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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종교개혁

​구원이란 이승과 저승을 막론하고 '완전한 안심(安心)'의 상태다. 그것은 외부의 보증이 아니라, 내면의 빛을 발견한 사람이 누리는 청정한 고요다. 견성과 마찬가지로 구원 또한 중개자 없이 신과 직접 대화하며 도달할 목표다.​그러나 오늘날의 기독교는 어떠한가? 종교개혁가들의 의도와 달리 중개자를 자처하고 중세 교회를 재현하며 '불신 지옥'과 같은 공포 마케팅을 답습하고 있다. 그들은 국가가 부여한 세제 혜택과 같은 특혜를 받으며 이익단체처럼 행동함으로써 물질적으로 비대해졌고, 내면의 빛은커녕 정치적 광기와 선동을 일삼고 있다.​이제 모든 종교 교단에 대하여 개인과 국가 차원에서 두 가지 혁신이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첫째, 영성적 독립이다. 교회는 절대 권력이 아닌, '선지식(善知識)'이 되어..

단상 2026.01.18

견성과 구원

오랫동안 천주교도였지만 교회 출석과 소위 성사 생활을 통해 어떤 효능감도 못 느낀 채 오히려 불편한 구속감을 느꼈다. 같은 천주교도였던 중국인 우징숑 님을 책으로 만나 선(禅)이 무엇인지 파악했으나 실천에 이르지는 못했다.지금은 유튜브에서 선지식이라 할 수 있는 좋은 스님울 만나 사숙하고 있다. 언제 시간이 잘 맞으면 그분의 법회에도 참석하려고 한다.결론적으로 하고 싶은 말은 기독교에서 추구하는 신의 구원이란 것이 6~8세기 선종에서 추구한 견성과 같으며, 기독교의 방법은 내게 안 맞는다는 것이다.구원받았다 하는 상태는 어떤 상태일까? 구원받았다 함은 이승에서나 저승에서나 완전히 안심이 된다는 것일 테다. 마음이 완전히 고요하고 청정하여 걸리는 게 하나도 없는 것일 테다. 아무것도 따로 구하거나 부족한 ..

선 수행 2

1. 수행이랄 것도 없는, 그저 생활 속에 좀 특별히 염두에 둔다고나 하는 것들을 적는다. 염불선이라 할 수 있는데 '텅빈 마음이 이 몸을 나투어 부리다가 거두어 갑니다.'를 수시로 외운다.2. 그동안은 마음의 평안이나 세상에서의 성공, 행복 같은 걸 구했으나 청혜스님 법문을 매일 듣고자 노력하며 그 말씀대로 나라는 것이 쑥 빠지기를 빈다. 평안이니 행복이니 하는 걸 구하면 반드시 그 반대 짝을 만난다는 것을 상기한다. 3. 중생심이 완전히 조복되기까지 평생 한 가지 관심을 놓치지 않겠다고 발심한다. 아상이 없어질 때까지 말씀에 의지해 묵묵히 가야 한다. 깨달음이나 깨닫지 못했음이나 한가지임을 알아 평상심으로 살며 업식과 업습이 사라지도록 빌고 또 빈다. 왜냐하면 이 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신성 쪽의 일이..

선 수행 1

선은 설명할 수 없다. 도식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래 적는 것은 모두 주워 들은 것이고 거기에 공감한다는 것이지 그 앎으로써 깨달음, 즉 견성하는 게 아니다. 선을 이해함으로써 선의 목표인 견성에 도달할 수 없다. 선의 세계를 말로 하려는 게 무모한 일이지만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도 인간의 숙명이다.선은 사고와 개념과 분별에 익숙해지기 전인, 유아기 어느 때 쯤으로 돌아가는 것과 비슷하다. 견성한 사람들을 보고 선이 무엇인지 짐작할 뿐이다. 평상심이 도요 누구나 깨달아 있으며 보살이 중생이라 하니 그것이 완전히 믿어질 때까지 내어 맡기고 '나무 하고 물 긷는' 일상을 살아낼 뿐이다. 오직 고통에서 벗어나 세상사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마음이 고요히 쉬고자 할 뿐이다. 근본적으로 그리고 완전히 자유롭..

왜 선(禅))인가?

선(善)을 쌓고 좋은 사람이 되고 '잘'사는 사람이 되고 어쩌구 하는 게 모두 힘이 없었다. 본능을 다스리거나 이겨내거나 하는 것도 적어도 내게는 가능하지 않았다. 결론은 이 난감한 상황에서 벗어나야 하겠다는 것이고 다시는 후회막급하지 않은 완전한 해결이 필요했다. 그것이 선(禅)에서만 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30여년 출석한 기독교도 효능감이 없었고 유불선과 기독교 신비주의에 대한 공부도 마찬가지였다. 기독교는 방법론이 틀렸고 신비주의 공부는 그저 학(学)이었기에 통하지 않았다. 오직 선(禅)을 통한 정견에 도달하는 것, 즉 견성과 오후(悟後) 공부만이 자유케 하리란 믿음이 생겼다. 포기하지 않겠다는 발원과 이미 구족(具足)한 줄 아는 믿음을 가지고 내어맡기는 것 - 그것이 도(道)다. 마지막으로 ..

