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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선택이다!

"마음은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채널을 가진 텔레비전과 같아서 한 생각이 유혹한다고 해서 그것을 좇아갈 필요가 없다... 자기연민, 분노, 근심 등 모든 선택이 마음을 은근히 잡아끄는 것은 거기에서 내적 보상이나 은밀한 만족감을 얻기 때문이다.이런 보상을 거부할 때 생각의 스크린 뒤에 보이지 않는, 생각과 무관한 고요한 기쁨의 공간이 늘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 공간은 늘 접할 수 있지만 그것을 체험하려면 마음을 유혹하는 모든 선택을 넘어서서 그것을 선택해야 한다. (나의 눈, 74쪽)-- 복성서의 실천 요점은 근심도 생각도 하지 말라(弗慮弗思)는 것입니다. 우리가 근심을 달고 다니는 것도 선택입니다. 고요히 홀로 있을 때 바로 신을 만난다는 것은 이미 기독교 시편에 써 있습니다(46:10). '..

우리가 기적의 창조자임

더 높은 의식 수준에 이른 사람에게 기적적인 현상은 평범한 일일 뿐 아니라 자연스런 사건들의 흐름이며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기적은 인과관계에서가 아니라 창조에서 나온다. (나의 눈, 186쪽)-- 제 글을 꾸준히 읽는 분께서 호킨스 박사의 '의식혁명'을 읽고 깊은 감동을 받으신 것 같은 포스팅을 하셨습니다. 박사의 책에서 발견하는 특징 가운데 하나는 자신이 살면서 겪은 일을 영적 수행이란 차원에 맞추어 세세히 기록한 것, 즉 자전적 체험을 꼭 책 뒤에 붙이고 있다는 것입니다.그 가운데 인상 깊은 것은 고질병이 저절로 낫는 체험입니다. 보통 기복적 신앙에서는 부와 건강 등을 직접 구하지만 신 의식의 의도를 정확히 아는 사람은 먼저 신 의식에 맞추어 사는 것에 집중하며, 그 요령은 에고를 벗어나서 고요히 ..

학이시습과 향원

"에고란 인간 의식이 그것을 지배하는 보이지 않는 에너지 장에 의해 실려가는 것에서 비롯된 철벽 같이 굳은 생각의 습성으로 볼 수 있다. 이 생각의 습성들은 반복과 사회적 의견 일치를 통해 강화된다. (나의 눈, 184쪽)" -- 에고를 이해하는 것이 멸정복성과 극기복례의 입구입니다. 그래서인지 어제 인용한 금강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나'라는 생각을 버릴 것을 되풀이해서 강조합니다. 에고는 또한 의식 세계에서 특정한 자리 또는 입장(position)을 고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호킨스 박사는 에고를 설명할 때 'positionality'라는 표현을 자주 씁니다. 에고는 모든 것이 변하는 세상에서 안정을 희구하는 본성 때문인지 특정한 자리, 즉 의견을 고집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초중등 교육을 통해 수없이 ..

중력장 벗어나기

"영적인 진화는 지구 중력을 벗어나는 우주선과 아주 비슷하다. 처음에는 중력을 떨쳐버리기 어렵지만 결국에는 중력장을 벗어난다. (나의 눈, 172쪽)"-- 영적 진화는 의식의 진화로 바꿀 수 있겠습니다. 중력을 벗어나려는 욕구가 우리에게 있을까요? 가시 세계 모든 것을 충족해도 '더 많은 무엇', '더 큰 무엇'을 열망하고 있다면 그것은 중력을 벗어나고자 하는 욕구라 하겠습니다. 이것이 차원이 다른 욕망임을 깨닫지 못하면 불노장생을 간구하며 세상에 잘 통하는 삶, 달리 말해서 통속적인, 또는 세속적인 삶으로 마감하게 되는 것입니다.이 욕망에 가장 부합하는 삶을 선가귀감은 '세간을 벗어난 자유인(出世自由人)'이라 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도달하는 길을 73절에서 길게 설명하고 있지만 금강경의 요점과 같습니다..

생각의 매력과 복성서

생각의 매력은 그것이 '내 것'이라고 생각하여 귀하게 여기고 거기에 찬탄하며 보존할 가치가 있는 특별한 것으로 보는 데서 비롯한 과장된 평가에서 나온다. 그런 마음이 지배하는 상태에서 벗어나려면 철저히 겸허한 자세와 배후에 숨겨진 동기를 버리려는 강한 의지가 필요하다. (나의 눈, 143쪽)-- '내 생각'이라고 착각하는 것에 우리의 애착과 미련이 있습니다. 복성서가 얘기하는 희로애락애오욕, 즉 정(情)이 모두 여기에서 나옵니다. 통틀어서 현대어로 에고라고 부릅니다. 에고가 참나, 즉 복성서 용어로 성(性)이 발현하는 것을 막기 때문에 불려불사(弗慮弗思)를 해법으로 제시하는 것인데 이 점은 바로 대승기신론의 노선과 일치합니다. 우리는 에고가 실체라고 믿어 그것을 버리기 꺼립니다. 그러나 그것이 실체가 아..

