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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운
'종심소욕불유구'로 가기 위해, 유교와 불교 및 기독교 영성을 공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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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03 04:30 단상

조카 녀석이 카톡으로 신년 인사를 하길래 제 아이들에게 하는 똑같은 말을 해주었습니다. "네가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게 바로 효도요 충성이다." 그런데 구체성이 없어서 이곳에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누구나 '다 안다'고 여기는 통속적 가르침에는 구멍이 많기 때문입니다.

훌륭한 사람이란 세상에 도움이 되는 선한 일만 하는 것을 넘어 의식이 매일매일 향상해서 그야말로 거룩한 경지까지 가야 합니다. 매번 반복하지만 학교를 포함한 세상의 가르침은 사회에 잘 적응하고 에고 관점에서 뛰어난 인간이 되는 데 그칩니다. 종교도 대부분 영적 에고에 사로잡혀 낮은 수준에 갇혀 있습니다.

그러니 먼저 명상을 해야 합니다. 명상을 어렵게 여기고 또 '각을 잡고' 배우거나 가르쳐야 한다는 것도 벽을 만드는 일입니다. 홀로 고요히 시간을 내면 충분합니다. 처음에 잘 안되면 경전부터 읽고 영감으로 해석하는 일을 꾸준히 하는 것입니다. 어떤 경전을 읽어야 할지 모르면 '그리스도의 편지'를 권합니다.

명상은 생각과 느낌으로 신성을 깨닫고 그 도움을 받으려는 일입니다. 도움을 받아서 에고를 이해하고 통제하는 훈련을 꾸준히 함으로써 에고에 전혀 휘둘리지 않고 신성의 도움으로 훌륭한 인간이 되려는 노력입니다. 왜냐하면 에고로써 에고를 닦는 노력은 지적 에고나 영적 에고만 키워서 실패하기 때문입니다(以情止情 是乃大情, 복성서 2절).

그렇게 평생 노력해서 지상에서부터 천국에 들어(=세상을 가운처럼 걸치고 삶=여래의 집안에 태어남) 세상 모든 생명에 대해 무조건적 사랑(친절)을 끝없이 베풀다가 명이 다하면 즐겁게 기꺼이 가는 것이 삶의 목표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는 이 길의 초입에 들어섰으며 굼벵이처럼 아주 조금씩 나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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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목운
2017.12.29 07:07 호킨스 방하착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과 바라는 것이 이뤄지는 것을 막는 것은 무의식적인 죄책감과 왜소감이다. 특히 무의식은 우리에게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것만을 성취시킨다. 우리의 부정성과 왜소한 이미지에 매어 있을수록 우리는 자신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게 되며 다른 사람에게 쉽사리 흘러들어가는 풍요함을 무의식적으로 누리지 못하게 된다. "가난한 자는 더 가난해지고 부자는 더 부자가 된다."는 말이 생기는 원인도 거기에 있다. 

자신을 왜소하게 보면 우리는 가난이 마땅하다고 여기게 되고 무의식은 그것을 반드시 실현시켜준다. 우리 왜소감을 버리고 내면의 무구함을 재확인하게 되면, 그리고 우리의 관대함, 개방성, 신뢰할 만함, 자비와 믿음에 대해 거부하지 않게 되면 무의식은 자동적으로 삶의 환경을 재조정하기 시작하여 우리 삶에 풍요가 넘치기 시작한다. (112쪽)

-- 우리가 왜소한 존재며 규제받아야 하고 교육받아야 한다는 생각은 세상의 프로그램입니다. 기독교 교리에서나 우리나라 전통 사상에서나 우리 본질은 하늘의 자식이라는 것입니다. 그 위대성을 실현하는 교육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경영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프로그램에서 벗어나는 길은 명상을 통해서 자신의 무한한 자원에 접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내면의 천국(루가 11:21)을 실현하는 길은 간단하며 오직 운동선수처럼 매일 훈련하는 것이 비결입니다. 제가 실천하는 방법은 '그리스도의 편지'에 나오는 명상과 의식정화법입니다. 

부교재로 여기는 것이 한달여 이곳에 올리는 호킨스 님의 '내려놓기'입니다. 세상의 프로그램을 제거하는 길은 감정을 완전히 다루는 것이며 저급한 감정을 버리는 데 있습니다. 물론 다른 방편을 취할 수 있겠지만 핵심은 같다고 생각합니다. 바이블도 분명히 자기를 부인하는 것(마태 16:24)이 답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때 자기란 소아(小我)이며 하늘의 자식이라 할 때 말하는 '참나'와 구별됩니다. 더욱 인상깊은 것은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을 영문 성서는 잊는다(forget)고 하여서 동아시아 사상에서 수행방편으로 높이 평가하는 좌망(坐忘)을 연상시킨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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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목운
2017.12.28 04:34 호킨스 방하착
분투노력하는 낮은 의식의 성취 방법과 우리가 욕망을 인정하여 놓아버린 높은 의식 상태를 비교하자. 욕망을 버려서 자유롭게 된 상태에서는 우리가 선택한 것이 삶에서 수고노력 없이 드러난다. 욕망의 감정을 버리는 대신 목표를 선택하여 그것을 사랑스럽게 그려보고 그 일이 생기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이미 우리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미 우리 것이냐고? 낮은 의식 상태에서 우주는 부정적이고 좌절을 안기고 망설인다. 마치 수전노 같은 부모 모습이다. 높은 의식 상태에서는 우리 체험이 달라진다. 우주는 베풀고 사랑에 차 있고 무조건적으로 허용하는 부모와 같아서 우리가 바라는 모든 것을 우리가 가지길 바라며 따라서 청하는 모든 것이 우리 것이다. (108~109쪽)

