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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심소욕불유구'로 가기 위해, 유교와 불교 및 기독교 영성을 공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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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적 사랑'에 해당되는 글 6

  1. 2016.02.09 수행의 목표와 에고 소멸
  2. 2016.01.25 그리스도 의식 (4)
  3. 2016.01.19 사랑 안에서 걷기
  4. 2015.12.19 천국과 무조건적 사랑
  5. 2015.11.01 영적 대전환
  6. 2015.10.13 에고 죽음과 영적인 사랑

수행의 목표와 에고 소멸

2016.02.09 10:18 | Posted by 목운
따져보고 해야 한다, 말아야 한다 따위가 없이 바로 나오는 것이 '무조건적 사랑'(불교의 무주상 보시)에 딱딱 맞을 때가 참나(性)에서 나오는 행동이며 맹자께서 물에 빠지는 아이를 구하는 예에서 거론하신 측은지심의 행이 여기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법률 기타 두려움, 책임감 등등에서 나오는 행은 모두 에고에서 나오는 행이라 봅니다. 그래서 인간 사회 대부분의 조직 기타 일들이, 명분은 고귀한 성(性)을 내세우더라도 인간 의식 내지 에고(情)에서 나오는 것이죠.

그래서 혜능을 위시한 선사들이 행을 검증하는 수단은 일말의 주저없이 나오는 행뿐이었습니다. 그러니 수행이란 오직 에고의 완전한 소멸이 골인점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신 의식(참나, 신성, 性)으로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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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가 말한다:

 

이승 삶을 돌보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너희가 다음 차원들로 넘어갔을 때의 삶과 복지를 똑같이 돌봐야 한다.

 

거기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더 너희 의식이 밖으로 드러난 존재의 차원에 있게 될 것인데 이승에서보다 더 생생하게 그럴 것이다.

 

이승에서는 네 전반적 의식의 구조물로부터 너만의 환경을 만들어내지만 너희가 만나거나 함께 사는 이웃들의 환경에도 참여할 수 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이승에서는 네 독자적인 의식이 늘 만들어 내거나 끌어들이는 것보다 더 즐거운 환경으로 옮겨서 더 기분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그러나 그 모순 때문에 결국 마찰과 불안이 생긴다.

 

사람들은 그저 편안하게 안주하거나 그들이 만나는 높은 의식을 견디지 못하고 편하게 느끼는 낮은 의식 환경으로 돌아간다어떤 사람들은 외톨이가 된 느낌이 드는 의식 층에 끌려 태어나지만 자연스레 장래 번영할 수 있는 의식 층으로 옮겨가기 위해 노력하기도 한다.

 

너희가 가지고 죽는 <의식> 수준이 너희가 돌아올 때의 의식 수준이다.

 

때때로 높은 수준의 영적 인식을 가진 사람이 낮은 영적 수준의 집안에 태어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이승과 다음 세상에서 영적 계층 상 제대로 맞는 의식의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일찍이 노력함으로써 그 환경 덕분에 그들의 의식이 강해지고 영적 능력이 커지도록 하기 위함이다.

 

너희가 저승으로 갈 때 미개발 의식을 체험하는 만큼너희가 여러 번 환생하여 영적 통찰력을 얻기 위해 노력했던 너희만의 의식을 반영한 높은 차원으로 들어간다너희는 너희와 너희가 만나는 모든 사람이 같은 의식 수준임을 알게 된다너희는 너희와 양립할 수 있고 너희만의 창조력으로 완전히 기여할 수 있는 수준에 어울리는 조건 속으로 끌려 들어갈 것이다.

 

만일 임종시 너희 의식이 에고 지향적이고 천박하면 그 개인은 불편함이 참을 수 없어서 바로 환생할 것이다다행스럽게도 그런 사람은 다른 사람으로 이승으로 돌아온다이러한 존재 수준에서는 아스트랄 계의 조건보다 지구의 조건이 더 나은 듯하다도피라는 것이 자신의 인식과 의식을 더 견디기 좋은 안전 지대로 올리고자 노력할 때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으려면 많은 생이 걸린다.

 

이승을 떠나기 전에 한 사람의 의식이 더 영적으로 될수록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마음과 감정에 대한 에고 통제와 다른 사람에게 저지른 손해와 불행에 대해 보게 되어 그들은 더 큰 영적 진보를 이룰 것이다.

