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 환상

윤집궐중의 실천

단상

제가 기회 있는 대로 종교와 언론을 비판하고 학교와 사회 탓을 하면서 그것들이 '되는(becoming)' 일에 정답을 찾아 실천하지 않고 유사품에 만족하기 때문에 답을 못찾는다는 요지의 글을 자주 썼습니다.

우리가 유교의 세례를 받아 의식 무의식에 문화 DNA를 간직하고 있으며 19세기는 물론 20세기에는 그리스도교 정신의 영향을 듬뿍 받았음에도 그것들이 세상일에서 득을 보는 데 그치도록 함으로써, 달리 말하면 그것들이 그저 지배 내지 통속(通俗)의 수단에 그침으로써(이데올로기로 기능함으로써) 뚜렷한 한계를 체험하다 못해 사회 발전의 걸림돌로 여겨지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앞에서 시사했지만 그 이유는 가르침을 끝까지 철저히 제대로 실천하는 이들이 극히 소수에 그친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제가 깨달은 정답은 이미 맹자 고자편에 있습니다. 인용하면, "옛사람은 천작을 닦아서 인작이 거기에 따르게 했지만 오늘날은 천작을 닦아 인작을 구하며 인작을 얻으면 천작을 버린다. 그것은 순서가 뒤집힌 것이어서 끝내 망할 뿐이다. (고자상)"

천작을 끝까지 닦는 일을 유교 체계 전체에서 찾되 그리스도교 정신에 딱 합치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천하지대본인 중을 잡고(允執厥中) 그 상태에서 모든 덕을 베풀 뿐 아니라 '제가평천하'를 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저는 이것이 그리스도가 요약한 신애(神愛)와 인인애(隣人愛) 계명과 정확히 일치한다고 생각합니다. 윤집궐중의 실천 방법이 우리 쪽에서는 정좌 내지 좌선이고 서양에서는 정관(靜觀, contemplation)입니다. 이 경지에서 체험되는 것을 장자는 좌망(坐忘)이라 하여 결국 홀로 매일 앉아 있는 일이 누구에게나 꼭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대학, 중용이 얘기하는 '신기독 수기중'도 바로 여기에서 도출되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계신호기소부도, 공구호기소불문'이 왜 꼭 필요한 일인지 알아서 실천하면 공부를 제대로 하기 시작하는 것이라는 것 - 이것을 가르치는 학교가 없는 게 현실입니다. 종교도 위에 지적한 것처럼 통속의 도구에 그칠 뿐 이런 것을 중시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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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리우드와 코카콜라

단상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고 언론이 자본의 장단에 춤추는 현상은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닙니다. 모세가 금송아지 숭배집단을 내칠 때에도 있었던 일이 아닌가요? 활자매체가 자본의 이익에 맞추어 계속 허구를 지어낸다면, 영상매체는 계속 감각의 즐거움을 부추김으로써 사람들을 가시계에 묶어 놓습니다.

이런 현상을 언론학자 기틀린은 아주 간략하게 요약했으니 즉 '미디어란 헐리우드와 코카콜라다!' 즉 눈을 홀려 물건 사도록 부추기면서 사람들을 땅에 단단히 묶어놓는 것이 미디어가 하는 일입니다. 인간은 불멸하는 '의식'이 본질이고 그 의식을 가시계에 비추어낸 것이 몸과 에고와 소위 문명이건만 미디어는 그 반대가 진실이라고 끝없이 저항할 뿐입니다.

그 때문에 우리 문명은 언제나 절멸 위기를 피하지 못하며 미디어는 오늘도 거짓을 밥먹듯 전파하며 삽니다. 몸바친 혁명으로 겉을 바꾸는 노력이 허망한 이유도 결과로 결과를 대적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체 게바라가 대단하다고 보지만 그에게서 위로와 평안을 찾지 못하겠습니다.

동아시아 정신의 핵은 주희를 봉우리로 하는 송명이학(또는 신유학)이고 서구 정신의 핵은 에크하르트를 봉우리로 하는(물론 이견이 있겠습니다) 그리스도교 신비주의라고 봅니다. 전자는 불교와 도교를 흡수했고 후자는 그리스 철학(특히 산플라톤주의)을 흡수했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먼저 내면으로 가서 '의식'이 주인임을 발견하라는 것입니다.

