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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심소욕불유구'로 가기 위해, 유교와 불교 및 기독교 영성을 공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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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에 해당되는 글 7

  1. 2016.02.26 복성서와 탄허록
  2. 2016.01.20 너희는 혼자가 아니다!
  3. 2015.12.15 명상에 대하여
  4. 2015.12.13 명상과 환생
  5. 2015.10.29 영적 수행의 공통분모
  6. 2015.10.21 풍요 이상의 삶
  7. 2015.09.06 일상 속에서의 명상
2016.02.26 14:54 단상

제가 복성서와 탄허록에 집중하는 이유는 복성서를 지은 이고는 불교로 깨달음을 얻고 유교를 재해석하여 유교와 불교가 다름이 없음을 말하였고 탄허스님은 유학에 먼저 입문하셨다가 불교에서 깨달음을 얻어 유교와 불교가 같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탄허스님은 여말선초를 사신 함허스님과 같은 행로를 가셨는데 어쨌든 사실상 복성서와 탄허록은 똑같은 수행법을 말하고 있습니다.

일단 탄허스님을 인용하면 '성(性)이란 칠정이 일어나기 전의 면목이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자리로서 불교의 4덕, 즉 상락아정(常樂我淨)을 갖추고 있는데 이것은 유교의 인의예지와 같다(탄허록 181쪽)'고 하십니다. 또 그 자리는 선악이나 시비분별이 없어서 대학의 지선(至善)과 같다고 하십니다. 또 덧붙이시기를 불교에서는 허령불매한 자리라고 하시는데 지눌스님의 공적영지와 같다고 봅니다.

성의 자리를 유교에서는 중이라고도 하며 시간과 공간이 끊어진 자리이고 따라서 한 생각이 일어나기 전을 말하며 천하의 근본 또는 우주의 핵심체입니다(탄허록 187쪽). '서경'은 도심(道心, 人心에 대비하는 마음으로 참나에 해당)이 미약하므로 오직 도심에 집중(惟精惟一 允執厥中)해야 한다고 하는데 이것은 불교에서 언제나 참나를 의식하며 에고를 부려야 한다는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보면 요컨대 두 종교에 공통하는 바는 명상을 통하여 생각이 끊어진 참나 자리에서 세상 일을 경영하고 향유하자는 것입니다. 즉 안회는 심재(心齋)를 통해 무아를 깨치고 좌망(坐忘)을 통해 이원성을 초극하여 무한과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 대목은 '장자'에 기록되어 있으니 결국 유교가 불교는 물론 도교와도 상통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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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목운

<그리스도가 말한다>:

 

아직 내 <편지>를 만나지 못한 사람과 현재로선 그것을 읽을 이유가 없는 사람에게 다가가기 위해 나는 할 수 있는 한 너희가 쓰는 말로 말하기 위해 왔다.’

 

실상 내 <편지>는 팔레스타인에서 내가 가르친 것을 설명하며 창조의 기원에 대하여 더 많은 설명을 담고 있어서 수용적인 사람에게는 살면서 겪는 모든 어려움을 극복할 수단을 제공할 것이다.’

 

이 말이 억지 주장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이다편지는 물질 원소를 통제하여 무에서 음식과 물질을 창조함으로써 존재의 원자 상태에 대한 통제력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었던 참된 스승들이 알고 있던 정보를 제공한다나도 물질 원소를 통제했고 치유를 했고 필수품들을 창조했으며 내가 편지에서 공유했던 깊고도 비밀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렇게 할 수 있었을 뿐이었다.

 

내 메시지를 다른 사람들에게서 온 것들과 비교하지 마라.

 

모든 사람은 인생에서 독자적인 임무와 목적을 가지고 있다내 경우는 현재 처한 존재의 불안에서 너희를 끌어올려줄 정확한 수단을 너희에게 <독점적으로> 제공하는 것이며 다른 게 아니다따라서 내 메시지는 자주 반복되지만 그것은 그 길이 아무리 어렵게 보이더라도 너희가 <그리스도의 길>(<나의 길>)을 따를 결단을 하도록 고무하고 돕기 위한 것일 뿐이다너희가 올바른 길로 확실히 들어섰다는 것이 입증되는 보상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너희는 견딜 것이다.

 

그러나 온 우주가 전기적 입자와 자기(磁氣)의 상호작용을 통하여 드러난 <의식>(<알아차림>)이라는 것을 온전하고도 완전하게 깨달을 때 비로소 내 길로 들어설 것이다.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 편지가 이것을 모두 설명하고 있다그러나 읽는 것만으로는 너희가 스승이 되는 게 아니다진정한 스승은 모든 창조의 <기원><우주 의식>이며 <그것>은 모든 사랑과 지성의 신성한 근원이라는 것을 이해한다참된 스승이 되려면 우주가 생성된 노하우를 이해해야 한다<우주 의식>의 참된 본성을 긴밀하게 알아야 하며 에고의 충동에서 자신을 정화하여 자신의 마음과 감정에 있는 에고의 불순물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한다.

