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 환상

윤집궐중의 실천

단상

제가 기회 있는 대로 종교와 언론을 비판하고 학교와 사회 탓을 하면서 그것들이 '되는(becoming)' 일에 정답을 찾아 실천하지 않고 유사품에 만족하기 때문에 답을 못찾는다는 요지의 글을 자주 썼습니다.

우리가 유교의 세례를 받아 의식 무의식에 문화 DNA를 간직하고 있으며 19세기는 물론 20세기에는 그리스도교 정신의 영향을 듬뿍 받았음에도 그것들이 세상일에서 득을 보는 데 그치도록 함으로써, 달리 말하면 그것들이 그저 지배 내지 통속(通俗)의 수단에 그침으로써(이데올로기로 기능함으로써) 뚜렷한 한계를 체험하다 못해 사회 발전의 걸림돌로 여겨지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앞에서 시사했지만 그 이유는 가르침을 끝까지 철저히 제대로 실천하는 이들이 극히 소수에 그친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제가 깨달은 정답은 이미 맹자 고자편에 있습니다. 인용하면, "옛사람은 천작을 닦아서 인작이 거기에 따르게 했지만 오늘날은 천작을 닦아 인작을 구하며 인작을 얻으면 천작을 버린다. 그것은 순서가 뒤집힌 것이어서 끝내 망할 뿐이다. (고자상)"

천작을 끝까지 닦는 일을 유교 체계 전체에서 찾되 그리스도교 정신에 딱 합치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천하지대본인 중을 잡고(允執厥中) 그 상태에서 모든 덕을 베풀 뿐 아니라 '제가평천하'를 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저는 이것이 그리스도가 요약한 신애(神愛)와 인인애(隣人愛) 계명과 정확히 일치한다고 생각합니다. 윤집궐중의 실천 방법이 우리 쪽에서는 정좌 내지 좌선이고 서양에서는 정관(靜觀, contemplation)입니다. 이 경지에서 체험되는 것을 장자는 좌망(坐忘)이라 하여 결국 홀로 매일 앉아 있는 일이 누구에게나 꼭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대학, 중용이 얘기하는 '신기독 수기중'도 바로 여기에서 도출되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계신호기소부도, 공구호기소불문'이 왜 꼭 필요한 일인지 알아서 실천하면 공부를 제대로 하기 시작하는 것이라는 것 - 이것을 가르치는 학교가 없는 게 현실입니다. 종교도 위에 지적한 것처럼 통속의 도구에 그칠 뿐 이런 것을 중시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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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리우드와 코카콜라

단상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고 언론이 자본의 장단에 춤추는 현상은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닙니다. 모세가 금송아지 숭배집단을 내칠 때에도 있었던 일이 아닌가요? 활자매체가 자본의 이익에 맞추어 계속 허구를 지어낸다면, 영상매체는 계속 감각의 즐거움을 부추김으로써 사람들을 가시계에 묶어 놓습니다.

이런 현상을 언론학자 기틀린은 아주 간략하게 요약했으니 즉 '미디어란 헐리우드와 코카콜라다!' 즉 눈을 홀려 물건 사도록 부추기면서 사람들을 땅에 단단히 묶어놓는 것이 미디어가 하는 일입니다. 인간은 불멸하는 '의식'이 본질이고 그 의식을 가시계에 비추어낸 것이 몸과 에고와 소위 문명이건만 미디어는 그 반대가 진실이라고 끝없이 저항할 뿐입니다.

그 때문에 우리 문명은 언제나 절멸 위기를 피하지 못하며 미디어는 오늘도 거짓을 밥먹듯 전파하며 삽니다. 몸바친 혁명으로 겉을 바꾸는 노력이 허망한 이유도 결과로 결과를 대적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체 게바라가 대단하다고 보지만 그에게서 위로와 평안을 찾지 못하겠습니다.

