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편지

전교 또는 중생구제

목운 2021. 1. 2. 09:05

“여러분의 삶은 끝없는 고생과 고통 속에 살도록 되어 있지 않습니다. 자신의 느낌 너머를 볼 수만 있다면, 즉 여러분 안에 있는 ‘아버지’를 만날 수 있도록 마음을 드높일 수 있다면, 여러분은 자신의 존재상태가 실로 어떠한지를 ‘보고’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풍요와 건강과 행복을 누리도록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입니다.” (131쪽)

고통의 원인에 대한 이어지는 진단은 “아버지가 우리 내면에 있는 풍요한 <생명>과 <사랑>이므로 건강과 행복에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주심에도 ‘선과 악’에 대한 두려움 속에 살면서 선악 분리를 더 믿고 기대하기 때문에 그 두려움 체험을 삶으로, 그리고 몸으로 끌어들이는 것입니다.” 즉 선악 구분을 비롯한 모든 이분법이 고통의 원인이라는 것은 이미 창세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가 더 낫다고 판단하여 그 옆에 있는 생명의 나무를 돌아보지 않았고 그것이 바로 고통의 원인이라는 것이 창세기의 진단입니다. 우리도 들판의 꽃처럼 ‘아버지’의 다스림에 완전히 승복하기만 하면 병과 고통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통치는 이미 우리 안에 있음에도 우리는 선악에 따라 신이 포상과 징계를 한다고 믿고 산 제물을 바침으로써 징계를 면한다고 믿습니다.

질병과 가난과 불행은 피할 수 없는 것이라고 믿거나 그런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믿고 두려워하는 바대로 창조하여 체험하는 것입니다. 답은 명확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창조력을 가지기 때문에 우리의 믿음을 바꾸어 ‘아버지’의 원래 의도에 맞추는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 삶과 몸을 지배하는 잘못된 믿음의 결과가 사라진다고 합니다. 모든 피조물 배후에 있는 ‘거룩한 의지’대로 환경이 바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논리입니다. 즉 아버지의 뜻이 실현되는 것을 우리 믿음이 막고 있었으니 그것을 제거하면 신의 의지가 관철되는 것입니다.

잘못된 믿음 가운데 가장 큰 것이 무엇입니까? 신이 선악을 구분하여 심판한다는 교회의 세뇌입니다. 신은 인간적 계산이나 감정과 무관한 무조건적 사랑이어서 오히려 에너지와 비슷한 어떤 작용이라고 봐야 합니다. 우리가 말로 가르침을 전하려고 불가피하게 쓰는 비유가 ‘아버지 겸 어머니’ 같은 표현인데 그러한 언어의 장벽을 넘어 직접 만나기 위해 취하는 수단이 명상입니다. 그렇게 노력해서 ‘아버지’의 다스림(134쪽)을 우리 내면에 실현해낼 때 나에게서 천국이 실현되는 것이고 그 천국을 세상에 보여주는 것이 전교이며 중생구제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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