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편지

무지와 아집에서 벗어나기

목운 2020. 12. 31. 09:48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사람들의 삶 속에서 ‘아버지’가 끊임없이 행하는 이 <사랑의 작용>을, 그것을 받는 사람은 <사랑>의 선물로 여기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그들은 무감각과 열패감과, 좋은 일이 생길 수 없다는 믿음에 깊이 빠져서 삶에서 자기들만이 믿고 느끼는 것을 초월한 것은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스스로 만들어낸 지옥에 꽉 뿌리박혀 있다.” (128쪽)

고통의 근본 원인을 불가에서는 무지와 아집이라고 하는데 위 구절은 그와 같은 가르침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존재의 진실과 존재의 우주적 법칙에 대한 무지에서 깨어난다면 들에 핀 꽃 한 송이에서 작용하는 ‘아버지‘ 또는 우주 마음의 <사랑>이 얼마나 큰 것인지 알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자기들만의 생각으로 세상 영화의 기준을 세워놓고 그것을 기초로 사고하기 때문에 우주 마음의 사랑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진리는 “각 영혼은 모두 <우주>의 품 안에 안겨 있고 ‘아버지’ <사랑의 작용>을 통해 삶으로 들어오는 <우주의 입력신호와 에너지>를 얼마나 강하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은 각자의 수용성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 (129쪽)”는 것입니다. 들에 핀 꽃은 그 사랑의 작용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데 반해서 우리는 세상의 가치서열 내지 가치질서라는 장막으로 걸러서 받아들이기 때문에 가장 많이 영화를 누린 것처럼 보이는 솔로몬도 꽃 한 송이만 못하다는 것입니다.

우리 대부분은 속물적 가치와 그것을 매일 세뇌하는 티브이가 전하는 것 이상을 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로또가 맞지 않는 한 ‘좋은 일이 생길 수 없다’는 것을 신봉하게 되고 시간이 갈수록 무감각해지거나 패배감에 젖어 지상 삶을 지옥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가 이렇게 지옥과 같이 고통만 초래하는 상황에서 벗어나는 처방으로서 교회 출석을 제시하신 것이 아니라 당신처럼 고독 속에서 아버지의 임재를 느껴보고 각자 마음 안에 존재하는 하느님 나라를 먼저 발견하라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짐작컨대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가 세속화의 길을 가기 전에는 많은 이들이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노력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처럼 신체험을 한다면 세속적 복락과 심지어 목숨까지도 초개처럼 버릴 수 있는 초월적 기쁨과 확신이 생길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아버지’의 실상을 느끼고 보았으며 그 창조하는 힘에서 나오는 “완성의 과정”, 즉 ”온전하게 하고 거룩하게 하는 충동“을 느꼈고 그것을 얼른 다른 이들과 나누고 싶었다고 합니다(130쪽). 실로 그리스도는 이러한 충동에 압도되어 3년을 매진한 끝에 사형을 당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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