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325

기대수명

친구가 보내준 잔존수명 계산기대로 해봤습니다. 제가 원하는 나이가 나왔다고 했더니 다른 친구는 제가 용기 있다고 칭찬을 합니다. 그런데 실은 59살에 바닥체험을 하고 그것 때문에 어쩔수없이 임종을 생각하며 단단한 결심으로 공부를 해왔습니다. 공부중에 백성욱 거사 법어를 복습해보니 일념으로 3천일을 닦으면 견성을 할 것이며(타심통) 9천일을 닦으면 모든 번뇌에서 벗어난다(누진통)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번뇌가 사라졌다 하면 번뇌의 원인인 에고 또는 생멸심이 사라져 참나 또는 그리스도 의식으로 살게 되는 것과 같다고 봅니다. 백선생님은 누진통에서는 뇌세포가 완전히 바뀌어 환골탈태한다고 하는데 수행이란 과학 용어로 하면 카오스 이론에서 나오는 끌개장을 계속 갈아타면서 상승하는 과정입니다. 그렇게 해서 높은 에너..

단상 2021.12.29

성탄 덕담

성탄에 딱 맞는 글이 안 떠올랐으나 호킨스를 복습하다 만난 구절로 썰을 풀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즉 "신자들을 포함한 보통 사람들은 신으로부터 분리되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은 나머지 체험을 통해 신을 알 수 있는 가능성을 믿기 어렵다. (호모 스피리투스, 62쪽)" 체험으로 신을 안다 함은 궁극의 진리에 대한 확실성을 온몸으로 알게 되었다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원시 이래 인간은 확실한 안전과 평화, 보호받음을 갈구하는 작은 짐승이었습니다. 문자가 발명되고 지식이 축적됨에 따라 자신감이 커지긴 했으나 궁극의 지혜와 안전에 대한 확신은 여전히 부족합니다. 그런데 축의 시대 전후에, 삶으로 그런 지극한 경지를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가르침을 베풀고 게다가 진짜 평안 속에서 자신있게 좌탈입망하는 ..

단상 2021.12.25

중용과 깨달음의 요체

30년 넘는 기독교(천주교) 생활을 지양극복하니(저는 졸업했다고 표현합니다) 좀더 객관적인 관점이 생깁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자기들은 계시종교고 아시아의 불교나 유교는 그저 자연에서 진화한 종교라고 하는 가르침(이라 쓰고 세뇌로 읽습니다)입니다. 하지만 제가 유불선을 공부한 바로는 같은 가르침입니다. 지난 번에 이어서 중용을 더 파보려고 말을 꺼냈습니다. 중용 첫머리에서 말하는 교는 실상 종교로 읽는 게 더 좋을 것 같습니다. 교란 수도고 도란 하늘의 뜻을 따르는 것이라는 게 요점이니 말입니다. 그런데 도란 한편으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극한이란 것이 도덕경 말씀입니다. 전심법요가 말하는, 말이 끊어지고 마음이 사라진 상태입니다. 하늘의 뜻이란 것도 그러하지요. 그래서 우리 전통에서는 육신을 벗어난 마..

단상 2021.12.25

추상적 계승

법고창신이란 말은 결국 온고지신과 같은 말이고 진정한 의미는 옛것 또는 스승(아니면 성인)의 가르침을 오늘에 맞게 계승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교육이 졸렬한 수준이라 누구든 독립적이고 창의적으로 가르침을 계승할 줄 모르고 주입식으로 주어진 것을 맹종하는 경향이 큽니다. 기독교의 막장 현상이나 상당수 주권자가 조중동에 휘둘리는 현상도 많은 부분 그 때문이지 싶습니다. 하여튼 옛것을 계승할 때 시대 상황이 다른데 무엇을 어떻게 계승할까에 대하여 아주 좋은 기준을 제시한 분이 있어 소개하려고 합니다. 이종티앤 님은 추상적 계승을 하면 된다고 합니다. 즉 전면적 계승, 구체적 계승, 직접적 계승은 불가하니 가르침 당시의 배경과 원인을 버리고 가르침 안의 합리적인 것만 계승하자는 것입니다. 기하학이 이..

단상 2021.12.18

수도, 걸림돌 제거

중용 첫머리에서 비교적 명쾌하지 않았던 게 교(教)입니다. 도란 심진여를 따르는 것이라고 이미 말했고 그 도를 닦는 게 교입니다. 이해가 안 될 때는 먼저 앞뒤 맥락을 고려하고 시공을 너머 내게 울림이 있는 해석이 무언지 자문합니다. 그리고 문자에 구애받지 말고 내 삶과 실천에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스승들 가르침과 전공자들의 주석을 참고해서 나름의 해석을 하고 실천에 적용합니다. 이것이 제가 이종티엔 님에게서 배운 추상적 계승입니다. 그렇게 해서 특별히 교리로 확립된 것들까지 해체수준으로 읽고 버릴 것은 버립니다. 수도 즉 교에 대해서는 이기동 교수에 따르면 도를 방해하는 것, 걸림돌이 되는 것을 제거하는 일이라고 해서 유튜브 강의를 인상깊게 들은 적 있습니다. 그러니 교자를 쓰는 종교나 교육은 모두 수..

