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 환상

그리스도의 2014년 메시지 2

그리스도의 편지 /논설과 메시지

그러면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

 

우선 너희 모두 각자가 명상하면서 신 의식에게 가야 한다. 

 

명상이란 말로 나는 무엇을 말하려는가? 

 

너희에게서 너희 삶을 스스로 감당하려는 의지를 비울 것을 의미한다. 너희 마음에서 우주의 방대함으로 뻗어나가 너희를 존재케 한 거기에 접속하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눈을 감고 앞 이마 꼭대기로 들어올려라. 세상이 마땅히 취할 모습에 대한 새로운 생각으로 고무되기 위하여 신 의식으로 채워지기를 구하며 너희 의지를 포기하라. 신 의식과 접속하는 동안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명상을 마치자마자 영성 일기에 그 아이디어를 써 내려가라. 누구나 그 영성 일기를 써야 한다.

 

모든 사람과 무조건적 사랑을 나누는 삶의 실상에 대해 생각해보기 시작하라. 이 말의 진짜 의미는 무엇일까? 네 삶은 어떤 모습일까? 네 안에서 어떤 감정이 떠오르는가? 그 안에서 행복을 느끼는 동안 너희 마음에 그런 공간을 만들어라. 무조건적 사랑으로만 이루어진 동료 집단을 만들어라. 그들에게 무엇을 배우는가? 네 현재 의식에 관해 발견한 것들에 관해 이야기하라.

 

너희는 이 순간 두 차원에서 살고 있어야 한다. 너희는 대혼란과 불쾌한 의식으로 된 세계에 있다. 동시에 마음과 감정과 몸에서 영성을 추구하는 대단한 열망을 가지고 있다. 너희는 신 의식의 보호와 복락 안에 있기를 가능한 한 꾸준히 선택하고 그려봐야 한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삶에서 불쾌한 의식의 힘을 만나게 될 때 너희 인간성, 즉 에고가 너희를 끌고 들어가는 범죄자들의 해침, 불쾌함 및 반대를 무시하고 너희 삶에서 유일한 실체로서 신 의식을 깨닫도록 도와 달라고 신 의식께 계속해서 빌어야 한다. 그러므로 너희는 과오에 빠지는 사람의 복락과 행복을 배려하고 보살피면서 용서의 길로 들어가 머물게 될 것이다.

 

이렇게 비반동적이고 긍정적인 방법으로 살고자 하는 초기에 (이 경우 의식적으로 에고 반발 상태를 거부하고 긍정적인 둘째 상태로 들어가야 함)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는 옛 감정을 내려 놓고 극복해야 하는 것이 아주 고통스럽고 성가신다는 것을 알게 되겠지만 끈기 있게 또 즐거이 견뎌낸다면 언젠가 그 순간 너희의 균형을 깨는 누구에게든지 적극적인 기쁨, 용서, 이해 및 돌보는 관심 상태로 옮겨 갈 수 있게 된다.

 

거기서 쉬면서 이 땅 위에 온전한 영역을 만들어냈다는 것을 온전히 이해하고자 노력하면 이것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반대에 부딪쳐서도 네 마음에 사랑을 간직할 수 있을 때마다 환경 속에 신적 사랑이 있는 작은 오아시스를 세운 것이다. 점점 더 많은 이들이 이런 식으로 어두움에 대응하려고 이 땅에서 노력할수록 어두움에 영향을 줄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영광은 없을 것이기에 지상에 하늘 나라를 세우려 노력하는 사람들이 열을 지어 늘어나고 넘쳐나서 마침내 신성의 소리가 아직 깨닫지 못한 사람들의 반응을 밝혀주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개개인들이 지상에 자기만의 신적 사랑의 오아시스를 창조하는 동안 지상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이런 오아시스들은 인간 사회에 오래 바라던 혜택으로 드러날 것이다. 그로 인해서 인간들은 지난 전쟁 이래 계속 만들어진 과오를 시정하기 시작한다. 공공 서비스는 개선되기 시작할 것인데, 즉 인류가 동료 인간을 자애로운 배려와 동정심을 가지고 대우하도록 보장할, 행동을 다스릴 새로운 윤리를 채택하기 시작할 것이다. 이런 일이 일어나면 번영이 다시 회복되고 빈곤은 완화되며 사람들 마음과 심장 속에서 자애로운 반응이 새로 생겨 그 어느때보다 건강이 증진될 것이다. 그때 받을 수혜는 현재 순간의 개념을 뛰어넘는 고도의 의식에서 나올 것이기 때문에 지금 너희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이것이 너희가 지상에 하늘나라를 건설할 노하우다.

