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편지 292

역사 속의 예수

나는 기존 유대 전통에 맞섰던 반항아였다. 그리고 광야에서 6주 동안 머물다 나왔을 때 나는 생각하는 더 나은 방법, 살아가는 더 나은 방법을 깨닫고 유대 동족에게 내가 아는 바를 전해주고자 했지만 거의 성공하지 못했다... 옛 율법상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보전하기 위해 그들은 내가 어떤 인간이었는지에 대해서는 묘사하기를 한사코 삼갔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들이 써먹을 수 있는 것만을 걸러내고 내가 '하느님 나라의 비밀'이라 일컬었던 대부분을 '흘려보내' 버렸다... 성전에 희생제물을 바치면 '죄의 징벌에서 구원받는다'는 유대교 믿음을 보전하기 위해 예수라는 인간은 십자가형으로 인간의 죄를 대속한 '궁극의 제물'로 채택된 것인데 당시에는 이 믿음이 여러모로 유용했던 것이다. (33~34쪽) -- ..

사람의 아들이란?

복음서에 의하면 나는 하느님의 독생자로 일컬어졌다. 그렇다면 나는 왜 종종 나 자신을 일러 사람의 아들이라고 했을까? 나는 나의 신성에 대한 만연한 믿음에 반하여, 그리고 내가 그들과 똑같이 육신으로부터 나온 존재라는 사실을 사람들의 마음에 각인시켜주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그렇게 말했던 것이다. 나는 그들이 오직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알고 내가 가르치는 대로 올바로 사고하고 올바로 행동하기만 하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그들도 또한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만들려고 애썼다. 나의 인격과 내 영적 의식을 중심으로 너무나 많은 신화가 생겨서 이제는 그것을 가능한 한 완전히 없애버려야 할 때가 됐다. 바로 그것이 사람들을 영적으로 진화해가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31쪽)-- 복음서를 쓰는 이..

더 높은 이상

너희 나날의 삶 속에서 실현되도록 애써야만 할 더 높은 이상이 있다는 사실이 널리 받아들여져야 한다. 육신의 세계가 절멸로부터 구출될 길은 오로지 더 높은 이상을 실현하는 길밖에 없다. 너희 자신을 위해서나 세계를 위해서나 이 이상이 없이는 영적 진화도, 열망하는 것의 성취도 있을 수 없다. 현재로서 삶에 대한 너희 인식이란 고통과 궁핍뿐이다. 그런 믿음은 너희 TV를 통해서 경악스럽게 묘사되고 강화되고 있다. 그 믿음들이 훗날 너희가 결단코 바라지 않는 불행을 가져올 것이다. 그러니 대중매체와 TV를 통해 표현되는 너희 자신의 어리석음으로부터 너희를 구하려면 인간 의식이, 내가 광야에서 보았던 것, 즉 모든 존재의 내면과 배후에 있는 사랑의 실상을 볼 수 있도록 신속히 고양되어야 한다. (28쪽) 존재..

삶의 영구적 변화

- 너희 의식을 변화시키지 않는 한 너희 삶에 영구적 변화를 일으킬 수는 없다. 그러니 사람은 조건없는 사랑을 성취하기 위해 시시때때로 기도하고 노력해야만 한다. (21쪽) 그리스도는 이 편지를 통해 풍요와 기쁨, 환희와 모든 필요가 충족될 것은 물론 신 의식에게서 넘치는 축복을 받을 것이라는 것을 약속하십니다. 또 여기서 말하는 '존재의 진실'을 이해하고 받아들여 실천하면 고통과 스트레스를 벗어난다고 하십니다. 또 지구상의 진화와 인류의 조화와 행복이 모두 인간 의식의 진화에 달려 있다고 하십니다. (이상 17쪽 참조) 오늘날의 성장과 발전은 기독교의 형제애 실천, 주일 지키기 등에 힘입은 바 크지만 이제 그 가르침의 오류로 인해 한계에 다다랐다고 합니다. 개인이 체험하는 모든 것은 개인의 의식에 달려..

그리스도의 약속

오늘부터 책 원문에서 한두 구절을 골라 묵상하도록 하겠습니다. - 이 편지가 심금을 울리는지 아니면 가짜라고 느껴지는지는 독자가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 나는 내가 받은 것을 적었고 그것이 검증되도록 대중 앞에 내놓기 위해 노력했다. 이후에 일어날 모든 일은 순전히 편지를 읽은 독자와 그리스도 의식 사이의 일이다. 그리스도는 편지글이 독자의 마음과 그리스도의 마음 사이에 연결고리를 형성할 것이며 독자가 글의 배후에 숨은 깊은 의미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임을 약속했다. - 정말로 중요한 것은 편지를 일러준 이가 영적 의식 속에서 평형상태(Equilibrium)의 관문까지 상승한, 그러면서도 개체성의 세계와 접촉을 유지하기 위해서 아직도 개체성을 지닌 진짜 그리스도임을 독자가 느낄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대승과 소승

