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325

윤집궐중의 공부

초복 맞이 모임을 고교 동기 네 명과 했습니다. 철도 무료 카드를 처음 썼습니다. 오늘 의식을 차지했던 것은 에크하르트 가르침대로 대중 속에서 어떻게 정좌할 때의 의식을 유지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으며 이것이 매우 중요한 공부라는 직감이 들었습니다. 무상한 것들 속에서 무상하지 않은 것은 오직 내 의식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내 의식을 세상이 그대로 알게 하자는 것은 동아시아 수양 전통이기도 합니다. 오늘 정좌하는 시간엔 어제 제 심사의 분위기가 그대로 유지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당연히 옛날에 되는 대로 살던 때보다는, 조증과 울증이 교대하며 내 존재를 휘젓는 일은 거의 없어졌습니다. 시기심과 열등감 같은 것도 희박해졌습니다. 윤집궐중의 공부가 이런 것일 가능성이 큽니다. 앞으로의 공부는 지식의 공부가 아니..

단상 2020.07.17

기독교 극복의 필요성과 대안

기독교도로서 처음엔 유교, 불교 등은 자연종교고 기독교는 계시종교라고 배워 무의식적 우월감을 가졌습니다. 게다가 교황 무류권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하지만 약 35년간의 기독교 생활이 삶에 그다지 유용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원인은 저런 우월감 내지 선민 의식이 서양 인종주의의 뿌리일 뿐 아니라 유태 전통을 계승하다보니 신에 대한 생각이 매우 원시적인 데 있다고 봅니다. 즉 삐지고 편애하며 화내고 복수하는 신을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성인들도 배출했지만) 많은 기독교도들이 괴물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히틀러와 거기에 부역한 기독교를 보면 금방 인정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동아시아의 종교가 훨씬 낫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핵심 수행원리나 우주관에서 결코 기독교의 것과 다름이 없습..

단상 2020.07.15

아담 스미스와 수양론

세계 꼴찌를 시현하는 한국 언론의 경마장식 뉴스를 보다보면 정신 건강에 매우 해롭다는 것을 제 얼벗들은 인정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카카오뉴스를 안 보는 대신 오마이뉴스만 보려고 앱을 깐 지 한 달여 된 것 같습니다. 어제는 어떤 분이 새 책을 소개하는 김에 아담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을 설명해줘서 공부 잘 했습니다. 아담 스미스가 생산의 문제 해결책을 제시한 게 자본주의가 됨으로써 오늘날 생산력의 문제는 해결된 듯합니다. 경제학을 전공했으나 스미스가 개인의 수양문제에까지 해답을 제시했다는 것은 몰랐기에 부끄러웠습니다. 기사의 핵심을 옮기면서 하나만 보충하자면 저런 이상에 도달하려면 매일 규칙적으로 명상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명상은 거창한 무엇으로 보지 말고 홀로 골방에 있는 심사를 광장에서도 자연스레 취..

단상 2020.07.08

모세 패러다임과 아론 패러다임

13세기에 "브뤼헤 상인들이 너나 없이 자신의 성(姓)에 네덜란드어로 '돈지갑'이란 말을 붙여 썼다"고 합니다. 이 대목을 읽고 하필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많이 쓰는 성인 김(금)씨도 같은 맥락에서 정해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승 삶이란 누구에게나 그리고 고금 불문하고 가시적 삶에 대한 것이 대종을 이루며 옛날에 부귀가 제일 가치였다면 오늘날은 성공이 제일 가치가 되었다고 보면 좋을 겁니다. 모세나 그리스도가 혁명적인 것은 가시적 삶에 대항한 비가시적 삶, 즉 영의 삶을 대척점에 세웠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요컨대 모세가 단죄한 우상숭배(아론의 패러다임)란 가시적 가치를 모든 결정의 최종 잣대로 삼는 것 이외에 다름 아닙니다. 신약은 아론의 가치를 요한1서 2:16에 잘 정리하..

단상 2020.06.28

쉽게 풀은 윤집궐중

14일에 같은 지향으로 공부하는 남녀노소가 9명 모여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모임할 때 자주 듣는 얘기가 주변에 공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한편 제 일터에 평소 속을 털어놓고 지내는 이가 있습니다. 똑같이 반복되는 노동보다 직속 상관 때문에 힘들다고 종종 털어놓습니다. 그만두고 싶다 해서 '워크넷'을 소개해주고 다음 일자리 정해지면 그만두라고 했더니 그러겠다고 합니다. 오늘도 안쓰러워 '어제까지 일을 싹 잊으면 오늘 하루 새로운 날이 되는 것 아니냐'며 힘을 돋구려 했더니 '그러면 결국 우리가 다람쥐하고 뭐가 다르냐'는 것입니다. 짧은 순간이지만 대학-중용의 가르침대로 속(中)을 붙들고 앉아 있어야 한다고 했지만 참 설득력도 없게 느껴지고 감동도 못 준 것 같습니다. 하지만 ..

