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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운
'종심소욕불유구'로 가기 위해, 유교와 불교 및 기독교 영성을 공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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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에 해당되는 글 6

  1. 2016.04.17 4절-3
  2. 2016.04.01 2절-3
  3. 2016.03.16 성인과 수기치인
  4. 2016.01.13 2절-2
  5. 2015.08.07 1절-2
  6. 2015.08.03 <상편> 1절-1 : 참나와 에고의 작용, 관계, 본질
2016.04.17 05:47 복성서

“사람의 참나가 모두 선한데 에고의 어긋남으로 어두워지는 것이라니 감히 묻습니다. 성인의 참나는 더 이상 에고의 욕심으로 흐려지지 않습니까?” “다시 흐려지지 않습니다. 에고는 본래 어긋나 있고 허망합니다. 어긋나고 허망한 것에 원래 근원이 있지 않습니다. 그 때문에 보통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지 알 도리가 없으나 성인은 이미 참나를 찾았습니다. 에고의 행태가 어긋난 것임을 알고 그 어긋남을 깨달은 바가 뚜렷합니다. 깨달아 어긋남이 없으니 어디서 어긋남이 나오겠습니까? (問曰 人之性本皆善, 而邪情昏焉. 敢問. 聖人之性, 將復爲嗜欲所渾乎. 曰. 不復渾矣. 情本邪也, 妄也. 邪妄無因, 人不能復, 聖人旣復其性矣, 知情之爲邪, 邪旣爲明所覺矣. 覺則無邪, 邪何由生也.)


이윤이 말했습니다. ‘하늘의 진리란 먼저 깨달은 사람이 그 앎으로써 자신이 깨달은 후에 사람들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나는 사람들 가운데 조금 먼저 깨달았으니 이 진리로써 사람들을 깨닫게 할 것입니다. 나 말고 누가 이 일을 하겠습니까?’ 만약 다시 에고의 어리석은 욕심에 빠진다면 아직 깨닫지 못한 것이니 어떻게 다른 사람들을 깨닫게 하겠습니까?” (伊尹曰. 天之道, 以先知覺後知, 先覺覺後覺者也. 予天民之先覺者 予將以此道, 覺此民也, 非予覺之而誰也. 如將復爲嗜欲所渾, 是尙不自覺者也, 而況能覺後人乎.)


자습노트)

이윤(李尹)은 은거생활을 하고 있었으나 탕왕이 삼고초려하여 등용한 후 걸왕을 토벌했다고 합니다. 요순과 더불어 할 수 있다고 하여 성인의 경지에 이른 것으로 보기 때문에 그의 말을 인용한 것입니다. 전체적으로 깨달음이란 선각자이자 성인인 사람들을 통하여 전해지며 한번 깨달은 사람은 다시 후퇴하여 에고 상태로 살지 않게 된다는 것을 강조하는 구문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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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목운
2016.04.01 20:24 복성서

이르기를 감히 묻습니다. 참된 앎에 이르려면 먼저 사물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고 하는데 그것은 무슨 뜻입니까?” 하여 답합니다. “사물은 모든 것을 말합니다. 즉 무슨 일이든 닥쳐올 때 마음을 맑게 하고 자명하게 판단하여 그 변하는 것을르지 않는 것을 참된 앎이라 하며 투철하게 아는 것이라고 합니다. (曰. 敢問. 致知在格物, 何謂也. 曰. 物者, 萬物也, 格者, 來也, 至也. 物至之時, 其心昭昭然明辨焉, 而不應於物者, 是致知也,)


앎이 투철해진 때문에 의식이 온전하며 의식이 온전한 때문에 마음이 바르고, 마음이 바른 때문에 몸이 닦이고 몸이 닦인 때문에 집안이 가지런해지며, 집안이 가지런해지기 때문에 나라가 다스려지고, 나라가 다스려진 때문에 세상이 평화롭게 되는 것입니다이것이 비로소 창조의 권능에 참여할 수 있는 성인의 경지입니다. (是知之至也. 知至故意誠, 意誠故心正, 心正故身修, 身修而家齊, 家齊而國理, 國理而天下平. 此所以能參天地者也.)


