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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심소욕불유구'로 가기 위해, 유교와 불교 및 기독교 영성을 공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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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하착'에 해당되는 글 5

  1. 2015.12.19 천국과 무조건적 사랑
  2. 2015.10.29 영적 수행의 공통분모
  3. 2015.10.27 의식 지도와 멸정복성, 방하착
  4. 2015.10.21 풍요 이상의 삶
  5. 2015.09.15 방하착을 하는 이유

천국과 무조건적 사랑

2015.12.19 08:25 | Posted by 목운
천국이란 우리 영혼을 낳은 '아버지'의 것이 된 마음의 상태로서 이 상태에서는 '아버지'가 우리의 머리가 된다고 합니다. 사실상 신이 우리 개체만을 빌려 자신의 뜻을 펴는 상태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창조 (또는 개체화) 과정에서 작동했던 소아(self, 에고)를 완전히 비우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마태오복음 16:24에 도식화되어 있습니다. 즉 "나와 같이 갈 사람은 자기를 잊고...나를 따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도 그렇고 교회에서 어떻게 자기를 잊는가에 대한 아무런 대책도 없고 제대로 가르치는 사람도 없습니다.

하지만 최소한 '홍익학당'처럼 매 순간 신 의식(또는 불성)에 깨어서 6바라밀을 실천하기 위한 노력을 할 수 있는 매뉴얼 같은 게 있었으면 좋았을 것입니다. 기독교의 경우 고백제도를 위시해서 대부분이 죄책을 불러일으키는 데 그치면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아마도 그게 (모르고 하는지 몰라도) 신도들을 붙잡아두고 다스리기 좋기 때문일 듯합니다.

어쨌든 천국의 '의식 상태'에 이르면 어떻게 되는지 봅시다. "그것은 너무나 아름답고 거룩하지요. 그것은 사랑이고 자비로움이며 자신을 아끼는 것과 같이 다른 이들을 아끼는 것이며 다른 이들을 정확히 있는 그대로 받아들임으로써 심판하지 않는 것이며 그들 또한 '아버지'의 보살핌 속에서 동등한 '하느님'의 자녀임을 아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편지)"

이 상태는 '무조건적 사랑'의 상태이며 호킨스 체제에서 깨달음의 시작이기도 한데 에고만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하며 반드시 신의 인도와 도움이 필요합니다. 제 소견으로 그것은, 목표삼을 무엇이라기보다 의식 상승(깨달음)의 결과 따라오는 효과처럼 생각됩니다. 그래서 스승이 필요한 것입니다.

실상 나와 남의 구분이 없이 황금률을 실천하는 것,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과 심판하지 않는 것 -- 이것을 이루는 게 천국에 드는 것입니다. 참으로 단순한데 제 60년 삶을 볼 때 내 힘만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체득했기에 오직 기도와 명상으로 매어달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 핵심에 멸정복성(또는 去非淨化, dissolving the ego)과 방하착(letting go)이 있습니다. 우리는 진기한 무엇을 찾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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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수행의 공통분모

2015.10.29 08:03 | Posted by 목운

다섯번째 편지까지 두번 읽고 논설을 다 읽었습니다. 깊은 창조원리를 완전히 이해하려면 두어번 더 읽어야 할 듯하지만 한가지 되풀이되는 원리는 참으로 자명합니다. 즉 에고에 기반한 생각과 감정이 우리의 무한한 능력을 저해하는 원인이므로 그 힘에서 완전히 자유로와지는 게 급선무라는 것입니다(332쪽). 


이것은 모든 성현들이 얘기한 공통분모이기도 합니다. 유교의 극기복례도 이것을 말하는 것이고 기독교 신비주의의 거비정화도 이것을 말하는 것이며 호킨스 박사의 레팅고도 여기에 집중한 작업입니다. 이것이 성취되는 정도에 따라서 신 의식과 창조 권능이 우리 존재라는 통로를 통하여 온전히 구현되는 것인데 그것은 그야말로 무한한 가능성입니다.


이 작업은 '논설 15'에 있듯이 편지 5~8(특히 6의 21-24쪽[번역본 388~399쪽])의 신 의식에 대한 깨달음에 이르러야 가능하다고 합니다. 그 의식이 우리 마음과 심장을 채울 때 새로운 삶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합니다. 이것이 땅 위에서의 천국이라고 말할 때의 진정한 의미라고 합니다. 이것은 시크릿등에서 얘기하는 긍정사고만으로는 불가능하며(편지 275쪽) 존재의 근원 또는 궁극의 실체와 만남을 통해서 그리고 그쪽의 은총에 의해서(즉 혼자가 아님) 가능한 것입니다. 두어구절 직접 인용합니다.


"너희의 개체적 의식에서 부정적인 것들이 완전히 청소되면 너희는 자신도 또한 창조자인 '아버지' 의식의 정화된 통로가 되어 있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80쪽)"


"너희 존재의 근원과의 진정한 만남은 너희가 의식으로부터 거친 인간적 에고의 욕구를 충분히 닦아내고 일정시간 이상 명상을 하여 영을 접함으로써 존재를 새롭게 충전시키도록 애쓰면서 근원에 '가닿기를' 의식 속의 강력한 느낌으로써 규칙적으로 염원할 때만 경험된다.(2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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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인용문을 보세요. 