동아시아 정신의 핵은 주희를 봉우리로 하는 송명이학(또는 신유학)이고 서구 정신의 핵은 에크하르트를 봉우리로 하는(물론 이견이 있겠습니다) 그리스도교 신비주의라고 봅니다. 전자는 불교와 도교를 흡수했고 후자는 그리스 철학(특히 산플라톤주의)을 흡수했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먼저 내면으로 가서 '의식'이 주인임을 발견하라는 것입니다.

이 일은 혁명처럼 저항을 초래하기도 하고 꾸준하기가 어려워 수천년간 소수만이 끝까지 실천했습니다. 아침마다 황폐한 소식만 전하거나 먹방과 돌아다닐 궁리에 불지르는 영상매체, 한숨 돌리려 클릭하면 이간질과 시기심을 북돋우며 거짓말의 독소만 내뿜는 활자매체를 멀리하려 해도 참 어렵다는 하나마나 한 소릴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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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좌(靜坐), 좌선(坐禪), 정관(靜觀)

단상

제 아이들과 조카들에게 기회 닿는 대로 '너 자신이 잘 되는 것이 효도다', '네 상태가 최선일 때 효도하고 있는 것이다.'라는 말을 해줍니다. 부모로서 자식에게 무엇을 해받기를 바라는 게 아니라 자식이 스스로 행복해지는 것이 효도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모든 부모의 바람은 자식 '잘 되는' 일일 겁니다. 그런데 잘 되는 일을 학교와 사회에 맡겨버림으로써 조금씩 잘못되기 시작합니다. '스스로 배워 깨닫겠지' 하지만 많은 시행착오를 하는 이유는 그 기준을 가시적인 데서 찾아버릇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없는 사회입니다. 소위 언론, 요즈음은 주로 티브이와 유튜브에 맡기는 셈입니다. 서양식으로는 내면에서 신을 찾아 스스로 신이 되는 것, 우리 식으로는 천하지대본인 중(中)에 머무르는 일을 과반수 인구가 실천했다면 매국도 분단도 없었을 것이고, 사법농단도 검난도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경우 교회에 열심히 출석했고 경전을 찾아 읽었지만 지식으로 안 것은 안 것이 아니었습니다. 매일 정좌(좌선 또는 정관)하지 않으면 바깥 유혹이 크고, 에고란 전자기의 인력과 척력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끝없는 시행착오를 반복할 뿐입니다. 세상에 있되 세상 사람이 아닌 삶(신약성서), 세간을 벗어난 자유인(선가귀감), 종심소욕불유구(논어)에 도달하지 않으면 다람쥐 쳇바퀴를 맴돌 뿐입니다.

에고는 옳고 그름을 알지도 못할 뿐 아니라 세상을 초탈하도록 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언젠가 '쥐엄나무 열매'를 먹는 자신을 발견하고 방향을 180도 바꾸어 돌아갈 수 있으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대부분은 돈과 권력으로 문제를 헤쳐나갈 수 있기 때문에 귀향할 줄 모릅니다. 무조건 시간을 내서 홀로 고요히 있는 연습을 해야 하겠습니다. 반드시 은총의 도움을 받을 것입니다. 이 일은 에고 드라이브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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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대책과 좌탈입망

단상

고교 졸업한 지 반세기가 다가오니 친구들 만나면 주체하기 어려운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하는 것과 간접적 표현이나마 죽음을 어떻게 준비할까 하는 게 공통 관심사인 것 같습니다. 물론 중간중간에 정치 얘기와 자녀 얘기도 하지요. 그런데 역시 친구들과 적당히 즐기기엔 산행과 당구 게임만한 게 없지 싶습니다(제가 골프 칠 만한 클래스가 아니라서... 하긴 어제 어울린 친구 하나는 호주 시민권자인데 거기선 골프가 그냥 대중적인 놀이라고 합니다). 