주역(系辭上傳)에 이르기를 성인의 행실이 우주의 도리에 맞기 때문에 하늘의 뜻을 거스르지 않고 지혜가 만물에 두루 미쳐 진리로써 구제하기 때문에 어긋남이 없습니다. 빗나가 흐르지 않고 하늘의 뜻을 즐거이 따르기 때문에 근심이 없습니다. 본분을 지키고 어짊이 두터우니 능히 사랑할 수 있습니다. (易曰. 與天地相似, 故不違. 知周乎萬物而道濟天下, 故不過. 旁行而不流, 樂天知命, 故不憂. 安土敦乎仁, 故能愛.)


세상을 기르고 지탱하면서 실수가 없고 빈틈이 없습니다. 음양운행의 이치를 분명히 알아 모르는 바가 없어 성인은 그 변화를 헤아리기 어렵고 일정한 모습도 없습니다. 한 번의 양과 한 번의 음이 합쳐서 도를 이룬다는 것은 이것을 말합니다.'“ (範圍天地之化而不過, 曲成萬物而不遺, 通乎晝夜之道而知. 故神無方而易無體. 一陰一陽之謂道, 此之謂也.)



자습노트)

세상의 경영, 자비의 실천이 모두 의식의 온전함에 달려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에고의 욕망에 휘둘리지 않을 때 비로소 사물이 변하는 대로 또 세상이 끄는 대로 따라가지 않고 세상을 경영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의식이 맑고 투명하여 언제나 하늘의 뜻에 순명한다면 하늘의 권능에 참여하는 성인의 경지에 갈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태극과 무극에 음과 양의 창조 추동력이 이미 내재하고 있으니 거기에 맞추는 것이 창조의 권능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오직 에고를 잠재운 상태에서 하늘의 뜻을 분명히 인식하고 다시 에고를 사용하여 실행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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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목운
2016.03.16 06:38 단상
주마간산 유교(유학)에 대해 공부하는데 참으로 깊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부분의 서양인들이 기독교의 껍데기만 붙들고 살아서 세상이 시끄럽듯이 조선 말기와 왜정을 거치면서 유교의 근본정신은 끊어지고 제사행위등 껍데기만으로 살아왔기에 더 그렇게 느끼는지 모릅니다.

어쨌든 유교는 맹자 이전과 이후로 크게 갈립니다. 즉 맹자 이후 적자지심(赤子之心)으로 사는 이를 성인으로 보며 성인은 범인과 구분이 없고, 거기에 이르는 비결은 정(情)을 제압하여 성(性)으로 사는 데 있습니다. '유교넷'에 따르면 이 비결을 집대성한 이가 이고(復性書), 주돈이(太極圖說), 주희(性理大全)입니다.

그런데 노자와 예수께서도 적자지심을 중요하게 보셨습니다. 생각해보면 갓난아이에게는 '나'라는 게 없으며 5~6세 아이치고 신동이 아닌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다만 세상이 그들을 견디기 힘들어 적응이란 이름으로 훈련시킬 때 적자지심을 잃어버리는 게 현실입니다. 그래서 성으로 정을 다스리고 세상의 언어로 말하며 세상 일을 완벽히 경영하는 게 수기치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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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목운
2016.01.13 11:47 복성서

주역(乾卦 文言傳)에 이르기를 "무릇 성인은 그 덕이 천지에 부합하고, 그 밝음이 해와 달과 같으며, 그 질서는 사계가 바뀌듯 하고 길흉의 징조를 통찰하는 데는 신령과 같으니 하늘보다 앞서 가도 하늘에 어긋남이 없고 하늘을 뒤따르면 그 뜻을 받드니 어떤 사람이나 신령이 그의 뜻을 어길 수 있으랴? 그 모두가 몸 밖에서 얻는 게 아니고 참나가 모두 드러나 발휘된 것일 뿐입니다." (易曰, 夫聖人者, 與天地合其德, 日月合其明, 四時合其序, 鬼神合其吉凶. 先天而天不違, 後天而奉天時. 天且弗違, 而況於人乎, 況於鬼神乎, 此非自外得者也. 能盡其性而已矣.)