 

딱 한 마디 경고를 하겠다. 이런 일은 사람들이 그들 자신의 인간적 사고만이 세상의 '물질'에 권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까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영적인 게 아니다. 각 사람의 '나'는 혼이 아니다. 혼은 에고 안에 숨어 있다.

 

그리스도의 편지를 따르는 모든 이들은 다른 영적 지도자도 따랐다는 것을 유념하기 바란다.

 

너희 에고는 너희가 마음 속으로 초월적 신 의식을 끌어와서 점차 정신 과정을 영적으로 만들 때까지 너희 의식의 통제를 받는다.

 

다음을 주목하라. 영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내 메시지의 특정 측면만을 받아들인 스승들 때문에 길을 잘못 들었다는 것을 말해야 하겠다. 

 

죽에 물을 부으면 죽은 부드러워지지만 물을 흡수해서 죽의 상태를 유지한다. 영적 영감이 수용적인 마음에 흘러들어가도 같은 일이 생긴다. 이제 영적 영감이 인간 본성이 된다. 그 영감이 들어가서 그 '진리'에 불을 붙여 아주 강한 깨달음이 들어 한 사람의 믿음이 즉각 바뀌는 일은 매우 희귀하다. 그렇기 때문에 영감을 받은 사람들이 궁극의 진리에 대한 다양한 버전을 가르치는 것이다. 결정적 버전은 자기들 존재를 신성에게서 받았기 때문에 자신이 신성이라고 들을 때 생긴다.

 

진실을 말하면 영감 받은 의식을 조금씩 마음에 끌어들여 아주 조금씩 인간 에고의 어두움이 분해되어 신적 영감으로 비추어진다고 하는 것이다. 드디어 의식이 온전히 밝아져 에고는 정복된다. 이런 일이 한 사람에게 일어나면 그 사람은 '궁극의 의식' 안에 온전히 '우주적'이 되어 더 이상 소아의 욕망을 전혀 알지 못하게 된다.

 

그것은 전적으로 분리된 무엇이 되어 오직 신 의식의 환희와 지복만을 체험하고 타인의 복락을 자애롭게 증진시키며 살게 된다.

 

이것이 그리스도 의식이다.

 

이 때문에 내가 내려와서 너희를 위해 이 편지를 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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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2014년 메시지 1

그리스도의 편지 /논설과 메시지

더 높은 이상

 

너희 세상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더 높은 이상이 필요하다고 나는 말했다.

 

하지만 더 높은 이상을 어떻게 성취하고 어떨게 드러낼지는 말하지 않았다. 이것을 자세히 알지 못하면 이 약속을 성취하기 어려울 것이다. 내 말을 마음에 새기는 사람을 많이 보았고 그들은 그것을 자신의 삶에서, 그리고 세상의 유익을 위해서 구현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런데 더 높은 이상을 창조하려는 이러한 요청의 결과 아주 큰 사랑이 드러나서 이제 너희들이 의식적으로 그리고 사랑으로써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시작하도록 내가 다시 오는 게 긴요하다.

 

너희가 역사책의 도움과 또 여러나라 및 여러 세기에 걸친 유명 작가 및 철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지구상에서 지난 50만 년에 걸친 각 인간의 발전을 돌아보면 사상과 생활 양식의 변화는 없을 뿐 아니라 그 변화란 그저 아주 앞선 사상가의 고도로 지성적인 마음에 생긴 변화하는 의식의 청사진 때문에만 생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자신의 생각과 사상을 대중에게 제시했고 대중은 그것을 존경스럽게 흡수한 것처럼 새로운 사상은 서민들의 마음에서 다른 모습을 취했다. 그 후에 점차적으로 이들 새로운 사상은 조금 새로운 행동 양식으로 드러났고 또 한 가지 모습이나 다른 모습으로 일반적으로 국민 생활에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그 어떤 변화든 누군가가 대중의 감성에 강하게 충격을 주어 그들이 받아들이게 된 새로운 사상을 받아들인 결과 발생한 것이다. 이것은 그저 상식이라고 말할 것이다. 맞다. 하지만 새로운 인식은 상식 위에 세워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배척당할 것이다.