이 일은 혁명처럼 저항을 초래하기도 하고 꾸준하기가 어려워 수천년간 소수만이 끝까지 실천했습니다. 아침마다 황폐한 소식만 전하거나 먹방과 돌아다닐 궁리에 불지르는 영상매체, 한숨 돌리려 클릭하면 이간질과 시기심을 북돋우며 거짓말의 독소만 내뿜는 활자매체를 멀리하려 해도 참 어렵다는 하나마나 한 소릴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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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좌(靜坐), 좌선(坐禪), 정관(靜觀)

단상

제 아이들과 조카들에게 기회 닿는 대로 '너 자신이 잘 되는 것이 효도다', '네 상태가 최선일 때 효도하고 있는 것이다.'라는 말을 해줍니다. 부모로서 자식에게 무엇을 해받기를 바라는 게 아니라 자식이 스스로 행복해지는 것이 효도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모든 부모의 바람은 자식 '잘 되는' 일일 겁니다. 그런데 잘 되는 일을 학교와 사회에 맡겨버림으로써 조금씩 잘못되기 시작합니다. '스스로 배워 깨닫겠지' 하지만 많은 시행착오를 하는 이유는 그 기준을 가시적인 데서 찾아버릇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없는 사회입니다. 소위 언론, 요즈음은 주로 티브이와 유튜브에 맡기는 셈입니다. 서양식으로는 내면에서 신을 찾아 스스로 신이 되는 것, 우리 식으로는 천하지대본인 중(中)에 머무르는 일을 과반수 인구가 실천했다면 매국도 분단도 없었을 것이고, 사법농단도 검난도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경우 교회에 열심히 출석했고 경전을 찾아 읽었지만 지식으로 안 것은 안 것이 아니었습니다. 매일 정좌(좌선 또는 정관)하지 않으면 바깥 유혹이 크고, 에고란 전자기의 인력과 척력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끝없는 시행착오를 반복할 뿐입니다. 세상에 있되 세상 사람이 아닌 삶(신약성서), 세간을 벗어난 자유인(선가귀감), 종심소욕불유구(논어)에 도달하지 않으면 다람쥐 쳇바퀴를 맴돌 뿐입니다.

에고는 옳고 그름을 알지도 못할 뿐 아니라 세상을 초탈하도록 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언젠가 '쥐엄나무 열매'를 먹는 자신을 발견하고 방향을 180도 바꾸어 돌아갈 수 있으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대부분은 돈과 권력으로 문제를 헤쳐나갈 수 있기 때문에 귀향할 줄 모릅니다. 무조건 시간을 내서 홀로 고요히 있는 연습을 해야 하겠습니다. 반드시 은총의 도움을 받을 것입니다. 이 일은 에고 드라이브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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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2014년 메시지 2

그리스도의 편지 /논설과 메시지

그러면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

 

우선 너희 모두 각자가 명상하면서 신 의식에게 가야 한다. 

 

명상이란 말로 나는 무엇을 말하려는가? 

 

너희에게서 너희 삶을 스스로 감당하려는 의지를 비울 것을 의미한다. 너희 마음에서 우주의 방대함으로 뻗어나가 너희를 존재케 한 거기에 접속하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눈을 감고 앞 이마 꼭대기로 들어올려라. 세상이 마땅히 취할 모습에 대한 새로운 생각으로 고무되기 위하여 신 의식으로 채워지기를 구하며 너희 의지를 포기하라. 신 의식과 접속하는 동안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명상을 마치자마자 영성 일기에 그 아이디어를 써 내려가라. 누구나 그 영성 일기를 써야 한다.

 

모든 사람과 무조건적 사랑을 나누는 삶의 실상에 대해 생각해보기 시작하라. 이 말의 진짜 의미는 무엇일까? 네 삶은 어떤 모습일까? 네 안에서 어떤 감정이 떠오르는가? 그 안에서 행복을 느끼는 동안 너희 마음에 그런 공간을 만들어라. 무조건적 사랑으로만 이루어진 동료 집단을 만들어라. 그들에게 무엇을 배우는가? 네 현재 의식에 관해 발견한 것들에 관해 이야기하라.

