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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심소욕불유구'로 가기 위해, 유교와 불교 및 기독교 영성을 공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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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은 기법의 훈련임

2019.09.17 07:24 | Posted by 목운

앞 글에 이어 글쓰기에 대해 풀어보려 합니다. 강원국 님이 1,500여 개를 쓰고나서 자신감을 얻었다든가 하는 말을 한 적 있습니다. 저는 이곳에 지난 5~6년 동안 7백여 개의 글을 썼으니 앞으로 7~8백개를 더 쓰고 '내 책 쓰기'에 도전할까 합니다.

조선 선비들의 글쓰기는 바로 삶의 공부, 특히 유교적 수행의 글쓰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 전통을 되살리고자 하는 제 글쓰기도 수행의 이면이자 연장선상의 작업입니다. 이미 언급한 것처럼 이 일이 기법(skill)의 수련이라고 본 점에서 에카르트 님은 특별합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동서양이 같습니다. 채근담은 달사(達士)라고 했고 영어의 'skillful'에는 깨달은 자란 뜻도 있습니다. 이 일에는 매우 단순한 일의 엄청난 반복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저는 김연아와 조성진을 예로 들었습니다. 다시 말해, 정좌와 성찰 또는 불가의 오행, 특히 지관문을 매일 양치하듯 해야 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술가와 스포츠맨이라면 금방 알아듣듯이 연습을 하는지 여부는 제삼자도 알지만 본인이 가장 먼저 안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앞 글에서 변죽만 울렸지만 반성의식으로 꾸준히 공부하는 과정은 불가용어로 '점수'에 해당합니다. 끝없는 연습이 몸에 배어 본 게임에서 본인도 모르게 최고의 경지를 발휘하는 것은 '돈오'에 해당한다고 봅니다.

유교전통에서 이것은 활연관통이라 합니다. 그런데 주희와 왕양명 모두 활연관통 이후에도 공부가 지속되어야 한다고 보았으며 그것은 사심을 말끔히 씻어낼 때 비로소 가능하다고 보았습니다(유교 명상론 56쪽). 이 점 또한 동서 영성에 공통하며 다만 서양이 은총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약간의 뉴앙스 차이가 있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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