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무엇이 중한데?

목운 2021. 7. 6. 04:42

하늘이라 할 때 하늘에 두 가지가 있는 거 아세요? 눈으로 보는 하늘이 있고 눈 감고 조용히 있을 때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텅 빈 상태가 있습니다. 후자도 하늘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텅 비었다는 말인 공(空)을 일본인은 하늘이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보고 나서 동아시아의 천인합일 사상을 이해하지 않으면 도대체 밖에 있는 하늘과 인간이 어떻게 하나가 되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대표적인 종교학자 길희성 님은 동양 종교는 근본적으로 신비적 합일의 종교라고 합니다.

저 내면의 하늘을 중용의 중, 즉 희로애락이 발하지 않은 중과 같다고 보면 비로소 중이 천하지대본이라고 말하는 이유를 조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스승들은 미발의 중으로 존재하는 가장 유사한 상태를 갓난아이라 했습니다. 거기에 천국이 있다고 하신 분이 그리스도고요.

신비라면 신비고 또 신비랄 것도 없는 것을 제대로 실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보거나 사는데 별로 유익하지 않다고 본 누군가가 시작해서 떠든 것이 생산력이 최고다라는 속뜻을 내포한 '농자 천하지대본'입니다.

이게 중용을 비튼 말인데 그것이 그만큼 강력한 것은 그게 편한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 봅니다. 맑시즘도 생산력이 제일 중요하다는 전제에서 시작된 이론 아니던가요? 그렇게 편한 길로 가다 망한 게 청나라와 조선이고 소련과 중공 아닌가요? 자본주의도 오십보백보란 것을 지금의 팬데믹이 입증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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