 

이렇게 생각과 감정 그리고 행동이 내면에서 정화된 상태에 이르러너희가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가질 수 있음을 완전히 알기 때문에가진 것을 하나도 남김없이남에게서 요구하는 게 아니라 주려는 열의와 의향을 가지게 되면눈에 보이는 피조물로 된 이 세계 안에 존재하는 창조 <충동>이기도 한 <신 의식>의 완전히 열린 통로가 될 것이다.

 

너희가 내면에서 그렇게 정화된 상태에 도달하면 기쁨과 평화그리고 무조건적 사랑이 내면에 가득한 상태에서 살게 된다너희는 생물계와 생물들이 접하는 어려움을 이해하고 모두에 대해 즉각적이고 자연스러운 사랑과 자비를 느끼게 될 것이다.

 

너희는 세상을 초월하게 될 것이며 절망과 두려움복수와 증오중상헐뜯기타인의 거절 등에서 기인하는 세상의 수많은 이기적 행위방종체험을 벗어날 것이다세상에서 겪는 이 모든 일들이 너희 주변에서 지속되더라도 직접 겪지는 않을 것이다너희는 그저 다른 이들에 대하여 끝없는 자비와 사랑을 느끼게 될 것이다너희는 그저 사람들에게 <존재의 진실><가르치려고> 열렬히 간구하고 염원할 것이다.

 

너희는 다른 사람들이 진리를 이해하고 모든 사언행위를 <진리>에 따라 살도록 도울 수 있는 모든 희생을 즐겁게 할 것이다그렇게 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집요하게 자기 방식으로 생각하고 느끼고 반응하고 감정이 내키는 대로 삶으로써 거기서 빠져나오고 싶어 하는 똑같은 비극을 더욱 만들어내기만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혼란스러운 생각과 감정적 반응의 늪에서 빠져나오는 길을 마침내 발견하면 이것만이 행복으로 가는 바른 길임을 알고 그들을 전에 고통과 비참에 빠지게 했던 생각과 감정의 습관을 극복하게 된 것에 대해 매우 다행스러워하고 감사할 것이다.

 

너희에게 말하는 이가 나 <그리스도>임을 이상하게 여기거나 의심하지 말라나는 기록자의 마음과 심장이 완전히 비워진 후에 너희에게 말하기 위해 왔으며 과거에 너희를 슬프게 하고 절망하게 했던 것들을 치우기 시작하는 데 필요한 것들을 말하기 위해 왔으며 매일 명상하고 너희를 세상에 태어나게 한 신 의식을 인간 의식으로 끌어들이기 시작할 수 있는 용기와 자극을 주기 위해 왔다.

 

무엇보다도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 너희가 노력하는 데 너희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기를 바란다너희의 생각과 감정의 습관을 바꾸는 싸움에서 너희는 혼자가 아니다신 의식에 더 의탁할수록 그것이 단 한순간만 이어진 것이라도 너희가 인내하고 <용기를 잃지 않으면> 더 더욱 너희를 고무하는 신의 지성과 사랑이 있는 새로운 삶과 순간을 너희 의식 속으로 가져오고 있는 것이다.


너희가 나를 찾으면 내 그리스도 의식과 만나서 드디어는 의문이 있을 때 내 대답과 안내를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너희 생각과 감정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 대한 부정적 반응을 정화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기억하라.

 

분노와 신랄한 비판과 거절반감과 짜증에서 나오는 깊고 어두운 감정을 없애고 나면 내 음성을 들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너희가 침묵 중에 명상할 때나 내면이 침묵하는 순간에 내 첫 속삭임을 듣기 위해서는 너희 의식이 바뀌어야 하고 자유케 되는 유일한 길이 <사랑>이라는 것과 그러기 위해 인내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완전히 이해해야 한다.

 

너희는 혼자가 아니다영적 각성과 신 의식의 가장 높은 단계로 올라간 우리는 너희에 대한 사랑만 있으며 우리의 가장 긴박한 소망은 너희가 고통에서 벗어나 과 지혜 그리고 무조건적 사랑으로 진보해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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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목운
2015.12.15 02:06 단상

이제 저에게 남은 공부 가운데 가장 중요하게 느껴지는 것은 다음 차원으로 건너가는 일이며 따라서 4대 성인과 수많은 스승들이 가르치신 것을 실천하는 일은 매우 시급합니다. 그 가운데 명상이 핵심이라 할 수 있는데 실상 이 일은 은퇴한 후 물보다 넘쳐나는 시간을 가장 잘 활용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각설하고 이제 인간 존재가 전자기적 존재이고 그 존재를 둘러싸고 에너지 장(場)이 형성되어 있다는 정도는 상식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또 읽어보면 우리 의식이란 게 진동주파수에 따라 높고 낮음이 있어서 수련과 집중을 통해서 그 주파수가 높을 때 고무되고 신명나는 상태가 되는 반면, 밀폐된 상태에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되는 대로 내버려두면 침울하고 신산해지기 마련입니다.