자사가 말하길 "오직 하늘과 땅에 숨김이 없을 때 그 참나가 모두 발현하는 것이니 참나가 모두 발현하면 다른 이의 참나가 발현할 것이고 다른 이의 참나가 발현하면 사물의 본성이 발휘되고 사물의 본성이 발휘되면 세상의 생존을 돕는 것입니다. 세상의 생존을 도움으로써 천지와 창조 작업에 함께하는 것입니다. (子思曰, 惟天下至誠, 爲能盡其性, 能盡其性則能盡人之性, 能盡人之性則能盡物之性, 能盡物之 性, 則可以贊天地之化育, 可以贊天地之化育, 則可以與天地參矣. )


그 다음에 빈틈없이 드러내야 합니다. 빈틈없이 드러내면 사사로움이 없게 됩니다. 사사로움이 없으니 있는 그대로 드러나고 있는 그대로 드러나니 투명하고 투명하니 통하게 되고 그 결과 변화가 이뤄집니다. 그러니 빈틈없이 드러내고 사사로움이 없어야만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其次, 致曲, 曲能有誠, 誠則形, 形則著, 著則明, 明則動, 動則變, 變則化, 唯天下至誠 爲能化.)


자습노트)

주역과 중용에서 묘사한 성인에 대한 해설입니다. 저는 호킨스 박사의 가르침에 비추어 읽었습니다. 즉 주역에서 핵심이 되는 문구는 '성인의 무한한 능력이란 어떤 목표를 향해 열심히 노력해서 얻어내는 것이 아니라 사사로움이 전혀 없을 때(즉 誠이 이뤄질 때) 참나가 드러나서 참나가 주도적으로 행함으로써 이뤄지는 것(此非自外得者也, 能盡其性而矣)'이라고 봅니다.


이어지는 중용 22장과 23장 자사의 언급도, 곡(曲)을 빈틈없이 정직한 것, 성(誠)을 사사로움이 없이 겉과 속이 다 드러나는 것으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형(形)과 더불어 같은 경지를 다른 각도에서 기술한 것으로 알아들었습니다. 이것은 제가 60년 가까운 삶에서 가장 크게 반성한 것이기도 합니다. 


즉 의식에서 사사로움이나 비밀이 전혀 없어도 괜찮을 정도로 살자고 결심한 적이 있는데 그러한 것과 일치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럴 때 다른 아무 노력을 하지 않고 의식을 깨끗하고 온전하게 가져가려는 노력이 바로 영적 수행 내지 수양의 시작이자 전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호킨스 박사는 영적 수행을 제대로 하는 것만이 세상에 제대로 기여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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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목운
2015.08.07 08:52 복성서

참나와 에고는 서로 의존합니다. 참나가 없으면 에고는 있을 수 없으니 참나가 에고를 낳는 것입니다. 에고는 홀로 에고인 것이 아니라 참나가 낳는 것이고 참나는 홀로 참나가 아니라 에고의 어둠이 있어 밝음이 드러납니다. 참나는 하늘의 뜻이 드러남이니 성인은 그것을 얻어 흔들림이 없으며, 에고는 참나가 움직이는 것인데 범인은 거기에 빠지고 집착하여 그 기원을 알지 못합니다. (性與情, 不相無也. 雖然, 無性則情無所生矣. 是情由性而生. 情不自情, 因性而情. 性不自性, 由情以明. 性者, 天之命也. 聖人得之而不惑者也. 情者, 性之動也. 百姓溺之而不能知其本者也.)


