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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절-3

“사람의 참나가 모두 선한데 에고의 어긋남으로 어두워지는 것이라니 감히 묻습니다. 성인의 참나는 더 이상 에고의 욕심으로 흐려지지 않습니까?” “다시 흐려지지 않습니다. 에고는 본래 어긋나 있고 허망합니다. 어긋나고 허망한 것에 원래 근원이 있지 않습니다. 그 때문에 보통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지 알 도리가 없으나 성인은 이미 참나를 찾았습니다. 에고의 행태가 어긋난 것임을 알고 그 어긋남을 깨달은 바가 뚜렷합니다. 깨달아 어긋남이 없으니 어디서 어긋남이 나오겠습니까? (問曰 人之性本皆善, 而邪情昏焉. 敢問. 聖人之性, 將復爲嗜欲所渾乎. 曰. 不復渾矣. 情本邪也, 妄也. 邪妄無因, 人不能復, 聖人旣復其性矣, 知情之爲邪, 邪旣爲明所覺矣. 覺則無邪, 邪何由生也.) 이윤이 말했습니다. ‘하늘의 진리란 먼저 깨..

복성서 2016.04.17

4절-2

“사람의 참나가 성인의 참나와 같다면 보통 사람의 애욕과 분노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입니까?” “에고는 허망하고 빗나간 것입니다. 허망하고 빗나간 것은 원래는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허망한 에고가 없어지면 참나가 회복되어 밝아집니다. 그것이 온통 꽉 차게 되면 참나가 회복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問曰. 人之性, 猶聖人之性, 嗜欲愛憎之心, 何因而生也. 曰. 情者, 妄也, 邪也, 邪與妄則無所因矣. 妄情滅息, 本性淸明, 周流六虛, 所以謂之能復其性也.) 주역[乾卦 彖辭]에 이르기를 ‘도가 굳세게 운행되면 만물의 본성과 생명이 가장 바람직하게 됩니다.’ 논어에 가라사대 ‘아침에 궁극의 진리에 통하면 저녁에 죽어도 안심이다’ 하였으니 만물의 본성과 생명이 바람직하게 된다고 하는 이유입니다.” (易曰. 乾道變化, ..

복성서 2016.04.14

4절-1 참나와 에고의 작용과 관계를 재론함

“범인의 참나와 성인의 참나가 같습니까?” “걸왕 주왕의 참나는 요순의 참나와 같습니다. 그들이 참나를 보지 못한 이유는 욕망과 악을 좋아하여 어두워진 때문이지 참나의 탓이 아닙니다.” “악을 하는 것은 참나가 아닙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에고의 작용입니다. 에고에는 선악이 있지만 참나에는 악이 없습니다. (問曰. 凡人之性, 猶聖人之性. 故曰. 桀紂之性, 猶堯舜之性也. 其所以不覩其性者, 嗜欲好惡之所昏也, 非性之罪也. 曰. 爲不善者, 非性也. 曰. 非也. 乃情所爲也. 情有善有不善, 而性無不善焉.) 맹자[告子上]께서 말씀하시길 ‘사람은 선하지 않은 사람이 없고 물은 낮은 데로 흘러가지 않는 법이 없다. 만약 물을 쳐서 튀어오르게 하면 사람의 이마 높이를 넘어가게 할 수 있고 물결을 막아서 거슬러 올라가게..

복성서 2016.04.12

3절-2

“옛날에 중용을 해석한 것과 선생님이 말한 것이 같지 않은데 그것은 왜 그렇습니까?” “그들은 상식과 드러난 바에 따라 해석했지만 나는 마음으로 깨치고 경전에 통한 뜻을 말합니다.” “그들도 마음으로 깨친 바가 아닙니까?” “그것은 모릅니다.” “선생님이 말씀하신 대로 하루를 닦으면 성인의 경지에 이를 수 있습니까?” “10년 놀린 밭을 하루 갈았다고 싹이 나길 바랄 수 있습니까? 그것은 맹자께서 말씀하신 대로 마치 물 한잔으로 한 수레 땔나무에 붙은 불을 끄려는 것과 같으니 커다란 망상입니다. 생각을 끊기를 쉬지 않으면 진실해지고, 진실하기를 그치지 않으면 자명해지고, 진실투명하고 진리에 자명해지면 마침내 어긋나지 않으니 결국 도달할 것입니다. 급하여 구차한 때라도 놓치지 않고 넘어져 엎어질 때라도 놓..

복성서 2016.04.08

3절-1 중용 삼강령과 그 해석

"청하건대 중용을 해설해 주십시오." "앞에서 대략 말했지 않습니까?" "아직 명료하지 않습니다. 감히 여쭙건대 하늘의 뜻이 참나라 하는 게 무슨 뜻입니까?" "사람이 날 때 아이와 같이 고요한 품성이 참나입니다. 참나란 하늘의 뜻입니다." "참나를 따르는 게 도라고 하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따른다는 것은 순명한다는 것입니다. 근원을 따르고 참나로 돌아가는 것이 도입니다. 도란 참되고 온전한 것이며 온전한 그대로가 하늘의 도입니다. 온전함이란 고요하여 시끄럽지 않은 것입니다." (曰. 生爲我說中庸. 曰. 不出乎前矣. 曰. 我未明也. 敢問. 何謂天命之謂性. 曰. 人生而靜天之性也, 性者天之命也. 率性之謂道何謂也. 曰. 率, 循也, 循其源而反其性者, 道也. 道也者至誠也, 至誠者天之道也. 誠者, 定也, 不..