오늘 얘깃거리로서 더 중요한 것은 아직은 부모님 가운데 한 분 정도는 계시는지라 곡기 끊는 일로 화제가 옮겨졌습니다. 저는 제가 많이 생각하는 일이라 우리는 '좌탈입망(坐脫立亡)' 할 수 있게 매일 준비해야 한다고 했더니 수긍하는 듯했습니다. 그 노하우에 대해서는 이곳에 아주 여러번 썼는데 매일 정좌(靜坐)하고 경전 독서를 함으로써 멸정복성(극기복례와 같다고 봅니다)을 이루고 몸이 나라는 고정관념을 없앨 때 대자대비 상태(무조건적 사랑의 상태)가 된다고 봅니다.

우리도 동서양 고승들처럼 가고 싶은 날 정해서 '안녕' 하고 갈 수 있도록 공부하자고 했습니다. 우리 조상 가운데 제대로 된 선비는 모두 '반일 독서, 반일 정좌'를 실천했고 그 증거로 우리가 문화적 DNA로서 책상다리를 물려받았다고 했습니다. 저는 적어도 이삼년 이상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신비주의란 어렵고 복잡한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정좌와 독서를 매일 하는 분은 신비주의적 실천을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노력을 계속하면 우리는 비로소 신 의식(궁극의 실체 또는 순수 의식)이 지배하는 상태가 되어 살 때나 죽을 때나 두려움 없이 끝없는 진화의 길을 갈 수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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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향상과 의식에 대한 공부

단상

어제는 아내와 이야기 중에 '내가 실은 고교때 시험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그저 내키는 공부를 하고 싶었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 꿈이 지금 이뤄졌습니다. 공부만 하면서 두 달을 보냈기 때문입니다. 공부하는 사람(공부인), 배우는 사람(학인)이란 말은 요즈음엔 잘 안 쓰지만 제가 사숙하는 백봉 선생에게서 들은 말입니다.

공부인으로 살되 어디에도 매이지 않은 공부, 제 경우 오직 의식 향상에 도움이 되는 공부만 하고 있는데 노후 생활엔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언제 어디서나 혼자서도 가능한, 그야말로 가성비가 제일 좋은 일입니다. 프로가 아니기 때문에 아무런 스트레스가 없고 그야말로 취미삼아 하는 일입니다.

의식 향상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궁극의 공부이자 이승을 최선으로 살고 다음 차원으로 넘어가는 데 꼭 필요한 노하우를 수련하는 일이자 화엄경의 정신에 부합한다고 저는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화엄경을 번역하신 탄허스님 좌우명인 '향상일로'의 속뜻이 이해되기도 합니다.

제 경우 죽는 날까지 팔 만한 공부는 '의식'이라 생각하며 동서 영성 내지 신비주의 영성을 '의식'으로 꿰어 보려고 합니다. 게다가 요즈음 첨단 물리학에서도 의식이 최대 과제입니다. 왜냐하면 AI의 연구는 바로 의식 연구의 응용분야이기 때문입니다. 과학에서는 신경생리학, 정보이론, 뇌과학 등등이 인접 과목입니다. 어쨌든 무언가 건지는 게 있으면 레포트 하나 남기고 갈 요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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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크하르트와 신비주의

단상

다음 달에는 에크하르트와 기본소득을 붙들고 지내고자 책을 주문했습니다. 에크하르트는 그리스도교 신비주의의 태두로서 독일 기독교 특히 루터에게까지 심대한 영향을 끼친 학자입니다. 

로마 기독교가 그를 거의 파문한 것은 세속화한 교황이 벌인 왕권과 경제권력을 둘러싼 갈등의 희생양이기도 하였지만 당신 독일 동부에 퍼진 베귄이라 불린 여성 수도자들의 신비주의적 영성을 억누르려 한 때문입니다. 

동아시아에서 선불교와 나중에 정통 유교에 반기를 든 것으로 간주된 양명학 등이 흔히 배척받은 이유와 맥을 같이 한다고 저는 봅니다. 즉 신비가들은 결코 윤리적 규제를 통해 세속 기득권을 지키려는 자들을 타도하려는 게 아님에도 수구들은 이들을 항상 위협으로 느끼는 것 같습니다.

