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크하르트 입문

신과의 입맞춤~ 시간(10)

목운 2023. 6. 6. 07:51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는 이러한 형언 불가능한 것에 대해 말하는 일의 문제점을 알고 있다. 즉 말하길 "신이 동시에 만든 만물에 대해 우리는 어떤 시간으로 표현할 수 없다."고 한다. 이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그는 시간과 영원 간의 구분을, 영원 속의 "동시성"으로 대체하고자 한다. 즉 "한번에 그리고 그때 그는 신이었고 그때 함께 영원히 아들을 신으로 얻었는데 아들은 모든 것에서 자신과 같고 그도 또한 세상을 창조하였다." 거기에는 영원히 시간성과 함께함으로써 서로 반대되는 면을 대체한다는 그런 뜻이 있다. 그러나 동시성은 여전히 시간을 전제하며 따라서 시간과 영원 간의 대립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에크하르트가 신의 기반과 인간 존재(초신과 초탈)를 표현하려 한 두 번째 방법은 시간적 은유 대신 공간적 은유를 사용하는 것이다. 신과의 공간적 밀접성을 이야기하는 것은 어느 정도 시간과 영원의 이원성을 벗어나게 한다. 설교 2에서뿐 아니라 "초탈에 관하여"에서 에크하르트는 수용성으로 초신과 영혼의 일체성을 특징짓는다. 즉 모든 이미지에서 벗어남으로써 신은 자신을 드러낼 장소를 갖는다. 왜냐하면 "... 모든 것이 자신의 적절한 '자리'를 갈구한다... 신의 적당한 '자리'는 일체성과 순수성이다. 하지만 이것은 초탈에서 나온다." 자신에게서 잠시 나오는 것에 비해서 초탈은 이제 자신 안에 남아 있는 것, 즉 자신 안에서 움직일 수 없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와 비슷하게 설교 2에서 에크하르트는 영혼 안의 작은 성이란 이미지를 신의 아들이 받아들여지는 "장소"로 사용한다. 성의 이미지뿐 아니라 신을 낳는다는 비유는 "자리"라는 말로 신과 인간 사이의 밀접성을 개념화하고 있다. "자리"에는 구분이 있을 수 있지만 "인간이 장소에 매달리면 차이에 집착하는 것"이어서 초탈한 사람은 이 "자리"를 모든 차이를 넘어선 곳으로 바꿀 수 있는데 왜냐하면 이 돌파에서 나는 신과 하나라는 것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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