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편지

죄론과 동서 영성의 공통점

목운 2020. 12. 26. 05:50

“죄는 어떻게 되는 거니?” 마리아가 물었다. “우리가 이해하는 것과 같은 ‘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지금처럼 행동하도록 타고 났습니다. 우리는 인간적 생각과 느낌을 극복할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를 ‘아버지’의 보호에서 떼어놓고 병과 불행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소아(self)’를 극복할 방법을 습득하면 우리는 ‘천국’에 들어갈 것입니다.” (98-99쪽)

천주교 세례를 받은 후 3, 4년이 지나서 청소년들이 흔히 빠지는 일탈을 체험했습니다. 그리고는 교회의 고백제도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평생을 범죄-사죄의 순환을 도는 삶을 살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죄 의식에 깊이 빠져 살았습니다. 돌아보고 평가하건대 일요일에 예식 참례를 하고 헌금을 하는 것이 하나의 강압이 아니었나 합니다.

선의에서 나온 것이지만 중세의 고백을 위한 성찰 안내서 같은 것을 보면 스스로 성찰할 능력도 없고 도움도 받기 어려운, 아마도 가장 의식이 낮은 평민들을 위한 것이었지 싶습니다. 문제는 그것이 제도가 되고 강압이 됨으로써 역시 의식이 낮은 부자 신자들은 돈으로 벌을 감해 받으려는 소망이 있었고 지도층들에게는 그렇게 돈을 모을 방법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죄라고 드러나는 현상은, 몸을 가진 존재로서 인간이 진화 과정에서 필요한 충동들이 있었다는 것이고 그것을 스스로 이해하고 극복할 방법을 모르는데다가 한편 인간은 신적 의식을 나누어 받아 엄청난 창조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회 전체가 부정적인 방향으로 걷잡을 수 없이 달려갈 수 있는 현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죄론을 버리지 못한 탓에 인간은 갓난아이 때부터 원죄를 가지며 그 죄에서 면해지는 사람은 예수와 마리아밖에 없다는 해괴한 교리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자연과학뿐 아니라 인문과학의 성과를 보더라도 부족의 신민을 다스리기 위한 방편이었던 죄론을 버리고 동서 영성의 최고 스승들이 공통으로 말하는 고통에서 벗어나는 비결을 알려 모든 사람이 실행하게 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비결이란 진화 과정에서 꼭 필요한 인간적 충동에서 나오는 생각과 느낌을 극복하는 방법을 실천함으로써 우리에게 이미 존재하는 창조력이기도 한 신 의식으로 살아가는 길입니다. 이것을 일컬어 ‘소아(小我)’ 극복과 신인합일의 길이라 합니다. 제가 학습한 범위에서 분명히 확인한 것은 이 점에서 그리스도교 신비주의와 동양 영성은 완전히 일치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증언하는 칼 융의 말을 인용하는 것으로 오늘 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동양의 종교적 실천과 서양 신비주의의 목표는 같은데 요컨대 중력의 중심이 동양에선 소아에서 참나로 이동하는 것이라면 서양에선 인간에서 신으로 이동하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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