고요한 마음, 청정심

7년 전에 공부한답시고 올린 글인데 진정한 께달음도 실천도 부족했다. 왜냐하면 재작년에 또 크게 실족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고요한 마음이란 무심한 마음이고 모든 것에서 떨어져 있는 마음이다. 거기에 이르기 위해서는 모든 개념과 관념에서 벗어나야 하고 생각에 사로잡히지 않아야 한다. 생각이 마치 구름처럼 여겨져야 한다.그래서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는 버리고 떠나있음이라 했고 불가에서는 방하착이라 했다. 그런데 생각을 끊으려고 하면 그것도 작위(作為)이기 때문에 반드시 실패한다는 게 딜레마다. 그래서 인용한 말씀에서는 관심을 가지지 말라고 한다. 선가(禅家)에서는 생각을 쉰다고 말하는데 아이와 같은 마음이고 스포츠에서 힘을 빼고 하라는 것과 비슷하다고 본다. '고요한 마음'을 깨끗한 마음(청정심)이라고도 하는데..

심판하지 않는 마음: 혜능과 그리스도가 만나는 지점

​​파크골프를 하며 '돈오(頓悟)'의 도리를 배운다. 홀인원을 하는 이들은 말한다. 비운다는 생각조차 없이, 평소 연습하듯 '힘을 빼고' 칠 때 공이 들어가더라고. ​깨달음도 이와 같다. 발원은 하되 "꼭 깨닫겠다"는 작심 없이 생활하다 보면, 어느 날 문득 아상(我相)이 사라지는 순간이 온다. 돈(顿)이란 바로 그 '문득'의 찰나다.​발원은 매일 연습장에 나가는 정성과 같다. 하지만 매 샷마다 홀인원을 하겠다고 '드라이브'를 걸면 몸은 굳기 마련이다. 작위(作為)를 내려놓고 인연에 내어맡길 때 비로소 문이 열린다. 그래서 프로 선수들도 홀인원을 '운'이라 부르며 겸손해하는 것이다. 이것을 정진(精進)이라 하겠다.​육조 혜능 스님은 선정이나 해탈이 아니라 오직 견성(見性)을 강조했다. "선도 악도 생각하..

방하착

선(禅)에 대해서 이곳에서 여러 가지로 소개했습니다. 그런데 실은 제가 공부하면서 또는 법문을 들으면서 명심해야 할 말씀들을 적은 것입니다.오늘은 우리가 길을 잘못 드는 경우에 대해 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선을 배우니까 마음이 편해졌다거나 수행이 깊어졌다거나 의식 수준이 높아졌다고 여긴다면 잘못이라 합니다.참된 공부는 마음이 편타 아니다가 없는, 즉 분별이 뚝 떨어져서 아예 내가 이렇다 저렇다 하는 모든 판단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마치 '나'라는 것이 나지도 죽지도 않는 것처럼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그래서 스승들은 '죽어라'고까지 말합니다. 그렇다고 자살하란 말로 알아들을까봐 몸이 아니라 마음이 죽는 거란다 하고 덧붙입니다. 나라고 하는 것도 관념이고 학습된 것일 뿐입니다. 이상과 같은 취지의 말씀은 사..

염불선

선 수행 전에 끌렸던 김상운 님의 왓칭과 선을 결합하여 매일 염불선처럼 활용할 표어를 만들었습니다."텅빈 마음이 이 몸을 부리다가 거두어 갑니다."제미나이에게 어떠냐고 물었더니 다음과 같이 답하더군요.「귀하의 자세에 대한 평가:​깊은 통찰: 이 말은 현상계의 모든 행위와 결과를 '나'라는 개별적인 자아(에고)의 소유나 책임으로 돌리지 않고, 궁극적인 근원(텅 빈 마음)에 귀속시킵니다. 이는 에고의 집착을 놓아버리고, 삶의 모든 순간을 그 근원의 작용으로 관조하게 하는 지혜로운 태도입니다.​실천적인 선: 이 말을 생활화하는 것은 단순한 믿음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에고를 내려놓고 진정한 무아행(無我行)을 실천하려는 선적인 태도입니다.」

고백제도와 불이문(不二門)

우연히 돌아가신 전임 교황이 고백성사에 대해 말하는 걸 봤습니다. 요컨대 고백을 기계적, 기능적으로 여기지 말 것이며 사제는 자신도 '용서받은 죄인'임을 의식하라는 말씀입니다.초등 5학년 때부터 오랜 동안 고백성사를 받았던 경험이 있어 한 마디 하고 싶었습니다. 어쩌면 소년기에 양심의 작용에 민감해지고 행위에 대해 심사숙고하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고백제도는 필요할 것 같습니다.이번 내란 과정에서 공무원이 본의든 본의가 아니든 부역 행위를 자백하면 용서한다고 하기에 고백제도의 필요성을 부인할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오랜 신도 생활중에 고백에도 불구하고 행위에 대한 근본적 변화 없이 기계적 반복에 그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신도 생활을 그만두고 20여년간 대안적 삶을 찾다가 금년에 선(禅)에 입문하..

단상 2025.1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