단상 2021.12.17

누진통과 여의주

중용을 공부한다는 것은 수도의 삶을 산다는 것이고 중용 첫머리에서 도란 요샛말로 참나를 따른다(率性)는 뜻입니다. 참나란 대승기신론 용어로 진여심(眞如心)입니다. 기독교 삶도 자기를 버림으로써 신과 일치한 후에야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조건없는 사랑이 가능하다고 가르쳤습니다. 유교도 그러했고 오늘날 기독교도 그러한데 먼저 할 일을 미루고 에고 드라이브로 도를 이룬 듯이 살려 하기 때문에 쉽사리 부패한다고 봅니다. 어제 공부 모임에서 더 이상 새지 않는다는 뜻의 '누진(漏盡)'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는데 과거 써놓은 글이 있어 조금 수정해서 올립니다. "에크하르트 님은 영혼이 말씀을 받아들이려면 가장 순수하고 고귀하고 섬세해져야 하며 그러기 위해 영혼은 오관을 통하여 다양한 피조물을 향해 ..

단상 2021.12.13

득도의 길

어제는 우연히 노무현재단의 알릴레오 북스를 봤습니다. 제가 읽지 않은 그리스인 조르바를 왜들 그렇게 많은 사람이 읽나 하는 호기심 때문입니다. 유시민 님, 조수진 님이 주관하는 프로그램이고 박웅현이란 분이 초대 손님으로 나왔습니다. 이야기의 결말 비슷한 것을 제 나름으로 파악한 바는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 무위의 삶을 지금 여기에 최선을 다하며 살다 꼿꼿이, 어쩌면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또는 흔들림 없이 죽음을 맞이한 조르바처럼 살고 싶다는 것으로 요약됩니다. 문자를 써서 다시 쓰자면 'Needing nothing'과 'Carpe Diem'의 정신으로 살다가 좌탈입망(坐脫立亡)하고 싶은데 그것은 득도의 삶이 아니겠는가 하는 데 세 사람이 은연중에 합의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럼에도 제게는 변죽만 울..

단상 2021.12.05

임종 준비

모두 체험하는 일이지만 하나에 몰두하면 다른 것(오관이 감지하는 것)은 마치 없는 것이 됩니다. 화장실에서 페이스북 글을 읽다 들고 들어간 다른 물건을 두고 나왔습니다. 채근담에 있는 '이목구비가 모두 질곡'이란 말과 겹칩니다. 지난 주말에 소천한 고교 동기 때문인지 몸을 벗으면 의식만 남을텐데 오관이 감지하는 게 없으니 의식이 무엇에 몰입하는지가 핵심적으로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써봅니다. 붓다께서 '모두가 무상한지 알아라 그걸 잊고 사는 게 바로 무지다' 하신 가르침도 여기에 연결된다고 봅니다. 실상 이 공부를 위해 매일 좌선과 독서를 해온 지 만 8년인데 임종 준비로는 딱이라고 생각해서 누구한테라도 말해주고 싶은 일이기도 합니다. 2년 후에 그것이 책이 되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고요. 참고로..

단상 2021.11.23

신명 있는 삶

앞으로 8년간 살 권리를 얻은 아파트로 이사할 날을 잡고 어제 열쇠를 받아 왔습니다. 동시에 작년 12월부터 써온 원고를 마치고 정신세계사에 제안서를 냈습니다. 원고에 덧붙이고 싶은 한 구절을 찾으려고 조지프 캠벨 책 두 권을 복습 중입니다. 그분의 말은 모두가 초종교적 신비 영성을 추구하는 제게 와닿지만 그 가운데 '신화와 인생'에 있는 한 구절이 기가 막히도록 인상이 깊어 공유해볼까 합니다. "재난은 여러분을 뒤로 물러서게 하지만 (거꾸로 보자면) 여러분이 힘을 드러내야 할 때가 되었기 때문에 그런 재난이 생기는 것이다." 여러번 거론했지만 재난은 치명적인 손재수나 이별수, 아니면 말기적 질병 형태로 오기 마련입니다. 그때 삶을 180도 바꾸어 캠벨이 강조하는 바의 내면의 길을 가서 영웅처럼 귀환하게..

단상 2021.09.12

대통합 이론을 기다리며

고교 졸업한 지 47년 되었지만 동문, 특히 중고등학교 인연은 질기기도 해서 학교때 기억에 남는 일이 없어도 다른 사정이 맞으면 절친이 되기도 합니다. 호주 살던 친구의 귀국을 계기로 고교 동기 십여명이 카톡방 멤버가 되어 절친 비슷하게 지냅니다. 지난 주에는 그 가운데 셋이 우연히 모교가 속한 구에 살게 되어 핑계김에 한 자리에서 이바구를 했습니다. 이야기중에 한 친구가 수십 년 된 종교를 버린 제가 못내 애석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유명한 정신과 의사 스캇 펙은 의식이 상승할 때 새로 종교를 가지거나 개종 또는 탈종교 하는 등 여러가지 사례가 있다고 합니다. 의식이 상승하는지 여부는 차치하고 제 경우는 탈종교 입장이라고 해야 마땅할 겁니다. 기축시대 이후 높은 경지에 가신 분들의 가르침을 비교 연구한다..

단상 2021.0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