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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심소욕불유구'로 가기 위해, 유교와 불교 및 기독교 영성을 공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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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의 목표

2019.03.08 06:38 | Posted by 목운
출근 전에 10여분이 남아 시간 활용에 가장 좋은 명상을 했습니다. 마음의 풍경이, 그냥 앉아 아무 생각없이 쉬는 것 하고 자명 시계를 걸어놓고 명상하는 것 하고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명상을 해본 분은 아실 겁니다.

명상은 내면으로 향한다는 분명한 의도를 실천하는 일입니다. 엊그제 썼지만 BE, DO, HAVE 가운데 BE, 즉 존재 상태를 변화시키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과업이며 동아시아의 제대로 된 지성은 모두 이것을 최대, 최우선 과업으로 여겼습니다.

그렇게 존재 상태를 끝없이 향상시켜 가는 이유는 천인합일을 이루는 것이고 힌두 전통에서는 비이원성에 도달하는 것이고 서양 신비주의에서는 신인합일이 목표입니다. 그런데 인간 마음이 동서 불문하고 같다면 결국 모두가 한 지점에서 만날 것이라고 봐도 틀리지 않을 겁니다.

돌아보면 약 30년 현역 생활 동안 지금처럼 확고한 나침반을 가지고 흐트러짐 없이 정진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회한이 없지 않기에 또 언제나처럼 비슷한 얘길 풀어 놓았습니다! 물론 어머니 덕에 부실하나마 천주교에 입문한 게 아주 망해버리는 일은 막아 주었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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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까?

2019.03.02 21:18 | Posted by 목운
인문학이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도록 안내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보아서 비슷한 소리를 계속 달리 말해 봅니다. 삶이란 무엇입니까? 제가 볼 때 Σ(BE+DO+HAVE)입니다. 빠진 게 있을까요?  편의상 BE, DO, HAVE를 1, 2, 3으로 표기합니다. 젊었을 때는 세상이 그렇게 짜여져 있기 때문에 2와 3으로 미루어 1을 짐작하거나 2와 3에 열중하다 보면 1이 해결되는 것으로 아는 게 보통입니다.

한편 1에 인작과 천작이 있다고 본 분이 맹자입니다. 공경대부 같은 세상의 신분이 인작이고 끝까지 선을 추구하는 것(樂善不倦)이 천작입니다(고자 상). 사실상 외견을 구한다는 점에서 인작은 2나 3에 속한다고 봅니다. 그러니 천작을 추구함이 마땅한 것 같습니다. 인작이 다라는 생각을 끝까지 고수하면 이명박근혜나 양승태 같은 인간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선하게 사는데 어느 정도로 선해야 합니까? 종교에서 인정받고 세상에 통하자고만 하면 위선이나 통속에 빠지고 말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게 살기에 아직 세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입니다. 제 생각엔 무한히 최고의 선을 향해 갈 것(止於至善)을 목표로 하되 경전과 내면의 스승만을 따르는 게 답입니다. 제대로만 한다면 소크라테스처럼 신의 소리를 천둥처럼 듣고 그리스도처럼 신의 말씀을 음식 삼게 될 것입니다.

뒤늦게라도 낙선불권에 전력을 다해서 우리 존재 자체가 가장 높은 의식 상태이기도 한 '사랑과 평화'가 될 때 비로소 참으로 기쁘고 행복할 것이라는 것, 그때 1로 인해 저절로 이뤄지는 2와 3이 진짜라는 것, 그래야만 몸을 벗은 후에도 괜찮으리라는 것이 사서삼경이 말하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것을 성취하기 위한 기초 훈련이, 즉 구구단이나 알파벳에 해당하는 게 명상과 성찰, 또는 거경궁리와 반구제기, 아니면 좌선과 계정혜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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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기

2019.02.28 08:00 | Posted by 목운
어제 '무위-무불위'와 '무주상보시'가 같은 경지라고 썼습니다. 이 경지는 기독교에 오면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 손이 모르는(마태 6:3)' 경지라는 게 직감되지 않습니까?

여기까지 가는 데 핵심 노하우가 '소아를 잊기(마태 16:24)'입니다. 노장에서는 '좌망'으로 불가에서는 '무아'로 표현됩니다. 그 과정에서 마치 운동선수나 연주가가 매일 연습하듯 실천하는 게 유가에서는 내성 또는 반구제기이고 불가에서는 계정혜가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높은 경지에 가면 어떻게 될까요? 답은 범성이 같다는 것입니다. 산은 똑같은 산이지만 내면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혜능의 경우 똑같이 마당 쓸고 부엌일을 했지만 스승이 알아 봤습니다. 세상을 바꾸는 기폭제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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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와 성인의 차이

2019.02.27 06:42 | Posted by 목운
이미 세 번에 걸쳐 소개한 '유교 명상론'은 공부하는 사람의 성장 삼 단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15세에 공부에 뜻을 세운 때부터 학인이라 할 수 있는데 물론 공자님이 거론하신 나이는 상징으로 봐야 합니다. 꼭 나이대로 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학인의 경우 보시 기타 선을 행하려 하지만 잘 안되는 경우입니다. 엊그제 썼지만 불혹이 되면 선을 선택하는 데 흔들림이 없어져 군자라 할 수 있습니다. 위 책에서 배우는 것은, 유교 명상에서 거경궁리 또는 계신공구를 거쳐 '한다는 의식 없이' 선에 항구한 경지에 도달한 때를 성인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경지가 도덕경의 무위-무불위, 금강경의 무주상보시와 같다고 보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군자에서 성인으로 가는 노하우가 각 영성에 있지만 공통점은 '내가 있다는 생각'이 없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지점에서 '진짜 나는 무엇인가?'의 질문 또는 참나와 에고의 구분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제 공부 결론으로는 이 경지는 초월적 도움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이고 구세주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사단에 기반한 양심성찰 또는 육바라밀을 꾸준히 실천하면서 자신의 존재와 삶 전체를 자기가 믿는 절대자에게 완전히 의탁하며 간절한 기원을 하는 게 길이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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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어도 칠순까지 제 자식을 포함한 뒷세대한테 쓸모있는 수행서를 내는 게 목표라서 읽고 쓰는 일의 과반수가 여기에 바쳐집니다. '유교명상론'을 공부하면서 확인하는 것은 주희를 전후한 신유학자들의 목표는 작위가 없는 보시행이 가능한 경지에 가는 것입니다.

이 경지는 다름 아닌 도덕경의 무위와 금강경의 무주상 보시를 행하는 경지라고 봅니다. 대개의 신유학자들은 불가에서 먼저 공부를 했거나 텍스트로라도 선가를 이해하고 있었기에 충분히 그럴만한 일입니다. 이미 서술했듯이 선불교는 도교와 불교의 융합이기에 더더욱 그렇습니다.

어쨌든 위 책을 지은 정해은 님은 유교 명상의 목표가 반성의식의 정상적 작동을 거쳐 결국에는 반성의식의 소멸에 있다고 하며, 전자는 공자님의 학습단계 가운데 불혹에 해당하고 후자는 종심소욕불유구에 해당한다고 합니다(위 책 315~335쪽 참조).

제가 덧붙이자면 불혹은 계신공구를 실천내용으로 하는 성(誠)의 결단과 함께한다고 봅니다. 불혹 이후에 양심성찰 또는 육바라밀이나 거경궁리 등 무엇으로 부르든 반성의식으로 곧고 좁은 길을 일로매진할 때 칠순에 성취한다는 종심소욕불유구는 공자님 이후 의식 진화를 감안하면 그 기간은 짧아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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