 

그들이 깊이 뉘우치는 만큼 그 고통으로 인해 그들의 마음과 가슴에서 에고의 지배력은 끊어지고 드디어는 서서히 <무조건적 사랑>만이 가야 할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완전히 깨달으면서 이승을 떠날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병고궁핍실패불행 등이, 모두 삶과 사람과 환경을 접할 때 <사랑>이 없기 때문에 생긴다는 것을 분명히 이해하고 인정하며 깨닫게 된다. <흠잡기> 매우 파괴적이기 때문에 내면의 행복에 무엇보다 큰 장애물이다속담에 있는 대로 남을 심판할 때는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

 

남의 흠을 잡으면 그들의 행복에 저해가 되고 따라서 우리가 아주 작더라도 남에게 손해를 끼치면 그 피해는 이자를 붙여 돌아온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의 길을 가려고 하면 그것이 치열한 자기 분석의 길이며 <사랑>에 비추어 자신의 행동을 용감하게 들여다보고 자기 생각과 감정에 관한 진실을 기꺼이 관찰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 길을 따라 앞으로 가면서 다른 이들에 대한 진실한 인식과 그들의 욕망동기그들의 직장과 가정과 인간관계에서 그들이 저지르는 실수의 원인 등을 쉽게 이해하게 된다.

 

너희가 다른 이들에게 공감하고 그들의 동기가 무엇인지 이해하고 그들이 경솔한 행동에 빠지는 원인을 알게 될수록 너희 영성과 그들에 대한 동정심과 사랑도 커질 것이다그들은 그저 자신들이 만들어내는 환경에서 진짜 최선을 다하고 있음에도 그런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다른 이들에 관한 진실을 알고서는 너희 생각에서 그들에 관한 비판의식이나 모든 스트레스를 잊고 지워버릴 때까지 기다리지 않게 될 것이고 용서하는 게 점점 쉬워질 것이다.

 

너희가 이승을 떠날 때 그런 식으로 깨달은 사람은 세상 전부와 더불어 평화와 조화 속에서 살면서 지극히 축복스럽고 환희에 찬 상태가 될 것이다그런 사람들은 빛 속으로 들어가며 이승을 되돌아보지 않게 된다마침내 그들은 만족스럽고 완전히 평화스러운 존재의 차원으로 가는 것임을 알게 된다.

 

그러고 나면 그들은 훨씬 더 높은 존재의 차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신 의식이라는 훨씬 높은 진동을 습득하기 위해 그들의 의식을 준비하고 키우고 확대하는 일에 착수하여 <무조건적 사랑>에 대한 더 더욱 창의적이고 눈부신 전달자가 될 것이다.

 

그런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그리스도 의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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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안에서 걷기> – <사랑이 되기>

 

지난번 논설에서 말한 대로 너희에게 이렇게 연달아 보내는 편지는 보다 이해하기 쉽도록 구어체를 사용하고 있어서 아주 실용적이고 현실적이다.

 

사랑에 대한 전갈을 듣자마자 어깨를 으쓱거리며 다음과 같이 반응할지 모른다는 것도 나는 안다:

 

맞아요다들 얘기하는 것이죠그리스도가 사랑에 관해 전갈을 보냈다고 말하기는 아주 쉽죠하지만 뭔가 새롭고 생생한 것을 말해보시죠!”

 

내가 말하려는 첫 번째 것은 바로 다음과 같다 :

 

두 종류의 사랑이 있다둘은 완전히 다르다둘은 서로 다른 존재의 차원에서 나온다.


하나는 영적이며 에고-정화라는 특정 단계를 먼저 거치지 않으면 인간 의식으로는 성취할 수 없다.

 

두 번째 사랑은 인간적인 것이며 영적 사랑과 관계가 없다


한 사람의 영혼이 에고에서 벗어나기 시작할 때, 한 사람을 다른 사람에게서 차단하는 벽을 없애고 다른 사람들과 영적으로 평화를 느껴야 하겠다는 긴박한 열망을 자기 의식 속에 새겨 넣기 시작한다이 단계는 영혼이 여러 단계의 에고 죽음을 거쳐 드디어 그를 인도해줄 개인적인 스승을 만나게 해주는 고차원의 단계이다.


