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3/30 2

에크하르트 훈화와 대학-중용

동아시아의 형이상학은 인격신을 전제하지 않으면서 궁극의 실재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검색하다가 자금성 중화전에 건륭제가 쓴 '윤집궐중' 현판을 보았습니다. 김구 선생이 쓰신 같은 구절도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대학과 중용은 유교적 신인합일, 즉 천인합일의 교재입니다. 그래서 며칠 전 "홀로 고요히 앉아 있을 때 대면하는 허공과 같은 무엇이 바로 천인합일이라 할 때의 하늘이며 기독경의 '고요히 있으라 그리고 내가 신임을 알라' 할 때의 내재하는 신과 같기 때문에 서양 신비주의의 신인합일과 동아시아의 천인합일은 같은 목표를 가진다"는 취지의 글을 썼습니다. 중을 내면의 신으로 보고 '지천명'하고 그 말을 잘 들어(耳順) 하늘과 하나가 된 경지가 바로 '마음 내키는 대로 해도 걸리는 게 없는..

신인합일에 이르는 길

제가 초심자 중에 초심자지만 중용을 입버릇처럼 거론하고 에크하르트의 훈화를 함께 읽는 뜻은 동서 지성 가운데 신인합일을 실천하고 거기에 이르는 방법을 간절한 마음으로 기술한 글이 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곳에서 대략 5장까지 거론했는데 6장에서는 이 공부를 하는 자세를 세 가지 예로 강조합니다. 첫째는 목마른 사람처럼 해야 한다는 것이고 그 다음엔 글쓰기 훈련이나 바이올린 연주처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는 "내적으로 홀로 있기를 배워야" 하며 "본질적인 방식으로 힘차게 신을 자신 속으로 모시고 들어와 자신의 모습을 (새롭게) 바꾸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합니다. "자신의 모든 것들에서 풀려나 모든 것들에서 완전히 자유롭게 머물 수 있도록 신적 현재에 푹 잠겨들어야 한다. 사랑하는 신의 모습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