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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의 길

깨달음 상태는 이미 우리에게 실재하는 것이며 따라서 그 상태가 온전히 드러나도록 허용해 주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미 있는 것은 미래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나의 눈, 376쪽) -- 가장 비근한 비유로는 구름이 걷히기만 하면 태양 빛을 바로 느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몸의 진화와 사회적 적응을 위한 학습 과정에서 빛을 가리는 구름이 덕지덕지 덮여서 도저히 걷혀지지 않을 것 같기 때문에 깨달음이 어렵게 보이는 것입니다. 한편 수많은 고정관념과 몸이 나라는 세뇌가 (이 두 가지가 바로 아집과 법집임) 구름 걷는 일을 어렵게 만드는 것입니다. 예수는 물론 노자와 공자께서 모두 아이처럼 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신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아무 판단도 차별도 없이 그저 기쁨의 상태가 되는 데 깨달음의 비..

참된 정체성으로서의 의식

모든 두려움은 자아 정체성(identity)의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점을 명심하십시오. 곧 존재와 생존의 상실에 대한 두려움 말입니다. 이 두려움은 생존의 근원 또는 자아를, 형상(생각, 느낌, 몸)과 동일시하는 것과 관련됩니다. (나의 눈, 369쪽) -- 모두 같은 진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대승기신론이 진여문을 말하는 것도 마하리쉬 님이 '나는 누구인가'를 끝없이 물어보라는 것도, 금강경이 처음부터 끝까지 아공과 법공을 설하고 있는 것도 모두 같은 목적에서 나온 것입니다. 두려움과 고통의 근원은 같습니다. 몸을 나라고 여기는 한 고통은 멈추지 않습니다. 몸에서 나오는 생각이란 것을 끊기 위한 모든 수행법이 두려움과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입니다. 간단히 우리가 의식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뼈에 사무..

의식 공부가 긴요함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훌륭하기는 하지만 거기에서 저절로 깨달음이 오는 것은 아닙니다. 깨달음에 이를 가능성은 의식의 본성에 대한 높은 이해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나의 눈, 354쪽) 의식의 본질을 이해하면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의식의 본질을 이해하면 반드시 이원성과 비이원성의 차이를 통찰하게 되고 아울러 이원성의 영역을 초월하는 법도 알게 됩니다. (위 책, 357쪽) -- 여기에 무슨 주석을 붙이는 게 주제 넘지만 한 가지만 거론한다면 세상 교육이나 종교는 그저 좋은 사람 또는 착한 사람을 만드는 데 주력합니다. 하지만 의식이 바깥 세계만을 맴도는 한 폐쇄 체계를 뱅뱅 도는 모습이 되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철저히 세속적 인간이 되어 버립니다. 그리하여 결국 성공한 이들, 평생 한번도 ..

참된 예배

행동하고 말하고 느끼고 생각하고 관찰하는 자가 누구인지 끊임없이 물어봅니다. 지속적인 명상은 모든 행위를 일종의 예배로 바침으로써 그 행위를 모두 성스럽게 할 수 있습니다. (나의 눈, 321쪽)-- 이 대목에서 마하리쉬의 자아탐구를 만나며 대승기신론의 지관문을 만납니다. 이것들은 실천적으로 하나입니다. 선가귀감은 "예배란 참된 근원을 공경하고 무명을 굴복시키는 것(禮拜者 恭敬眞性 屈伏無明)"이라 함으로써 이것을 반복하고 있습니다.그 실천방법으로는 기본적으로 홀로 고요히 있는 것인데 생각마다 끊어버리는 것일 수도 있고, 끝없이 무량광 무량수인 아미타불(이것은 아무 이름이어도 상관 없습니다)을 외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비운 자리에 신 의식이 들어와 무한하고 거룩한 뜻을 실현하시도록 하는 것입니다...

신의 정의와 인간의 선택

참나라는 무한한 바다 속에서 자아는 오로지 자기 자신의 본질에 의해 자신의 운명으로 끌려 갑니다. 이것이 바로 절대적인 공정함과 공평함을 보장해주는 의 절대적인 정의입니다. (나의 눈, 307쪽) -- 어제 올린 무한한 바다의 비유가 또 나옵니다. 바다의 비유는 대승기신론에서도 자주 나옵니다. 이 무한한 바다에서 몸을 벗은 각 에너지체는 자신의 본질, 즉 의식 수준에 따라 자리를 잡는다는 얘기입니다. 우리 모든 사언행위는 궤적을 남기며 하나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 모든 것의 결과이기도 한 우리 의식의 수준에 따라 딱 맞는 자리에, 마치 자기 부력에 따라 물체가 바다에서 자리 잡듯이 자리를 잡는다는 것입니다. 시공(時空) 안에 들어와서 인간에게 간섭하고 사후에는 재판관처럼 심판하는 신을 생각하는 것은 가..

