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인(仁)과 애(爱)

목운 2020. 8. 11. 10:51

2~3십대의 독서는 깨우침을 얻거나 소위 구원에 화끈한 도움을 받자는 깊은 동기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계시종교로서 기독교의 우월성에 기반한 독서였습니다. 그러니 불교나 유교에 관한 또는 거기로부터 나온 책자는 교양서정도로 여겼다는 것이 정확합니다.

59세 이후의 독서는 그런 편견 없이 간절함에서 나온 독서인지라 불가나 유가 책들이 심금을 자극하는 바가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기독교 색채의 가르침과 대동소이하게 느껴질 뿐 아니라 수행에 실용적 이익이 있습니다.

이은선 선생의 논어 읽기 책을 접하자마자 제 학습 공동체 교재인 그리스도의 편지 핵심에 바로 연결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니 공자님이 왜 사랑(爱)이란 말을 안 쓰시고 구태여 씨앗이란 뜻을 잠재한 어짊(仁)을 쓰셨는지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유교의 '인'이란 인간들 관계 속의 사랑인, 그렇기 때문에 상호적인 사랑인 '애'와 질적으로 다른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오죽하면 함석헌 선생은 그것을 '씨알'이라 번역하셨을까요! 그것은 신적이고 일방적으로 무한히 주는 내리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만물을 낳고 생육하는 창조 의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는 그 특징을 "온 천지의 만물을 낳고 기르는 우주적 마음(天地生物之心)(10쪽)"이라 합니다. 그러니 거기에 이르기 위해 제대로 된 유학자는 시간 나는 대로 정좌를 함으로써 윤집궐중을 실천했던 것입니다.

이 점은 바이블에서 그리스도가 첫째 가는 계명을 위해 온 마음과 뜻과 능력을 다해 신에게 집중하라고 하신 지점과 정확히 일치한다고 봅니다. 동양이나 서양에서 이 부분을 건너 뛰면 인간 관계 속의 사랑, 즉 '애'에 집중하면서 10계명 중 하7계인 '금지법'에 몰입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금지법에만 집중하면 그 프레임에 완전히 갇혀 수계 관련 언설이 모두 형사법 체계처럼 됩니다. 그렇게 되면 결과적으로 심판관 노릇하는 제사장의 월권이 작동하여 면죄부를 판다든지 하는 부작용이 생기는 것입니다. 유교든 기독교든 제가 파악한 종교의 폐해 가운데 바로 이것이 들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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