인간적 사랑을 조사해보면 그것은 (새 옷이든색다른 음식이든새 집이든호화로운 차든새 짝꿍이든전적으로 쾌락을 주는 무언가에 대한 욕망에 기반한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이것이 인간적 사랑이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이유다너희가 아주 아주 여러 해를 함께한 후 배우자의 행복에 관해 지속적으로 깊은 관심을 가지는 누군가를 우연히 만난다면 그 사람의 어떤 면이 영적 차원으로 올라가서 더 높은 세계에 기인한 무조건적 사랑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체득한 것이 분명하다.

 

너희가 나는 더 이상 당신을 사랑하지 않고 다른 누군가를 원해라는 마음을 가진 사람을 만난다면그것은 소위 인간 에고가 지배하는 인간적 사랑이며 그 사람의 의식은 너희 세상 사람들의 영적 인식 수준과 전혀 다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니 그들을 결코 심판해서는 안된다.

 

이제 네 의식의 한 측면이 이미 영적 차원에 있다면 짝꿍에게 알겠다당신 말이 무슨 뜻인지 안다지금 환경에서 당신이 해야 한다고 느끼는 대로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평화롭게 가라짐 싸는 것을 도와주고 택시를 불러드릴까?”라고 조용히 그리고 참을성 있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만일 에고의 지배를 받는 <인간> 의식에게 그런 말을 했을 때 그쪽에서 다음과 같이 외칠 것이다:

 

나는 항상 당신이 개...이라고 알고 있었다...네 추한 모습을 다시 보고 싶지 않아..”라거나 그와 비슷한 분노한 거절의 메시지가 담긴 말을.

 

<아니면>

 

내가 그랬다고 당신이 나에게 보복하는 것인가?”라고 소리치거나 <아니면>

 

울면서 말할 것이다. ‘(상대가 더 이상 의심할 여지없이 분명히 말했건만그게 진심은 아니지요그리고 당신을 문 밖으로 끌어내는 동안 다리를 붙잡고 매달릴 것이다.

 

(나는 너희가 이해하기 좋도록 생활 용어로 말했다내 기록자는 놀랬고 내가 이 논설을 시작하기 전에는 내가 참으로 뜻하는 게 무엇인지 몰랐다.)

 

이제 너희가 에고의 언어를 이해하기 시작하리라 생각한다왜냐하면 ‘<나는 원해>’ 또는 ‘<나는 원하지 않아 – 그래서 거부해>라는 것을 너희는 알기 때문이다.

 

(우주의 법칙에 따르면너희가 누군가에게서 훔치거나 도망침으로써 다른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는 게 아니면 <두가지 감정은 모두 완벽히 합법적이며 정당하다>.

 

일곱 번째와 여덟 번째 편지를 읽으면 내가 에고의 사랑과 <영적 사랑>으로써 의미하는 바를 정확히 이해할 것이다너희는 에고 장벽을 거쳐 너희로 하여금 진실하고 영적이며 무조건적인 사랑을 느끼고 표현할 수 있도록 하는 <무조건적 사랑>이라는 영적 진동과 만나는 방법을 배울 것이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길을 걷고자 한다면 이것은 핵심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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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과 무조건적 사랑

2015.12.19 08:25 | Posted by 목운
천국이란 우리 영혼을 낳은 '아버지'의 것이 된 마음의 상태로서 이 상태에서는 '아버지'가 우리의 머리가 된다고 합니다. 사실상 신이 우리 개체만을 빌려 자신의 뜻을 펴는 상태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창조 (또는 개체화) 과정에서 작동했던 소아(self, 에고)를 완전히 비우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마태오복음 16:24에 도식화되어 있습니다. 즉 "나와 같이 갈 사람은 자기를 잊고...나를 따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도 그렇고 교회에서 어떻게 자기를 잊는가에 대한 아무런 대책도 없고 제대로 가르치는 사람도 없습니다.

하지만 최소한 '홍익학당'처럼 매 순간 신 의식(또는 불성)에 깨어서 6바라밀을 실천하기 위한 노력을 할 수 있는 매뉴얼 같은 게 있었으면 좋았을 것입니다. 기독교의 경우 고백제도를 위시해서 대부분이 죄책을 불러일으키는 데 그치면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아마도 그게 (모르고 하는지 몰라도) 신도들을 붙잡아두고 다스리기 좋기 때문일 듯합니다.