대체로 그리스도 탄생 이전의 영성은 소승인 반면 페르시아 군사도로 양끝에서 발생한 기독교와 대승불교는 소승에서 터득한 높고 깊은 경지를 세상과 나누고자 한다는 점에서 대승이라 지칭합니다. 다음 글이 대승과 소승의 차이를 아름답게 표현했길래 가져옵니다."은둔수도자처럼 잠시 동안 절대적 사랑과 고요의 광채 속에서 쉬고 너희 힘으로 영원하고 멋진 세상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는 것은 장엄한 일이고 굉장히 정신이 고양되는 일이긴 하다. 거기에서 너희 마음은 우주적 지식의 초월적 양상에 참여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삶의 참된 목적은 아니다. 이승에서의 너희 참된 목적은 사언행위와 욕망으로 너희 존재의 근원인 을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편지, 15번째 논설)"제가 볼 때 대승적 실천을 한다고 해서 소승에서 누..

소아 포기

현대 서양말로 된 영성을 읽으면 자동적으로 거기에 대응하는 우리 영성이 떠오릅니다. 소아를 극복하려는 것은 하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데 있습니다. 즉 극기복례(克己復禮) 하는 목적은 그 어느것에도 걸리는 게 없이(從心所欲不踰矩) 사랑과 평화를 누리기 위함입니다. 이 일은 평생이 걸리는 일이고 사람들을 접하면서 느끼는 불편함(discomfort)은 모두 내 속의 버려야 할 무엇을 알려주는 신호입니다. 감정이 긍정의 밀물을 보일 때 자만하기 쉬운 반면 썰물때 신께 의지하게 해주니 모든 기회를 잘 활용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아버지-생명'에게 완전하고 진지하게 자신을 바치면 영적 세계와 영혼 사이에 놓인 장애물이 사라진다. 그 모든 신적 생명이 사람의 몸과 마음, 체험과 인간관계 속으로 흘러..

편지를 통한 그리스도의 소명

- 2천년 전 예수는 부족 수준의 신 의식이 완전히 오류라는 것을 가르치다가 반발을 사서 죽었다. 징벌을 얘기하여 두려움을 일으키는 신 개념은 세속적 통치용이다.- 모든 이의 운명은 천국을 향한 상승 행로를 가는 것이다.- 편지를 통해 설파하려는 것은 창조원리를 이해시켜 지속되는 실패를 성공으로 바꿔주려는 것이다. 특히 일체는 진동주파수이며 에너지이고 의식이므로 사물의 진동을 바꾸고 새 의식을 주입하면 사물은 바뀐다. 따라서 필요한 것을 시각화해서 전심전력 믿으면 현실화된다.- 또 아무 생각이 없을 때 생각을 조심해야 한다. 특히 비판과 판단을 하면 그것은 되돌아온다. 타인에 대한 바람이나 통제되지 않은 감정도 조심해야 한다. 파괴적인 생각이 파괴적인 결과를 부르기 때문이다. 다른 이들에 대한 태도와 생..

에고에서 해방된 사람

그의 일상 속으로부터 오로지 찬양과 감사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텅빈 마음을 지닌 밝아진 영혼(enlightened soul)이 잠을 깰(wake up) 것이다. 결국 그는 자신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일거리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그 일을 행할 의욕과 에너지를 지닌 것에 감사를 올리면서 마음 속에 아무런 저항도 없이, 시작의 망설임도 없이 그것을 행하러 나설 것이다. (526쪽) -- 어제에 이어 '에고로부터 해방(freedom from the 'ego')'을 성취한 사람의 상태를 설명합니다. 신의 현존인 참나는 우리의 에고에 가려져 있기 때문에 에고만 치우면 신성이 그대로 드러난다고 스승들은 가르칩니다. 마치 구름이 벗겨지면 태양 빛이 환해지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그 상태와 가장 ..

명상 기도 해설(2)

기도는 다시 한 번, 신성이 완전한 사랑이며 우주적 지성이어서 창조 법칙과 작용의 주체이시고 또한 우리를 완전히 받아들이시며 보호하고 지켜주신다는 것을 반복합니다. 스승들 용어로 하면 모든 드러난 것(manifest)과 그 배후(unmanifest)가 모두 신입니다.또한 이 명상과 기도를 통해서 신께서 우리에게 직접 말씀해주시기를 기원하며 우리 생각은 신성에 집중합니다. 그것이 마치 탐조등을 비추며 신을 찾는 행위와도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꾸준히 노력하는 동안 바깥 사물로 향하던 우리 마음은 더욱 신을 받아들이기 쉽도록 변하며 신은 우리가 느낄 수 있도록 마음과 심장으로 다가오신다는 것입니다. 즉 신을 만나는 일은 상호작용임을 암시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온 존재와 매 순간의 삶 모두를 신의 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