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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심소욕불유구'로 가기 위해, 유교와 불교 및 기독교 영성을 공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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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영지'에 해당되는 글 5

  1. 2016.01.15 참으로 신이 존재할까?
  2. 2016.01.05 2절-1 : 성인의 길
  3. 2015.11.30 종교 대신 영성
  4. 2015.10.11 모든 것을 이루는 비결
  5. 2013.11.25 신을 만나는 일

나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부딪치는 여러 문제거리에 대해 구어체로 말해주려고 다시 왔다.

 

기록자를 통해서 이 일을 하고 있는데 왜냐하면 이 편지에 있는 <진리>를 참으로 받아들인 사람들과 창조의 비밀을 깊이 이해하고 거기에 따라 일상생활을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은 과거의 짐에서 크게 벗어났기 때문이다.

 

그들은 인류가 환경의 희생자가 되려고 태어난 게 아니라는 것을 기쁜 마음으로 확인했다. 그들은 어려움을 극복하거나 내면의 힘과 오히려 행복한 마음으로 좌절을 견딜 수 있는, 참되고 믿을 만한 수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수단이 무엇인가?

 

그것은 모든 <존재의 근원>, 즉 성서에 기록된 여호와 식의 하느님이 아니라 진실한 신비가들이 체험한 <존재의 우주적 빛>을 말한다. 시간이 감에 따라 종교가 아니라 영적 <진리>를 깊이 탐구하려는 열의를 가진 사람들은 누구나 신비가로서의 본성적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런 일이 일어나면 그들은 더 이상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지 않을 것이다;

 

참으로 이 존재할까?

 

하지만 엄청나게 강력한 우주적 <제일 원인> 또는 <존재의 우주적 근원>이 있어서 그로부터 모든 것이 개별 실체를 취하며 그 엄청난 <의식 에너지> 안에서 모든 생물과 무생물이 지상 삶과 그 이후까지 생존하고 유지된다는 것을 한 점 의심 없이 알게 된다.

 

너희가 그저 짐을 진 인간이고 환경의 희생자여서 꽉 짜인 틀 속으로 태어나거나 나중에는 골짜기로 내던져져서 꼼짝할 수 없도록 되어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 얼마나 굉장히 고무적이고 영광스럽게 가슴 설레는 일인지 알겠는가?

 

<우주 의식 에너지>가 너희 안에 줄곧 있으면서 성장시키고 영양분을 제공하고 치유하며 세균으로부터 보호하고 죽어가는 세포를 대체하고 운동할 때 근육과 힘줄에 힘을 가해주는 등 너희 몸 안에서 그 모든 놀라운 일을 비밀히 그리고 고요히 하고 있다는 것을 완전하고도 분명하게 깨닫는 것이 얼마나 기운 나는 일인지 알겠는가?

 

너희가 알지도 못하는 존재 덕분에 너희가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유지되고 있다는 것을 알기나 하는가?

 

과학자들은 이 모든 일에 대해 설명할 수 있지만 어떠한 위대한 <존재의 충동>이 그런 일들을 수행하는지 설명할 시도도 못하고 있다.

 

나는 말해줄 수 있다. 왜냐하면 내가 땅 위에 있을 때 완전한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며, 나는 우리 모두의 <제일 원인>, <존재의 근원>침묵과 고요인 <공()> 속에 자리하고 있는 <영원한 평형상태>의 바로 입구에 이를 때까지 <빛>으로 된 다양한 층을 거쳐 올라왔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이 거의 완전히 개별화한 존재이기 때문에 나는 <제일 원인>의 참된 본성을 알고 있다.

 

깨달은 후에 그것<모든 피조물의 참된 아버지/어머니>임을 알았기 때문에 내가 <아버지>라고 부른 바로 그 똑같은 <근원>으로부터, 전에 예수로 알려진 승천한 그리스도<너희>는 나왔다.

 

인간인 부모는 그들을 통하여 <존재의 근원>이 일을 하는 도구일 뿐이다.

 

나는 명명백백하게 알고 있고 진실을 말하고 있기에 나를 믿어라-

 

너희 몸의 부모가 너희를 실망시키더라도 너희가 <나의 길>, <그리스도의 길>을 가면 <아버지>가 공급, 치유, 안내, 예기치 못한 기회의 부여 및 영감과 환희를 틀림없이 주는 <근원>이라는 것을 결국 알게 될 것이다.

 

이 땅 어디에 있든, 어떤 어려움을 당하든, 어떤 부끄러움을 당하든, 어떤 궁핍을 당하든, <너희가 의심하지 않으면> 너희 안과 주변에 온 마음으로 의지할 <영적 수단>이 있을 것이고 그 응답을 틀림없이 받을 것이다.

 

많은 이들이 여기에 반대하고 비웃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불신 상태에서 살게 될 것이라는 것도 진실이다.

 

매순간 <나의 길><그리스도의 길>을 가고자 결심한 사람은 내 말을 수긍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올바르게 명상하는 법을 알고 있고 그로써 모든 창조와 완성의 <근원>에 의지하기 때문이다. 올바른 명상법이란 마음을 고요하게 하여 공적영지우주의 평형상태 즉 창조의 을 조금씩 체험하는 것이다.