 

너희는 이 순간 두 차원에서 살고 있어야 한다. 너희는 대혼란과 불쾌한 의식으로 된 세계에 있다. 동시에 마음과 감정과 몸에서 영성을 추구하는 대단한 열망을 가지고 있다. 너희는 신 의식의 보호와 복락 안에 있기를 가능한 한 꾸준히 선택하고 그려봐야 한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삶에서 불쾌한 의식의 힘을 만나게 될 때 너희 인간성, 즉 에고가 너희를 끌고 들어가는 범죄자들의 해침, 불쾌함 및 반대를 무시하고 너희 삶에서 유일한 실체로서 신 의식을 깨닫도록 도와 달라고 신 의식께 계속해서 빌어야 한다. 그러므로 너희는 과오에 빠지는 사람의 복락과 행복을 배려하고 보살피면서 용서의 길로 들어가 머물게 될 것이다.

 

이렇게 비반동적이고 긍정적인 방법으로 살고자 하는 초기에 (이 경우 의식적으로 에고 반발 상태를 거부하고 긍정적인 둘째 상태로 들어가야 함)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는 옛 감정을 내려 놓고 극복해야 하는 것이 아주 고통스럽고 성가신다는 것을 알게 되겠지만 끈기 있게 또 즐거이 견뎌낸다면 언젠가 그 순간 너희의 균형을 깨는 누구에게든지 적극적인 기쁨, 용서, 이해 및 돌보는 관심 상태로 옮겨 갈 수 있게 된다.

 

거기서 쉬면서 이 땅 위에 온전한 영역을 만들어냈다는 것을 온전히 이해하고자 노력하면 이것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반대에 부딪쳐서도 네 마음에 사랑을 간직할 수 있을 때마다 환경 속에 신적 사랑이 있는 작은 오아시스를 세운 것이다. 점점 더 많은 이들이 이런 식으로 어두움에 대응하려고 이 땅에서 노력할수록 어두움에 영향을 줄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영광은 없을 것이기에 지상에 하늘 나라를 세우려 노력하는 사람들이 열을 지어 늘어나고 넘쳐나서 마침내 신성의 소리가 아직 깨닫지 못한 사람들의 반응을 밝혀주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개개인들이 지상에 자기만의 신적 사랑의 오아시스를 창조하는 동안 지상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이런 오아시스들은 인간 사회에 오래 바라던 혜택으로 드러날 것이다. 그로 인해서 인간들은 지난 전쟁 이래 계속 만들어진 과오를 시정하기 시작한다. 공공 서비스는 개선되기 시작할 것인데, 즉 인류가 동료 인간을 자애로운 배려와 동정심을 가지고 대우하도록 보장할, 행동을 다스릴 새로운 윤리를 채택하기 시작할 것이다. 이런 일이 일어나면 번영이 다시 회복되고 빈곤은 완화되며 사람들 마음과 심장 속에서 자애로운 반응이 새로 생겨 그 어느때보다 건강이 증진될 것이다. 그때 받을 수혜는 현재 순간의 개념을 뛰어넘는 고도의 의식에서 나올 것이기 때문에 지금 너희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이것이 너희가 지상에 하늘나라를 건설할 노하우다.

 

딱 한 마디 경고를 하겠다. 이런 일은 사람들이 그들 자신의 인간적 사고만이 세상의 '물질'에 권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까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영적인 게 아니다. 각 사람의 '나'는 혼이 아니다. 혼은 에고 안에 숨어 있다.

 

그리스도의 편지를 따르는 모든 이들은 다른 영적 지도자도 따랐다는 것을 유념하기 바란다.

 

너희 에고는 너희가 마음 속으로 초월적 신 의식을 끌어와서 점차 정신 과정을 영적으로 만들 때까지 너희 의식의 통제를 받는다.

 

다음을 주목하라. 영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내 메시지의 특정 측면만을 받아들인 스승들 때문에 길을 잘못 들었다는 것을 말해야 하겠다. 

