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크하르트 입문

에크하르트 훈화와 대학-중용

목운 2020. 3. 30. 09:08

동아시아의 형이상학은 인격신을 전제하지 않으면서 궁극의 실재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검색하다가 자금성 중화전에 건륭제가 쓴 '윤집궐중' 현판을 보았습니다. 김구 선생이 쓰신 같은 구절도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대학과 중용은 유교적 신인합일, 즉 천인합일의 교재입니다.

그래서 며칠 전 "홀로 고요히 앉아 있을 때 대면하는 허공과 같은 무엇이 바로 천인합일이라 할 때의 하늘이며 기독경의 '고요히 있으라 그리고 내가 신임을 알라' 할 때의 내재하는 신과 같기 때문에 서양 신비주의의 신인합일과 동아시아의 천인합일은 같은 목표를 가진다"는 취지의 글을 썼습니다.

중을 내면의 신으로 보고 '지천명'하고 그 말을 잘 들어(耳順) 하늘과 하나가 된 경지가 바로 '마음 내키는 대로 해도 걸리는 게 없는(從心所慾不踰矩) 경지'이며 그때 '내성을 성취하여 비로소 왕노릇해도 된다(內聖外王)'는 게 우리 가르침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중(中)이 천하지대본이라 할 때 중을 존재의 근원이자 절대성의 자리라고 보지 않으면 그만큼 해석과 실천에 힘이 딸립니다. 그래서 저는 윤집궐중이 바로 정좌를 통해서 천인합일에 이르라는 명령으로 알아듣습니다.

이러한 전제에서 에크하르트 영적강화 7장을 읽으면 바로 대학, 중용의 정신에 그대로 합치합니다. 즉 "신으로 가득차 사물들이 우리를 방해하지 못하게 하거나 어떤 특정 생각이 우리 안에 들어와 머물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세상 모든 것에서 신의 현존을 느끼는 사람, 자신의 이성을 가장 잘 다스리고 이용하는 사람만이 참된 평화가 무엇인지 알고 올바른 하늘나라를 갖게 될 것이다. (이부현 번역, 22~23쪽)"

이것을 성취한 후 "모든 행위들과 모든 사물들에서 자신의 이성을 곰살궂게 사용하고 자신과 자신의 내면성을 통찰하는 의식을 가져야 하고 세상 모든 것에서 가능한 최고의 방식으로 신을 읽어내릴 수 있어야 한다." "일을 할 때 미리 신으로 무장하고 신을 확고하게 자신의 마음 속에 모셔야 한다. 다른 것이 자신을 형성할 수 없도록, 그는 자신의 모든 의도, 생각, 뜻, 그리고 자신의 능력을 신과 하나가 되게 해야 한다. (위 22~24쪽)"

위 앞구절은 중(中)의 성취, 뒷구절은 화(和)의 실천이 됩니다. 그렇게 항상 중화를 실천하는 것을 시중(時中)으로 보자는 게 제 생각입니다. 다음에 이어지는 영적강화 8장은 대학의 최고선을 추구함(止於至善)에 조응하기에 인용합니다.

사람은 수행길에서 자만하지 말고 "이성과 의지 등 두 개의 능력을 갖고 계속 자신을 드높여야 한다. 그렇게 하는 가운데 최고 수준에서 자신의 최상의 것을 포착해야 한다. 그리고 일체의 해악에 대하여 외적으로나 내적으로 사려 깊게 자신을 지켜내어야 한다. 그럴 때 어떤 것들도 결코 소홀히 하지 않고 끊임없이 높은 수준으로 성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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