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 26

지어지선이 효도임!

돌아보니 가는 해 마지막 날 제 공부 얘길 많이 했더군요. 맹자께서 진작에 천작과 인작을 나누어 공부를 보셨고 논어 학이편의 공부란 수덕 공부일 것입니다. 하지만 겉모습에 사로잡힌 오늘날 교육체계가 인작으로 천작을 대봉치고 만 덕분에 저를 포함해서 참으로 많은 이들이, 참으로 많은 시간을 허송세월합니다(물론 누구나 시행착오와 과실을 통해 진화의 길을 갑니다만). 돌아보면 2014-15년간 물에 빠진 자가 허우적대듯 매달리며 공부했고 15년말 '그리스도의 편지'를 만나면서 거기에 '올인'한 지 약 2년만에 매일 명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평균 50분정도 매일 정좌를 합니다. 아직 부족하지만 조금 더 가면 호색보다 호덕을 더 좋아할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왜냐하면 이 과정을 다른 무엇보다 더 좋아하게 ..

단상 2019.12.31

죄감문화와 낙감문화

'그리스도의 편지'를 기본 교재로 삼아 수행공부를 함께하는 세 분이 모처럼 영종까지 오셨습니다. 운양호 사건때 일본군한테 30여 명의 군인이 희생된 영종진과, 금년에 다리로 연결된 무의도를 둘러봤습니다. 이어서 공항도시 회타운에 들러 해물찜에 막걸리를 먹으며 사는 얘기와 공부 얘기를 나눴습니다. 비망용으로 요점만 적어 봅니다. (1) '그리스도의 편지' 의식지수가 1,000이라는 것. (2) 시크릿류의 방편에서 결한 것은 에고소멸의 중요성이라는 것. (3) 명상의 가장 큰 효과는 근심걱정의 소멸, 직감의 계발이라는 것. (4) 기독교 기반의 서양 문화가 죄감문화라면 송명이학 기반의 동아시아 문화는 낙감문화라는 것(리쩌허우). (5) 기본소득제는 우리 사회 문제 해결의 킹핀이 될 수 있다는 것 등입니다. ..

단상 2019.12.29

최고의 임종 대책

어제에 이어 친구의 질문 요지를 더 생각해보니 제가 돈오 내지 활연관통을 얻었냐 하는 것이지 싶습니다. 즉답하자면 그런 것을 얻지 못하였지만 대승기신론에서 말하는 불퇴위에는 들어섰다고 말하겠습니다. 불퇴위란 '한번 도달한 수양의 계단에서 뒤로 물러나거나 수행을 퇴폐하는 일이 없는 지위(대승기신론 소와 별기 참조)'를 말하는데 쉽게 보면 발심을 제대로 해서 다시는 과거와 같은 삶을 살지 않는 것이라 봅니다. 기독교적으로는 탕자가 아버지 집에 들어선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한편 돈오 이후의 공부는 오후(悟後) 공부라 해서 오행(보시, 지계, 인욕, 선정, 지혜, 정진)을 끝없이 닦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 과정은 화엄경의 보살도라고 보면 됩니다. 더 쉽게 이해하려면 십우도 또는 심우도 해설을 보시면 좋다고 생..

무조건적 사랑 되기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창원에 있는 친구 보러 7명이 뭉쳐 1박2일 여행했습니다. 윤이상 선생, 박완서 선생, 박경리 선생 등이 사셨던 발자취도 구경했습니다. 무엇보다 인상깊은 것은 차 안에서 아무말 대잔치 하듯 스몰 토크에서 빅 토크까지, 정치에서 사상까지 뱉어냈는데 엔진 소음, 바깥 소음 때문에 각자 듣고 싶은 소리만 들었을 겁니다. 그것도 부족해서 저녁엔 대취할 사람은 대취하고, 끝까지 마음에 있던 질의, 응답까지 마치 여한없이 떠날 사람들처럼 이야기했습니다. 그중에 이 시간까지 뇌리에 있는 말은 "자네 도통했는가? 깨달았는가?"라는 질문입니다. 제 답은 사이다가 될 수 없습니다. "그저 가는 중"이라 답했지만 차마 말하지 못한 것은 "내가 이제 길은 알았으니 같이 감세"라는 것이었습니다. 답이 마..

단상 2019.12.25

반일정좌 반일독서와 공부 목표

'반일정좌 반일독서'는 추사께서 고택에 써붙여 놓아서 유명해졌으나 주희 선생도 곽덕원이란 제자에게 했던 말입니다. 그 말의 취지는 공부의 입문 단계에서 1~3년 집중적으로 하면 반드시 진보한다는 취지였습니다. 본인은 말년에 건강이 안 좋을 때 양생수단으로 실천했다고 합니다. 제가 파악하는 한 보다 중요한 것은 서양 신비주의 내지 수도 전통에서도 공부 수단으로서 신적 독서(Lectio Divina)와 정관(静观, contemplation)을 병행했다는 것입니다. 동아시아에서 '반일정좌 반일독서'도 같은 맥락으로 보면 좋겠다는 것이 결론입니다. 또 동서 공히 공부 목표는 의식의 끝없는 상승이며 그것은 불가에서 화엄경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유가의 상근기라면 언제 어디서나 덕을 좋아함이 색을 좋아함을 압도하는 ..

