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크하르트 입문 44

'버리고 떠나 있음' 일부 인용

에크하르트를 1년 가까이 읽어도 제 말로 쉽게 설명할 수 없는 것은 그것이 깊고 높은 정신에서, 그리고 그분의 체험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그분의 강론 또는 설교들이 결코 통속적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제가 통속적이라고 할 때는 얕고 임기응변적이어서 누구나 쉽게 '다 안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것입니다. 자기계발서나 일부 뉴에이지 영성 같은 것들이 그러하지요! 하지만 에크하르트의 문장들은 모순이 가득하여서 삶의 모순을 깊이 이해할 때까지는 괄호 속에 놓고 이해하고자 노력해야 하지 싶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몇 구절을 그대로 인용하고 제 생각을 살짝 덧붙이는 데 그치려고 합니다. = 정작 신의 뜻이 이루어지면 우리는 화를 낸다... "아 그것이 다르게 이루어졌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또는 ..

고통과 역경에 대한 태도

수행으로서의 독서에 신적(divina)이란 형용사를 붙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독서에는 기술을 습득하거나 처세를 잘 하기 위한 독서가 있을 테고 많은 지식의 습득을 통해서 두루 통하는 원리를 깨치기 위한 독서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독서는 그저 다다익선이라는 데 그치거나 통속과 자기 과시 등 에고에 복무하기 일쑤입니다.신적 독서 또는 영적 독서는 존재의 근본 진실을 파악하여 정의에 맞게 또 원만하고 완전하게 세상 삶을 살고 만족스럽게 세상 삶을 마무리하여 더 높은 경지로 무한히 향상해 가려는 높은 이상에 부합하는 독서라고 생각합니다. 요컨대 진리에 부합하는 삶과, 자연에 새겨진 진화의 목적을 성취하려는 것이 수행으로서의 독서이기 때문에 지식의 축적보다는 삶이나 존재의 변혁과 향상..

동서 수행의 공통점

10개월째 에크하르트를 읽고 있습니다. '고귀한 사람'의 내용 가운데 아우구스티누스의 의식 성장 여섯 단계를 소개했지만 이 설교는 동아시아의 보살도에 조응하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극기복례나 멸정복성으로 요약할 수 있는 수행의 요점에 대해서는 동양 방법론과 일치합니다. 그래서 저자는 솔로몬의 노래인 아가 1:5를 인용하면서 아가의 주인공이 매력적임에도 얼굴이 검게 보이는 사유를 설명하는데 사연인즉 포도원을 돌보느라 햇볕에 그을렸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에크하르트는 최고의 피조물인 해로 인해 우리 존재에 새겨져 있는 "신의 상"이 덮여진 상태가 바로 그을린 피부와 같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잠언을 인용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알려줍니다. 즉 "은으로부터 녹을 닦아 내거라. 그러면 가장 빛나는 그릇이..

'버리고 떠나 있음' 해설

에크하르트는 토속어, 즉 독일어로 대중을 위한 강론을 한 아마도 최초의 성직자였습니다. 그의 시대에 인쇄술이 발달했다면 어쩌면 루터의 시대는 앞당겨졌을지도 모릅니다. 이부현 님의 선집에 독일어 주요 설교가 네 편 번역돼 있는데 이 설교들에서도 그의 생각의 핵심이면서 앞에 소개한 세 가지 논고의 주제가 반복되는 것 같습니다. '버리고 떠나 있음'이란 제목이 붙은 설교에 저는 '신인합일에 대한 고찰'이란 요약을 붙여봤습니다. 왜냐하면 신인합일이란 명상의 궁극목적이면서 제가 배우는 명상에서도 "자신을 신께 바치고 모든 정성을 다하여 신의 의지만을 따르고자(206쪽)"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편지' 메시지에 따르면 명상에서 "삶을 스스로 감당하려는 의지를 비우"라고 합니다. 에크하르트는 "병이든 ..

적자지심에 이르는 길

오늘은 제가 발견한 재미있는 관점을 하나 제시해보려 합니다. 동아시아에서 갓난아이 마음(赤子之心)은 대인 또는 성인의 마음이라 합니다. 한편 바이블에서도 아이처럼 되는 게 천국 진입의 조건이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매우 불명확한 것 같습니다. 제가 읽은 바에 따르면 엊그제 언급했던 대로 우리 사고틀과 감정습관이 이진법 프로그램 덩어리임을 인식하고 마치 컴퓨터를 초기화하듯 모두 삭제하는 것이 긴요하며 그 방편이 바로 정좌(정관 또는 관조)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도달하는 경지가 노자와 에크하르트에게서 동일한데 바로 무지입니다. 갓난아이의 무지에 도달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바로 "무지가 있는 곳에 결함이 있고 헛됨이(..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선집

