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요순시대와 지상 천국

목운 2020. 8. 5. 08:13

세계 이념으로서 기독교의 효능은 끝났고 고양(업그레이드)된 유학의 시대가 와야 한다고 봅니다. 그것은 구태여 이름 붙이자면 신-신유학 또는 신주자학이 될 것입니다. 

제 학령기를 지배한 것은 기독교였지만 이제 기독교를 유학의 눈으로 이해하니 더욱 풍요한 실천이성이 살아나듯이 동아시아 문화의 저변에 살아 있는 유학의 핵심적 가르침을 전파해야 합니다. 그 심층에 대한 이해가 없이 외견상 드러난 폐해를 들어 아이와 함께 목욕물을 버리는 우를 범해선 안 됩니다.

앞 글 '제사장과 성인'에서 감지하셨는지 모르지만 동아시아는 통치행위로써 지상에 천국을 건설하려는 이상과 실천방안을 유학에서 찾았습니다. 우리가 요순시대를 거론하는 것은 바로 지상 천국을 건설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지 과거로 돌아가겠다는 게 아닙니다. 그리고 그 방안으로 성인이 왕 또는 통치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했습니다.

주희가 사서집주로써 대학과 중용을 핵심 경전으로 삼았을 때 신유학이 성립했다고 보는데 그 직전에 이고 선생은 척불의 입장에서 대학-중용을 인용하여 복성서를 씀으로써 선불교를 유학으로 만들었으며 주렴계는 통서를 써서 이고를 계승하였습니다. 주희는 태극도설을 통해 주렴계를 계승했지요. 한편 제가 여러번 소개했듯이 선불교는 인도 불교와 도교가 융합된 중국 불교라 할 수 있기에 신유학은 유불선이 융합 내지 통섭된 사상입니다.

한편 기독교를 더럽힌 목욕물을 버리고 아이만 건져내면 제 생각엔 정화-명화-합일로써 모두 성인이 되자는 신비주의가 남는다고 보며 이 기독교 신비주의는 비기독교도인 플로티누스의 일자 철학과의 융합이란 것도 여러번 소개했습니다. 제가 발견한 것은 대학-중용의 수행법이나 기독교 신비주의 수행법이나 다름이 없더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요약해보면 멸사(滅私)를 통해 지성(至誠)에 도달하려는 성의정심이 정화(purification)에 해당하며 진아 또는 심진여를 밝힘으로써 진보하려는 것(明明德)이 명화(illumination)입니다. 그렇게 해서 도달하는 지점이 합일(deification)인데 동아시아에서 성인이라 일컫는 경지입니다. 성인 이전 상태는 순서대로 학인, 군자, 현덕쯤 된다고 보는 것입니다(정은해 지은 유교명상론 참조).

요컨대 민주정에서 통치자는 유권자이니 유권자 모두가 성인이 되는 공부를 한다면 신유학의 이상인 요순시대(지상 천국)를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제 생각에 관료와 선출직의 51%가 학인 이상인 나라는 천국에 가깝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과정에서 통치 그룹에 들어가지 않는다 하더라도 공부한 만큼 행복해지며 더구나 이승에서 높아지고 밝아진 의식만큼 다음 생을 시작하게 된다는 것이 신비주의의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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