 

영국에서 빅토리아 시대와 에드워드 시대, 즉 1845~1919년을 돌아보면 의회와 귀족 계급 및 상층 계급이 부과한 매우 전통적 규제가 삶을 엄격히 지배했음을 알 것이다. 이 모든 법과 규칙은 비교적 거칠게 살던 세대가 만들었으나 영국 사상가들의 생각이 진보함에 따라 점차 완화되고 세련되었다. 이들 사상가들의 이상에 따른 결과 문명의 다양한 부속물이 채택되었는데 예를 들면 하수시설, 포장도로 및 불우한 이들의 피난소가 있으며 사람들이 서로 평화롭게 살 수 있도록 풍습이 매우 합리화되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교회에 가서 그들이 죄를 지으면 받을 천벌과 지옥불에 관해 설교자들이 말해야 하는 것들에 귀를 기울였다. 나라 전체가 자발적으로 취한 그런 기강의 결과로 사람들이 평온한 삶을 살 수 있었고 이런 상황은 인간의 생각과 의식의 숨겨지고 파괴적인 요소가 전쟁에서 분출될 때까지 계속되었다는 것을 알 것이다. 모든 강력한 감정적 생각은 결국엔 드러난다. 갈등은 젊은이들에게 숨겨져 있던 공격적 성향을 드러낼 기회를 가져왔다. 그것이 남성들과 소년들이 1914년 징집에 몰려든 이유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자 대중의 의식이 다시 바뀌었는데 그것은 전쟁 중에 만연했던 인간의 파괴적이고 공격적이며 보복적 충동이 드러남으로써 초래된 고통과 번민을 체험한 때문이었다. 영국인들은 더 이상 전쟁이 아니라 즐거움을 원했다! 교회는 이제 더 이상 전쟁 전처럼 사람들의 존경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1939~1945년의 전쟁은 사회 자체를 상승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전에 압제받던 대중이 전쟁에서 삼군에 들어가 그때까지 몰랐던 정보와 기술을 발휘할 기회를 가졌다. 그 결과 계급 장벽이 크게 허물어졌고 이전에 기본권 보장을 못 받던 이들이 교육을 더 받고 전문직종으로 올라갈 기회가 생겼다.

 

슬프게도 이러한 기회가 생긴 만큼 빈곤한 가정에서 어릴 때 물려받은 의식은 생명을 주는 사고로 교체되지 않았다. 삶이 불공정하고 부자에 의해 고통받고 배척되었다는 과거의 느낌이 남아서 엄청나게 큰 부정적 반응을 일으켰다. 즉 사람들에게 주어진 새 기회가 높은 수준의 영적 당당함과 성공과 성취, 그리고 행복에 대한 믿음을 낳지 못하고 사람들 마음에 아주 부정적이고 생명을 잠식하는 의식이 있어서 인간의 일반적 복리에 기여할 수 있는 엄청난 양의 기술적 지식 및 발견과 함께 전후에 세워졌어야 할 많은 복지와 기쁨을 파괴했다. 

 

그러나 오락과 천박함을 좇느라 고귀한 삶의 원칙은 해이해졌고 점차 버려져 해이해진 삶의 악영향이 대중의 의식을 물들였다. 그들은 정서의 급격한 변화의 결과로 고도의 비참함과 절망을 체험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다시 공격과 증오라는 비정상적인 반응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부정적 반응이라는 충동을 지닌 사람들은 성적 남용을 통해서 고통을 덜어보려고 했다. 이런 일은 미디어와 영화, 티브이와 라디오에서 들리는 것과 광고하는 것을 보고 들음으로써 커져서 많이 들을수록, 그것이 사람들 마음을 사로잡고 극심해져서 서로 간에 더욱 지독해지는 범죄로 이어졌다.