 

어떻게든 그들도 재잘거리는 마음을 중단시키고 고요 속으로 들어가보면 아무도 감히 이 말을 부인하거나 비판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 체험을 해보면 그들에게 생명을 주고 어른이 되도록 기른 <그것>을 찾으려는 신적 소명을 누구도 거부할 수 없을 것이다.

 

첫 번째 편지에서 내가 팔레스타인의 사막에서 완전한 깨달음을 통해 습득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봐라. 존재에 관한 모든 <진리>를 완전히 받아들여 그것을 나처럼 일상생활에 적용해보면 너희에게도 기적이 일어나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 영원한 진리를 깊게 온전하게 받아들일수록 더욱 빨리 그렇게 될 것이다.

 

너희 <근원>에 대해서 그리고 <그것>과의 진실한 관계를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서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 편지를 되풀이 읽고 다시는 너희 세상이 견고한 물체라고 생각하지 않도록 하여라. 세상은 오직 <영원한 의식>과 모 존재의 <본질>이기도 <추동력>으로 구성된 것임을 바로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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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절-1 : 성인의 길

2016.01.05 13:40 | Posted by 목운

따라서 성인이란 사람들 가운데 먼저 깨달은 사람입니다. 깨달으면 밝고 깨닫지 못하면 갈팡질팡하니 어둡습니다. 밝음과 어두움이 같지 않다고 하는데 밝음과 어두움이 본래 참나에 존재하지 않으며 둘다 참나와 떨어져 있습니다. 무릇 밝음이란 어두움에 대비하여 말하는 것이니 어두움이 사라졌다면 따라서 밝음도 없는 것입니다. (故聖人者, 人之先覺者也. 覺則明, 否則惑, 惑則昏. 明與昏謂之不同. 明與昏, 性本無有, 則同與不同, 二者離矣. 夫明者所以對昏, 昏旣滅, 則明亦不立矣.)


그런 때문에 진실하고 온전한 것이 성인의 참나로서 그것은 고요하고 움직임이 없고 확 트여 밝으며 천지를 비추어 온 세상을 두루 느껴 아는 때문에 행동하지 않고 말하지 않아도 미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참나로 돌아간다 함은 덕을 닦는 자가 쉬지 않고 실천하는 것으로서 그렇게 노력하길 그치지 않으면 그 근원에 이를 수 있게 됩니다. (是故誠者, 聖人之性也. 寂然不動, 廣大淸明, 照乎天地, 感而遂通天下之故. 行止語黙, 無不處於極也. 復其性者, 賢人循之而不已者也. 不已則能歸其源矣.)


자습노트) 

참나의 경지는 밝음 대 어두움이라는 이원성 세계마저도 초월한 것이며 참나에 이른 상태는 우리가 원래 태어난 상태이며 그 가장 큰 특성이 진실하고 온전한 것(誠)입니다. 여기서 참나 상태에 대하여 설명한 것을 보면 보조 스님이 공적영지(空寂靈知)로 요약하신 바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참나로 돌아가는 데 덕과 쉬지 않는 노력을 거론한 것은 여섯 바라밀을 꾸준히 닦아야 한다는 가르침에 통한다고 봅니다.


참나 상태란 기독교 신비주의에 비추어보면 신인합일 상태로 볼 수 있습니다. 기독교 신비주의에서 신인합일에 이르기 위한 전단계로서 거비정화(purification)와 진덕명화(illumination)가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두번째 단계의 용어입니다. 즉 덕이 나아감으로써 밝아지는 것을 말하고 있고 밝아진 후에는 밝음과 어두움의 이원성을 벗어난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또 덕이 높은 자(賢人)가 쉬지 않고 노력할 때 참나에 이른다고 한 것도 정확히 기독교 신비주의 삼단계설에 부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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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대신 영성

2015.11.30 06:42 | Posted by 목운

한국 불교의 정통으로 간주되는 스님 가운데 한분인 지눌스님이 수심결에서 말씀하신 공적영지를 영어로 대충 생각해보면 'Void of stillness which has spiritual consciousness'쯤 되겠죠! 이와 비슷한 말이 '그리스도의 편지'에 여러번 나옵니다. 바로 신 의식(Divine Consciousness) 내지 존재의 근원(Source of Being)의 다른 말입니다.


그렇게 보면 한국 불교 2천년 동안 노력해온 목표가 '편지'의 지향과 같다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힌두 전통에서 깨달음을 성취하신 붓다께서 신을 지칭하시지 않은 이유는 당시 카스트 제도를 둘러싼 종교 기득권 세력의 폐해가 가관이었기 때문이라고 보는데 그리스도도 똑같은 이유로 가르침을 편 때문에 처형되셨습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요점은 '편지'가 동서 신비주의의 핵심을 아주 쉽게 기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편지'를 우회하고 싶으신 분은 제 말대로 하시면 됩니다. 즉 수시로 홀로 고요히 조식이나 명상을 할 때 만나지는 실체의 전지전능함과 무소부재함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무엇이든 '묻고 청하면서' 살면 반드시 풍요와 기쁨, 자비와 평화 속에 한 생을 잘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천사항으로는 부정적 감정을 방하착하는 노트와 미소한 것이라도 적는 감사노트, 그리고 집착없이 묻고 청하되 꼭 이뤄졌으면 하는 것을 적는 소망노트를 마련하시고 오프에서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 두셋이서 꾸준히 모임을 가지는 겁니다. 다만 가급적 기존 종교의 교리, 조직 등에서 벗어나실 것을 권합니다. 동서양 불문하고 기존 종교는 이데올로기로 전락하였고 그 폐해가 커서 이미 서양은 종교 탈출 러시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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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이루는 비결