-- 오랜 시간 규칙적으로 명상하여 우리 안에 있는 신 의식의 뜻에 주파수를 완전히 맞추고 있을 때 우리는 높은 의식 상태를 누리게 됩니다. 물론 짧은 시간에 간절히 기원해서 같은 결과를 얻을 수도 있습니다. 시크릿을 비롯해서 온갖 무속적 기복이 통하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진심으로 신 의식의 뜻대로 인간 의식을 운용하려는 대승의 자세를 뚜렷이 가질 때 거기에 비로소 천국이 임하고 보살의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이 제가 배운 결론입니다. 그때 우리 삶의 모든 열매는 에고 만족이 아니라 오직 하늘의 영광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루시퍼적 타락에 빠지지 않을 것입니다. 마라톤 완주의 비결은 누구나 알지만 실천하는 사람은 적습니다. 그 비결은 매일, 또는 최소 이틀에 한번 단거리 달리기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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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목운
2017.12.27 06:49 호킨스 방하착

사실은 무언가가 우리 삶에 일어나는 것은 우리가 그것을 선택한 결과다. 그 일은 우리 의도에 기인한 것이다. 즉 우리가 결단한 것이다. 그 일은 우리 욕망에도 불구하고 일어난 것이다. 실로 욕망이란 무언가를 성취하거나 습득하는 데 장애물이다. 욕망이란 말 그대로 "나는 지금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108쪽)

-- 일찌기 제가 읽은 자기계발서는 '이기려면 버려라'는 책이었습니다. 지속적으로 그런 책들을 읽었지만 항구한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것은 신 의식을 인간적 욕망의 추동을 위해 활용하는 데 그쳤기 때문입니다. 호킨스 님의 책 '놓아버림(Letting Go)'은 내면의 천국(루가 17:21)인 신 의식에 안착하기 위해 에고를 철저히 이해하고 버리는 방법을 매우 낮춘 눈높이에서 말하고 있다는 점이 장점입니다.

완전한 침묵 속에서 만나는 신 의식(Divine Consciousness) 또는 공적영지(空寂靈知)에는 부족함이 없이 모든 것이 갖추어 있습니다. 우리에게 참으로 필요한 것은 가장 필요한 때 충족된다는 것을 제 체험으로 증언할 수 있습니다. 말 그대로 우리 안의 천국은 이미 보장되어 있습니다. 에고를 완전히 이해하고 신 의식의 힘으로 신 의식의 뜻대로 운용할 수 있을 때 필요한 것이 내게 이뤄지는 모습을 추호의 의심없이 그려보면 바로 성취될 것입니다.

호킨스 박사는 직업상 뉴욕에 필요한 집을 세세히 그려보고 집착없이 맡겼더니 그려본 대로 이뤄진 경험을 진술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한두 가지 그와 비슷한 체험이 있을 것입니다. 필요한 것은 의도와 선택[결단]이며 완전한 믿음이기에 매일매일 신 의식에 합치하기 위한 수행(극기복례)을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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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목운
2017.12.25 06:44 호킨스 방하착

계속 내려놓기를 하고 점점 경쾌해지며 자유롭게 되면 불행하게도 우리가 사는 세상이 게잡이 통과 같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어서 세상에 부정성이 널리 퍼진 것이 자명해진다. 우리에게 팔려온 온갖 것들에 대한 청구서를 완전히 알게 되면 화가 나고 그러한 부정성의 제약에서 벗어나려는 강한 욕망을 느낄 가능성이 매우 크다. (106쪽)

-- 두려움의 변형인 죄책감을 설명하는 마지막 부분입니다. 게잡이 통을 보면 게들이 탈출하려는 것을 다른 게들이 붙잡고 늘어지는 것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끝없이 죄책을 부추겨서 사람들을 부정성의 감옥에 가두고 죽는 날까지 교회에 출석해서 비용을 지급하게 합니다. 학교는 시험에만 쓰는 지식 경쟁에서 탈락하면 의식주를 보장 못한다고 위협함으로써 테일러 시스템의 부품을 생산합니다. 직장은 사람들의 죄책감을 부추겨서 언제나 해고 위협 속에서 야근을 하고 주말을 반납하게 합니다. 

미디어는 불필요한 의료 지식을 계속 속삭여서 조금만 이상해도 병원과 약국을 들락날락하게 만듭니다. 거듭 말하지만 오직 성장과 사랑이 창조의 근본 원리입니다. 죄책감과 표리를 이루는 징벌에 대한 두려움은 어릴 때 수없이 들은 '그 길(또는 그 곳)에 마구 다니면 [이러저러 해서] 죽어!'라고 외치는 세뇌의 변형일 뿐입니다. 모든 문제를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는 '주인공(眞人, 眞我)'께 가져가 해결하고 세상이 입력한 모든 부정성을 하나하나 버리는 게 의식 성장의 비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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