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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심소욕불유구'로 가기 위해, 유교와 불교 및 기독교 영성을 공부합니다.
목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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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나눈 이야기'에 해당되는 글 4

  1. 2019.06.20 삼위일체와 성자성(聖子性)
  2. 2019.06.14 소원을 이루는 방법
  3. 2019.05.10 종교 중독
  4. 2019.05.06 기독교로 돌아가지 않는 이유

이 블로그에서도 소개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편지'는 그리스도교 영성에서 발전된 모습을 띠고 있지만 삼위일체 교리를 부인합니다. 삼위일체에 대한 설명을 보면 도저히 이성으로는 납득할 수 없다는 점에서 얼마나 실익이 있는 교리인지 하는 의문은 충분히 가질 만합니다. 하지만 이 가르침을 시적 표현이나 신비적 표현으로 보면 상당히 높은 의식수준 또는 깊은 의미가 숨겨져 있다고 인정할 부분도 있습니다.

요컨대 우리들도 그리스도처럼 신의 아들이라는 점은 동서 영성 모두 인정합니다(우리나라를 위시한 동아시아에서는 인간을 하느님의 자손[天孫]이라 하지요).  아들 하느님, 즉 성자(聖子)는 아버지 하느님(聖父)과 구별되지만 하나인 신이기도 하다는 게 삼위일체 교리이므로 그 깊은 뜻을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신나이' 1권의 말씀을 인용해 봅니다. "모든 선각자들은 하나같이 이런 가르침을 전했다. 나는 곧 너희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너희도 할 수 있다. 또한 너희는 이 이상 가는 것도 하게 되리라." 이 점은 요한 복음도 똑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즉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요한 14:12)" 요컨대 우리가 신이지만 아버지 하느님과는 다른 아들 하느님이라고 보면 우리 모두의 성자성(聖子性)을 인정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삼위일체 교리가 가르치는 바는 아버지 하느님, 아들 하느님, 영(靈) 하느님이 다르면서 하나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나이'가 시사하는 보다 중요한 가르침이 여기에서 도출되는데 그것은 우리의 참된 정체성, 다른 말로 참나란 바로 신성이기 때문에 신성으로서의 자각과 느낌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매일 명상을 하고 신적 독서(Lectio Divina)를 게을리 하지 않으며 계정혜의 실천(또는 6바라밀의 실천, 또는 기독교적 양심성찰, 또는 유교적 사단[四端]의 발휘)을 통해서 최대한 신성을 구현해내는 것이 사는 목적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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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을 이루는 방법

2019.06.14 07:40 | Posted by 목운

'신과 나눈 이야기'에서는 '원한다(wanting)'는 기도를 하지 말라고 합니다. 원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현재 결하고 있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당장 이뤄지지 않습니다. 즉 현재 이뤄지지 않고 미래 어느 시점에 막연히 이뤄지기를 현재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마냥 기다리는 상태가 됩니다. 대부분 우리의 기도, 그리고 우리의 상태가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면 어떻게 하나요? 대개는 믿는다고 기도합니다. 물론 구하고 청하고 두드리면 반드시 이뤄진다고 했으니 이것도 당장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이뤄진다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하지만 믿는 것보다 더 강력한 것은 아는(knowing) 것입니다. 아는 것은 어떤 상태가 되는 것을 말하며 그보다 조금 못한 것으로 내 체험을 종합해보니 마치 법칙처럼 확실하더라고 아는 경우가 있습니다. 

내가 한국인이 되면 나는 한국에 대해 모든 것을 압니다. 그러니 뜻하는 것을 모두 이루는 방법은 내가 신이 되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신처럼 창조자가 됩니다. 신이 아는 것을 모두 압니다. 그러므로 소원을 이루는 가장 강력한 방법은 신을 아는 것입니다. 신처럼 생각하고 신처럼 일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스승들 말씀을 종합하면 우리는 신을 표현하기 위해서 지금 여기에 있고 신처럼 창조할 때 신적 영광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뜻하는 것을 이루는 차선책으로는 과거를 돌아볼 때 내게 필요한 모든 것이 다 이뤄졌다는 것을 체험상 알기 때문에 앞으로도 모든 필요가 채워지리라는 것을 그냥 아는 것입니다. 제 경우 여기에 해당하면서 신이 되는 길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신이 되는 길 가운데 하나는 신이 생각하는 방식을 배워서 그렇게 생각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모든 신비주의가 신을 사랑하라는 그리스도의 계명을 실천하고 신과 하나가 되는 일에 몸바친 사람들의 가르침을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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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중독