 

죽에 물을 부으면 죽은 부드러워지지만 물을 흡수해서 죽의 상태를 유지한다. 영적 영감이 수용적인 마음에 흘러들어가도 같은 일이 생긴다. 이제 영적 영감이 인간 본성이 된다. 그 영감이 들어가서 그 '진리'에 불을 붙여 아주 강한 깨달음이 들어 한 사람의 믿음이 즉각 바뀌는 일은 매우 희귀하다. 그렇기 때문에 영감을 받은 사람들이 궁극의 진리에 대한 다양한 버전을 가르치는 것이다. 결정적 버전은 자기들 존재를 신성에게서 받았기 때문에 자신이 신성이라고 들을 때 생긴다.

 

진실을 말하면 영감 받은 의식을 조금씩 마음에 끌어들여 아주 조금씩 인간 에고의 어두움이 분해되어 신적 영감으로 비추어진다고 하는 것이다. 드디어 의식이 온전히 밝아져 에고는 정복된다. 이런 일이 한 사람에게 일어나면 그 사람은 '궁극의 의식' 안에 온전히 '우주적'이 되어 더 이상 소아의 욕망을 전혀 알지 못하게 된다.

 

그것은 전적으로 분리된 무엇이 되어 오직 신 의식의 환희와 지복만을 체험하고 타인의 복락을 자애롭게 증진시키며 살게 된다.

 

이것이 그리스도 의식이다.

 

이 때문에 내가 내려와서 너희를 위해 이 편지를 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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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2014년 메시지 1

그리스도의 편지 /논설과 메시지

더 높은 이상

 

너희 세상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더 높은 이상이 필요하다고 나는 말했다.

 

하지만 더 높은 이상을 어떻게 성취하고 어떨게 드러낼지는 말하지 않았다. 이것을 자세히 알지 못하면 이 약속을 성취하기 어려울 것이다. 내 말을 마음에 새기는 사람을 많이 보았고 그들은 그것을 자신의 삶에서, 그리고 세상의 유익을 위해서 구현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런데 더 높은 이상을 창조하려는 이러한 요청의 결과 아주 큰 사랑이 드러나서 이제 너희들이 의식적으로 그리고 사랑으로써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시작하도록 내가 다시 오는 게 긴요하다.

 

너희가 역사책의 도움과 또 여러나라 및 여러 세기에 걸친 유명 작가 및 철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지구상에서 지난 50만 년에 걸친 각 인간의 발전을 돌아보면 사상과 생활 양식의 변화는 없을 뿐 아니라 그 변화란 그저 아주 앞선 사상가의 고도로 지성적인 마음에 생긴 변화하는 의식의 청사진 때문에만 생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자신의 생각과 사상을 대중에게 제시했고 대중은 그것을 존경스럽게 흡수한 것처럼 새로운 사상은 서민들의 마음에서 다른 모습을 취했다. 그 후에 점차적으로 이들 새로운 사상은 조금 새로운 행동 양식으로 드러났고 또 한 가지 모습이나 다른 모습으로 일반적으로 국민 생활에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그 어떤 변화든 누군가가 대중의 감성에 강하게 충격을 주어 그들이 받아들이게 된 새로운 사상을 받아들인 결과 발생한 것이다. 이것은 그저 상식이라고 말할 것이다. 맞다. 하지만 새로운 인식은 상식 위에 세워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배척당할 것이다.

 