성서적으로 얘기하면 그리스도가 모든 계명이 '신애'와 '인인애' 두가지에 다 들어간다고 하니 '그럼 너 십계명 부정하는 반역자야'라고 단죄하는 맥락과 같습니다. 하지만 신비가들에게는 궁극의 실체와 하나 되는 일이 너무 중하기 때문에 '지계'의 문제는 사소할 뿐 아니라 그냥 저절로 지켜지는 것입니다. 

에크하르트의 진정성은 당대에는 토마스 아퀴나스와 대등한 학문적 대우를 받았을 뿐 아니라 오늘날 기독교계에서 아퀴나스보다 더 친근한 대접을 받는 사실로도 확인할 수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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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좌 수행

단상

퇴직금과 구직급여 덕분에 두 달 가까운 백수 삶을 즐기고 있습니다. 친구들 덕분에 당구에 입문하고 집에 혼자 있을 때 프로 선수들 경기를 봅니다. 시청하는 동안 매 순간 느끼는 게 고도의 기술과 소위 멘탈이 전부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다가 영화 용쟁호투가 떠오르고 에카르트 님의 훈화(The Talks of Instruction)가 떠오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기술 훈련을 위해서는 중원의 세계에서 누구나 공을 들이고 시간을 들이기 마련이니 결국 1%의 사람들이 일합을 겨루는 계기가 올 때 승부를 가르는 것은 멘탈이 아니겠나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거의 모든 스포츠가 그럴 것입니다. 그런데 왜 에카르트 님까지 거론해야 하나요? 결국 소림사 수행이나 중세 수도원 수행이나 가르침의 요점이 같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에카르트 님은 수행의 요점이 소아를 잊는 데(마태 16:24) 있고 소아를 잊기 위해서 영에 아무것도 없는(마태 5:3) 상태가 되어야 한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용쟁호투의 경우 모든 것이 허상이니 거울에 비친 것을 보지 말라는 것이 여타 볼 거리보다 중요한 영화의 요점이기도 합니다. 에카르트 님은 그러기 위해서 골방에 있거나 광장에 있거나 심사가 똑같기를 요구하며 그러기 위해서 심안과 영안을 오직 신께 두어야 한다는 것이죠!

이 점은 우리 전통에 고스란히 전해오는데 신유학 자체가 도교와 선불교의 정수를 유학이라는 그릇에 담은 것이며 그 핵심은 정좌의 실천이고 정좌를 할 때 자연히 조식을 하게 됩니다. 지감-조식-금촉은 단군 이래 수행법이고 조식의 요령은 임난 전 16세기 중엽 북창 선생의 용호비결에 적혀 있습니다.

요컨대 모든 기예를 겨루는 세상 삶, 심지어 금융 기술자든, 법 기술자든, 테크노크라트든 모든 게 어쩌면 기예를 다루고 겨루는 일인데 그때 반드시 하늘의 뜻에 맞게(또는 정의에 맞게) 일을 처리하려면 반드시 멘탈 관리 또는 감정의 달인이 되어야 하는바 그러기 위해서라도 정좌 수행을 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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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특별한 기술이나 자격증이 없으니 간신히 강남에 있는 한 병원에 경비로 취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근무하는 3년 2개월 동안 하루도 편치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루 속히 빚을 청산하고 안정적인 생활을 하기 위해서 인내하며 지냈습니다. 무엇보다도 내멋대로 살면서 '문제 없다', '괜찮다' 여기던 생활 태도를 근본적으로 고쳐야 했습니다. 이때 매일 읽고 마음을 닦는 데 도움이 되었던 책들은 이 블로그 '깨달음을 위한 참고서 제안'에 적어 놓았습니다.

