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달에는 에크하르트와 기본소득을 붙들고 지내고자 책을 주문했습니다. 에크하르트는 그리스도교 신비주의의 태두로서 독일 기독교 특히 루터에게까지 심대한 영향을 끼친 학자입니다. 

로마 기독교가 그를 거의 파문한 것은 세속화한 교황이 벌인 왕권과 경제권력을 둘러싼 갈등의 희생양이기도 하였지만 당신 독일 동부에 퍼진 베귄이라 불린 여성 수도자들의 신비주의적 영성을 억누르려 한 때문입니다. 

동아시아에서 선불교와 나중에 정통 유교에 반기를 든 것으로 간주된 양명학 등이 흔히 배척받은 이유와 맥을 같이 한다고 저는 봅니다. 즉 신비가들은 결코 윤리적 규제를 통해 세속 기득권을 지키려는 자들을 타도하려는 게 아님에도 수구들은 이들을 항상 위협으로 느끼는 것 같습니다.

성서적으로 얘기하면 그리스도가 모든 계명이 '신애'와 '인인애' 두가지에 다 들어간다고 하니 '그럼 너 십계명 부정하는 반역자야'라고 단죄하는 맥락과 같습니다. 하지만 신비가들에게는 궁극의 실체와 하나 되는 일이 너무 중하기 때문에 '지계'의 문제는 사소할 뿐 아니라 그냥 저절로 지켜지는 것입니다. 

에크하르트의 진정성은 당대에는 토마스 아퀴나스와 대등한 학문적 대우를 받았을 뿐 아니라 오늘날 기독교계에서 아퀴나스보다 더 친근한 대접을 받는 사실로도 확인할 수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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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초 10일간 잡힌 여행일정 때문에 노동 내지 소득활동 없이 1월 중순까지 보낼 요량입니다. 그러고보니 잔존 수명 얼마 남지 않은 사람이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공부가 수행공부라는 생각이 굳어집니다.

제 공부 요점을 압축하면 멸정복성으로 대자대비가 되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 평생 독서와 삶의 요점이자 결론이기도 합니다. 대자대비란 말은 처음 쓴 것 같은데 조건없는 사랑의 동아시아적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검색해보니 며칠전 거론한 미륵사상에도 연결됩니다.

즉 미륵이란 말은 미트라에서 유래됐고 자(慈)와 동일한 어원을 가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미륵불을 '자씨불'이라 한답니다. 관련해서 보살은 항상 대자대비로써 중생에게 이익을 준다고 하므로 미륵사상도 결국 대승의 자리이타를 최고조로 구현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결국 모든 종교와 영성의 요점은 에고를 지워내고 신성 또는 참나를 구현해서 조건없는 사랑 자체가 되는 데 있는데 그것을 위해서 반드시 정좌(명상 또는 좌선)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일에 있어 이제는 제국주의적 필요에서 나온 종교를 탈피해서 민주주의에 적합한 개별 영성주의로 가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이자 실천입니다.

더불어서 이 일을 글쓰기나 바이올린 연주와 같은 기술의 훈련으로 본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책을 소개드리고자 합니다. 구글 플레이북 전자책으로 4천원도 하지 않습니다. 기독교적 배경을 가지신 분은 술술 읽힐텐데 제가 볼 때는 우리의 중용과도 모순되지 않는 사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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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금과 구직급여 덕분에 두 달 가까운 백수 삶을 즐기고 있습니다. 친구들 덕분에 당구에 입문하고 집에 혼자 있을 때 프로 선수들 경기를 봅니다. 시청하는 동안 매 순간 느끼는 게 고도의 기술과 소위 멘탈이 전부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다가 영화 용쟁호투가 떠오르고 에카르트 님의 훈화(The Talks of Instruction)가 떠오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기술 훈련을 위해서는 중원의 세계에서 누구나 공을 들이고 시간을 들이기 마련이니 결국 1%의 사람들이 일합을 겨루는 계기가 올 때 승부를 가르는 것은 멘탈이 아니겠나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거의 모든 스포츠가 그럴 것입니다. 그런데 왜 에카르트 님까지 거론해야 하나요? 결국 소림사 수행이나 중세 수도원 수행이나 가르침의 요점이 같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에카르트 님은 수행의 요점이 소아를 잊는 데(마태 16:24) 있고 소아를 잊기 위해서 영에 아무것도 없는(마태 5:3) 상태가 되어야 한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용쟁호투의 경우 모든 것이 허상이니 거울에 비친 것을 보지 말라는 것이 여타 볼 거리보다 중요한 영화의 요점이기도 합니다. 에카르트 님은 그러기 위해서 골방에 있거나 광장에 있거나 심사가 똑같기를 요구하며 그러기 위해서 심안과 영안을 오직 신께 두어야 한다는 것이죠!

