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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심소욕불유구'로 가기 위해, 유불선과 기독교 영성을 공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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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31 19:37 그리스도의 편지
에고에 대해 죽기(dying to self)는 성서에는 소아를 잊기(forget self)로 되어 있죠. 524쪽에는 '에고로부터의 해방'이란 말을 쓰고 있습니다. 이 말은 제가 열심히 소개하는 기적수업 번역본 제목과도 일치합니다. 동시에 유교의 극기복례의 극기, 수기치인의 수기와도 맥이 같다고 봅니다.

기독교 신비주의 삼단계에서 신인합일로 가는 첫걸음이 거비정화인데 '아닌 것을 떠나서 깨끗이 한다'는 뜻으로 결국 에고를 죽음에 이르도록 닦아낸다는 속뜻을 가집니다. 각설하고 어제에 이어 공부의 마무리에 관한 말씀을 인용해 봅니다.

"에고로부터 해방을 성취한 사람은 어떻게 행동할까? 결국 그런 사람은 두려움이 완전히 없어진다. 어디를 가든지 보호받으리라는 절대적인 확신이 있다. 위험 가능성 있는 일을 겪게 되더라도 아무 탈 없이 빠져나올 것이다... 그는 어디에 있든지 모든 부정적 결과로부터 보호받는다. (524~525쪽)"

호킨스 박사는 본인의 체험에서 이 상태를 '무한한 보호, 무한한 안전(안심)'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모쪼록 저는 죽는 날까지 이 공부를 놓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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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목운
2016.05.21 19:58 그리스도의 편지
여덟 번째 아홉 번째 편지에는 일상생활에서 공부가 나아지는지, 즉 의식이 향상하고 있는지를 점검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이 공부는 끊임없이 의식을 성찰하고 인간관계에서 그 메아리가 어떻게 울려 나오는지 점검하는 게 핵심입니다.

공부의 요체는 수없이 반복되지만 470~417쪽에 의하면 (1) 에고 욕구 제거, 인간적 신념(호킨스 교재에서는 positionality) 해체 (2) 신적 실재(궁극의 실체)와의 접속 유지 또는 참나 정체성의 확연한 인식, 두 가지인데 이 둘은 동전 앞뒤와 같은 것으로 생각됩니다.

반복컨대 '편지'는 이승과 다음 생 이후 일관해서 추구할 목표에 대하여 지도와 나침반, 에너지가 곳곳에 적절히 준비돼 있는 완벽한 안내자(가이드)입니다. 골인점이 가까와졌는지는 자꾸 웃음이 나오는지로 점검하라고 아홉 번째 편지에 적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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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06 09:41 단상

20~21세기를 미국에서 살다 가신 호킨스 박사 텍스트와  8~9세기에 당나라에서 살았던 '이고' 님의 텍스트가 너무 똑같아서 번역을 했습니다. 제가 복성서를 공부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사랑은 햇빛과 같고 부정적인 생각은 구름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참나는 해와 같고 우리가 가진 모든 부정적인 생각, 의심, 두려움, 분노와 원한 등은 햇빛을 가리고 결국에는 빛이 가냘프게만 뚫고 옵니다. 


We might picture love to be like the sunlight and negative thoughts like the clouds. Whereas our higher, greater Self is like the sun, all the negative thoughts, doubts, fears, anger, and resentments that we hold dim the light of the sun and, finally, the light comes through only weakly. David R.  Hawkins, Letting Go: The Pathway of Surrender (p. 94). Veritas Publishing. Kindle Edition." 


"기쁨, 분노, 슬픔, 두려움, 좋음, 싫음, 욕망의 일곱가지가 모두 에고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에고는 이미 어두운 것이기에 참나를 가리는 것은 참나의 탓이 아닙니다. 저 일곱가지가 돌아가며 차례로 돌아오니 참나가 충만하지 못합니다. 


喜怒哀懼愛惡欲七者, 皆情之所爲也. 情旣昏, 性斯匿矣, 非性之過也. 七者循環而交來, 故性不能充也."


※제가 이 블로그에 복성서를 번역하고 있습니다. 참고하시고 도움 말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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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목운
2016.03.28 06:50 단상

복성서를 공부하는데 역경(주역)의 인용이 많아서 역경을 공부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엊그제 거론한 윤재근 님의 '한권으로 읽는 주역'이 적당해 보입니다. 마침 읽는 책에서 역경에 대한 소개가 있어 인용해 봅니다. "제비를 뽑아 괘를 정하는데 그 전에 다음과 같은 질문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것은 '언제 이 일을 하는 게 좋을까?', '지금대로 계속해야 하는가?', '성공할 것인가?', '이 상황에서 벗어나는 길은 무엇인가?' 등이다."