의식이 우리 현실임

'나'라는 감각이 있는 자리인 에너지체(또는 영혼)는 몸에서 벗어난 체험을 한 사람들이 기억하듯 몸과는 별개로 존재합니다.. 의식의 장은 측정할 수 있는 다양한 레벨과 에너지 장이 상호 작용하는 무한한 바다입니다. 따라서 한 개별 영혼이기도 한 에너지체의 운명은 바다 속의 코르크와 유사합니다. (나의 눈, 306쪽)-- 불교는 이미 우리 몸이 무정물이라서 체험을 하는 자리는 별개로 존재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영역에 있습니다. 생각과 오감은 그 스크린 위에 비치는 영상과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몸을 버린다고 말할 때 사람들은 모두 무엇을 말하는지 압니다.스승들은 몸을 버리는 순간의 의식이 사후에 고정되는 의식 수준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때의 의식 수준이 마치 바다 속 코르크와 같아서 자신..

유교와 현대 영성 비교

제 글을 자주 접하신 분은 성리학의 핵심을 파악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문헌만 제대로 읽으면 링크한 다산의 중용 해석에서처럼 희로애락이 나기 전의 상태, 즉 '중'이 유교 수행의 핵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중'에 이르기 위해 '신기독'하는 것이며 그 실천으로 '경'을 가장 강조하신 분은 남명 선생입니다. '경'이란 바로 대승기신론의 '지관문'으로 보면 되고 지관문이란 사마타와 위파사나를 가리킵니다. 우연히 '중용자잠'을 접하고 현대 영성과 결정적인 차이점을 발견했습니다. 제 경우 현대 영성이란 '그리스도의 편지'와 '신과 나눈 이야기'를 말합니다. 요컨대 다산을 비롯한 (과거의 저도) 대부분이 '상제' 또는 하느님을 심판하고 벌주는 존재로 인식한다는 점입니다. 대부분의 종교는 인간을 악한 것..

단상 2018.09.06

진화와 창조

진화와 창조는 같은 것의 다른 이름이다. 창조는 진화의 근원이자 본질이며 진화는 창조를 드러내는 방식이다. 물리적인 세계는 결과들의 세계요 그 안에 원인이 되어줄 만한 힘이 없는 세계다. (나의 눈, 162쪽)-- 다시 말하면 신의 창조는 신 의식이 행하는 것이며 의식의 특징은 지성과 의도, 심미적 앎이라고 합니다. 신 의식을 나누어 받은 인간 의식을 포함한 모든 의식체가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모습을 바꾸는 것이 진화라고 합니다. (같은 쪽)이것은 매우 중요한 깨달음인데 관찰되는 환경을 바꾸려면 내 의식을 바꾸고 내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집단 의식을 바꾸는 것이 현명한 노선임을 알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내 운명을 바꾸는 것, 세상의 모습을 바꾸는 것, 모두가 의식 변화에 달려 있습니다.그러므로 결과를 ..

바라봄(觀照)이란!

관조란 어떤 관념이나 이미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휘말려들지 않은 채 저절로 흘러가도록 가만히 내버려두는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생각의 이미지가 저절로 일어나고 그 생각은 우리의 독자적 결정에 따라 이루어진 선택이 아니며 생각의 흐름이란 독자적인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나의 눈, 138쪽)-- 흔히 우리가 생각을 하는 주체라고 착각할 수 있는데 실은 우리 의식이 어떤 장(場)에 올라타 있는가가 실상이라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게 무한히 존재하는 의식의 장이 얽혀져 있는데 각각의 장에서 생각들이 밀려드는 것입니다. 기쁨과 평화가 주조를 이루며 존귀하고 우아하며 권능이 있는 생각이 저절로 흘러나온다면 우리는 높은 의식의 장에 자리하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의식의 장은 끌개장의 성격을 가지..

영적인 길은 선택임

우리는 그저 긍정적인 것을 선택하는 것만으로도 부정적인 요소를 넘어선다. 영적인 삶을 열심히 좇는 내적인 수행을 계속 해나가다 보면 부정적인 선택지는 더 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나의 눈, 98쪽)-- 이 구절은 '죄와 싸우고' '의지의 힘'으로 결함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효과가 없음을 말하는 대목에서 나옵니다. 아무런 판단도 하지 않고 심판하는 일은 내 일이 아니라는 자세로 오직 치료와 해답을 구하는 결단이 현명하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명상이 필수적인데 명상의 핵심 요소는 '생각 끊기'이기 때문입니다. 대승기신론을 인용합니다."일체의 모든 상념을 생각생각마다 다 없애고 또한 없앤다는 생각마저도 없애야 한다... 마음이 만약 흩어져 나간다면 곧 거두어 와서 정념(正念)에 머물게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