어쨌든 천국의 '의식 상태'에 이르면 어떻게 되는지 봅시다. "그것은 너무나 아름답고 거룩하지요. 그것은 사랑이고 자비로움이며 자신을 아끼는 것과 같이 다른 이들을 아끼는 것이며 다른 이들을 정확히 있는 그대로 받아들임으로써 심판하지 않는 것이며 그들 또한 '아버지'의 보살핌 속에서 동등한 '하느님'의 자녀임을 아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편지)"

이 상태는 '무조건적 사랑'의 상태이며 호킨스 체제에서 깨달음의 시작이기도 한데 에고만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하며 반드시 신의 인도와 도움이 필요합니다. 제 소견으로 그것은, 목표삼을 무엇이라기보다 의식 상승(깨달음)의 결과 따라오는 효과처럼 생각됩니다. 그래서 스승이 필요한 것입니다.

실상 나와 남의 구분이 없이 황금률을 실천하는 것,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과 심판하지 않는 것 -- 이것을 이루는 게 천국에 드는 것입니다. 참으로 단순한데 제 60년 삶을 볼 때 내 힘만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체득했기에 오직 기도와 명상으로 매어달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 핵심에 멸정복성(또는 去非淨化, dissolving the ego)과 방하착(letting go)이 있습니다. 우리는 진기한 무엇을 찾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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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대전환

2015.11.01 07:39 | Posted by 목운
여섯번째 편지는 에고에 대한 분석과 의식정화를 위한 실천방법, 그리고 기독교 교리의 허구를 밝히고 새 시대의 영적 학도로서 우리에게 어떤 보답과 사명이 주어지는지 기술하고 있습니다. 호킨스 박사의 경우 이렇게 과감하고 확실하게 기독교와의 결별을 말하지 못했습니다. 제 경우 무척 안도감을 느끼면서 그동안 종교적으로 걸어온 길, 특히 기독교를 버리고 유불선을 공부한 것이 바로 이 길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쨌든 370~380쪽의 의식 정화 방법을 실천함으로써 모든 부정적 감정(배척 욕구)을 일소하고 신의 품성, 대표적으로 조건없는 사랑(저는 이게 금강경의 '무주상 보시'와 같다고 봅니다)으로 장착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혹여 기독교(특히 천주교) 신자의 경우 교회가 주입한 허구(380~405쪽)에서 벗어나 2천년 전 기독교 창설자들처럼 향후 천년의 문을 여는 코페르니쿠스적 선구자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 참으로 고무되고 있습니다. 호킨스 박사를 이해하는 분들에게 이 메시지는 화룡점정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물론 이 메시지를 그대로 접수하신다면 구태여 호킨스를 입문하실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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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 4와 5'를 읽고나니 '그리스도의 편지'가 제 블로그에서 지향하는 바와 처방에 대해 강하게 지지해준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즉 우리가 영적 수행을 통해서 참나와 하나가 되는 것을 '존재의 근원' 또는 '무조건적인 사랑의 영적 근원'에 이르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그때 우리는 세상을 초월하는 의식 수준으로 올라가는 것이며 모든 잠재력을 실현할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은 바로 호킨스 텍스트에서 수없이 반복되는 이야기입니다.


특히 '논설 4'는 우리가 신의 보호에 대한 절대적 믿음과 확신을 가질 때 고통과 손실은 가능하지 않다는 것, 오감이 인식하는 세상은 우리가 전자기를 잘 이용해서 가시계에 드러나게 한 것이라는 것, 우리의 경험은 우리가 과거에 지은 업에 따른 것이지만 그 보(報)는 우리의 영적 성장을 위한 것이고 영적 축복을 가져올 것이라는 것, 업보와 함께 우리는 그것을 이길 능력과 위로도 동시에 받게 된다는 것, 그리고 '편지 3'에 있는 마음 통제법을 통해서 최고 수준의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거론하고 있습니다.


'논설 5'에서는, 두가지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낙을 얻어낼 욕망에 기초한 인간적 사랑과 에고 죽음을 통해 영혼의 높은 상태에서 가능한 영적 사랑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인간적 사랑은 '더 이상 사랑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원한다'라는 것으로 잘 표현되며 시간에 따라 사라지는 것입니다. 영적 사랑은 에고 죽음을 거쳐 타인에 대한 장벽을 없애고 다른 사람과 영적으로 평화를 느끼는 상태에서 의식에 새겨지는 성장 과정을 거친다고 합니다. 


영적 사랑은 치열한 수행 과정에서 선지식(Master)을 만나 에고 죽음의 과정을 거침으로써 도달하는 상태며 '편지 7과 8'에 기술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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