성인에게 어찌 에고가 없습니까? 성인은 고요히 움직이지 않아 가지 않아도 도달하며 말없는 가운데 신령하고 과시하지 않아도 빛나서, 우주에 맞게 일하며 음양에 맞추어 변화하니 에고가 있어도 거기에 빠지지 않습니다. 그러면 범인에게 참나가 없습니까? 범인의 참나는 성인의 참나와 다르지 않지만 에고가 어두워져 차례로 지배하기를 그치지 않아 죽을 때가 되어도 참나가 드러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聖人者, 豈其無情邪. 聖人者, 寂然不動. 不往而到, 不言而神, 不耀而光, 制作參乎天地變化. 合乎陰陽. 雖有情也, 未嘗有情也. 然則百姓者, 豈其無性者邪. 百姓之性與聖人之性弗差也. 雖然, 情之所昏, 交相攻伐. 未始有窮. 故雖終身而不自賭其性焉.)


자습노트)

'참나는 하늘의 뜻(性者, 天之命)'이라 함은 중용 1장에서 온 말로 유교의 핵심 사상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늘의 뜻을 가장 존엄하게 여기고 거기에 무조건 순종하는 것은 모든 위대한 영성의 실천과제입니다. 하늘의 뜻을 알기 어렵다는 구실로 그보다 못한 것을 가장 우선시하는 것이 세속화 내지 통속이며 우상숭배라고 봅니다. 


이러한 우상숭배에서 세상 질서가 구축되는 것이고 거기에는 반드시 한계와 실패 또는 권태와 타락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가장 내면에 존재하는 질서를 무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지천명과 순명을 가장 중시하는 유교 영성이나 신의 뜻을 완전히 수용하여 신의 종복이 되고자 하는 기독교 영성에 차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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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목운
TAG 성인
2015.08.03 17:45 복성서

사람이 성인이 되는 것은 참나 때문입니다. 사람의 참나가 흐려지는 것은 에고 때문입니다. 기쁨, 분노, 슬픔, 두려움, 좋아함, 싫어함, 욕망의 일곱 감정은 모두 에고가 만드는 것입니다. 에고로 이미 어두워졌으니 참나가 드러나지 않는 것이니 참나의 잘못이 아닙니다. 일곱가지 감정이 돌아가며 찾아오기 때문에 참나로 채워지지 못한 것입니다. (人之所以爲聖人也者, 性也. 人之所以惑其性者, 情也. 喜怒哀懼愛惡欲七者, 皆情之所爲也. 情旣昏, 性斯匿矣, 非性之過也. 七者循環而交來, 故性不能充也.)


그것은 물이 흐려지면 그 흐름이 맑지 못하고 연기가 나면 불빛이 밝지 못한 것과 같아서 물이나 불의 성질에 결함이 있는 게 아닌 것과 같습니다. 모래로 흐리지 않으면 물이 맑고 연기가 나지 않으면 불꽃이 자연히 밝은 것입니다. 같은 이치로 사람의 에고가 작동하지 않으면 참나는 저절로 충만할 것입니다. (水之渾也, 其流不淸. 火之煙也, 其光不明. 非水火淸明之過. 沙不渾, 流斯淸矣, 煙不鬱, 光斯明矣. 情不作, 性斯充矣.)



자습노트)

이고(李翺 ; 774~836) 당나라 때 유학자로 한유와 더불어 불교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신유학을 창설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제가 복성서에 주목하는 이유는 호킨스 방하착의 근거가 되는 생각과 같기 때문입니다. 즉, 부정적 감정이 참나의 완전한 실현인 깨달음에 장애가 되고 여러가지 병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 호킨스 박사의 생각입니다. 


마침 중국 사람이 주석을 붙인 게 있어서 자습 겸 번역을 하는 것입니다. 1절에 책 전체의 주제가 거의 드러나 있고 情을 에고, 性을 참나로 번역하면 호킨스 박사의 '에고 소멸, 참나 실현'과 같은 통찰이라고 봅니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일곱 가지 감정 가운데 거론하는 즐거움 대신 두려움이 오기 때문에 훨씬 에고의 부정적 구실을 잘 표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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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목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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