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편지

구원의 참된 의미

목운 2020. 12. 29. 13:23

“내가 사람들에게(세상에) 주는 ‘아버지’의 구원의 선물임을 나는 알았다. 그들이 수백 년 동안 (분노하는 하느님이 ‘죄인’에게 내리는 징벌에서의 구원으로) 당연한 것으로 믿고 가르친 바의 구원이 아니라, 그릇된 생각, 즉 그들을 불행과 궁핍과 병과 비참한 삶으로 집어넣은 그릇된 생각으로 똑같은 실수를 매일 반복하는 데서 사람들을 구해내기 위한 선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124-125쪽)

거듭되는 말씀이지만 현재 기독교 심층에 존재하는 유태적 사고가 세상의 비참을 전혀 제거하지 못한다는 자각에서 나온 말씀입니다. 즉 인간은 철저하게 예외 없이 원죄의 노예이고 세상을 살면서 죄인임을 벗어나지 못하니 짐승의 피를 바쳐 교회에서 베푸는 구원 또는 죄사함을 받아야 한다는 단선적인 세뇌가 2천 년을 관통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초등 5학년 이후 40년에 가까운 제 기독교 생활에서도 그러했습니다.

메시아로부터 들어야 할 것은 “태초부터 감추어져온 창조의 비밀”이며 “그 비밀을 주의 깊게 듣고 그 뜻을 이해하고 그 진실을 행하고 그 법칙을 지키면 우리는 새로워져서 하늘나라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는 게 핵심입니다(113쪽). 죄로 협박하고 교회에 의존하게 하는 대신 우주론과 심성론을 천착하고 명상을 하면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하는지를 삶의 근본 실천 사항으로 본 동아시아의 방법이 훨씬 ‘편지’의 정신에 잘 맞는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많은 시간을 제자들과 함께 하는 동안 광야에서 깨달은 ‘실재’에 대한 지식과, 깨달음을 얻기 위해 실천하고 체험했던 일들을 말해주었다고 보는 게 책의 입장입니다. 즉 궁극의 실재를 ‘아버지’라 비유해서 표현하고 <그것>의 본성과 그 의지가 하나라는 것, <그것>은 창조하는 전지전능한 마음이라는 것, <그것>을 온전히 만나 그 본성과 의지가 우리에게서 관철되도록 하는 것이 바로 최고선에 이르는 길임을 말합니다(118-119쪽 참조).

거기에 이르는 길로서의 실천 방안은 이미 거론한 대로 동양 종교와 서양 신비주의가 약간의 차이만 있을 뿐 공통으로 밝혀놓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그것을 마태 16:24절에 요약해놓았는데 즉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라’고 했는데 자기를 버리는 것이 바로 정화(靜化)와 명화(明化) 과정이며 제 십자가를 지라는 뜻은 이 일을 그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이 일을 진지하게 꾸준히 진행할 때 “뇌 속에서 새로운 세포가 새로운 앎으로 각인된다(523쪽)”고 합니다.

그래서 신비주의의 대가로 알려진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는 이 일을 마치 목마른 자가 물을 찾는 심정으로 매일 악기를 연습하듯, 또는 글쓰기를 훈련하듯 하라고 합니다. 변화가 일어나서 운동선수나 무술인이 뜻대로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것처럼 될 때까지 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곳에서부터 고통이 사라지고 치유와 가르침을 전할 수 있는 위대한 이상을 실현하는 천국과 같은 삶을 살고자 한다면 그만한 노력을 할 가치가 있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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