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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스터 에크하르트 : 삶(2)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 도미니코 회원 삶(2) 그의 재판이, 당시 교황 요한 22세가 망명중이었던 아비뇽으로 이관되었을 때 도미니코회 튜토니아 관구의 헨리쿠스 데 시그노와 세 강사에게서 측면 지원을 받았다. 지방으로부터 그렇게 강력한 지원을 받았음에도 도미니코회 수도회 전체로는 1325년 베니스, 그리고 이어서 1328년 툴루즈에서 있었던 수사회 총회 동안 이미 에크하르트를 멀리하고 있었으며 두 총회가 그의 유죄판결의 길을 준비했었다는 증거가 있다. 그의 유죄판결은, 교황 칙서 'in agro dominico'의 발간과 더불어 에크하르트 사망 직후 1329년 3월 27일에 정식으로 내려졌다. 여기에는 28개 조문이 적시되었는데 17개 조문은 '오류나 이단의 징표를 포함하는' 것으로, 7개 조문은 '악에 ..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 삶(1)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는 당대 많은 사람들을 매혹시켰듯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그렇다. 하지만 그 생각이 그토록 복잡하고 도전적이었으며 그래서 아주 쉽게 오해받았던 사상가는 중세에 거의 없었다. 그가 비유론, 표상의 형이상학, 인간 영혼의 형성, 인식론(지식론) 및 존재론 등과 같은 중세 신학의 거시 기술적 주제를 많이 탐구한 점에서 그 사상 체계는 무엇보다 심하게 복잡하다. 그러나 에크하르트 작품에는 형이상학적 비전을 전달하기 위해 이미지를 명민하게 사용하고 언어의 형태와 구조를 다루는 거장다운 능력에서 나온 표면적 복잡성도 그에 못지 않다. 우리가 에크하르트의 위대한 독창성을 보고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를 당대에, 혹은 실로 그 어떤 시대에든 가장 흥미진진하고 근원적인 사상가로 드러나게 하는) 형이상학적 열정..

의식향상과 의식에 대한 공부

어제는 아내와 이야기 중에 '내가 실은 고교때 시험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그저 내키는 공부를 하고 싶었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 꿈이 지금 이뤄졌습니다. 공부만 하면서 두 달을 보냈기 때문입니다. 공부하는 사람(공부인), 배우는 사람(학인)이란 말은 요즈음엔 잘 안 쓰지만 제가 사숙하는 백봉 선생에게서 들은 말입니다. 공부인으로 살되 어디에도 매이지 않은 공부, 제 경우 오직 의식 향상에 도움이 되는 공부만 하고 있는데 노후 생활엔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언제 어디서나 혼자서도 가능한, 그야말로 가성비가 제일 좋은 일입니다. 프로가 아니기 때문에 아무런 스트레스가 없고 그야말로 취미삼아 하는 일입니다. 의식 향상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궁극의 공부이자 이승을 최선으로 살고 다음 차원으로 넘어가는 ..

단상 2019.1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