 

그리고 여기가 너희들이 현재 서 있는 곳이다. 사람들 마음에서 진행되고 이 땅위에 행동과 체험으로 볼 수 있게 된 것들에 더해서 이 땅의 '물질(matter)'에 가하는 그러한 궤도를 벗어난 생각과 행동에서 나오는 엄청나게 부정적인 결과들이 (첫 번째 편지에서 말한 것처럼 그리고 나를 믿지 못하였겠지만 내가 사막에 있었을 때 내 의식 변화가 내 주위 티끌의 진동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 알 수 있었기 때문에) 강화되거나 약화되면서 그 외관은 아주 미미하게 바뀌어 보통 지나치는 사람들은 그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날씨는 또 어떤가? 의식이 날씨의 성격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잘 아는 사람들이 너희 가운데 있다.

 

너희 삶의 모든 것이 의식이다. 이것은 의식이고 저것은 고체라고 자기 혼자만 생각할 수는 없다.

 

모든 존재가 예외 없이 실제 가시화된 의식이며 인간들의 마음이 매 순간 그것을 창조하고 있다. 

 

들을 태세가 된 이들에게 왜 내가 왔는지 이제 알 수 있는가? 그리고 아주 아주 많은 영광된 이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변화를 가져오고 지구를 구하기 위해 고도의 의식을 창조하기 시작하라는 내 요청에 응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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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의 정화방법

그리스도의 편지

355쪽부터 380쪽까지는 어떻게 의식을 정화시킬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이 있습니다. 그 서론이라 할 수 있는 우주의식과 신의식의 차이점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되는데 완전히 이해하기 어렵지만 제 경우 동양 영성에서 무극과 태극, 그리고 음양의 작동 원리에 해당한다고 느꼈습니다. 실천적으로 보다 중요한 말씀은 "창조의 본질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우주의식의 본질과 품성이 찬란히 빛나는 환희와 충만과 행복임을 이해하고 그러한 영광스러운 초월적 존재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바로 우리 영혼의 가장 깊은 열망"(358쪽)이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이 열망이 깊고 큰 것이기에 세상에서 보거나 배운 그 무엇에도 우리는 만족을 못하며 마침내 우리를 존재하게 한 신 의식에 접속하기 위해 명상을 하고 명상을 통해서 '신성한 평형상태'를 잠깐이라도 느낌으로써 공허감을 극복하게 된다(359쪽)는 것을 지적합니다. 이 길을 가지 않았을 때 제 경우는 밖에서 몰입거리와 과시거리를 찾아나서고 또 투명성에 벗어난 즐거움을 추구하느라 소위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몰랐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어떤 경우에도 공허감을 느끼지 않으며 오직 소아 망실 내지 멸각, 다른 말로 의식의 정화(이것은 또 마태복음 16:24의 실천입니다)를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첨단 영성으로서의 '편지'

그리스도의 편지

세포는 세포막을 통해서 오직 선별된 영양소만을 환경으로부터 받아들인다. 세포는 적합한 영양소만을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그것을 잘 활용한 후에는 투과성 있는 세포막을 통해서 그 찌꺼기를 내보내어 제거한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순전히 물리적인 세포막이 어떻게 자신의 건강을 향상시킬 적절한 영양소를 식별하여 선택할 수 있는지 그리고 불필요한 독성물질에 대한 식별력을 제대로 발휘하여 그것을 제거할 수 있는지 너희는 자문해봐야 한다. 이 모든 작용 속에 고도의 목적성이 보이지 않는가? 이 목적성이 우연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라고 너희는 믿을 수 있는가? (287쪽)

-- 위 문구의 앞뒤에서 편지는 우연히 화학작용을 통해 생명을 얻은 세포가 자가 증식을 해서 진화했다고 하는 과학과 하느님이 화학반응의 조합을 일으켜 생명을 불어넣은 것이라고 하는 소위 선지자들은 모두 양극단의 생각이라고 지적합니다. 제 경우 저 세포막에 대한 설명이 가장 인상 깊은 구절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물질의 근본 입자와 그 운동인 전자기파, 그리고 세포에서까지 발견되는 의식으로 창조와 진화를 설명한다는 점에서 편지는 가장 첨단을 가는 영성 이론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편지와 유사한 설명 방식이 요즈음은 유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진리에 있어 '더 낫다'는 것이 없다는 것, 편지의 가르침에도 의지하지 말라는 점에서 더욱 첨단적입니다. 