이 점은 우리 전통에 고스란히 전해오는데 신유학 자체가 도교와 선불교의 정수를 유학이라는 그릇에 담은 것이며 그 핵심은 정좌의 실천이고 정좌를 할 때 자연히 조식을 하게 됩니다. 지감-조식-금촉은 단군 이래 수행법이고 조식의 요령은 임난 전 16세기 중엽 북창 선생의 용호비결에 적혀 있습니다.

요컨대 모든 기예를 겨루는 세상 삶, 심지어 금융 기술자든, 법 기술자든, 테크노크라트든 모든 게 어쩌면 기예를 다루고 겨루는 일인데 그때 반드시 하늘의 뜻에 맞게(또는 정의에 맞게) 일을 처리하려면 반드시 멘탈 관리 또는 감정의 달인이 되어야 하는바 그러기 위해서라도 정좌 수행을 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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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기술이나 자격증이 없으니 간신히 강남에 있는 한 병원에 경비로 취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근무하는 3년 2개월 동안 하루도 편치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루 속히 빚을 청산하고 안정적인 생활을 하기 위해서 인내하며 지냈습니다. 무엇보다도 내멋대로 살면서 '문제 없다', '괜찮다' 여기던 생활 태도를 근본적으로 고쳐야 했습니다. 이때 매일 읽고 마음을 닦는 데 도움이 되었던 책들은 이 블로그 '깨달음을 위한 참고서 제안'에 적어 놓았습니다.

 

처음 2년 동안은 매일 부딪치는 마음의 부대낌을 적어가며 호킨스 박사의 레팅고와 거의 같은 로버트 프로세스와 그 동안 배운 모든 기도방법에 열심히 의지하였습니다. 그러다가 2015년 가을 잠실 근처 삼전동 고시원에서 기숙할 때 우연히 정신세계사에서 광고하는 책 광고를 보았는데 그것이 '그리스도의 편지'였습니다. 책을 구해서 여러번 정독하고 2~3회에 걸쳐 대여섯 명의 독자가 모여 토의도 하곤 했습니다. 

 

책을 꾸준히 읽다 보니 단 10분이라도 매일 명상을 하라고 하는데 처음에는 그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소파에 기대어 하여튼 10분을 견뎌보자 하던 것이 이제는 약 2년정도 꾸준히 한 셈입니다. 제 경우 명상의 가장 큰 효과는 권태와 불안, 짜증, 우울, 슬픔이 극히 약해지거나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경제적으로는 2017년 7월 고용복지센터 도움으로 집 근처 건설현장에 다시 취업했는데 무엇보다 출퇴근이 수월하고 급여도 높아서 금방 안정된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하루 평균 30분 정도 명상을 하는데 명상에서 우리는 존재의 근원과 만나는, 이제까지 모든 지성과 철학이 말하던 진리에 이르는 수련을 할 뿐 아니라 양심성찰과 자기 분석을 하면서 영적 진보를 꾀하는 것입니다. 명상은 오직 의식으로만 존재하는 연습이기에 미리 죽음을 대비하는 가장 시급하고 현명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무조건적 사랑의 상태이기도 한 존재의 근원에 다가가는 일입니다. 이 길에서 진보함으로써 타인을 또 다른 나로 보게 될 것이고 그 때 비로소 역지사지와 황금률을 제대로 실천하게 될 것입니다. 