참된 위로의 원천

비록 1차 대학 시험에서 떨어졌지만 면접에서 무얼 전공하겠느냐는 질문에는 '철학'이라고 답한 것은 기억에 남습니다. 은퇴후 가장 호젓하고도 뜻있는 시간을 보내는 두 달 반이 지난 지금 어쩌면 제대로 철학을 한다는 기분이 듭니다. 제가 저런 답을 한 동기는 짐작컨대 10대후반 육신과 정신의 갈등 속 나름 고통스런 실존 문제를 해결코자 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달 내내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를 읽으면서 13-14세기를 사신 그분이 부딪친 문제도 바로 사람들의 실존 문제였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오늘 만난 '신적 위로의 책'도 제가 알아들을 수 있는 그의 설교 내지 강론의 하나인데 집필 동기가 바로 세 가지 인생문제에 대한 답을 주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그는 바로 손재수와 이별수, 그리고 건강 문제..

명상의 효과

어제 '정좌(靜坐)'가 무엇이냐고 물어주신 분이 계셔서 제 글쓰기가 성공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정좌는 유교 체계 내에서 명상을 일컫는 말입니다. 실천은 같아도 말이 문화적 DNA를 그대로 달고 다니기 때문에 어휘 선택이 중요합니다. 명상이라고 하면 나름 떠올리는 선입견으로 판단하거나 심지어 하지도 않으면서 '다 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무조건 시간을 내서 10분씩 앉아 있자고 크게 결단하고 1년이고 2년이고 행하다보면 동서양 신학과 철학 등등에서 말하는 진리에 다가가게 된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경전 독서가 그 보조 수단으로 도움을 줄 것입니다. 이것을 하지 않기 때문에 유교문화권에서는 제사로 때우는 것이고 기독교 문화에서는 미사 참석이나 설교 듣기로 퉁치는 것입니다. '격물치지'도..

단상 2019.12.19

반일정좌 반일독서

요즈음 퇴직 무렵부터 '반일정좌 반일독서'를 실천했다면 수십년의 삶을 아꼈을텐데 하는 생각까지 듭니다. 주희가 송명이학을 집대성했지만 그가 정좌를 실천하지 않았다면 그 작업들이 생명력을 가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공주에서 돌아와 다시 도시생활을 하면서 일하는 시간외에는 독서만 하다가 약 2년 전부터는 정좌를 실행하고 있습니다. 검색하다보니 '반일정좌 반일독서'는 주희가 곽덕원이라는 제자에게 처음 한 말인 게 확실해 보입니다. 주희는 반나절을 정좌하고 반나절을 독서하되 1, 2년을 지속하면 모든 우환이 사라진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이 안정되어 만물의 이치를 탐구(궁리라고 하는데 격물치지와 같습니다)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바로 이 궁리로써 마음을 비우고 근심을 없앨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제 경우..

단상 2019.12.18

윤집궐중의 실천

제가 기회 있는 대로 종교와 언론을 비판하고 학교와 사회 탓을 하면서 그것들이 '되는(becoming)' 일에 정답을 찾아 가르치지도 실천하지도 않고 유사품에 만족하기 때문에 답을 못찾는다는 요지의 글을 자주 썼습니다. 우리가 유교의 세례를 받아 의식 무의식에 그 문화 DNA를 간직하고 있으며 19세기는 물론 20세기에는 그리스도교 정신의 영향을 듬뿍 받았음에도 그러한 정신들이 세상에서 득을 보는 일에 기여하는 데 그침으로써, 달리 말하면 그것들이 그저 지배 내지 통속(通俗)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데 그침으로써 (즉 이데올로기로 기능함으로써) 뚜렷한 한계를 체험하다 못해 사회 발전의 걸림돌로 여겨지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앞에서 시사했지만 그 이유는 가르침을 끝까지 철저히 제대로 실천하는 이들이 극히 소수에..

단상 2019.12.14

헐리우드와 코카콜라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고 언론이 자본의 장단에 춤추는 현상은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닙니다. 모세가 금송아지 숭배집단을 내칠 때에도 있었던 일이 아닌가요? 활자매체가 자본의 이익에 맞추어 계속 허구를 지어낸다면, 영상매체는 계속 감각의 즐거움을 부추김으로써 사람들을 가시계에 묶어 놓습니다. 이런 현상을 언론학자 기틀린은 아주 간략하게 요약했으니 즉 '미디어란 헐리우드와 코카콜라다!' 즉 눈을 홀려 물건 사도록 부추기면서 사람들을 땅에 단단히 묶어놓는 것이 미디어가 하는 일입니다. 인간은 불멸하는 '의식'이 본질이고 그 의식을 가시계에 비추어낸 것이 몸과 에고와 소위 문명이건만 미디어는 그 반대가 진실이라고 끝없이 저항할 뿐입니다. 그 때문에 우리 문명은 언제나 절멸 위기를 피하지 못하며 미디어는 오늘도 거짓..

단상 2019.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