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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장 4

깨닫는다는 것은 의식이, 자신의 가장 내밀하고 근원적인 성질이 비선형적 주관성이면서 알아차리는 능력이라는 것을 알았음을 뜻할 뿐입니다. ---*--- 로서 "나"가 맥락인 반면 독자적인 "나"는 "내용물"입니다. 비유컨대 구름은 변하고 해체됩니다. 날씨는 오고 가지만 하늘 자체는 변하지 않습니다. 깨달음은 자신의 정체성이 구름에서 하늘로 바뀌는 것일 뿐입니다. ---*--- 절대적으로 한계가 없는 수준을 고수하십시오. 아스트랄 영역의 유혹을 피하십시오. 양의 탈을 쓴 늑대를 주의하십시오. 왜냐하면 그들은 의미심장하게 진보하고 있는 수행자들에게 매혹적입니다. 의식지도상 의 수준을 통과하지 못한 누구라도 당신 삶으로 받아들이지 마십시오. 무슨 활동이든 영적 목표를 언제나 알아차림에 두십시오. 모든 노력을 신..

멸정복성 2015.04.06

11장 3

깨달음을 구하는 사람은 독자적인 "당신"이 아니라 동기부여자이기도 한, 의식의 비독자적 측면이라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 문 : 깨달음 상태에 이르는 의식 진화의 결정적 요소를 요약해 주시겠습니까? 답 : 에고는 습관적으로 한가지 입장을 취한다는 것을 주목하십시오. 순진한 사람들에게서 그것은 보통 언급되지 않거나 의식되지 않습니다. 한가지 입장을 취함으로써 그럴싸한 반대짝을 가지는 이원성이 자동적으로 만들어집니다. 이리하여 마음은 지각으로 된 세상을 창조하는데, 지각은 의미와 시사점을 왜곡하거나 확대하거나 축소하는 렌즈와 같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지각은 믿음 체계와 추정의 산물이면서 본질을 흐리는 필터 구실을 합니다. 따라서 이원적 고정관념 때문에 우리는 본질을 알 수 없게 됩니다. ..

멸정복성 2015.04.06

11장 2

에 있어 시간은 그저 환상일 뿐이며 외양일 뿐입니다. 우리가 일단 영적 목표를 택하면 실로 "시간"을 소비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깨닫는 데 일천 생이 걸리든 한 생이 걸리든 결국에 다를 게 없습니다. 끝에 가면 모두가 같습니다. ---*--- 의식의 본성을 이해하면 깨달음은 가능합니다. 깨달음에는 어떻게 이원성의 영역을 초월하는가 하는 것뿐 아니라 이원성과 비이원성의 차이를 파악하는 게 기본적으로 필요합니다. ---*--- 인간성의 핵심에는 깨달음의 잠재성이 들어 있습니다.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은 낮은 의식 수준들을 통과해 진화했다는 것을 뜻하며 이제 영적인 자극으로 탐색에 불이 붙습니다. ---*--- 의식과 깨달음의 관점에서 보면 존재 자체의 욕망이 신에게 바쳐질 때까지 두려움의 지배는 끝나지 않습..

멸정복성 2015.04.04

11장 1

깨달음은 의 실현을 막던 장애가 제거될 때 가 드러나는 것일 뿐입니다. 비유하자면 해가 비추는 것은 구름이 걷히는 것을 조건으로 하지 않습니다. 다만 구름이 사라짐에 따라 드러나는 것일 뿐입니다. ---*--- '깨달음'이란 말은 의미론적으로 정확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의 실체가 참나의 빛이라는 것을 알고 실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그것은 알아차림으로 그리고 심오하고 자명한 로서 내면에서 유래하기 때문입니다. ---*--- 깨달음에 대해 듣기만 하는 것으로도 이미 희귀한 선물을 받은 셈입니다. 깨달음에 대해 듣기만이라도 한 사람은 누구든 다른 무엇에 결코 만족할 수 없습니다. ---*--- "착한 사람"이 되는 것은 깨달은 사람이 되는 것과 전혀 별개입니다. 우리는 노력해야 하지만 결과가 보증..

멸정복성 2015.04.04

제3부 제11장

제11장 : 깨달음 인간의 마음은 깨달음을 이해하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무위로 돌아갑니다. 호킨스 박사가 지적하듯이 "실상에 있어 깨달음은 상태도 아니고 관점도 아닙니다. 그것은 두가지 다이며 그에 대한 완전히 적확한 진술이 없습니다." 종종 비슷한 말로 이란 말을 쓰는데 깨달음은 로 표시되는 의식수준에서 나타나기 시작하는 비이원적 상태입니다. 깨달음은 달성할 수 있는 목적이 아니라 에고(마음)를 초월할 때 드러나는 조건입니다. 깨달음은 그 자체 목적지가 아닙니다. 재차 호킨스 박사를 인용하면 "깨달음은 점진적으로 실현되는 것이며 완성품이나 목표지점 또는 영적 진화의 완성과 같은 게 아닙니다."

