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신유학의 정수

목운 2019. 9. 13. 10:52

엊그제 아산병원에서 문상하면서 토론하기를 성리학의 영성은 기독교의 그것과 대등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조선이 망한 이유는 중국이 망한 이유와 같습니다. 중국은 화약을 먼저 개발했고 서구보다 먼저 충분한 화력을 갖출 기술이 있었지만 제국주의적 야욕이 없었고 그 야욕을 종교로 포장하지 않았다는 것이 그 이유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기독교의 부작용 때문에 그 근본정신을 부정하고 내버릴 수 없듯이 동양이 서양 제국주의에 일시적으로 패했다고 해서 성리학(=신유학)의 근본정신을 내버리는 우를 범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이벽의 천진암 그룹과 같은 그리스도적 성리학의 실천가가 되고자 한다고 말했습니다.

제 페이스북 벗이신 분께서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습니다. 우리나라는 "가톨릭을 유일하게 자발적으로 철저히 공부하여 받아들인 유일한 나라이고 책 몇 권에 의지하여 수많은 사람이 그 사상을 위해 순교했다. 주류가 바뀌는 순간이었다... 이 기독교 사상이, 사람이 하늘이라는 동학을 낳음으로써 전근대적 사유는 파탄되었다."

저는 초등학교 5학년때 어머니 따라 천주교 세례를 받았고 역시 초등학생때부터 아버지 따라 조상 제사에 빠짐 없이 참석했습니다. 이제 몸의 DNA뿐 아니라 정신의 DNA를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갈 즈음인데 기독교의 정수와 우리 사상인 신유학(과 동학)의 정수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쉬운 현대말로 정리하는 것을 소명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만 동학 쪽은 조예가 깊은 분이 여럿 계시고 제가 감당할 부분이 아닙니다. 오늘은 신유학의 정수 가운데 하나인 중화(中和)가 매우 알기 쉽지만 얼마나 실천하기 어려운지(오늘날 '학'을 한다는 사람들이 모르기도 하고 실천도 아니 하기에) 보이기 위해 호킨스 박사를 인용하는 것으로 마치고자 합니다.

"매일 깊은 명상 중에 신과 친교를 나누고 당신과 하나가 된 신의 사랑과 안내하심을 일상사에 스며들게 함으로써 항구한 평화와 행복에 이를 것입니다." 저는 이 말이 중용의 "喜怒哀樂之未發 謂之中 發而皆中節 謂之和. 中也者 天下之大本也. 和也者 天下之達道也. 致中和 天地位焉 萬物育焉"에 대한 해설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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