종합컨대 명상은 우리의 에너지 장과 진동주파수를 끝없이 상승시킴으로써 고요한 상태와 지혜를 구사할 수 있는 상태로 가는 노력입니다. 그래서 불가에서는 정혜쌍수 내지 지관을 핵심 과제로 보는 거지요! 그렇게 노력하다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신 의식 내지 참나가 주도권을 가지고 일하시기 때문에 걱정근심도 없고 원하는 바는 모두 이뤄지기 마련입니다. 관련해서 다음 문구를 참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무엇이 발생해서 드러나는 것은 선형적인 인과관계의 함수일 뿐 아니라 부분적 조건과, 인간 의식을 포함한 총체적 조건에 따른 확률의 함수인 것이다. '신성'의 권능은 무한하기 때문에 '창조'의 모든 것은 잠재성이 실제 존재하게 되기까지 지속적으로 진행하면서 표현되는 과정이다. 약한 장(field)에서 가능성인 것이 강한 장에서는 더 높은 확률이고 '무한한 권능'의 장에서는 확실성이다(Reality, Spirituality, and Modern Man, p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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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목운
2015.12.13 07:39 단상
제가 번역한 '해피포켓'의 뛰어난 점은 자기계발과 영성을 접목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책은 곳곳에서 명상을 하도록 권유하고 있습니다. 어떤 패러다임에서든 경계할 일은 영성과 같은 고차원의 노력이 세속적 성공 또는 에고의 영향력 확대에 기여하는 것에 그치면 그것은 결국 물질적 환원주의가 된다는 것입니다. 

명상을 할 때 드는 생각은 명상이란 몸을 벗은 후에 전념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을 미리 연습하는 것일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끝없이 더 높은 차원으로 날아오르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라 한다면 준비 부족일 때 몸을 벗고 나면 '앗차' 하는 마음에서 황급히 다른 몸을 빌어 지구로 다시 오게 되는 게 환생일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환생은 재수나 삼수를 닮았습니다. 붓다께서도 수많은 삶을 거치셨고 마하리쉬 님이나 호킨스 님도 여러 생을 거치셨다니 환생을 두려워할 일은 아니지만 세상에 태어나는 일도 귀한 일이라 하니 열심히 이 공부를 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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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9 08:03 그리스도의 편지

다섯번째 편지까지 두번 읽고 논설을 다 읽었습니다. 깊은 창조원리를 완전히 이해하려면 두어번 더 읽어야 할 듯하지만 한가지 되풀이되는 원리는 참으로 자명합니다. 즉 에고에 기반한 생각과 감정이 우리의 무한한 능력을 저해하는 원인이므로 그 힘에서 완전히 자유로와지는 게 급선무라는 것입니다(332쪽). 


이것은 모든 성현들이 얘기한 공통분모이기도 합니다. 유교의 극기복례도 이것을 말하는 것이고 기독교 신비주의의 거비정화도 이것을 말하는 것이며 호킨스 박사의 레팅고도 여기에 집중한 작업입니다. 이것이 성취되는 정도에 따라서 신 의식과 창조 권능이 우리 존재라는 통로를 통하여 온전히 구현되는 것인데 그것은 그야말로 무한한 가능성입니다.


이 작업은 '논설 15'에 있듯이 편지 5~8(특히 6의 21-24쪽[번역본 388~399쪽])의 신 의식에 대한 깨달음에 이르러야 가능하다고 합니다. 그 의식이 우리 마음과 심장을 채울 때 새로운 삶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합니다. 이것이 땅 위에서의 천국이라고 말할 때의 진정한 의미라고 합니다. 이것은 시크릿등에서 얘기하는 긍정사고만으로는 불가능하며(편지 275쪽) 존재의 근원 또는 궁극의 실체와 만남을 통해서 그리고 그쪽의 은총에 의해서(즉 혼자가 아님) 가능한 것입니다. 두어구절 직접 인용합니다.