"너희의 의식을 변화시키지 않는 한 너희 삶에 영구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는 없다. 그러니 사람은 조건없는 사랑을 성취하기 위해 시시때때로 기도하고 노력해야만 한다.(그리스도의 편지 21쪽)"


호킨스 의식 지도상 조건없는 사랑은 540입니다. 기도와 그밖의 노력을 해야 하는 이유는 세상의 에고 의식이 장애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에고를 이해하고 놓아버리기(letting go)로써 그 장애물을 제거할 때 점점 신성 쪽에서 은총의 형태로 유입하여 효과적으로 의식이 상승하는 것입니다.


신의 본성은 조건없는 사랑이기 때문에 540에 이르렀을 때 우리는 신성과 일치하는 것이고 신 의식이 우리의 머리가 되어 모든 행동과 그밖의 삶의 모든 요소를 지휘합니다(위 171쪽). 그때 우리 존재는 나와 남의 구분을 넘게 되고 지극한 행복, 환희, 에너지 속에 있으니 모든 희망과 필요가 충족되기에 꼭 이름 붙여야 한다면 천국에 드는 것입니다.


에고 이해는 이 블로그의 '멸정복성'에, 놓아버리기는 '호킨스 방하착'에 정리되어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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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 이상의 삶

2015.10.21 13:47 | Posted by 목운

'그리스도의 편지''논설 12'에서는 풍요 이상의 삶이 무엇인지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참으로 영성의 길을 가지 않으면(즉 모든 존재에 형상과 의식을 부여하는 '그것의 실체[the Reality of That]'를 찾지 않으면) 에고의 지배적 권세 때문에 추락하여 자유치 못하게 된다고 합니다. 에고는 의식을 오직 자신의 행복과 생존에 몰두하게 하여 인간의 지각과 시야를 좁히기 때문입니다.

 

종교적 인식 또한 제한적인데 왜냐하면 그것은 소아를 넘는 비전을 제시하지만 신을 기쁘게 하지 않으면 죄라고 하는 의식을 심어주어 교회 출석자들을 구속하기 때문입니다. 행복, 성공, 꿈의 확장실현, 건강 등은 우리 안에 존재의 근원(생명의 근원)으로 새겨져 있기 때문에 올바로 구하기만 하면 모두 실현되는 것입니다. 조상때부터 전수된 심리구조, 믿음과 의견 들 속에 숨겨져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그 신화, 환상, 두려움, 절망, 고뇌, 번뇌를 벗겨내는 만큼 모든 것은 충족하게 실현됩니다.

 

특히 마음과 감정에서 과거 에고의 생각과 감정을 제거하는 만큼 번영과 기쁨과 충만을 누릴 것이라는 대목에서 방하착을 왜 해야 하는지를 다시 확인하였습니다.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니며 호킨스 박사도 강조하듯이 천국은 이미 우리 안에 있습니다. 모든 의심을 버리고 우리가 가지는 믿음만큼 크게 성취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가 이 시대에 다시 와서 말씀하시는 '풍요 이상의 삶'입니다.

 

다음에는 시크릿이나 여타 자기계발, 성공학에서 수없이 얘기되고 호킨스 박사도 강조하는 바인데 원하는 것을 마음에 명확히 그리라고 합니다. 다만 고요하게 명상 중에 신 의식(Divine Consciousness)에게 가져가서 청하고 받는 것에 대해 깊이 감사하는 게 비결입니다. 마치 모내기 한 논에서 벼가 익을 것을 한치도 의심하지 않고 수확하는 농부처럼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서의 '구하면 받고 찾으면 찾아지고 두드리면 열린다.'는 말씀이 새롭게 인식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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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하착을 하는 이유

2015.09.15 11:38 | Posted by 목운

나비되기의 스티븐 데이비스와 레팅고의 호킨스는 나름 서양 영성을 섭렵한 지성인이고 그래서 그 분야 첨단을 가는 분들입니다. 공통점은 부정적 감정을 놓아(끊어) 버리는 방편을 각 3년 내외 실천해서 높은 경지에 가신 분들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게 이게 유교 내지 동양 문화에서 말하는 이치와 딱 맞는다는 것입니다. 탄허스님 말씀을 인용합니다.


"인간성, 불성, 신성을 구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어느 자리에서 쓰냐에 달려 있다. 성인은 그 모든 것이 성(性)의 마음자리에서 나온 것임을 알고 쓰기에 불성이니 신성이니 한다...성인은 성의 자리에 앉아서 쓰는 것이고 범부는 정의 자리에 앉아서 쓰는 것이다."


그런데 성의 자리는 추구해서 얻어지는 게 아니라 정을 제거할 때 빛처럼 드러나는 것이라는 게 깨달은 분들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일단 부정적 감정을 있는 대로 찾아서 없애 버리는 것인데 그것이 일상 생활에서 더 수월한 측면이 있습니다. 산 속에 고요히 있으면 부정적 감정을 잘 얻어 만나지 못하는 수가 있지요. 한편 긍정적 감정은 성의 자리에서 쓸 때 더 강력하고 맑고 환한 것이 된다고 합니다.


성의 자리는 바로 '내재하는 신(Immanent God)'이기도 하고 진아이기도 합니다. 그와 비슷한 모든 어휘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지만 달은 같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공부의 목표를 잘 말해주셨다 싶은 라마나 마하리쉬 님의 말씀을 가져옵니다.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우리의 진정한 정체가 신이기도 한 진아임을 잊지 않도록 꾸준히 노력해야 합니다. 이게 이뤄지면 모든 게 성취됩니다. 마음이 그밖의 다른 것에 쏠리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이게 힘든 일처럼 생각되고 실제 힘이 드는 것은 세상의 모든 프로그램이 에고 중심으로 짜여져 있는 데다 우리도 아담을 따라서 선악과를 따먹고 이원적 세상 속으로 내던져졌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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