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쉽게 풀은 윤집궐중

목운 2020. 6. 26. 09:09

14일에 같은 지향으로 공부하는 남녀노소가 9명 모여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모임할 때 자주 듣는 얘기가 주변에 공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한편 제 일터에 평소 속을 털어놓고 지내는 이가 있습니다. 똑같이 반복되는 노동보다 직속 상관 때문에 힘들다고 종종 털어놓습니다.

그만두고 싶다 해서 '워크넷'을 소개해주고 다음 일자리 정해지면 그만두라고 했더니 그러겠다고 합니다. 오늘도 안쓰러워 '어제까지 일을 싹 잊으면 오늘 하루 새로운 날이 되는 것 아니냐'며 힘을 돋구려 했더니 '그러면 결국 우리가 다람쥐하고 뭐가 다르냐'는 것입니다.

짧은 순간이지만 대학-중용의 가르침대로 속(中)을 붙들고 앉아 있어야 한다고 했지만 참 설득력도 없게 느껴지고 감동도 못 준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로는 5년전 매혹을 느껴 번역한 복성서를 미국서 치유가로 활동하는 분이 단박에 호응해 준 일도 있습니다.

역시 내면의 공부를 하는 사람과 하지 않는 사람 간에는 커다란 벽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습니다. 희노애락이 발하기 전 상태인, 속 깊은 곳(中)이라 함은 공적영지 또는 우주 의식을 만날 수 있는 자리로서 제대로 닦기만 하면 무조건적 사랑과 은은한 기쁨 및 만족을 느낄 수 있는 자리입니다.

그 만남을 제대로 성취한 사람은 홀로 있을 때나 광장에 있을 때나 여여하게 처신할 수 있는데 그것은 진정한 자기애와 인류애(또는 자비심)를 느껴 알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직 도정에 있는 자이지만 그 길에서 크게 진보하면 주변에 평화를 가져올 뿐 아니라 환란에도 평온하게 모든 것을 견딜 수 있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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