"너희의 개체적 의식에서 부정적인 것들이 완전히 청소되면 너희는 자신도 또한 창조자인 '아버지' 의식의 정화된 통로가 되어 있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80쪽)"


"너희 존재의 근원과의 진정한 만남은 너희가 의식으로부터 거친 인간적 에고의 욕구를 충분히 닦아내고 일정시간 이상 명상을 하여 영을 접함으로써 존재를 새롭게 충전시키도록 애쓰면서 근원에 '가닿기를' 의식 속의 강력한 느낌으로써 규칙적으로 염원할 때만 경험된다.(2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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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1 13:47 그리스도의 편지

'그리스도의 편지''논설 12'에서는 풍요 이상의 삶이 무엇인지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참으로 영성의 길을 가지 않으면(즉 모든 존재에 형상과 의식을 부여하는 '그것의 실체[the Reality of That]'를 찾지 않으면) 에고의 지배적 권세 때문에 추락하여 자유치 못하게 된다고 합니다. 에고는 의식을 오직 자신의 행복과 생존에 몰두하게 하여 인간의 지각과 시야를 좁히기 때문입니다.

 

종교적 인식 또한 제한적인데 왜냐하면 그것은 소아를 넘는 비전을 제시하지만 신을 기쁘게 하지 않으면 죄라고 하는 의식을 심어주어 교회 출석자들을 구속하기 때문입니다. 행복, 성공, 꿈의 확장실현, 건강 등은 우리 안에 존재의 근원(생명의 근원)으로 새겨져 있기 때문에 올바로 구하기만 하면 모두 실현되는 것입니다. 조상때부터 전수된 심리구조, 믿음과 의견 들 속에 숨겨져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그 신화, 환상, 두려움, 절망, 고뇌, 번뇌를 벗겨내는 만큼 모든 것은 충족하게 실현됩니다.

 

특히 마음과 감정에서 과거 에고의 생각과 감정을 제거하는 만큼 번영과 기쁨과 충만을 누릴 것이라는 대목에서 방하착을 왜 해야 하는지를 다시 확인하였습니다.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니며 호킨스 박사도 강조하듯이 천국은 이미 우리 안에 있습니다. 모든 의심을 버리고 우리가 가지는 믿음만큼 크게 성취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가 이 시대에 다시 와서 말씀하시는 '풍요 이상의 삶'입니다.

 

다음에는 시크릿이나 여타 자기계발, 성공학에서 수없이 얘기되고 호킨스 박사도 강조하는 바인데 원하는 것을 마음에 명확히 그리라고 합니다. 다만 고요하게 명상 중에 신 의식(Divine Consciousness)에게 가져가서 청하고 받는 것에 대해 깊이 감사하는 게 비결입니다. 마치 모내기 한 논에서 벼가 익을 것을 한치도 의심하지 않고 수확하는 농부처럼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서의 '구하면 받고 찾으면 찾아지고 두드리면 열린다.'는 말씀이 새롭게 인식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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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06 08:09 단상
오늘 페이스북에서 이순신장군에 대한 인상깊은 글을 읽었습니다. 옮겨오면 "준비, 준비, 준비...훈련, 훈련, 훈련...점검, 점검, 점검... 이순신 리더십의 전부였다. 이순신을 구성하는 프랙탈은 활쏘기와 곤장이었다."는 것입니다. 해당분야만 바꿔 넣으면 위에 이순신 대신 김연아를 넣어도 말이 됩니다. 성공하거나 위인이 되는 비결이 이렇게 단순하다는 것을 우리 모두 압니다. 다만 실천이 안 될 뿐이죠! 명상도 마찬가지입니다.

명상은 세상 삶에 잘 적응하고 삶을 헤쳐나가는 일 뿐 아니라 인격과 품성의 향상, 더 나아가서는 신인 합일이나 궁극의 실체 체험을 할 수 있는 길임을 부인할 사람이 없습니다. 수천년 동안 책상다리를 하고 일상에서 단전호흡을 생활화해온 게 우리 전통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일상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방법을 제시한 글을 요약해 옵니다. 모쪼록 명상을 손에서 놓지 않아 커다란 의식성장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1) 조금 큰 점이라 할 수 있는 원형 스티커를 곳곳에 붙여 놓고 볼 때마다 눈을 감고 호흡에 집중함. 이때 감사와 사랑, 친절 같은 긍정적 염원을 함.

2) 공동생활을 피할 수 없다면 주변 사람들에게 (예를 들면 점심시간 같은 때) 함께 명상을 하자고 고취함. 물론 이것은 관리자 이상일 경우에 수월하겠죠!

3) 걷거나 달릴 때 내면으로 마음을 돌리고 호흡과 발걸음 등 반복적인 행동에 집중함.

4) 출퇴근시 대중교통을 기다리거나 운전할 때 깊게 호흡하면서 초조감을 줄일 수 있음.

5) 샤워, 이닦기, 옷 갈아입기 등 생략할 수 없는 일과 함께 마음챙김을 함.

6) 운전석 앉을 때 잠시 이완하고 호흡과 생각에 집중함.

7) 요즘엔 명상 어플이 꽤 나와 있습니다. 어플이나 유투브 명상 음악 같은 것도 좋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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