 

마침 아파트 건설이 끝나서 다시 실업급여를 받으며 다음 직장 생활을 구상하는데 특수용접이나 배관쪽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직 공부가 미진하고 어리석어서 2017년에도 사기를 당했지만 루미의 말처럼 잃어버린 것은 다른 모습으로 돌아온다는 것, 그동안 제게 필요한 모든 것이 주어지지 않은 적이 없다는 것, 지금 여기에 모든 것이 완벽하다는 것, 오직 감사하는 것이 가장 완벽한 기도라는 것, 모든 것을 근원에 맡기고 완전히 안심하는 것이 최고의 노선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언제나 사랑과 평화만 선택하고, 어제 죽은 것보다 오늘 죽는 것이 더 나아졌다는 마음이 들도록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 최근 소개한 'Reality Unveiled'에서 가르쳐준 방법으로 명상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내 가장 큰 집착과 욕망을 인정하고 포용할 것, 내 어두움과 부끄러움을 포용할 것, 그리고 나를 가해한 자들과 비호감인 자들의 고통을 보고 이해하며 자비심을 가질 것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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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퇴직을 앞두고 처와 전원생활을 하기로 하고 산을 살까 하다가 결단을 못하고 수목원에서 일해보려고 천리포 수목원을 기웃거렸지만 여의치 않다고 생각중 아내가 평창쪽을 알아보자고 해서 갔으나 예산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아내가 마지막으로 한 군데만 보자고 해서 온라인에서 인연이 된 공주 유구읍 문금리라는 델 가봤습니다. 우리는 '강원도 분위기 나네'라는 생각을 하고 거기 가서 살기로 했습니다.

퇴직금 중간정산금으로 집을 지은 후 이사를 하고 마침 집을 지은 분이 신뢰가 가서 2010년 4월 퇴직하고 받은 퇴직금을 투자하고 월 220만원을 이자로 받기로 했습니다. 물가가 싸고 시골에 있으면 돈 쓸 일 없으니 국민연금까지 해서 약 300만원이면 노후를 보낼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랬는데 2013년초 투자처 사장이 난맥을 보이더니 이자 지급을 못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자결을 해버렸습니다.

우리 부부는 당혹해서 여러가지 대책을 강구하던 중 마침 처남이 모시던 장모께서 노환이 깊어지셨다는 말을 듣고 집을 팔고 인천으로 다시 가서 장모님 모시면서 부부가 각자 백만원씩만 벌면 국민연금 조기수령금과 함께 월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다는 계산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2013년 말일을 며칠 앞두고 처 이모님이 사시는 영종도에 집을 구해서 이사했습니다. 장모님이 당신 여동생과 이웃하면 병세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을 한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경제적 위기가 심각해지면서 살아온 삶을 돌아보니 엉망진창이라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달리 말하면 이 모든 카르마의 인(因)을 내가 심었으니 근본적으로 업장을 소멸하고 완전히 정직하게 계율을 지키며 살자는 결심을 하였습니다. 그것이 2013년 10월초인데 그때부터 조식을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직장을 구했는데 채근담에 있는 말씀대로 "귀에는 항상 거슬리는 말만 들리고 마음속에서 항상 어긋나는 일만 일어났습니다(耳中에 常聞逆耳之言, 心中有拂心之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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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5~6년 전 호킨스 'Dissolving the Ego, Realizing the Self'를 번역하다가 이고 선생의 복성서를 만났고 결국 두 책의 제목이 엄청난 시공의 격차에도 불구하고 거의 같은 말을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복성서 번역에 도전했습니다. 그 후 되는 대로 유학을 공부하고 있는데 우연히 예스 24에서 리쩌허우의 중국고대사상사론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사서 빠른 속도로 독파했습니다. 중국고대사상이라고 하면 결국 동아시아 사상이고 동아시아 사상은 유교가 중심입니다.

마르크스주의를 기반으로 동아시아 사상을 검토한 리쩌허우 책은 두고두고 읽어볼 요량이지만 결국 유교의 핵심은 내성과 외왕이며 내성은 중(中)에, 외왕은 화(和)에 대응합니다. 불교적으로 전자는 상구보리, 후자는 하화중생이고, 기독교적으로 전자는 자기구원, 후자는 타인구원쯤 됩니다. 말만 다르지 제가 파악하는 한 미륵사상도 똑같습니다. 즉 미륵 사상에서 말하는 미륵불이란 법신불의 진리를 드러내는 것이니 크게 밝은 세상이 이뤄진다는 것이며, 미륵이 왕생해서 용화회상을 한다 함은 곳곳에 부처가 있으니 일마다 부처를 모시는 마음으로 세상을 평안하게 한다는 것이 요점입니다.