이 대목에서 퍼뜩 떠오르는 게 기적수업에서 가르치는바 '무슨 일이든 신과 상의하고 할 것'과 호킨스 님의 근육측정 방법입니다. 이 가르침들의 바탕에는 인간 에고가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 또 인간 에고는 거시 맥락을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영성의 추구는 신의 뜻을 알고 그대로 표현하며 살고자 하는 데 있습니다. 높은 영성이란 에고 없음이고 에고 없음은 사사로움이 없고 마치 인공 지능처럼 감정의 영향도 받지 않는 상태입니다. 그때의 의사결정이 신에게 나온 결정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각나는 게 이순신 장군이 전투 전에 꼭 괘를 뽑아보셨다는 말입니다. 봉우 선생에 따르면 이순신 장군은 조선 최고의 영성으로 꼽히는 구봉 송익필 선생의 제자입니다. 구봉 선생은 재야 인물이지만 율곡과 퇴계가 언제나 자문하거나 하수임을 자인했다는 구전이 있습니다. 요컨대 제가 직감하는 것은 '점이란 높은 의식 수준에서 나오는 행위'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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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22 06:37 그리스도의 편지

신 의식이 가볍게 주입되는 경험을 한 적이 있는 진화된 영혼은 그 체험이 너무나 아름답고 영광스러워 결코 잊을 수가 없지만 그것을 말로 온전히 형언할 수 없다고 보고한다. 그 체험은 마음의 진동주파수가 이미 높아져 있어서 의식 전체가 신 의식의 빛으로 채워질 때 가능해진다. 그것은 지능이나 뇌세포보다 '느낌'과 관계된 어떤 상태다. (300쪽)

= 신비가들의 체험에 대한 진술이죠. 호킨스 님도 증언하듯이 수행은 선택에 있어서는 양이지만 진행에 있어서는 수동적이란 의미에서 음입니다. 지속적인 선택과 결단으로 내어맡기며 깨어 기다리는, 어쩌면 길고 지루한 과정입니다. 

그것은 바이블에서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의 모습과 흡사합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내면의 기쁨이 샘솟듯하기 때문에 끝까지 가게 되는 것이고 모든 스승들이 얘기하듯이 이번 생에 쌓은 만큼 다음 생에 높은 근기를 가지고 지속하기 때문에 결국에는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페이스북 '그리스도의 편지 읽기' 그룹에서 매일 한 구절씩 묵상하고 있습니다. 함께하실 분은 페이스북 해당 그룹에 가입신청을 해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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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목운
2015.12.29 06:58 단상
기독교가 내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한다는 생각에 불교 서적을 짬짬이 읽고 있다가 미국인 월쉬와 호킨스를 접하면서 교회 출석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호킨스를 통해서 양자역학과 첨단 물리학을 입문하였고 스티븐 데이비스의 '나비되기'를 만나면서 홀로그램 이론을 알게 됐습니다. 지난 10월에는 '그리스도의 편지'를 접하고 전자기학을 모르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첨단 물리학에서 우주론과 소립자와 표준 모델을 모르면 또 안됩니다. 이제 첨단 과학의 과제는 의식이라는 거대한 벽을 두고 이런저런 도전을 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존재의 근원이 무엇이며 창조의 가장 깊은 신비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구하는 노력입니다. 그러니 호킨스 같은 사람은 깨달음으로 가는 세가지 길¶ 가운데 하나가 첨단 물리학이라고 합니다.

부득이 기독교와 자기계발서, 그리고 영성과 수양서를 거치며 답을 찾아오던 제가 요즘은 물리학 공부에 재미를 들이고 책 한 권을 붙들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운이 닿아서 내년 말쯤 책이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한가지만 참고삼아 덧붙인다면 기독교 유신론(특히 구약)의 최대 오류는 신을 시공으로 끌어들여 논한 데 있다는 게 호킨스 박사의 논지입니다.

¶ 나머지 두가지는 신비가의 길과 방하착입니다. 신비가의 길은 대부분의 깨달은 분들이 취한 길로서 장기간의 침묵과 명상이 그 방법입니다. 방하착의 길은 제 블로그의 나비되기에 나오는 로버트 프로세스와 호킨스 님의 방하착이 있는데 우리를 사로잡는 감정을 최대로 느껴보고 내려놓는 것입니다. 그 모든 방법에서 중요한 것은 매일 끊임없이 참나 또는 신성을 향하여 깨어 있는 노력을 하는 것이며 유교 전통에서는 경(敬)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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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18 07:37 이 블로그는?