영국에서 빅토리아 시대와 에드워드 시대, 즉 1845~1919년을 돌아보면 의회와 귀족 계급 및 상층 계급이 부과한 매우 전통적 규제가 삶을 엄격히 지배했음을 알 것이다. 이 모든 법과 규칙은 비교적 거칠게 살던 세대가 만들었으나 영국 사상가들의 생각이 진보함에 따라 점차 완화되고 세련되었다. 이들 사상가들의 이상에 따른 결과 문명의 다양한 부속물이 채택되었는데 예를 들면 하수시설, 포장도로 및 불우한 이들의 피난소가 있으며 사람들이 서로 평화롭게 살 수 있도록 풍습이 매우 합리화되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교회에 가서 그들이 죄를 지으면 받을 천벌과 지옥불에 관해 설교자들이 말해야 하는 것들에 귀를 기울였다. 나라 전체가 자발적으로 취한 그런 기강의 결과로 사람들이 평온한 삶을 살 수 있었고 이런 상황은 인간의 생각과 의식의 숨겨지고 파괴적인 요소가 전쟁에서 분출될 때까지 계속되었다는 것을 알 것이다. 모든 강력한 감정적 생각은 결국엔 드러난다. 갈등은 젊은이들에게 숨겨져 있던 공격적 성향을 드러낼 기회를 가져왔다. 그것이 남성들과 소년들이 1914년 징집에 몰려든 이유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자 대중의 의식이 다시 바뀌었는데 그것은 전쟁 중에 만연했던 인간의 파괴적이고 공격적이며 보복적 충동이 드러남으로써 초래된 고통과 번민을 체험한 때문이었다. 영국인들은 더 이상 전쟁이 아니라 즐거움을 원했다! 교회는 이제 더 이상 전쟁 전처럼 사람들의 존경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1939~1945년의 전쟁은 사회 자체를 상승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전에 압제받던 대중이 전쟁에서 삼군에 들어가 그때까지 몰랐던 정보와 기술을 발휘할 기회를 가졌다. 그 결과 계급 장벽이 크게 허물어졌고 이전에 기본권 보장을 못 받던 이들이 교육을 더 받고 전문직종으로 올라갈 기회가 생겼다.

 

슬프게도 이러한 기회가 생긴 만큼 빈곤한 가정에서 어릴 때 물려받은 의식은 생명을 주는 사고로 교체되지 않았다. 삶이 불공정하고 부자에 의해 고통받고 배척되었다는 과거의 느낌이 남아서 엄청나게 큰 부정적 반응을 일으켰다. 즉 사람들에게 주어진 새 기회가 높은 수준의 영적 당당함과 성공과 성취, 그리고 행복에 대한 믿음을 낳지 못하고 사람들 마음에 아주 부정적이고 생명을 잠식하는 의식이 있어서 인간의 일반적 복리에 기여할 수 있는 엄청난 양의 기술적 지식 및 발견과 함께 전후에 세워졌어야 할 많은 복지와 기쁨을 파괴했다. 

 

그러나 오락과 천박함을 좇느라 고귀한 삶의 원칙은 해이해졌고 점차 버려져 해이해진 삶의 악영향이 대중의 의식을 물들였다. 그들은 정서의 급격한 변화의 결과로 고도의 비참함과 절망을 체험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다시 공격과 증오라는 비정상적인 반응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부정적 반응이라는 충동을 지닌 사람들은 성적 남용을 통해서 고통을 덜어보려고 했다. 이런 일은 미디어와 영화, 티브이와 라디오에서 들리는 것과 광고하는 것을 보고 들음으로써 커져서 많이 들을수록, 그것이 사람들 마음을 사로잡고 극심해져서 서로 간에 더욱 지독해지는 범죄로 이어졌다.

 

그리고 여기가 너희들이 현재 서 있는 곳이다. 사람들 마음에서 진행되고 이 땅위에 행동과 체험으로 볼 수 있게 된 것들에 더해서 이 땅의 '물질(matter)'에 가하는 그러한 궤도를 벗어난 생각과 행동에서 나오는 엄청나게 부정적인 결과들이 (첫 번째 편지에서 말한 것처럼 그리고 나를 믿지 못하였겠지만 내가 사막에 있었을 때 내 의식 변화가 내 주위 티끌의 진동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 알 수 있었기 때문에) 강화되거나 약화되면서 그 외관은 아주 미미하게 바뀌어 보통 지나치는 사람들은 그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날씨는 또 어떤가? 의식이 날씨의 성격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잘 아는 사람들이 너희 가운데 있다.

 

너희 삶의 모든 것이 의식이다. 이것은 의식이고 저것은 고체라고 자기 혼자만 생각할 수는 없다.

 

모든 존재가 예외 없이 실제 가시화된 의식이며 인간들의 마음이 매 순간 그것을 창조하고 있다. 

 

들을 태세가 된 이들에게 왜 내가 왔는지 이제 알 수 있는가? 그리고 아주 아주 많은 영광된 이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변화를 가져오고 지구를 구하기 위해 고도의 의식을 창조하기 시작하라는 내 요청에 응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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