이부현 님이 편집하고 번역한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선집'은 주요 논고를 연대별로 정리했기에 읽기가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제 독법은 그의 생각을 동아시아의 가르침과 대응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적 강화(또는 훈화)는 대학-중용에 조응시켜 봤습니다. '신적 위로의 책'은 인생에서 겪는 상실과 고통을 대하는 방법을 세세히 논한 것입니다. 여기서도 일관되게 플로티누스와 성서를 융합하면서 완전한 초탈, 완전한 순명을 통해 신과 일치하는 요점을 반복해서 논합니다. 이미 썼지만 우술라 플레밍은 에크하르트의 방법만이 고통에 빠진 환자들에게 효험이 있었다고 합니다. 제가 '고귀한 사람'까지 소개했는데 이 부분은 요컨대 깨달음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거기에 이를지 세 가지 비유, 즉 흙의 제거로 씨앗을 드러냄, 구름..

윤집궐중의 교과서

남들 안 하는 공부 얘기하니 제가 뭐 대단한 수련을 하거나 굉장한 체험을 한 게 아닌가 하는 대접을 받습니다. 물론 그냥 스몰 토크의 한가지라는 것도 압니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지라 세상을 떠들석하게 하지는 않았을망정 오감이 이끄는 대로 또는 세상이 제시하는 이런저런 나침반 따라 해볼만한 일 또는 짓은 거의 다 해봤지만 모두 오답이더라 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제 비로소 우리 전통 가르침인 대학-중용을 실천하려 하는데 그 핵심 요지는 다시 서경 16자로 귀결됩니다. 서경 16자 가르침이란 '윤집궐중' 하라는 것이고 여기서 중이란 생각이 끊어진 자리 즉 희로애구애오욕이 발하기 전의 상태로서 천하의 근본이라는 게 중용의 가르침입니다. 그러니 언제나 중을 잡고(집중) 그 상태를 놓치지 말라는 것인데 이것을..

소위 신비주의라 하는 수행 원리

올해는 에크하르트와 지낼 것 같은 예감입니다. '훈화'와 '신적 위로의 책'을 이곳과 제 블로그에 대략 소개했는데 두 권의 경우 수십 번 읽어도 다 이해하기 어렵다는 느낌입니다. 그럼에도 수행 또는 의식향상에 뜻이 있는 분께는 바로바로 쓸모 있는 말씀이 가득합니다. 두 책에 이어 '고귀한 사람'이 이어지는데 역시 참나 찾기 또는 보살도와 다름없는 것으로 여겨지는 실용적 교훈으로 되어 있습니다. 인상깊은 것은, 이 책의 '내적인 고귀한 인간에게 심어져 있는 씨앗인 신적 형상'은 복성서의 성(性) 또는 참나에 해당하고 '씨앗을 덮고 있는 세속적 욕심'은 정(情) 또는 에고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면 역시 동서의 수행 원리가 같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반복하자면 수행원리란 에고를 제거하는 과정인 정..

고통과 무집착

'신적 위로의 책' 2부에서 에크하르트는 30가지 논거 또는 사례를 동원해서 사람들이 고통을 벗어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저는 이 한 가지 사실만으로 추론하건대 그가 당대 최고 지성이자 고위 성직자였음에도 그가 담당한 베귄을 비롯한 대중의 고통에 관심이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보니 교회에서는 거의 최초로, 라틴어가 아니라 독일 보통 사람들 말로 강론을 많이 했으며 대중적 인기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와중에 교황과 여타 고위 성직자들이 정치적 이익 추구를 위해 그를 희생양 삼았습니다. 즉 그는 유일무이하게 고위 성직자로서 종교재판에 회부되어 이단으로 판결받았습니다. 오늘날까지 일부만 복권된 것을 보면 역시 기존 종교는 하루 속히 해체되어야 마땅하다는 생각까지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는 비그리스..

완전한 순명과 고통

에크하르트의 '훈화'를 대학-중용의 가르침에 비추어본 글을 여럿 올렸더랬습니다. '신적 위로의 책' 또한 우리 유학에 조응하는 바 큽니다. 즉 고통에서 위안을 구하는 처방으로서 완전한 순명과 천인합일을 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공자님이 말씀하신 이순(耳順)이란 천명을 완전히 알기 때문에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지라고 봅니다. 이는 불가의 여섯 바라밀 가운데 인욕바라밀의 완전한 실천이기도 합니다. 에크하르트는 고통과 불행 가운데 최선의 위로는 "모든 것을 우리가 원하고 원한 것처럼 받아들여야 한다. 왜냐하면 만약 그대가 모든 것이 신의 의지로부터, 신의 의지와 함께 그리고 신의 의지로 생겨나는 것이라고 안다면 그대도 실로 그것을 원했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어떤 일이 일어났다면 그것은 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