2013년초 개인적으로 큰 위기를 만났는데 유난히 마음에 와닿은 말씀이 선가귀감에 있는 '생사에서 자유케 되려면 탐욕과 애갈을 없애라'는 것입니다. 위기를 만나게 된 것은 덕과 지혜가 없기 때문이었고 덕과 지혜 결핍은 거짓된 삶이 원인이라고 직감했습니다. 즉 망가진 의식을 온전하게 가져가는 게 가장 시급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홍익학당 강의와 전에 읽던 백봉 선생 법어집 '도솔천에서 만납시다', '신과 나눈 이야기' 시리즈, 그리고 호킨스 박사의 깨달음 3부작 '내안의 참나를 만나다' 집중적으로 복습하며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2013년말 인천으로 이사한 후 기적적으로 직장을 잡아 일을 하면서 '기적수업'의 요약이라 할 수 있는 '에고로부터의 자유'를 2014년 상반기 동안 집중적으로 읽고 또 읽었습니다. 그러다가 호킨스 박사의 '실체, 영성과 현대인'를 읽었습니다. 그후 스티븐 데이비스의 '나비는 자유롭게 난다'라는 전자책을 읽는 김에 번역하게 되었습니다. 2015년에는 호킨스 박사의 '멸정복성(Dissolving the Ego, Realizing the Self)'을 번역해서 이곳에 전문을 올려두었습니다. 이어서 '방하착(Letting go ; The pathway of surrender)' 발췌해서 올렸습니다. 


2015년 10월에 우연히 '그리스도의 편지'를 만났는데 이 책은 그동안 간절히 구하던 기도에 대한 응답인 듯하여 십여차례 읽으며 실천하고 있습니다. 결국 제가 가장 중점을 두고 공부한 것은, 에고라는 것이 무엇인지와 어떻게 그 손아귀에서 벗어날 것인지에 대한 것입니다. 그것은 '에고로부터의 자유', '멸정복성', '방하착'의 핵심 주제이기도 한데 서양 영성의 거비정화(purification)와 동양 영성의 극기복례(克己復禮)에 해당합니다. 그래서 제 경험에 비추어 말씀드리면 이 세권 가운데 한권 이상과 '그리스도의 편지'만 읽으시면 크게 유익하리라 생각합니다.


주) '멸정복성'과 '복성서'의 경우 혹여 필요하신 분은 연락 주시면 파일을 보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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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목운
2015.11.20 18:23 그리스도의 편지

제 소견으로는 '그리스도의 편지' 171쪽에 나오는 하느님 나라, 소위 천국이라는 것에 대한 설명이 이 책의 핵심 중의 핵심인데 그 가르침이 호킨스 체제나 여타 신비주의 가르침과 다르지 않기에 제가 책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입니다.


즉 "천국이란 우리 영혼을 낳은 '아버지'의 것이 된 마음의 상태로서 이 상태에서는 '아버지'가 우리의 머리가 된다"고 합니다. 사실상 신이 우리 개체만을 빌려 자신의 뜻을 펴는 상태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창조 (또는 개체화) 과정에서 작동했던 소아(self, 에고)를 완전히 비우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마태오복음 16:24에 도식화되어 있습니다. 즉 "나와 같이 갈 사람은 자기를 잊고...나를 따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도 그렇고 교회에는 어떻게 자기를 잊는가에 대한 아무런 대책도 없고 제대로 가르치는 사람도 없습니다. 물론 이해해주자면 모든 사람이 일상과 직업에 매여서 예수처럼 사막에서 40일을 보낼 수 없다는 한계가 있지요. 편지는 여기에 대해 단호합니다. 소아에 대해 죽어야(dying to ego) 한다(510쪽)고 합니다.


하지만 최소한 '홍익학당'처럼 매 순간 신 의식(또는 불성)에 깨어서 6바라밀을 실천하기 위한 노력을 할 수 있는 매뉴얼 같은 게 있었어야 했습니다. 천주교에 비슷한 게 있지만 고백제도를 위시해서 끝없이 죄책을 불러일으키는 데 그치고 있으면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도 모릅니다. '편지'에 있는 대로 그게 (모르고 하는지 몰라도) 신도들을 붙잡아두고 다스리기 좋기 때문일 듯합니다.