멸정복성 2015.04.04

10장 6

고차원 의 근원은 심상을 벗어납니다. 이 결정적 사실을 지능으로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은 원래 이원적이고 제한돼 있어서 "저것"에서 "이것"이 나온다고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고급의 영적 에서는 이원성이 해소됩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바로 "저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원성의 한계를 초월함으로써 구도자와 가 가 됩니다. 그것이 이며 이며 입니다. ---*--- 깨달음은 비이원성을 설하지만 종교는 주로 이원성의 영역을 설합니다. 깨달음은 이처럼 엄격한 노선인데 여기에서는 이원성이 환상인 만큼 그것을 완성하려고 하는 것은 쓸모없는 짓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에고는 초월되어야 하는 것이며 그대로 환상이라고 봅니다. "좋은 인품"은 칭찬할 만하지만 그 자체로 깨달음으로 귀결되는 게 아닙니다. 깨달음에 ..

멸정복성 2015.04.04

10장 5

문 : 의 길은 어렵지 않나요? 답 : 어려움은 이 길이 아니라 에고가 얼마나 저항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이 저항은 의지로써 극복되는데, 이 의지로써 장애를 내어던질 헌신과 노력, 그리고 자발성이 구축됩니다. 헌신은 사랑의 힘을 불러오고 그 힘으로 겸손을 실천함으로써 에고의 버팀목과 편견을 제거합니다. 헌신은 또한 변형력이 있는 정보의 사용을 촉진합니다. 의향이 있으면 자발성은 힘을 받는데, 그 자발성 덕분에 저항으로 인한 한계를 돌파할 힘이 생깁니다. ---*---의 길에 들어서면 세속적 참여와 행동보다 추구에 대한 의무를 재평가하게 됩니다. 어떻게 세상에 가장 잘 봉사할까 하는 것은 새로운 이해력에 따릅니다.---*---의 핵심 자체에 몸바치게 되고 그것은 교리 전파나 비밀유지의 유혹에 빠지지 않습..

멸정복성 2015.04.04

10장 4

의 길에서 우리는 자비, 하나임, 사랑, 진리, 전지(全知), 영원, 무한, 무소부재, 전능함 등과 같은 (형상과 장소, 시간 및 인간 본성이나 감정을 초월하는) 의 본질적이고 비선형적인 본성에 헌신하기 때문에 잘못될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아도 됩니다. ---*---충실한 종교인의 일차적 조건은 신앙이지만 비이원성의 길을 따르는 데 필요한 핵심 조건은 겸손, 순명 그리고 그 길에 대한 헌신적 봉헌입니다.---*---종교의 신봉자들은 경전의 권위, 교리, 역사적 선례 등을 통해서 얻어지는 "나는 안다"고 전제하는 것이 특징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비이원성을 수행하는 사람들은 "나 스스로는 모른다"는 기초적이고 보다 진실한 입장에서 시작합니다.---*---문 : 전통적인 가르침에 비..

멸정복성 2015.04.02

10장 3

선형을 초월해서 비선형에 이르는 길은 신비가의 길로서, 의식 자체의 내적 빛, 즉 를 깨닫는 길이며 비이원성의 길이라고 합니다. 그 내용이 무엇이든 모든 체험과 관찰의 바탕을 이루는 내면의 실체감 또는 "아는" 능력에 누구나 의탁합니다. 마음은 내용물로서 생각하지만 비선형의 장(場)만이 "압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생각인 것을 무슨 수로 알 수 있습니까? 누구나 실로 매 순간 체험하는 중에 살기 때문에 알거나 체험하는 능력의 은 지척에 있으며 그 자체 본래 있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변하는 내용물이 무엇이든 간에 계속적으로 "체험"하고 있음을 체험합니다.---*---모든 사람은 의식하든 못하든 이미 신비가이며 본원적으로 깨달음에 끌립니다. 그것은 학습과 호기심이 확장된 것인데 사람의 마음에 태생적..

멸정복성 2015.04.02

10장 2

비이원성의 에는 특권도 득실도 순위도 없습니다. 바다에 떠있는 코르크처럼 각 영은 (외부의 어떤 영향력이나 혜택에 관계없이) 자신이 선택한 결과인 자신의 수준에 따라 의식의 바다에서 오르거나 내려갑니다. 어떤 영은 빛에 끌리고 어떤 영은 어두움을 찾습니다. 그 모든 일이 자유와 평등 아래에서 자기 본성에 따라 일어납니다. ---*---전체 우주와 모든 것이 카르마적 일체이기 때문에 의 가 깨달음의 실현입니다. 모든 것이 동일한 근원에서 나온 카르마적 일체라면 분리된 것을 본다는 것은 오감의 가공물일 뿐입니다. 에 있어서 하나와 다수는 같은 것입니다.---*---소아는 참나로 용해됩니다. 참나가 소아에 대해 가지는 치유하는 자세가 자비심입니다. 우리가 용서받는 것은 용서를 통해서입니다. 신의 에서 나오는 ..

멸정복성 2015.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