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크하르트 입문

버리고 떠나 있음의 숙달

목운 2020. 5. 7. 18:10

우연히 레스터 레븐슨의 말을 접하고 제가 회심할 때 만난 선가귀감의 말씀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새삼 느꼈습니다. 그 단순한 말씀의 깊이가 더욱 강렬히 와 닿았기 때문입니다. 우선 레븐슨의 말을 인용합니다. "우리는 욕망이 없는, 아무것도 갈망하지 않는 경지에 이르러야 합니다. 그러면 언제나 행복해질 것입니다."

선가귀감 말씀은 다음과 같습니다. "생사를 벗어나려면 먼저 탐욕을 끊고 애갈을 없애야 한다. (欲脫生死 先斷貪欲 及除愛渴)" 제 경우 생사를 벗어난다 함은 삶의 바닥 체험을 하고 번뇌가 괴로워 근심걱정 없는 삶을 살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레븐슨의 말은 그러한 부정적 상황을 호출하지 않고 바로 '언제나 행복해지고 싶다'는 욕망을 말합니다.

어쨌든 우리는 이승을 지나가면서 누구나 지복 상태의 대표적 표현인 천국을 누렸으면 합니다. 어린 시절을 지나 상당한 시간 동안 학교를 비롯한 세상이 보여주는 대로 살다가 바닥체험을 할 때라야 비로소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숙고하는 게 아닐까 합니다. 그 모든 상황을 미리 내다본 선지자들 가운데 우뚝 선 그리스도는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라'(요한 12:25)고까지 말하십니다. 이 말씀과 같은 취지의 공관복음은 마태 16:24, 마르코 8:34, 루가 9:23 등인데 곧 '자기를 버리라'(최익철 번역 '자기를 끊으라'; United Bible Societies '자기를 잊으라')고 되어 있습니다.

제가 이곳에 소개한 에크하르트의 '훈화'(또는 '영적 강화')는 이 구절의 실천에 관한 강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에크하르트의 표현을 보면 "자신의 자아에서(aus seinem Ich = out of his I) 벗어나 자신의 것과 결별"할 때 신이 마치 당신을 위하는 것처럼 우리의 소원을 성취하신다고 합니다. 기존 종교는 이 부분에서 철저하지 못하여 죄와 그 사면, 사후 천국 등 유사품을 가르치다가 모두 실패하게 되는데 대부분의 기독교 국가에서 사람들이 종교를 이탈하는 현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영적 노력들이 수렴하는 바는 '나라는 생각이 완전히 없어질 정도로 자기에 대해서 또는 에고에 대해서 죽는 길'이 바로 천국에 이르는(또는 생사를 벗어나는, 언제나 행복해지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이 메시지는 자연에도 새겨져 있는데 나비 애벌레가 고치 속에서 자신의 과거 모습을 완전히 벗어버리는 것과 씨앗이 자신을 완전히 파괴하여 버림으로써 열매를 맺는 현상이 그것입니다. 다시 강조하면 우리 에고가 죽는 길은 아무런 자의식이 없는 몸이 죽음으로써가 아니라 세상에서 습득한 '나라는 생각' 또는 마음이 죽음으로써 가능한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에게는 생존에 필요한 최소의 것 이외에 아무런 욕망이 없는 경지, 아무것도 갈망하지 않는 경지가 가능할 것입니다. 그 경지를 체험한 분들은 그때 비로소 신적 기쁨과 신적 평화, 확실한 안심 상태가 된다고 합니다. 동아시아의 유불선에서 지향하는 '생각도 없고 행함도 없이 고요한(無思也 無爲也 寂然不動)' 경지도 여기에 이어진다고 봅니다. 그것을 위해서 동서 영성 모두 정좌(靜坐) 또는 정관(靜觀, contemplation)을 실천하였는데 에크하르트 님은 '버리고 떠나 있음(abgeschieden)'이라 하였고 그것은 거저 얻어지는 게 아니라 끝없는 연습을 통해서 "제대로 숙련된" 것이어야 한다고 합니다(훈화 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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