그리고 제가 접해본 그 어떤 안내서보다 구체적이고 실제적으로 자기 혁신을 하고 그 바탕에서 새로운 창조를 할 수 있는지 안내하고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가 요약한 핵심 계명인 신애(神愛)와 인인애(隣人愛)야말로 대승불교의 요약이기도 한데 신애란 쉽게 말하면 신성에 '올인'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얻어진 지혜와 관점으로 인인애를 실천할 때 비로서 신적 사랑을 세상에 구현하는 것입니다. 신성에 올인하기 위해서 매일 10분 이상을 내어 침묵하며 기도하라는 것이고 '편지' 또는 그에 버금가는 책을 매일 읽으라는 것입니다. 신성에 올인하는 데 있어 가장 기초적인 작업이 이제까지 잠재의식 깊이 입력되어 습(習)이 된 모든 것을 지워내는 것입니다.  

인간적 고독에서 신적 고독으로의 비상

그리스도의 편지

긍정적 사고방식에 대한 가르침은 한정된 범위 내에서는 사실이지만 영적으로 진화해가는 구도자에게는 그런 정도의 의식 변화로는 영적인 메마름이 해소되지 않아서 자꾸 뭔가를 더 갈망하게 만든다. 영혼이 갈망하는 그 '무언가 더'는 <존재의 근원>과의 진정한 만남과 재합일이다... 

우주적 존재의 본성을 깨닫고 그것과 진정한 만남을 이루는 일에 주의를 돌리면 너희는 자신이 더 이상 혼자가 아님을 (우주를 지탱하는 실재로부터 뒷받침받고 있는 자신을) 깨닫기 시작한다. 그리고 내가 '그것과 진정한 만남을 이룬다'고 할 때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이러저러한 은혜를 간구하는 기도는 너희 <존재의 근원>과 진정한 만남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너희 존재의 근원과 진정으로 만난다는 것은 (1) 너희가 의식으로부터 거친 인간적 에고 욕구를 충분히 닦아내고 (2) 일정 시간 이상 명상을 하여 영을 접함으로써 존재를 새롭게 충전시키도록 애쓰면서 근원에 '가 닿기를' 의식 속의 강렬한 느낌으로 규칙적으로 염원할 때만 경험된다. (275~276쪽)

-- 우리의 욕망은 영혼의 갈망에서 나오는 것인데 그것이 영원을 향하지 않으면 가시 세계의 것들에 갇혀서 루프를 끝없이 반복할 뿐입니다. 그것은 권태와 무미건조함을 느끼는 자신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존재의 근원과 만날 때만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은 3세기 사람 플로티누스가 '인간적 고독에서 신적 고독으로의 비상(flight of the alone to the Alone)'을 말할 때 전해지던 것입니다. 신과 함께할 때 다른 이들에게는 혼자인 것 같지만 완전히 또 진실로 인간적 고독을 극복한 상태라는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이러한 상태로 가는 비결은 위 (1) (2)밖에 없다는 것은 수천 년에 걸쳐 입증된 진실입니다.   

신의 속성과 다음 차원의 모습

그리스도의 편지

너희는 너희가 하느님이라 부르고 내가 우주적 존재라고 일컫는 <그것>에에는 많은 종교들이 덧붙여놓은 인간적 속성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온전하고 분명하게 이해해야 한다. 예컨대 분노와 위협, 처벌 등 인간적 속겅은 오직 인간의 상황에만 어울리는 것이다...

죽음은 존재의 한정된 차원으로부터 더 밝고 더 강력한 차원으로 넘어가는 행복한 여행을 의미하게 될 것이다. 너희가 영적으로 어느 정도 정화되어 육신의 껍질을 벗어날 때가 되면 너희는 이곳을 떠나서 육체적 제약에서 해방되어 사랑과 아름다움과 경이로운 존재감을 누리는 세계로 진입할 것이다. (274쪽)

