龜鑑)》의 첫머리를 열며 이 한 물건의 본질을 일갈하셨다.
"여기 한 물건이 있으니, 본래부터 밝고 신령하여 일찍이 난 적도 없고 없어진 적도 없다. 이름 붙일 수도 없고 모양으로 그릴 수도 없다."
결국 선(禪)의 출발점 또한 멀리 있지 않다. 나라고 믿었던 몸과 마음의 구름을 거두어내고, 그 뒤에서 늘 묵묵히 빛나고 있는 그 '한 물건'을 직시하는 일이다.
머리의 옛 상처를 가만히 짚어본다. 지나간 사건도, 나라는 집착도 다 비어버린 그 흉터 너머에서, 오늘도 말없이 이 존재를 감싸 안고 있는 영혼의 근저를 느낀다. 나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는 그 여여한 바탕 위에서, 생은 여전히 맑고 푸르게 흐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