2019.05.10 19:08 | Posted by 목운

종교를 그저 사회적 필요 때문에, 예를 들면 결혼식, 장례식을 위해서 또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필요해서 가지고 출석한다는 분명한 의식이 있다면 종교를 반대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리고 종교 없이 살다가 결정적 회두를 하고 의식이 향상하면서 종교를 택하는 경우도 분명 있다고 하니 이런 이유도 괜찮지 싶습니다. 또 제 모친처럼 절망적 상황에서 종교쪽의 도움으로 그것을 견뎌낸 경우도 종교를 버리라고 하지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그저 맹목적으로 또는 생각하고 따지기 싫어서, 의심하고 궁구하기 싫어서 습관적으로 출석하는 것은 안 좋은 경우입니다. 신과 나눈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종교를 벗어나서 사고할 것을 권합니다. 어떤 종교든 자기들이 '더 낫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분리와 갈등을 낳고 세상에 불화를 가져올 가능성이 큽니다. 중세 이후 기독교-이슬람의 전쟁, 기독교 내 가톨릭-프로테스탄트의 전쟁은 한시도 그치지 않았습니다. 각설하고 종교를 버려야 할 이유를 잘 정리한 신나이 2권을 인용코자 합니다.

"종교는 너희에게 좋지 않다. 조직된 종교가 성공하려면 사람들이 그것을 필요하다고 믿게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다른 어떤 것을 믿으려면 그들은 먼저 자신에 대한 믿음을 잃어야 한다. 그러니 조직된 종교의 첫째 과제가 너희 자신에 대한 믿음을 잃게 만드는 것이다. 두 번째 과제는 너희가 지니지 않은 대답을 종교가 지니고 있다고 여기게 만드는 것이고 세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과제는 너희가 그것의 대답을 아무 의문 없이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것이다. (397쪽)"

이 블로그가 집중하는 호킨스 텍스트에서도 종교와 영성을 확연히 다른 것이라는 것을 지적하며 시공에 제약될 수 없는 신을 시공 내에 가져와 서술한 구약 대부분과 일부 신약을 미개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편지'도 산 생명을 희생제물로 바치는 관습에서 나온 기독교, 권력자처럼 인간을 심판하고 처벌하는 기독교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천 년은 분명 종교 없는 세상을 향해 가리라는 것이 제 직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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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5학년 이후 청소년기부터 결혼 후 상당한 기간 동안 제 의식을 지배했던 기존의 기독교로 돌아가지 않는 이유를 닐 도널드 월시의 '신과 나눈 이야기'에서 찾았더랬습니다. 그 이후 호킨스 박사 저술과 최근에는 '그리스도의 편지'도 똑같은 맥락의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특히 월시의 경우 저와 같은 로마 가톨릭이었는데 그가 겪은 교회에서의 체험이 참으로 공감이 갔습니다. 다음 구절을 함께 묵상해보겠습니다.

"너희 종교들은 처벌하는 신이라는 관념을 정당화고자, 신이 화를 낼 만한 뭔가를, 모범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조차 어느 정도는 구원받아야 할 뭔가를, 만들어내야 했다. 자신이 저지른 일 때문에 구원받을 필요가 없다면 자신의 타고난 불완전함 때문에라도 구원받아야 하도록...(신과 나눈 이야기 1권 198~199쪽)"

이상은 원죄론에 대한 비판입니다. 새로운 시대의 그리스도교 영성은 인간이 근본적으로 불완전하다는 원죄론을 버리고 신의 창조는 매 순간 완벽하며 신의 형상대로 창조된 피조물들은 완벽함 자체의 반영이라는 것(같은 책, 198쪽)을 받아들이는 영성입니다. 

호킨스 영성과 '편지'의 영성도 두려워해야 하고 복수하고 화내는 신을 달랜다는 생각이 얼마나 유치하고 어리석은 것인지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월시의 영성과 완전히 일치합니다. 이러한 가르침은 지상의 기독교 종사자들에게 권위와 존재 이유를 제공하는 장치일 뿐입니다. 제 블로그 전체는 이러한 기존의 미개한 프로그램을 해체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목욕물과 아이를 함께 버리지 않도록 그리스도교 영성의 소중한 핵심을 놓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종종 '신과 나눈 이야기' (약칭 '신나이') 말씀을 자주 묵상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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