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이승을 잘 지나가기

목운 2020. 3. 21. 09:01

이번 생, 즉 몸 살이의 목적을 깨달았다 하더라도 일상의 버거움을 느끼지 않는 분은 드물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 하셨는지 모릅니다. 그것이 성령으로 새로 난 상태인지 모르지만 신비체험 또는 신인합일 등 몸을 벗어난 체험을 하신 분들 얘기를 듣거나 읽어보면 세상에 다시 개입하기 싫은 느낌이 들거나 또는 이 세상과 다음 세상 간에 그 어떤 선호도 없어진다고 합니다. '곡기를 끊는' 경지도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도 해봅니다.

결국 몸과 마음이 고달프지 않으면서 궁극의 만족과 기쁨, 그리고 자유를 누리고자 하는 것이 누구에게나 잠재한 바람이지 싶은데 거기에 이르는 방법을 정확히 알고 실천하는 이를 찾아보기 드문 게 현실입니다. 숙명처럼 일터를 향하면서 떠오르는 상념들이 위와 같은데 명상 시간을 포함해서 24시간 제가 가지고자 하는 심사를 적어 보려고 서두가 길었습니다.

첫째는 제 존재와 삶을 우주 의식이라 부를 만한 궁극의 존재에 맡깁니다. 불려불사, 즉 과거 미래를 생각지 말라는 것은 세부까지 완전히 맡기고, 내것이라 할 수 있는 의지를 포기하라는 것입니다. 거기에 가까울수록 심사가 편안해집니다. 이것은 제가 사숙하는 이고 선생이나 에크하르트 님, 또는 마하리쉬 님이 똑같이 가르치는 바이기도 합니다.

둘째, 부딪치는 모든 난관을 재빨리 승복하고 과거 알게 모르게 지은 카르마를 상기하며 용서를 구합니다. 참으로 탐진치 때문에 지은 업이 크고도 많지만 알게 모르게 남에게 준 상처도 많을 것입니다. 선업도 반드시 돌아와 갚아지는 체험을 했지만 내게서 나간,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된 악업도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현재 상태와 다른 무엇에 대한 기대를 가지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것은 두번째와 밀접한 것인데 현재 상태의 완벽성을 인정하자는 것입니다. 지금 순간 이전의 모든 의식이 지어낸 것이 지금 상태이기 때문에 지금 할 일은 최선을 선택하는 일밖에 없습니다. 매순간 최고선이 무엇인지 하늘에 묻고 지혜로운 분께 묻고 스승께 물으면서 올바른 행을 택하려고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쓰고보니 세 번째가 가장 부족하지만 이제부터라도 열심히 하면서 매 순간의 완벽성뿐 아니라 미래의 모든 진화한 상태에 대해서도 미리 감사하면서 살고자 합니다. 이상의 것들은 제가 명상에 관해 공부한 모든 가르침에서 자연스레 도출한 것들임을 덧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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