-- 저는 초등학교 5학년부터 어머니 따라 그리스도교에 입문했습니다. 그때부터 무의식적으로 입력된 하느님은 인간과 비슷한 것이었고 게다가 마지막 날에 단호한 심판으로 천국, 연옥 아니면 지옥으로 보내는 심판관이었습니다(다행히 가톨릭에 입문해서 연옥의 가능성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교회 출석을 그만두고 읽은 책들은 한결같이 신에게 인간적 속성은 없으며 절대 심판관 노릇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선가귀감에서 신적 존재를 한 물건(一物)이라고 하여 '편지'에서 자주 <그것(It)>이라고 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시대적으로 부족 의식 수준의 종교도 존재하는 반면 아무리 고등 의식으로 된 종교라도 우리 의식이 높아지지 않으면 부족 의식 수준의 종교 생활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두 번째로 임사체험자들이나 높은 의식에 도달한 스승들 얘기를 들으면 이 세상이 너무 누추해서 별로 이 세상으로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없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우리는 보통 보이는 세상만을 기준으로 살고 있습니다. 호킨스 박사도 의식이 <무조건적 사랑>을 넘어 <평화>의 수준에 이르면 이 세상과 저 세상의 선택에 무심해진다고 합니다.

하화중생을 위한 과학적 대안

그리스도의 편지

기독교란 내 초기 제자들과 안티옥 수임 이후의 바울이 유대인들을 최대한 한데 뭉치게 하고 이방의 개종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종교다... 너희 영적 발전은 오로지 존재의 법칙과 <너희를 존재하게 한 그것>에 대한 한층 더 깊은 인식과 이해로부터만 일어날 수 있다.

인류는 자신의 영적 근원을 알지 못함으로 해서 끊임없는 전쟁에 시달리고 인간 의식을 바닥으로 끌어내려서 온갖 고난을 낳는 근원인 지상 상황을 만들어냈다. 이런 이유로 나는 너희가 배운, 혹은 전통이 전해준 그릇된 믿음을 버리도록 하기 위해 실로 '있는 그대로의 진실'에 대한 깨달음과 새로운 인식을 쌓을 수 있도록 <존재의 진실>을 이해가능한 현대 언어로 너희에게 전하기 위해 <내 그리스도 의식을 온통 쏟아보내고> 있다. (그리스도의 편지, 270~271쪽)

-- 저처럼 소년기에 기독교를 받아들이신 분들은 기독교를 객관적으로 보기 힘듭니다. 그 영향력이 압도적이어서 오히려 종교로 인한 깊은 고난과 좌절의 단계를 거칠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위에 써 있는 대로 초기 교회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초기 교회 다음엔 로마 황제가 소집한 니케아 공의회 이후 로마제국 통치의 하위 수단, 즉 이데올로기로 활용되었을 뿐임을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또 위에 써 있는 대로 '편지'의 기본 태도는 과학적입니다. 인류 고통의 원인인 전쟁(기록된 역사의 약 93% 이상이 전쟁의 역사이며 전쟁이 없었을 때는 페스트와 같은 전쟁에 버금가는 재앙이 있었다고 합니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깨닫고 영적 발전을 꾀함으로써 모든 창조의 근원인 집단 의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매우 합리적인 하화중생의 대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부자, 걱정 없음과 삶의 목표

그리스도의 편지

어제 글은 매일 명상을 위해 바치는 기도와 지상 천국 회원으로서 지켜야 할 규칙을 보면 (1)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이 채워진다는 것을 알게 되고, (2) 치유와 해결을 필요로 하는 모든 치유와 문제 해결이 이뤄진다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것을 여러분은 믿습니까? 이미 알고 있습니까?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은 믿을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은 이미 뼛속 깊이 새겨져 아는 것이기 때문에 믿을 필요가 없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저는 환갑 넘는 삶을 살면서 '제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이 채워졌음'을 압니다. 제가 바라는 것 이상으로 채워진 일도 부지기수입니다. 다음에 지금 순간까지 적절한 때에 제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고 필요한 치유가 일어났음을 알고 있습니다. 

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공부를 잘 해서 내가 이미 신 의식의 일부임을 믿을 필요가 없이, 마치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두말할 필요없이 아는 것처럼 알게 된다면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와 같은 성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 필요 없을 정도로 우리가 신인 줄 알게 될 때 우리는 사랑 자체가 되어 세상 모든 것에 대한 무조건적 사랑이 가능하게 될 것입니다. 신처럼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명상 기도에 있는 것처럼 "우리의 궁극 목적은 당신을 표현하는 것임을 아나이다"라고 말할 필요도 없이 실천하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 일거수일투족이 신의 표현이 되도록 사는 것이 바로 인간 삶의 참 목표임을 뼛속 깊이 새기기 위해 매일 정진하는 것이 바로 우리 공부입니다.  