2015.10.11 15:23 | Posted by 목운

'논설 3'에서는 신이 진짜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다루고 있습니다만 신비가들의 손을 들어주고 있습니다. 이 논설에 따르면 동양의 유불선과 서양의 신비주의가 모두 같은 범주에 들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길을 가는 방편으로서 명상을 제시하며 명상에서 지눌 스님이 말씀하신 바의 '공적영지(空寂靈知)'를 체험한다고 하기 때문입니다(원문에서는 'Stillness and Silence of the Void and the Universal Equilibrium'이라 하고 있습니다). 그 표현이 조금 다르지만 저는 불교 영성을 떠올렸습니다. 


이것은 홍익학당과 불가에서 얘기하는 '참나'이기도 한데 이 논설에서는 이것이 창조의 근원이며 이것을 조금이라도 체험하는 것이 중요하고 모든 창조와 완성이 여기에 달려 있다고 합니다(편지 5와 6에서 기술). 이것은 존재의 우주적 빛(Universal Light of Being)으로서 신비가들이 얘기해온 바와 같습니다. 이 신비를 아는 자에게 신이 있느냐는 질문은 의미가 없다고 합니다.


우주의 제1원인[존재의 우주적 근원]에서 모든 존재가 개별적 모습을 취하게 되며 거기에 무한한 '의식 에너지'가 있어서 그 힘으로 모든 존재가 생명을 받아 유지하게 됩니다. 그리스도는 빛의 모든 국면을 지나 '영원한 균형' 위에 있으며 바로 '모든 존재의 근원[제1원인]'이 '침묵과 고요의 공(Void of Stillness and Silence)' 속에 있다고 합니다. 그리스도는 그것이 완벽하게 개별화된 분이며 따라서 '제1원인'의 참 본성이기도 합니다. 


이상은 성서의 어휘를 현대적 용어로 바꾼 것입니다. 그래서 이 편지에서는 이것을 비유적으로 '아버지'라고 했음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인간 부모는 '존재의 근원'이 일하는 데 있어 도구일 뿐이라고 강조합니다. 어쨌든 우리가 의심하지만 않으면 땅 위 어디에 있든, 문제가 무엇이든, 우리 각자 안에 그리고 우리 주위에 '영적 방편(Spiritual Means)'이 있기 때문에 전심전력 구할 때 반드시 답이 주어지게 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것도 이미 성서에 진술된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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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만나는 일

2013.11.25 12:22 | Posted by 목운

에카르트(1260~1328)를  소개한 우술라 플레밍은 "그리스도교가 비판받는 것 중 한가지가 신을 찾아가는 뚜렷한 방법이 없다."고 합니다. 그녀는 에카르트가 기술한 영원한 탄생을 신을 찾은 경지로 보고 거기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영원한 탄생을 위하여 필요한 것은 훈련과 집중, 높은 열망입니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비워 무지한 사람처럼 되는 것입니다. 지눌스님 지으신 수심결에 따르면 자신의 생각, 감정, 오감에서 오는 모든 것을 부인하고 한가지에 몰입하다가 아무것도 모른다 할 때 느껴지는 '공적영지(空寂靈知)'가 바로 순수한 영의 상태입니다. 그때 느껴지는 환희심에만 의지해서 신의 인도하심을 충실히 따르면서 끝없이 덕을 닦아나갈 때 비로소 신과 완전한 합일에 이를 것입니다.


영심성찰을 하고 덕을 닦아가는 요령은 그리스도교 수덕체계에도 풍부하게 기술되어 있습니다. 불교와 유교에는 각각 6바라밀과 4단이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신과 합일할 때 "천년전에 흘러간 시간은 현재와 마찬가지로 바로 지금이며 신께는 천년도 지금 이 순간과 똑같이 가까운 것이다(우술라 플레밍, '그에게는 아무것도 감추지 않았다', 125쪽)"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금강경오가해는 "천겁이 지나도 새롭고 만년에 걸쳐 언제나 지금 같다(歷千劫而不古 亘萬歲而長今)."라고 해서 놀랍습니다. 


또 에카르트는 "나는 신에게 신을 없애달라고 기도한다(I pray God to get rid of God)."고 하고 있어서 역시 모든 모습(相)에서 벗어나야 최상의 깨달음(무상정등정각)을 얻는다는 금강경의 가르침에 부합합니다. 요컨대 모든 것을 바쳐서 신을 만나는 게 가장 시급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동시에 기독교 1계명의 진정한 취지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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