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탈

 

에크하르트에 있어 형이상학과 윤리학의 수렴은 '초탈'의 개념에서 가장 뚜렷이 보인다. 이 영어단어는 중세 고급 독일어인 떼어냄(abgescheidenheit, 또는 gelazenheit)의 번역인데 세상에 있는 사물에 대한 집착에서 깨어난 영혼이 자유롭게 된 것을 뜻한다. 물론 그리스도교 금욕주의는 인간이 영적 삶에서 진보하기 위해서 세속적인 것에 대한 애착을 버려야 한다고 언제나 강조했지만 에크하르트에게 있어 뚜렷한 것은 이 도덕적 해방이 얼마만큼의  마음의 해방으로 여겨졌는가 하는 것이다. '초탈'은 욕망을 통한 사물에 대한 육체적 애착에서의 자유와 동시에 인지적 해방을 뜻한다. 즉 마음을 제약하고 그것이 그만의 초월 가능성에서 떨어지도록 하는 데 기여하는 물질적인 것의 영상에서 해방되는 것을 뚯한다. 그것이 그리스도교 전통에 독특한 것이 아님에도(예를 들면 폰투스의 에바그리우스에 그에 버금가는 것이 있음) 그렇게 도덕을 형이상학적으로 이해하는 경우는 드물다.

 

에크하르트에게 있어서 '초탈한 사람'은 세상에 살지만 세상 것이 아닌 사람이다(요한 17:16 참조). '신의 탄생'은 그들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이며 그들의 '본질에 대한 앎'은 신으로 가득하여 세상과 함께하지 않는다. 그 인간이 이제 그 안에서 관여하는 바의 영적이고 신적인 실상의 형이상학적 기조가 일자성이기 때문에 이 상태의 도덕적 드러남은 박애의 실천인데 즉 다른 사람을 자신인 것처럼 대하게 된다(레위기 19:18 참조). 그리하여 우리는 자신의 복지를 돌보는 그만큼 다른 사람의 복지를 돌보게 되며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것은 겸손의 정신 안에 간직될 것이다. 참으로 초탈과 크게 연관된 모든 덕성 가운데 겸손은 가장 기본적이다. 매우 수사적인 명민함을 보이는 한 구절에서 에크하르트는 우리로 하여금 자신만의 '겸손의 땅'으로 들어갈 것을 촉구하는데 그것은 우리의 '가장 낮은' 부분이지만 동시에 '가장 고귀한' 부분이다. 신은 거기에 계시면서 우리를 고양시키며 그것은 바로 우리의 핵심이기도 하기에 우리의 가장 심오한 부분이다(강론 W 46).

 

초탈이 드러나는 두 번째 모습은 우리 안에서 신의 탄생의 결과로서 고통과 통증에 영향받지 않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 대한 에크하르트의 발언은, 고통을 체험한다는 사실은 바로 우리에게 신의 탄생이 일어나지 않은 것이라거나 신의 의지에 전반적으로 순응한다는 명분으로 '우리 친구가 살아 있는지 여부'에 무관심해야 한다고 말할 때처럼 이상적이고 수사적인 것 같다. 그러나 그런 구절은 강론 21(여기에서 그는 이러한 견해를 정확히 수정하는 것 같다)에서처럼 다른 것들과 더불어서 읽어야 한다. 우리는 뒤에서 에크하르트가 청중 앞에서 취하는 관점의 수사학적 방법을 거론할 것인데 그가 말하는 관점이란, 신에게서 떨어져 있는 사람들의 현재 상태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그들이 잠재적이고 궁극적으로 신과 결합된 상태에서 나온 관점에서 말하는 것이다.

 

영혼의 '근저'나 '불꽃'에 대한 에크하르트의 교의가 우리 안에 있는 신의 모상에 관한 전통적 그리스도교 가르침에 있는 모상을 통한 하나의 탐구인 것으로 보인다면 그리고 '영혼 안의 신의 탄생'에 관한 그의 가르침이 은총교리와 비슷한 설명이라면 '초탈'에 대한 에크하르트의 가르침은 그리스도교의 덕에 대한 개인적이고 인상깊은 해설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초탈한 사람'은 자애롭고 겸손하며 평온하고 지혜로우며 전적으로 신에게 사로잡힐 의지가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는 또 지성에 대해 에크하르트가 분명히 강조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왜냐하면 덕스런 영혼이란 '능력의 다수성'에서 단일한 근저로 철수해간 사람이기 때문이다. 거기에서 그는 덕의 실천에 주된 장애물인 소아(小我)를 잃어버리고 지성의 핵심과 하나로 된다. 에크하르트 체계 내에서 그리스도교의 덕스런 삶의 형이상학적 기초가 되는 것은 바로 이것, 즉 깨달은 또는 초탈한 자아 안에서 구분이 없는 상태다.

 

덕을 실존적인 면과 지성적인 면 모두에서 내적 상태로 보는 것의 주된 결과는 헌신적 과업의 역할에 대한 그의 가르침이다. 에크하르트는 겉으로 드러나는 경견성을 매우 강조하는 시대를 살았고 그가 밀접하게 관련된 특별한 환경, 즉 여성들의 종교 공동체라는 환경은 이러한 추세를 아주 크게 반영했다. 그런 공동체의 기록에 따르면 14세기 종교적 여성들은 종종 영적 성취의 일부로서 극심한 금욕생활을 했었다. 그렇다고 해서 중세 후기 여성들의 커다란 영적, 문학적 성취를 부인하거나 아니면 그들이 때로 취한 극단적 금욕 관행이 그 시대를 지배한 여성 혐오와 가부장제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헌신적 과업이 당대에 광범위한 영적 관습에 대한 미묘한 비판의 대상이 된 것과 관련해서 에크하르트가 내면성과 내적 '지향'에 대해 되풀이해서 강하게 촉구했다는 것을 무시하기는 어렵다. 그는 종교 생활 안에서 헌신적 수행 원칙을 (2세기 후에 몇몇 개혁가들이 했었던 것처럼) 그 자체로 공격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언제나 개인적이고 내적인 신과의 관계라는 맥락 안에서 그런 것들을 상대화 하려고 노력했다. 그가 현명하게 환기시키듯이 '신을 꼭 한 가지 특별한 방법으로 취하는 자는 신을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그들은 신보다 자신의 방식을 고집하는 것이다'(강론 19). 

 

주) 위 강론 번호는 펭귄판 기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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