오직 하나 필요한 것

그리스도의 편지

우선 명상기도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당신은 제가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주시며 제 가장 숭고한 영감이십니다." 다음에 세부규칙 해설에 나오는 문구입니다. "신 의식과 결합함으로써 치유와 해답을 구하는 모든 문제가 적절히 치유되고 해결될 것임을 안다."

매일 읽고 기도를 바칠 때마다 느끼는 것인데 기도 지향이 오직 신 의식과 합치하고자 하는 데 있고 또 신 의식에 완전한 신뢰가 있다면 따로 구할 게 있습니까? 부자의 정의를 제대로 내린다면, 즉 '많이 소유한 자'가 아니라 '필요한 모든 것이 이뤄지는 자'가 부자라고 본다면 우리는 믿는 바대로 이미 부자입니다.

다음에 또 다시 신 의식을 완전히 신뢰한다면 걱정을 할 이유가 있습니까? '치유와 해답을 구하는 모든 문제가 적절히 치유되고 해결될 것임을 아는데' 당신은 무슨 걱정을 하며 왜 잠을 잘 못 이룹니까? 그리스도 말씀대로 오직 하나 필요한 것은 온 마음과 뜻과 목숨을 바쳐 신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이 일을 하는 데 있어 기존 교회에 의지하는 일이 매우 효과가 없고 간혹 속임수에 휩쓸린다는 자각이 있는 분은 탈교회-탈종교를 추구한다고 봅니다. 루터가 세 가지 '만', 즉 성경, 은총, 믿음만을 주장한 것은 기존 교회가 심하게 부패했을 뿐 아니라 길을 잃고 아무런 효험이 없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부정당한 기존 교회는 오늘날 다시 형태만 다른 교회의 모습을 하고 나타났습니다. 둘이나 셋이 모여서 보다 효과적으로 신과 이웃을 사랑하는 공부를 하는 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그리스도 신비체라는 것은 어떤 형태인지 모른다는 것이 바른 판단인데 자기네 교회만이 그리스도 신비체라고 주장하는 것은 독선입니다.

그리스도도 일시적 수단임

그리스도의 편지

아무도 해당 구절을 알려주지 않으시기에 제가 찾았습니다. 일곱 번째 편지 425쪽과 455쪽에서 두 번 거론되고 있습니다. 즉 "영적 버팀목으로서 다른 존재를 필요로 하는 것은 자신을 약화시키는 일이므로 나에게 의지하는 것조차도 일시적 수단으로만 여겨야 한다. 이런 이유로 나는 너희로 하여금 너희 진정한 후원자이자 대들보인 <생명과 존재의 근원>은 평형상태의 우주의식이라는 전능한 차원에서 직접 오는 것임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기록자를 통해 온갖 노력을 다하고 있다. (425쪽)"

이것은 바이블 말씀과도 조응합니다. 즉 바이블에서는 우리가 그리스도가 하신 일 이상을 할 수 있다고 써 있죠! 혹시 해당 구절을 찾아 주실 분 계시나요? 다음에 455쪽에서는 "내 그리스도 의식이 항상 너희와 함께하고 있어서 너희가 원하기만 하면 즉시 나에게로 올 수 있음을 알라. 이것이 너희에게 (의지물이 아니라) 위안이 되게 하라. 나는 너희가 스스로를 계몽시켜 그리스도 의식 속으로 상승해가기 위해 지나가는 관문일 뿐이다." 고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계속 교회에 의존하게 하는 방식을 쓰는 대부분의 기성 교회는 (알든 모르든) 교묘한 트릭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제대로 된 스승은 제자가 하루 빨리 독립해서 하산하기를 바라는 게 당연합니다. 제가 볼 때는 죽음이라는 완전 혼자인 과업을 치루기 위해서라도 교회나 성직자에게 의존하는 일을 빨리 벗어나는 게 맞다고 봅니다. 재론하지만 그런 의미에서 전통적으로 살불살조를 말하는 불교가 기독교보다 한 수 위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