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공관복음과 자아포기

목운 2020. 3. 18. 10:02

잘 아시겠지만 공관복음이라 함은 네 개의 복음 가운데 공통된 부분을 묶은 것입니다. 대개 마태오, 루가, 마르코 복음의 유사성에 비해서 요한복음은 조금 맥락이나 표현방법이 다릅니다(말할 필요도 없는 게 제 지식은 '얕게 넓은' 것을 지향하기에 '깊게 좁은' 것을 기대하시지 않으실 줄 압니다).

자주 거론하는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훈화(또는 영적 강화)는 거의 마태오 16:24의 자아포기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에고 또는 소아라고 할 수 있는 것을 완전히 비울 때 신이 우리 존재를 지배하는 천국 상태가 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완전히 생각이 끊어져 희로애락이 나오기 전 상태인 중을 얘기하는 중용이 바로 연상됩니다만 이 점은 동서 영성의 핵심이자 공통점이기도 하다고 봅니다.

마태오 16:24는, 마르코 8:34, 루가 9:23과 표현이 거의 같지만 요한에는 같은 것이 없다고 여겼는데 요한 12:25가 문맥상으로 똑같은 것이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즉 요한에서는 자기 목숨을 미워하면 영원히 살게 된다는 것인데 그 다음 문장에서 나를 따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그러니 3개의 공관 복음에서처럼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하는 사람은 결국 에고 또는 소아의 다른 표현인 '자기 또는 목숨'을 부인하거나 미워하거나 포기하라는 점에서 사실상 같은 뜻인 동시에 우리 전통의 극기와 같은 말입니다.

극기란 심하게 번역하면 자신을 죽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동아시아의 표현이 오히려 자기 목숨을 미워하라는 요한의 표현에 더 가까워보입니다. 마지막으로 에크하르트의 훈화에서 한 구절 가져오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의지가 자아에 매어 있지 않을 때, 그리고 의지가 자기 자신을 모두 비우고 신의 의지로 전환하여 신의 의지로 철저하게 다시 모습을 바꾸게 될 때, 그 의지는 완전하고 올바르게 된다... 사랑이든 또는 원하는 무엇이든 이러한 의지 가운데서 그대는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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