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크하르트 입문

신과의 입맞춤~ 시간(5)

목운 2023. 6. 2. 12:33

창조란 신이 인간에게 존재를 부여해주는 것이다. 즉 "신이 부여하는 것은 자신의 존재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곧 비존재가 존재로 변모한다는 말은 아니다. 자명하게도 창조란 피조물을, "홀로 온전히 존재하는" 신의 지위로 올려주지 않는다. 존재와 무 간의 차이, 즉 신과 존재 간의 차이가 유지되려면 인간 안에 무의 흔적이 남아 있어야 한다.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는 이것을 일컬어 "영혼 안의 불꽃", "작은 성", "특성을 벗어나 있는", "창조될 수 없는", "단순한 것"이라 한다. 피조물의 기원을 의미하는 이러한 무의 개념은, 피조물이 존재하기 시작하는 순간적인 시발에 그치는 게 아니라 거기에 "언제나" 함께하는, 그 존재에 관한 하나의 원칙이다. 인간됨에 관한 이런 원칙으로서 영혼의 이러한 "부분"은 에크하르트의 창조 개념에 있는 원칙의 개념에 비유할 수 있다. 따라서 창조의 기원은 초탈을 통한 인간됨이 무엇인가 하는 내용과 같다. 달리 말하면 영혼에게 창조할 수 없는 어떤 "부분"이 있다는 믿음이 시사하는 바는, 비록 신이 피조물에게 존재를 부여하더라도 "어떤 권력도, 어떤 수단도, 심지어 신조차 바라보지 못할" 타자성이 여전히 피조물 안에 있음을 가리킨다. 그러나 영혼의 불꽃이란 존재와 무를 초월한 일종의 허무가 존재함을 시사한다. 신(Gott)과 초신(Gottheit)의 관계와 차이를 명확히 하는 데는 바로 이러한  시사점이 필요하다. 그 둘은 신과 신의 존재 간에 차이가 있음을 가리키기 때문에 "신은 존재다.", "신은 자신의 존재를 부여한다."는 주장에는 표면상 모순이 내포돼 있다. 그러나 신이 '존재'라면 신의 창조되지 않은 존재성(Being)에 관해 말하는 것은 모순인 듯하다. 다른 한편 에크하르트는 간혹 초탈의 특징을, 때로는 신과 함께하는 것으로, 때로는 영혼 안에 그리스도가 탄생하는 것으로, 또 어떤 때는 인간이 초신과 일치하는 것으로 말하곤 한다. 신과 초신의 차이점으로 지적되는 바는 하이데거가 창조되지 않은 존재(Being)와 창조된 존재(being) 간의 "존재론적 차이"라고 불렀던 말로 이해할 수도 있다. 실제 라이너 슈어만은, 중세 독일 말인 'iht(something)'과 'wesen(to be) 간의 차이로써 신과 초신의 차이를 설명했다. 여기에서 전자(God, iht)는 (어떤 실체든) 한 존재를 가리키는 반면 후자(Godhead, Wesen)는 펼쳐짐의 과정, 즉 정수가 되는 것(essentializing)을 가리킨다. 이 점은 에크하르트의 저술에 나타나는 핵심 표현을 확실히 해주는데 즉, 신의 존재를 하나의 사물, 곧 창조된 존재(being)로 환원하지 않으려는 표현이다. 그럼에도 에크하르트가 초신이란 말로써 신에 관해 말하는 구절도 다수 있으니 다음과 같다. 즉 "신은 창조된 존재가 아니며 존재를 초월해 있다(uber wesen).", "신은 하나의 존재이며 이성적이고 전지하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신은 존재도 아니고 이성적이지도 않으며 이것이든 저것이든 알지 못한다고 나는 말한다. 따라서 신은 모든 것에서 자유롭고 또 신은 모든 것이다.", "내가 '신은 한 존재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맞지 않다. 신은 존재를 초월한 존재이며 초월적인 무(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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