복성서 2018.08.30

정허동직(靜虛動直)과 중화(中和)

주돈이의 통서(通書)는 주희와 이고를 연결하는 고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주희는 주돈이에 대해 평하길 "선생(周惇頤)의 학문은 그 오묘함이『태극도설』하나에 구비되어 있으니, 『통서』에서 말한 것도 모두 이 『태극도설』의 내용이다."라 하는 등 주돈이를 극찬하면서 태극도설을 해설 발전시켰습니다. 한편 김용남 님은 주돈이가 이고의 사상을 이어받았으며 통서의 많은 부분이 복성서의 내용과 일치하거나 흡사하다고 합니다(이고, 성리학의 개창자, 159쪽). 이고를 성리학의 개창자로 보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이 분이 불교와 유교의 핵심을 통합적으로 실천하여 스스로 사표가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각설하고 오늘은 주돈이가 지은 통서의 한 구절을 묵상하고자 합니다. 『"노력해서 상근기가 될 수 있는가?" "그렇다." ..

복성서 2018.08.25

명상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

복성서를 통해서 유교와 불교 그리고 기독교가 하나로 꿰어진다는 것을 깨달았는데 탄허록과 금장태 님의 동양고전 입문서 '비움과 밝음'을 통해서 그것을 더더욱 확인하였습니다. 함께 보겠습니다."성품(性)이 내 마음(心) 속에 있다는 점에서는 분명 내 성품(人性)이지만, 동시에 하늘에서 온 것이라는 점에서는 하늘의 성품(天性)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내 속에 있는 마음과 내 위에 나를 넘어서 존재하는 하늘이 상하로 마주보고 있는 것이요, 이 둘을 연결시켜주는 통로가 되는 것이 바로 성품이다. 길이 끊어졌으면 건너갈 수가 없으니 그 길을 잘 찾아내어야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 (비움과 밝음, 76쪽)"이 해설은 맹자 진심상을 소개하면서 붙인 것입니다. 진심상에는 마음을 철저히 파면 성품(불가의 진여로 보면 좋습..

복성서 2018.08.24

종교의 자연사

오늘은 호킨스 박사 글 하나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역사적으로 모든 지배층은 청교도 윤리로 사회를 통제함으로써 부와 신분을 확보했다." -- 여기서 청교도 윤리를 넓게 해석해서 대체로 권선징악과 상선벌악을 핵으로 하는 근본주의 종교를 염두에 두고자 합니다. 대개 2세기 전후에 페르시아 군사도로 양 끝에서 메시아 사상과 미륵 사상으로 대표되는 구세 사상이 기독교와 불교의 핵심 사상이 되었습니다. 불교만 보자면 선비족이 중국을 다스리기 위한 이념도구로 왕즉불 사상을 주입함으로써 지배도구로 되었습니다. 그 유적이 대규모 석굴로 남아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석굴암이 그 일환입니다. 이러한 이념도구가 인류 발전에 기여한 바도 적지 않지만 어언 15세기 이상 지나는 동안 한계가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상선벌악하는 외..

단상 2018.08.23

어떻게 살 것인가?

동아시아의 사상 또는 학문이란 결국 이곳에 살던 이들이 이승의 고통을 벗어나면서도 세상의 경영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해법을 추구한 과정이라고 봅니다. 그 과정에서 이곳에서 발흥한 것으로 추정되는 도교와 유교에 불교가 더해지면서 통합적인 답을 내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 답을 쉽게 풀면 '규칙적으로 정좌하여 홀로 있는 시간을 가지고 거기서 자명하게 얻어지는 매 순간의 실천방안을 세상에 펼치자'쯤 됩니다. 동아시아 지성인이 수천년간 실천한 것이 동일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비슷한 결론을 조금 바꾸어 써보겠습니다. 우리 삶에서 성공의 토대는 신인합일을 이루는 데 있으며 그러기 위해 실천적으로는 모든 일에서 최우선적으로 존재의 근원(또는 제1원인, 신 의식, 불성)을 만나야 합니다. 이 경지는 반드시 규칙..

중(中)과 화(和)의 실천

아시는 분도 계시지만 엊그제 거론한 서경 16자구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죠! 저는 한 됫박 구슬밖에 모으지 못했지만 무엇으로 어떻게 꿰어야 하는지(一以貫之) 감을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것은 순전히 탄허스님을 비롯한 여러 스승을 사숙한 덕입니다.서경 16자구란 '사람 마음은 위태하고 참마음은 미력하다. 갈고 닦으면 하나일 뿐이니 집중하여 그 속을 꽉 잡아야 한다(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또 실천력이 약해집니다. 우리말에서도 심중, 궁중 할 때 중은 깊은 속을 말합니다.사람 마음에서 깊은 속이란, 평소 잘 드러나지 않는 도심(참마음으로 해도 좋을 것입니다)으로 보면 좋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중용은 희로애락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