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크하르트 입문

에크하르트와 의식, 그리고 교회

목운 2020. 6. 30. 09:15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삶과 사상을 공부하면서 무엇보다도 반가운 구절이 있어 옮깁니다. "에크하르트가 독일 도미니코회 학파와 함께하는 핵심 생각은 '지성'의 본성 및 의미에 대한 치열한 관심인데 여기서 지성이라 하면 현대 용어에서 '지성'보다는 '의식'과 관련된 무엇이다." 에크하르트는 도미니코회에서 멘토인 디트리히의 생각을 취하여 이 의식이 인간 영혼이며 인간 존재의 핵심이라고 보고 그것('마음', 영혼, '의식' - 모두 같음)을 찾고 탐구하기 위해서는 우리 존재의 가장 내면적이고 친밀한 부분으로까지 찾아들어가야 한다고 합니다(앞의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지적 배경' 참조). 

에크하르트를 거론하면서 루터가 영향받았다고 했는데 실상 루터의 주장은 신과 직접 통할 수 있기 때문에 당시와 같은 교회가 필요 없다는 주장과 통합니다. 에크하르트의 사상은 신플라톤주의와 기독교의 융합을 꾀하다보니 교회가 가르치는 신관(神觀)에 저촉되는 바가 없지 않았습니다. 물론 에크하르트는 종교재판을 받으면서 '나는 교회를 등질 마음이 없다.'고 변호했습니다.

그리스도교 신비주의 계열은 직접적인 신체험을 추구하기 때문에 실제로 그 체험을 생생히 한 사람들은 교회의 중개가 필요 없다는 것을 체험으로 알게 됩니다. 대표적으로 성공회 신도였다가 무신론을 거친 후 신체험을 하고 영성과 과학을 통합하고자 노력한 호킨스 박사의 경우 다음과 같은 체험을 고백합니다.

“신의 현존 속에서의 궁극의 깨달음과 앎은 평화다. 그 평화는 무한히 안전하다는 증거이자 무한히 보호받는다는 보장을 의미한다. 그 어떤 고통도 가능하지 않다. (The ultimate awareness and knowingness in the Presence of God is Peace. The Peace proclaims infinite safety and preservation with infinite protection. No suffering is even possible.)”

에크하르트는 플로티누스의 '일자'를 신으로 보았습니다. 하지만 당시 사회에서 그리스도교도 아님을 선언하는 것은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기 때문에 신플라톤주의와 그리스도교의 통합을 시도했는데 저라도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오늘날은 일부 사람을 제외하면 기독교 없이도 사회적 손실을 감수할 이유가 하나도 없기 때문에 신비주의 노선을 가는 이들은 얼마든지 기독교를 포기하여도 신 체험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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