어쨌든 천국의 '의식 상태'에 이르면 어떻게 되는지 기술한 171쪽을 더 정리해봅니다. "그것은 너무나 아름답고 거룩하지요. 그것은 사랑이고 자비로움이며 자신을 아끼는 것과 같이 다른 이들을 아끼는 것이며 다른 이들을 정확히 있는 그대로 받아들임으로써 심판하지 않는 것이며 그들 또한 '아버지'의 보살핌 속에서 동등한 '하느님'의 자녀임을 아는 것입니다."


이 상태는 '무조건적 사랑'의 상태이며 호킨스 체제에서 깨달음의 시작이기도 한데 에고만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하며 반드시 신의 인도와 도움으로 가능합니다. 제 소견으로는 그것은 목표삼을 무엇이라기보다 의식 상승(깨달음)의 결과 따라오는 효과처럼 생각됩니다. 그래서 스승이 필요한 것이고 '편지'와 같은 책이 필요한 것입니다.


실상 나와 남의 구분이 없이 황금률을 실천하는 것,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과 심판하지 않는 것 -- 이것을 이루는 게 천국에 드는 것입니다. 참으로 단순한데 제 60년 삶을 볼 때 내 힘만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체득했기에 오직 기도와 명상으로 매어달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 핵심에 멸정복성(또는 去非淨化, dissolving the ego)과 방하착(letting go)이 있습니다. 우리는 진기한 무엇을 찾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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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02 14:03 단상
공부할수록 확실해지는 게 그리스도께서 가르친 길은 불교의 보살이 되는 길과 같습니다. 불경도 편집자나 교단의 필요에 의해 이것저것 끼워넣고 왜곡시킨 게 있지만(유통분이라 함) 신약 성서에도 유태인으로서 기독교를 받아들인 자들이 전통 관념과 감성에 부합하기 위해 저지른 발췌, 편집, 왜곡이 있습니다. 이어서 왕권 국가의 필요에 의한 교리 획일화로 인해 재차 왜곡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두 종교가 같은 운명이었습니다.

각설하고 제 경우 60평생 살아온 생각대로 살면 그야말로 뻔한 결말이 예상됩니다. 그래서 화엄경의 보살도, 유교의 핵심 정신, 그리고 그동안 사숙한 호킨스 방하착에 더하여 '그리스도의 편지'가 공통적으로 얘기하는 '멸정복성(dissolving the ego and realizing the Self)'의 길을 가야 하겠다는 생각입니다. 이 길은 바로 그리스도의 길이자 보살의 길이며 많은 성현들이 갔던 길이기에 외로운 길이거나 신규 개척의 길도 아닙니다.

호킨스 박사에 따르면 골인 지점은 깨달음이며 그 가능성이 과거보다 1천배로 커졌다고 합니다. 위 가르침들의 공통 요소를 잘 추려내서 무술수련자들 내지 스포츠 선수들처럼 쉬지 않고 반복 훈련하면 결국 달인의 경지에 갈 수 있을 겁니다. 이승에서 성취해야 환생을 면할 수 있다니 더욱 열심히 해야 할 것입니다. 스승들은 길이 곧고 좁으니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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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7 18:13 그리스도의 편지

다음 인용문을 보세요. 


"너희의 의식을 변화시키지 않는 한 너희 삶에 영구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는 없다. 그러니 사람은 조건없는 사랑을 성취하기 위해 시시때때로 기도하고 노력해야만 한다.(그리스도의 편지 21쪽)"


호킨스 의식 지도상 조건없는 사랑은 540입니다. 기도와 그밖의 노력을 해야 하는 이유는 세상의 에고 의식이 장애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에고를 이해하고 놓아버리기(letting go)로써 그 장애물을 제거할 때 점점 신성 쪽에서 은총의 형태로 유입하여 효과적으로 의식이 상승하는 것입니다.


신의 본성은 조건없는 사랑이기 때문에 540에 이르렀을 때 우리는 신성과 일치하는 것이고 신 의식이 우리의 머리가 되어 모든 행동과 그밖의 삶의 모든 요소를 지휘합니다(위 171쪽). 그때 우리 존재는 나와 남의 구분을 넘게 되고 지극한 행복, 환희, 에너지 속에 있으니 모든 희망과 필요가 충족되기에 꼭 이름 붙여야 한다면 천국에 드는 것입니다.


에고 이해는 이 블로그의 '멸정복성'에, 놓아버리기는 '호킨스 방하착'에 정리되어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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