복성서 2016.04.05

2절-3

이르기를 “감히 묻습니다. 참된 앎에 이르려면 먼저 사물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고 하는데 그것은 무슨 뜻입니까?” 하여 답합니다. “물이란 모든 것을 말하고 격이란 다가온다는 말입니다. 즉 무슨 일이든 닥쳐올 때 마음을 맑게 하고 자명하게 판단하여 그 일에 얽매이지 않는 것을 지혜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曰. 敢問. 致知在格物, 何謂也. 曰. 物者, 萬物也, 格者, 來也, 至也. 物至之時, 其心昭昭然明辨焉, 而不應於物者, 是致知也,) 이 지혜는 두루 미칩니다. 지혜가 두루 미치기 때문에 뜻이 투명하며 뜻이 투명한 때문에 마음이 바르고, 마음이 바른 때문에 몸이 닦이고 몸이 닦인 때문에 집안이 가지런해지며, 집안이 가지런해지기 때문에 나라가 다스려지고, 나라가 다스려진 때문에 세상이 평화롭게 되는 것입니다..

복성서 2016.04.01

성리학과 그리스도의 편지

제 소견으로는 그리스도의 편지는 이미 깨달은 분들이 공통적으로 알고 있는 진리를 현대적인 용어로 풀이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성리학도 그렇게 해서 성인이 되는 게 목표였고 그 모범인 안회가 실천한 것이 도교적인 '심재'와 '좌망'이며, 그것은 정(情)에 해당하는 '생각과 감정'을 끊고 성(性)에 해당하는 우주 의식과 하나가 되는 방편으로서 편지가 제시하는 명상과 대동소이합니다. 다음 구절들은 '정'을 벗어나 '성'으로 살자는 성리학 이념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에고의 쌍둥이 추동력에서 완전히 자유케 되고 아버지-어머니-창조권능을 온전히 받아들이면 이 의 상태를 회복할 것이다.(332쪽)’ '은 초월적이면서 내 안에 있었고 내가 지속적으로 명상해갈수록 점점 더 광범위하게 내 의식에서 이기적인 충동을 지워버..

2절-2

묻습니다. "아예 생각을 일으키지 않아 움직이는지 움직이지 않는지를 모른다면 소리가 나도 들리지 않고 사물이 나타나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까?" 답합니다. "보지도 듣지도 않는다면 어찌 정상적인 사람입니까? 똑똑히 보고 듣지만 보이고 들리는 것에 휘둘려서 마음이 혼란해지지 않는 것입니다. 참나를 실현한 후의 마음은 알지 못하는 게 없고 하지 못하는 게 없으며 고요히 움직이지 않아 지혜의 빛으로 모든 것을 꿰뚫으니 그것은 의식이 맑고 투명한 때문입니다. (問曰. 本無有思, 動靜皆離, 然則聲之來也, 其不聞乎, 物之形也, 其不見乎. 曰. 不覩不聞, 是非人也. 視聽昭昭而不起於見聞者, 斯可矣. 無不知也, 無不爲也, 其心寂然, 光照天地, 是誠之明也.) 대학에 가라사대 "참된 앎에 이르려면 모름지기 먼저 사물을 분..

복성서 2016.03.30

2절-1 마음 다스리는 방법 - 고요히 움직이지 않음으로써 참나가 비춤

"근심도 생각도 없을 때 사물은 밖으로 향하고 감정은 안에서 작용하니 어떻게 그것을 제지합니까? 한가지 감정으로 다른 감정을 제어하는 게 가능합니까?" "에고란 참나의 치우친 작용이니 먼저 에고의 속성이 치우침에 있고 치우침이라는 것은 원래 존재하지 않음을 알아 마음을 고요하게 하여 움직이지 않으면 그릇된 생각이 저절로 그칩니다. 오직 참나가 밝게 비추면 치우침이 어디에서 생기겠습니까? 에고로써 에고를 그치게 하려는 것은 에고를 더 굳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問曰. 不慮不思之時, 物格於外, 情應於內, 如之何而可止也. 以情止情其可乎. 曰. 情者, 性之邪也. 知其爲邪, 邪本無有, 心寂不動, 邪思自息, 惟性明照, 邪何所生. 如以情止情, 是乃大情也. ) 일곱가지 감정이 서로 돌아가며 작용한다면 어떻게 그칠 수 ..

복성서 2016.03.28

<중편> 1절 참나 찾기 : 생각을 일으키지 않음으로써 에고를 잠재움

누군가 묻습니다. “사람들이 어두운 상태가 오래되었는데 참나로 돌아가 밝아지는 일은 점진적인 것인지요, 그 방법은 무엇입니까?” 나는 답합니다. “생각도 근심도 없으면 에고가 생기지 않습니다. 에고가 없으면 바로 올바른 마음이라고 합니다. 올바른 마음이란 근심도 없고 생각도 없음을 말합니다. 주역(系辭下傳)에 가라사대 ‘하늘 아래 무슨 생각이나 근심이 있더냐?’ 또(文言傳) 가라사대 ‘빗나감을 막고 온전함을 지킨다.’ 하였고 시경에는 ‘생각에 치우침이 없구나!’고 하였습니다.” (或問曰. 人之昏也久矣. 將復其性者, 必有漸也, 敢問其方. 曰. 弗慮弗思, 情則不生, 情旣不生, 乃爲正思, 正思者, 無慮無思者也. 易曰. 天下何思何慮. 又曰. 閑邪存其誠. 詩曰. 思無邪.) 또 묻기를 “그러면 됩니까?” 하니 답합..

복성서 2016.0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