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3 13

에크하르트 훈화와 대학-중용

동아시아의 형이상학은 인격신을 전제하지 않으면서 궁극의 실재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검색하다가 자금성 중화전에 건륭제가 쓴 '윤집궐중' 현판을 보았습니다. 김구 선생이 쓰신 같은 구절도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대학과 중용은 유교적 신인합일, 즉 천인합일의 교재입니다. 그래서 며칠 전 "홀로 고요히 앉아 있을 때 대면하는 허공과 같은 무엇이 바로 천인합일이라 할 때의 하늘이며 기독경의 '고요히 있으라 그리고 내가 신임을 알라' 할 때의 내재하는 신과 같기 때문에 서양 신비주의의 신인합일과 동아시아의 천인합일은 같은 목표를 가진다"는 취지의 글을 썼습니다. 중을 내면의 신으로 보고 '지천명'하고 그 말을 잘 들어(耳順) 하늘과 하나가 된 경지가 바로 '마음 내키는 대로 해도 걸리는 게 없는..

신인합일에 이르는 길

제가 초심자 중에 초심자지만 중용을 입버릇처럼 거론하고 에크하르트의 훈화를 함께 읽는 뜻은 동서 지성 가운데 신인합일을 실천하고 거기에 이르는 방법을 간절한 마음으로 기술한 글이 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곳에서 대략 5장까지 거론했는데 6장에서는 이 공부를 하는 자세를 세 가지 예로 강조합니다. 첫째는 목마른 사람처럼 해야 한다는 것이고 그 다음엔 글쓰기 훈련이나 바이올린 연주처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는 "내적으로 홀로 있기를 배워야" 하며 "본질적인 방식으로 힘차게 신을 자신 속으로 모시고 들어와 자신의 모습을 (새롭게) 바꾸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합니다. "자신의 모든 것들에서 풀려나 모든 것들에서 완전히 자유롭게 머물 수 있도록 신적 현재에 푹 잠겨들어야 한다. 사랑하는 신의 모습에..

둘째 가는 계명의 전제

에크하르트의 훈화(영적 강화)에 대해 두 번 쓰면서 기독교도들이 그리스도의 첫째 계명을 모르면서 둘째 계명에 몰입함으로써 길을 잘못 든다고 말했습니다. 제 생각엔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한다 할 때 몸이 내가 아님을 먼저 깨치지 못하여 길을 잘못 드는 것입니다. 에크하르트는 우리가 나라고 생각하는 것을 벗어나서(aus seinem Ich) 내 의지와 고집이 사라질 때 신이 우리에게 들어온다고 합니다. 즉 신으로서의 내가 신으로서 내 몸처럼 이웃을 볼 수 있을 때 올바로 이웃을 사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아를 벗어나지 못할 때의 사랑이란 모두 다수성의 세계에서 계산과 유치한 감정의 사랑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3장에서는 아집을, 4장에서는 사물에 대한 집착인 법집을 벗어나라고 합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그리스도의 첫째 가는 계명과 정좌

제가 여러번 지적했듯이, 그리고 제 40년 가까운 기독교 생활에서 보건대 기독교도는 그 안에서의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첫째 가는 계명을 지키는 방법을 모릅니다. 그래서 두번째 계명인 이웃 사랑으로 대봉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첫째 계명을 모르기 때문에 두번째를 실천하면서 어그러지는 경우가 다반사죠! 에크하르트의 영적 강화(저는 훈화를 선호합니다) 둘째 장을 보면서 저는 동아시아의 수행을 떠올립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는 가장 힘 있는, 거의 전능에 가까운 기도와 무엇보다도 가장 가치 있는 행위는 텅 비어 있는 마음(ledigem Gemut, vacant mood)에서 나온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펭귄판에서는 '텅 비어 있는 마음'을 '자유로운 마음(free mi..

신에 대한 사랑법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영적 강화(Die Reden der Unterweisung, 이부현 님 번역)를 처음엔 강병욱 님의 번역(영성 지도, 2009, Play Store, Play Book)으로 여러번 읽었는데 이부현 님 번역과 펭귄 북의 영역(The Talks of Instruction)으로도 읽었습니다. 위 번역문들에 간간히 나오는 독일어를 보니 좀더 정확히 읽으려면 독일어 원전을 읽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전공이 아닌 터라 이고 선생의 복성서는 현대 중국어의 도움을 받아 거의 10개월 동안 번역해서 블로그에 올려놓고 이곳에서도 수시로 소개했습니다. 복성서는 8~9세기 동아시아 최고수준의 의식에서 나왔다고 판단해서 그렇게 했는데 에크하르트 님의 위 책도 13~14세기 유럽 최고 지성에서 ..

