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편지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

목운 2020. 12. 25. 09:04

“나는 모든 것을 존재하게 하는 <그것>을 보았습니다. 나는 그것을 ‘아버지’라 부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완전한 사랑>, 당신의 사랑보다 완벽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피조물 모든 것의 안에서, 모든 것을 통해서, 그리고 모든 것을 위해서 일합니다. 집안에서 필요로 하는 것을 어머니에게 가져다 드리고 동생들을 금방 낫게 한 것도 내 안의 ‘아버지’입니다.” (98쪽)

부족 종교인 유태교는 창조주를 인격을 가진 존재인 것처럼 단순화합니다. 서산대사가 편집한 선가귀감 첫머리는 바로 황벽 선사 법어인 전심법요에서 가져온 말씀인데 그것은 “여기 한 물건이 있으니 태초부터 밝고 신령하며 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다. 이름도 없고 모습도 없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동양 영성은 좀처럼 창조주에 대해 거론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기독교보다 훨씬 덜 오류에 빠진다고 생각합니다.

구태여 인간이 이해하기 좋은 설명을 하자면 바로 ‘완전한 사랑‘입니다. 그것은 조건 없는 사랑이기에 그나마 가장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아버지로 비유하기도 합니다. 바이블에 따르면 “아버지께서는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햇빛을 주시고 옳은 사람에게나 옳지 못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주신다.”(마태 5:45)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오히려 그것은 전자기력처럼 물리학의 연구 대상이라 하여도 틀리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모든 피조물 안에서 그리고 모든 피조물을 관통하여 작용하며 모든 피조물의 최선의 상태, 즉 최고선을 이루면서 작용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처럼 그것을 보았다고 할 정도로 철저히 체험한 경우 물질화 기적이나 치유의 기적도 가능한 것입니다. ‘편지’는 바로 이러한 신비 전통에서 전해지는 신체험을 추구함으로써 우리도 그리스도처럼 또는 창조주 신처럼 무조건적 사랑이 가능할 때까지 철저히, 끝까지 노력하자는 점에서 기존 기독교와 다릅니다.


이 일이 마치 불가능한 것처럼 생각되어 우회하거나 생략하는 데서 종교의 생명력을 잃고 면죄부 판매와 같은 세속주의 신앙이 생겨나 결국 부패와 무능에 빠지는 것이라 봅니다. 앞으로도 계속 거론되지만 인간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지상 천국과 같은 삶의 조건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마태복음 16:24가 말하는 그대로 인간성을 부인하거나 끊어내고 그리스도가 가신 길을 밝혀 그대로 실행하는 데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편지’의 노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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