 

처음 2년 동안은 매일 부딪치는 마음의 부대낌을 적어가며 호킨스 박사의 레팅고와 거의 같은 로버트 프로세스와 그 동안 배운 모든 기도방법에 열심히 의지하였습니다. 그러다가 2015년 가을 잠실 근처 삼전동 고시원에서 기숙할 때 우연히 정신세계사에서 광고하는 책 광고를 보았는데 그것이 '그리스도의 편지'였습니다. 책을 구해서 여러번 정독하고 2~3회에 걸쳐 대여섯 명의 독자가 모여 토의도 하곤 했습니다. 

 

책을 꾸준히 읽다 보니 단 10분이라도 매일 명상을 하라고 하는데 처음에는 그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소파에 기대어 하여튼 10분을 견뎌보자 하던 것이 이제는 약 2년정도 꾸준히 한 셈입니다. 제 경우 명상의 가장 큰 효과는 권태와 불안, 짜증, 우울, 슬픔이 극히 약해지거나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경제적으로는 2017년 7월 고용복지센터 도움으로 집 근처 건설현장에 다시 취업했는데 무엇보다 출퇴근이 수월하고 급여도 높아서 금방 안정된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하루 평균 30분 정도 명상을 하는데 명상에서 우리는 존재의 근원과 만나는, 이제까지 모든 지성과 철학이 말하던 진리에 이르는 수련을 할 뿐 아니라 양심성찰과 자기 분석을 하면서 영적 진보를 꾀하는 것입니다. 명상은 오직 의식으로만 존재하는 연습이기에 미리 죽음을 대비하는 가장 시급하고 현명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무조건적 사랑의 상태이기도 한 존재의 근원에 다가가는 일입니다. 이 길에서 진보함으로써 타인을 또 다른 나로 보게 될 것이고 그 때 비로소 역지사지와 황금률을 제대로 실천하게 될 것입니다. 

 

마침 아파트 건설이 끝나서 다시 실업급여를 받으며 다음 직장 생활을 구상하는데 특수용접이나 배관쪽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직 공부가 미진하고 어리석어서 2017년에도 사기를 당했지만 루미의 말처럼 잃어버린 것은 다른 모습으로 돌아온다는 것, 그동안 제게 필요한 모든 것이 주어지지 않은 적이 없다는 것, 지금 여기에 모든 것이 완벽하다는 것, 오직 감사하는 것이 가장 완벽한 기도라는 것, 모든 것을 근원에 맡기고 완전히 안심하는 것이 최고의 노선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언제나 사랑과 평화만 선택하고, 어제 죽은 것보다 오늘 죽는 것이 더 나아졌다는 마음이 들도록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 최근 소개한 'Reality Unveiled'에서 가르쳐준 방법으로 명상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내 가장 큰 집착과 욕망을 인정하고 포용할 것, 내 어두움과 부끄러움을 포용할 것, 그리고 나를 가해한 자들과 비호감인 자들의 고통을 보고 이해하며 자비심을 가질 것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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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인연 고백 1

단상

2009년 퇴직을 앞두고 처와 전원생활을 하기로 하고 산을 살까 하다가 결단을 못하고 수목원에서 일해보려고 천리포 수목원을 기웃거렸지만 여의치 않다고 생각중 아내가 평창쪽을 알아보자고 해서 갔으나 예산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아내가 마지막으로 한 군데만 보자고 해서 온라인에서 인연이 된 공주 유구읍 문금리라는 델 가봤습니다. 우리는 '강원도 분위기 나네'라는 생각을 하고 거기 가서 살기로 했습니다.

퇴직금 중간정산금으로 집을 지은 후 이사를 하고 마침 집을 지은 분이 신뢰가 가서 2010년 4월 퇴직하고 받은 퇴직금을 투자하고 월 220만원을 이자로 받기로 했습니다. 물가가 싸고 시골에 있으면 돈 쓸 일 없으니 국민연금까지 해서 약 300만원이면 노후를 보낼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랬는데 2013년초 투자처 사장이 난맥을 보이더니 이자 지급을 못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자결을 해버렸습니다.