신애(神愛)와 천인합일

제가 초등학생때 천주교 세례를 받았을 뿐 아니라 부친 따라 집안 제사에 모두 참석했습니다. 두 종교가 제사를 핵심으로 하고 있는데 형식에 불구하고 모두 하늘에 제사하는 것으로 보는 게 맞습니다. 이때 하늘은 물리적인 게 아님에도 가시 세계로 향하는 순간 신플라톤주의에서 말하는 다수성에 빠집니다. 달리 말하면 우상숭배에 빠집니다. 기독교의 실패나 유교의 실패나 오십보 백보라고 생각합니다. 홀로 고요히 앉아 있을 때 대면하는 허공과 같은 무엇이 바로 천인합일이라 할 때의 하늘이며 기독경에도 '고요히 있으라 그리고 내가 신임을 알라'고 해서 가시계의 신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이 내면의 하늘에 전력투구하라는 게 중용이고 그리스도의 1계명입니다. 하근기를 위한 십계명이나 유교의 예에 관한 디테일 모두 거기에 사로..

단상 2020.03.24

명상의 조건과 효능

운 좋게 처음으로 낸 책이 명상을 주제로 하는 책입니다만 이 간단한 공부는 서양의 신비가들과 동아시아 선비들이 실천했던 수행의 중추 가운데 하나입니다. 거기에 독서만 보태면 누구나 수행 공부를 제대로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 쪽에서는 주로 정좌 혹은 좌선이라고 하는데 그저 앉아 있는 것이 기본이고 '선'자까지 붙으면 바로 제사를 지내는 일이기도 합니다(한자 '선'의 어원이 하늘에 제사지낸다는 뜻입니다). 어제 오늘 명상이 잘 되었는데 제 경우 그 판단 기준은 시간이 얼마나 빨리 간 것으로 느껴지나 하는 것입니다. 솔직히 명상에서 초월 체험이나 신비 체험을 기대하지만 우리 존재에게 그 상태가 항구하게 이뤄지는 것은 현실적이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비슷한 체험은 임사체험, 유체이탈..

단상 2020.03.23

이승을 잘 지나가기

이번 생, 즉 몸 살이의 목적을 깨달았다 하더라도 일상의 버거움을 느끼지 않는 분은 드물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 하셨는지 모릅니다. 그것이 성령으로 새로 난 상태인지 모르지만 신비체험 또는 신인합일 등 몸을 벗어난 체험을 하신 분들 얘기를 듣거나 읽어보면 세상에 다시 개입하기 싫은 느낌이 들거나 또는 이 세상과 다음 세상 간에 그 어떤 선호도 없어진다고 합니다. '곡기를 끊는' 경지도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도 해봅니다. 결국 몸과 마음이 고달프지 않으면서 궁극의 만족과 기쁨, 그리고 자유를 누리고자 하는 것이 누구에게나 잠재한 바람이지 싶은데 거기에 이르는 방법을 정확히 알고 실천하는 이를 찾아보기 드문 게 현실입니다. 숙명처럼 일터를 향하면서 떠오르는 상념들이 ..

단상 2020.03.21

공관복음과 자아포기

잘 아시겠지만 공관복음이라 함은 네 개의 복음 가운데 공통된 부분을 묶은 것입니다. 대개 마태오, 루가, 마르코 복음의 유사성에 비해서 요한복음은 조금 맥락이나 표현방법이 다릅니다(말할 필요도 없는 게 제 지식은 '얕게 넓은' 것을 지향하기에 '깊게 좁은' 것을 기대하시지 않으실 줄 압니다). 자주 거론하는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훈화(또는 영적 강화)는 거의 마태오 16:24의 자아포기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에고 또는 소아라고 할 수 있는 것을 완전히 비울 때 신이 우리 존재를 지배하는 천국 상태가 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완전히 생각이 끊어져 희로애락이 나오기 전 상태인 중을 얘기하는 중용이 바로 연상됩니다만 이 점은 동서 영성의 핵심이자 공통점이기도 하다고 봅니다. 마태오 16:24는, 마르코 8:..

단상 2020.03.18

일상이 모두 도량

함께 수행공부하는 분께 제 에고 분석을 부탁했더니 교사가 될 운명이라고 합니다. 제가 여러번 소개한 관음경 설화에 따르면 공부의 단계는 경전의 암기, 해석, 체험의 세 단계를 말합니다. 처녀로 화현한 관음과 결혼할 자격을 얻으려면 궁극의 가르침을 체험해야만 합니다. 지금 전력을 기울이는 일이 바로 이 일이기 때문에 이번 생에서 제대로 체험하게 되면 일부러 교사노릇 하려 하지 않아도 제 덕을 볼 사람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전생 이래, 특히 이번 생에 어리석음(치심) 때문에 지은 업장을 지우는 데만 시간이 부족할 지경입니다. 오직 근원(부처님 또는 그리스도)의 가피를 얻어 성취하기만을 빌고 있습니다. 소승을 쉽게 비판하지만 평생 봉쇄 수도원에서 도를 닦기만 해도 모든 의식은 통으로 하나이기 때문에 제대로 ..

단상 2020.0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