가르침은 모두 간단하고 공통하는데 왜 시대마다 실패한 것 같고 오늘날은 기독교의 대대적인 철폐가 필요해 보일까요? 제 생각엔 모두 진리에 부합하는 가르침이건만 각 종교가 지배계급에 의해 이데올로기, 즉 통치의 하위수단이 되고나면 거기에 안주한 이들이 내성 없이 외왕하는 흉내만 내기 때문이지 싶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내성하는 데 있어 철저를 기하면서도 참으로 내성했다면 다른 사람을 모두 내 몸처럼 여겨 정책을 펴고 끝까지 가르침에 충실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쉽사리 개인 또는 집단이기주의에 빠져 하는 척만 한 때문이라고 봅니다. 바로 그리스도께서 격렬히 비판한바 위선적인 작태로 착취만 일삼는 동안 계급모순은 물론이고 생명 경시 내지 세계 절멸 위기를 부르고 있으면서 도끼자루 썩는지 모르는 것입니다.

오늘날 그 적나라한 모습은 미국 한국 등의 기독교계 국가의 엄청난 모순으로 드러나고 있는데 그나마 우리나라는 동아시아에 속하는 만큼 잘 하면 대안이 되는 사상을 찾아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게 제 개인적 희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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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글에서 진짜 제대로 사는 것과 세 가지 한계상황을 거론했는데 제대로 사는 길이란 그 존재상태가 사랑 자체가 되는 데 있다고 봅니다. 입발린 종교적 용어로 인(仁), 대자대비, 사랑의 삶이 아니라 존재상태가 조건없는 사랑의 길로 상승 진화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것은 보살의 길이기도 합니다.

이 일에서 인간적 노력만으로는 꾸준하기가 불가한 것은 이고 선생이 설파한바 '에고로 에고를 이기려는 것은 더 큰 에고일 뿐(復性書)'이기 때문입니다. 향상일로의 보살도를 가는 데 꼭 필요한 방편으로 정좌 또는 명상, 모든 부정적 감정을 내려놓는 하심(letting go) 및 끝없는 경전 독서(lectio divina)를 들 수 있습니다.

이 길에서 상승 여부의 점검은, 사랑과 기쁨, 평화가 커지고 있는지, 유머 감각이 생기고 있는지를 봄으로써 가능합니다. 그렇게 하더라도 세 가지 불운은 개인의 의지와 관계 없이 발생할 뿐 아니라 자연에서 오는 삼재도 피할 수 없는 것이므로 그런 경우에도 평정을 잃지 않을 때까지 닦고 닦아야 합니다. 이것을 가장 잘 표현해준 경전이 있어서 인용해 봅니다.

"비록 무화과는 아니 열리고, 포도는 달리지 않고, 올리브 농사는 망하고, 밭곡식은 나지 않아도, 비록 우리에 있던 양떼는 간 데 없고, 목장에는 소떼가 보이지 않아도 나는 나를 구하신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렵니다." (하바꾹 3: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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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니 세상 삶을 지탱해주는 세 가지, 즉 건강, 경제, 인간관계에 전혀 문제가 없을 때는 수행공부 또는 깨달음이나 영성에 대해 공부란 그저 멋부림이나 지적 허영 비슷한 것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내면에 아무 문제 없고 저 세 부문에 문제가 없는 분은 행복합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몸을 벗고 다음 세상을 건너가는 일에 자신이 있는지 자문하는 것은 언제나 필요하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이 경우도 영악한 세상은 해법을 제시하는데 기독교 '대속론'과 아미타불 신앙을 설파하는 정토종 계열이 그것입니다.

후자의 경우 '나무아미타불'만 외면 '해결 끝'이라고 해서 살상을 일삼던 사무라이들이 좋아했다는 말을 들은 적 있습니다. 물론 전자의 극치는 면죄부 구매를 통해서 연옥 징벌을 감면받는다는 생각이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기독교가 여기에 해당하지 않을까요! 그렇게 해서 사람들을 지금 여기에만 몰두하게 한다는 의미에서 굉장히 효율적인 해법들이긴 합니다.

제 경우는 6년전 경제가 백척간두에 놓였는데 그것도 문제지만 그때 몸을 벗는다면 굉장히 불행할 것 같이 느껴져서 진짜 제대로 살아야 하겠다는 나름의 근본 결단이 있었습니다. 저는 이 비유가 굉장히 맘에 드는데 '쥐엄나무 열매를 먹는 자신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래서 나머지 삶을 진짜 잘 살아보자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저 겉보기에 세상이 괜찮게 살았다고 하는 것으로는 결코 답이 안 된다고 본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 공부는 왕초보이지만 단 한 두 사람에게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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