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종교가 불필요한 새 밀레니엄

목운 2021. 8. 7. 08:57

어제 글 쓰다 신비가에 대한 부분이 매끄럽지 않아서 정정했는데 알아채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신비주의란 한 마디로 궁극의 실체 또는 신성과 합일을 추구하는 것이며 서양은 플로티누스를 비조로 삼습니다. 그 실천자를 미스틱(mystic)이라 하는데 신비주의자보다는 신비가로 번역하는 게 나아보입니다.

각 문화마다 신비주의가 있지만 학계의 철학 또는 형이상학 체계에 맞게 잘 정리한 사람이 두드러져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서양은 플로티누스를 계승한 에크하르트에 의존하는 바가 크고 우리의 경우는 주돈이, 주희, 왕양명의 역할이 지대합니다. 동아시아 영성이란 유불선이 융합된 것이어서 아무리 척불을 외쳐봐야 그 테두리를 벗어날 수 없다고 봅니다.

다시 말하면 신유학은 안사의 난에서 충격을 받은 지성인들이 불교를 배척하려는 데서 시작했지만 이미 불교와 도교 영향을 받은 이고 선생 같은 분들이 앞장을 섰기에 그 자장 안에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동아시아 영성은 거슬러 올라가면 불교를 만나고 불교란 힌두교의 지양이자 변증법적 대안이기에 불이문(nonduality)을 바탕으로 하는 힌두 영성을 만난다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동서의 신비주의는 플로티누스의 일자(一者)와의 합일 또는 신비적 합일(unio mystica)을 추구합니다. 그 과정에서 개인의 체험을 중시하기 때문에 교리, 조직, 건물 따위를 무시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기득권자들은 체제에 무조건 순종하지 않는 신비가들을 위험시합니다. 로마교회는 고위 성직자이면서 파리대학 교수를 역임한 에크하르트를 종교재판소에 기소해서 이단으로 판정한 바 있습니다.

어제 글의 연장선에서 제가 하고 싶은 얘기는 정보화와 민주화는 범세계적 대세고 따라서 세 번째 밀레니엄에는 개개 인간이 체제의 주권자이니 모든 이가 왕과 같은 정신으로 주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성외왕의 유교 이념 속에 이러한 생각이 들어 있습니다. 이 점은 각자 최고의 인간, 즉 신처럼 될 때 세상 구원, 즉 하화중생이 이뤄진다는 대승불교 가르침과 다를 게 없다고 봅니다. 제가 볼 때 그 길에서 구태를 벗지 못하는 기존 종교는 자연히 도태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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