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격물치지의 해석과 명상

목운 2019. 9. 25. 11:42

제 짧은 공부로 이해하자면 성리학의 원조를 주희로 본 것이 혼란과 정체의 원인이지 싶습니다. 그 절정은 송시열이 주희의 해석에 반기를 들었다고 해서 윤휴를 처단한 일입니다. 하지만 이고 선생을 성리학 또는 신유학의 원조로 보면 저런 폐단을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희를 비판하고 극복하는 노력은 15~16세기의 왕양명에 이르러서 겨우 이루어졌습니다.

주희와 왕양명이 갈리는 가장 뚜렷하면서도 심오한 부분은 바로 격물치지의 해석입니다. "주희는 마음의 지식을 극진하게 하는 것을 '치지'로, 마음이 사물의 이치의 극진한 곳에 이르는 것을 '격물'이라고 보았습니다. 반면에 양명은 '치지'의 지를 지식이 아닌 양지로 보았습니다. (정은해, 유교 명상론, 440쪽 참조)" 그래서 양명은 '치양지'를 핵심 실천요강으로 하였는데 치양지에 이르기 위해 과거와 미래에 관한 모든 생각을 중단하는 것, 즉 불려불사(弗)를 성취할 것을 주장하였습니다.

복성서 2절을 보면 격물치지에 대해서 "물이란 모든 것을 말하고 격이란 다가온다는 말입니다. 즉 무슨 일이든 닥쳐올 때 마음을 맑게 하고 자명하게 판단하여 그 일에 얽매이지 않는 것을 지혜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같은 절에서 '치지재격물'을 설명하면서 주역의 "생각도 행함도 없이 고요해서 우주와 하나 된(無思也, 無爲也, 寂然不動, 感而遂通天下)" 상태라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고 듣는 게 분명하더라도 거기에 얽매이지 않아(視聽昭昭而不起於見聞者) 일일이 살펴보지 않아도 저절로 천리에 부합하는 것을 말합니다.

격물치지에서 '지'가 양지라는 것을 확인해 주시는 분이 탄허스님입니다. 탄허스님은 "삼강령 팔조목 중에 치지(致知)의 '지'자가 근본인데 이것은 망상을 가지고 아는 것이 아니라 망상이 일어나기 전 본래 아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탄허록, 80쪽)" 라고 합니다. 우리가 명상을 통하여 양지에 이른 상태를 중용은 중(中)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명상은 희로애락이 발하지 않은 상태를 체득하여 보고 듣는 바에도 걸리지 않고 천명을 실천하는 것을 말하는 화(和)에 이르기 위한 필수 과정인 것입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면 "양지란 우주 이치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인간 내면의 천성에 따른 본연의 지, 우주 삼라만상의 본질을 꿰뚫는 신령스런 영지(空寂靈知)이며(청원 무이, '알 수도, 모를 수도 없는', 404쪽)" 격물치지에서의 '지'가 바로 이 영지라고 알아들으면 격물치지를 이해하는 데 별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이 '지'는 오늘날 용어로는 '의식(consciousness)'에 가장 가깝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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