단상 2020.06.26

죽음과 성장의 관계

쉘드레이크의 'Science set free'를 1/5쯤 번역했는데 검색하다 보니 2016년에 이미 번역되어 나왔더군요. 미국에서 처음에 'Science delusion'으로 나왔기 때문에 번역 여부를 알 수 없었습니다. 아무튼 쉘드레이크는 유물주의 관점에 갇힌 과학계가 가진 여러 모순을 지적하려 했던 것 같습니다. 그는 또 스스로 영성주의자임을 자처합니다. 인상 깊은 것은 식물 세포에는 세포가 죽는 프로그램이 있으며 세포가 죽으면서 내는 옥신이란 호르몬이 나무의 성장을 자극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실상 씨앗은 본래 모습이 사멸할 때 비로소 거대한 새 생명으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얻는 교훈은 우리 몸도 마치 씨앗과 같아서 그것이 완전히 해체될 때 새로운 성장의 동력이 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공부하는..

단상 2020.06.20

팬데믹에서 중요한 것

아래 기사의 'Great Reset'은 '대대적 재편'쯤으로 번역해야 할텐데 우리는 이미 생산력 문제는 해결했다고 보고 이제는 생존가능성에 집중해야 한다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어 보입니다. 공유하는 글의 요지는 경쟁 위주로 짜여진 시장을 협력지향적으로 작동하도록 바꾸고 평등과 지속가능성의 가치를 추구해야 하며 보건의료등 공공재를 확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린뉴딜의 의제에 모두 들어 있지 싶은데 경제사회 구조 자체를 통째로 다시 짜기 위한 노력을 대대적으로 하지 않으면 똑같은 위기는 계속될 것입니다. 저야 잔존 수명이 15년 안팎인데 20년 이상 사실 분들은 더 관심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꼭 보태고 싶은 것, 그리고 누구도 거론하지 않는 대안을 하나 들자면 사회 모든 것, 특히 기존 종교까지도 외견적..

단상 2020.06.16

우물파기와 같은 공부

경전 또는 경전급 책은 수없이 되풀이 읽어도 지나치지 않을 겁니다. 에크하르트는 지난 연말부터 지금까지 붙들고 있습니다. 3월에 맹자 복습하고 느낀 점을 적어놓은 게 있어 공유해볼까 합니다. "유교 이상인 내성외왕(內聖外王)을 위한 노력에서 도중에 그치지 말 것을 맹자는 우물 파기 비유로써 강조합니다.¶ 물 나오기 직전에 그만두면 파지 않은 것과 같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적어도 나라의 모든 지도자들이 물이 나올 때까지 팠다면 나라가 쉽게 망하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그것은 오늘날 기독교에 똑같이 적용됩니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기독교도들이 그리스도 가르침대로 살고자 끝까지 노력했다면 이토록 야만스런 상황에 들지 않았을 겁니다. 모두 대충 하면서 다 된 듯 삽니다. 다른 말로 사이비입니다. 그 절정을..

단상 2020.06.10

근본 문제의 해결

삶이 심하게 불안할 땐 독서와 글쓰기 및 번역으로 여유 시간을 채웠습니다. 매일 정좌와 정관을 실천하고 좀 안정감을 느끼니 그 시간이 점점 줄고 뉴스와 TV 포함 동영상 보는 시간이 늘었습니다. 그러다가 직장에서 이런저런 지적을 받으면 또 며칠 불안감이 밀려옵니다. 오늘 명상후 느끼는 바는 제 공부가 존재의 근원과 합치하려는 것인데 치열함이 부족해서 아차 하면 매너리즘에 빠지겠구나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맹자 말씀하신 '생어우환 사어안락'에서 생사의 주체는 내 의식이라 보는 게 맞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 우환을 약으로 여기는 게 현명할 것입니다. 공부가 부족한데 게으르니 불안하고 파적거리에 빠지는 것입니다. 존재의 근원에 접속하려는 뜻은 존재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고 이승에 있는 동안 긍정적 ..

단상 2020.06.08

팬데믹과 멸종 저항(3)

위치 에너지가 큰(?) 분들에게서 나오는 말들만 봐도 우리나라는 물론 지구적으로 근본적인 변화를 기대할 만한 시점이라 생각합니다. 수구 본산이라 할 만한 곳에서 기본소득 의제가 거론된다든지 안보 개념이 국방을 넘어 인간 안보로 되어야 한다는 말씀이 그러한 사례입니다. 전자는 이제까지의 세계 운영원리이기도 한 자본주의 내지 신자유주의에 대한 수정을 받아들이는 것이고, 후자는 군비경쟁을 기본으로 하는 안보개념이 팬데믹 앞에서 생존과 협력, 즉 공존의 패러다임으로 바뀔 조짐이라는 것입니다. 제대로만 되면 코로나가 전 인류 공존 공영에 이바지하는 은총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현재 생산력과 지구 자원으로 전 인구가 생존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는 게 지혜에서 나오는 말씀입니다. 다만 경쟁 위주의 시스템 설계 및 ..

단상 2020.0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