우리 부부는 당혹해서 여러가지 대책을 강구하던 중 마침 처남이 모시던 장모께서 노환이 깊어지셨다는 말을 듣고 집을 팔고 인천으로 다시 가서 장모님 모시면서 부부가 각자 백만원씩만 벌면 국민연금 조기수령금과 함께 월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다는 계산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2013년 말일을 며칠 앞두고 처 이모님이 사시는 영종도에 집을 구해서 이사했습니다. 장모님이 당신 여동생과 이웃하면 병세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을 한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경제적 위기가 심각해지면서 살아온 삶을 돌아보니 엉망진창이라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달리 말하면 이 모든 카르마의 인(因)을 내가 심었으니 근본적으로 업장을 소멸하고 완전히 정직하게 계율을 지키며 살자는 결심을 하였습니다. 그것이 2013년 10월초인데 그때부터 조식을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직장을 구했는데 채근담에 있는 말씀대로 "귀에는 항상 거슬리는 말만 들리고 마음속에서 항상 어긋나는 일만 일어났습니다(耳中에 常聞逆耳之言, 心中有拂心之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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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이 되는 사상이 필요할까?

단상

대략 5~6년 전 호킨스 'Dissolving the Ego, Realizing the Self'를 번역하다가 이고 선생의 복성서를 만났고 결국 두 책의 제목이 엄청난 시공의 격차에도 불구하고 거의 같은 말을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복성서 번역에 도전했습니다. 그 후 되는 대로 유학을 공부하고 있는데 우연히 예스 24에서 리쩌허우의 중국고대사상사론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사서 빠른 속도로 독파했습니다. 중국고대사상이라고 하면 결국 동아시아 사상이고 동아시아 사상은 유교가 중심입니다.

마르크스주의를 기반으로 동아시아 사상을 검토한 리쩌허우 책은 두고두고 읽어볼 요량이지만 결국 유교의 핵심은 내성과 외왕이며 내성은 중(中)에, 외왕은 화(和)에 대응합니다. 불교적으로 전자는 상구보리, 후자는 하화중생이고, 기독교적으로 전자는 자기구원, 후자는 타인구원쯤 됩니다. 말만 다르지 제가 파악하는 한 미륵사상도 똑같습니다. 즉 미륵 사상에서 말하는 미륵불이란 법신불의 진리를 드러내는 것이니 크게 밝은 세상이 이뤄진다는 것이며, 미륵이 왕생해서 용화회상을 한다 함은 곳곳에 부처가 있으니 일마다 부처를 모시는 마음으로 세상을 평안하게 한다는 것이 요점입니다.

가르침은 모두 간단하고 공통하는데 왜 시대마다 실패한 것 같고 오늘날은 기독교의 대대적인 철폐가 필요해 보일까요? 제 생각엔 모두 진리에 부합하는 가르침이건만 각 종교가 지배계급에 의해 이데올로기, 즉 통치의 하위수단이 되고나면 거기에 안주한 이들이 내성 없이 외왕하는 흉내만 내기 때문이지 싶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내성하는 데 있어 철저를 기하면서도 참으로 내성했다면 다른 사람을 모두 내 몸처럼 여겨 정책을 펴고 끝까지 가르침에 충실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쉽사리 개인 또는 집단이기주의에 빠져 하는 척만 한 때문이라고 봅니다. 바로 그리스도께서 격렬히 비판한바 위선적인 작태로 착취만 일삼는 동안 계급모순은 물론이고 생명 경시 내지 세계 절멸 위기를 부르고 있으면서 도끼자루 썩는지 모르는 것입니다.

오늘날 그 적나라한 모습은 미국 한국 등의 기독교계 국가의 엄청난 모순으로 드러나고 있는데 그나마 우리나라는 동아시아에 속하는 만큼 잘 하면 대안이 되는 사상을 찾아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게 제 개인적 희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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