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짧은 공부로 이해하자면 성리학의 원조를 주희로 본 것이 혼란과 정체의 원인이지 싶습니다. 그 절정은 송시열이 주희의 해석에 반기를 들었다고 해서 윤휴를 처단한 일입니다. 하지만 이고 선생을 성리학 또는 신유학의 원조로 보면 저런 폐단을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희를 비판하고 극복하는 노력은 15~16세기의 왕양명에 이르러서 겨우 이루어졌습니다. 주희와 왕양명이 갈리는 가장 뚜렷하면서도 심오한 부분은 바로 격물치지의 해석입니다. "주희는 마음의 지식을 극진하게 하는 것을 '치지'로, 마음이 사물의 이치의 극진한 곳에 이르는 것을 '격물'이라고 보았습니다. 반면에 양명은 '치지'의 지를 지식이 아닌 양지로 보았습니다. (정은해, 유교 명상론, 440쪽 참조)" 그래서 양명은 '치양지'를 핵심 실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