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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심소욕불유구'로 가기 위해, 유교와 불교 및 기독교 영성을 공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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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31 19:37 그리스도의 편지
에고에 대해 죽기(dying to self)는 성서에는 소아를 잊기(forget self)로 되어 있죠. 524쪽에는 '에고로부터의 해방'이란 말을 쓰고 있습니다. 이 말은 제가 열심히 소개하는 기적수업 번역본 제목과도 일치합니다. 동시에 유교의 극기복례의 극기, 수기치인의 수기와도 맥이 같다고 봅니다.

기독교 신비주의 삼단계에서 신인합일로 가는 첫걸음이 거비정화인데 '아닌 것을 떠나서 깨끗이 한다'는 뜻으로 결국 에고를 죽음에 이르도록 닦아낸다는 속뜻을 가집니다. 각설하고 어제에 이어 공부의 마무리에 관한 말씀을 인용해 봅니다.

"에고로부터 해방을 성취한 사람은 어떻게 행동할까? 결국 그런 사람은 두려움이 완전히 없어진다. 어디를 가든지 보호받으리라는 절대적인 확신이 있다. 위험 가능성 있는 일을 겪게 되더라도 아무 탈 없이 빠져나올 것이다... 그는 어디에 있든지 모든 부정적 결과로부터 보호받는다. (524~525쪽)"

호킨스 박사는 본인의 체험에서 이 상태를 '무한한 보호, 무한한 안전(안심)'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모쪼록 저는 죽는 날까지 이 공부를 놓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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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목운
2016.02.29 18:33 그리스도의 편지

반복되지만 중요하기 때문에 또 올립니다. 논설 8에서뿐 아니라 편지 전체를 통해 계속 반복해서 강조되는 바는 우리의 정체성입니다. 우리 존재의 질료는 바로 신 의식과 같은 의식이며 창조 에너지이며 사랑입니다. 그것은 바로 우주를 꽉 채우고 있는 신이면서 우리 존재의 질료(재료)입니다. 다만 그 창조 과정은 신 의식이 진화와 개체화를 통해서 표현되는 과정이며, 그 과정에서 개체가 생존하는 데 필요한 전자기 작용을 수반하는데 그것이 부정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두려움과 분노, 증오 등으로 표현되는 감정입니다. 그 총체를 에고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우리 존재의 질료이자 근본이 신의식이고 창조 에너지이며 사랑임을 인식하고 에고에 대해 제대로 이해한 다음에 에고의 영향력을 지워내면 우리는 바로 신과 같은 존재로서 신 의식을 표현하고 살게 된다는 게 책의 요점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에고를 이해하고 그 영향력을 지워내는 과정이 서양 신비주의에서는 거비정화(purification)로 정식화되었고 동양에서는 극기복례(克己復禮)로 정식화된 바 있어서 어쩌면 새로운 것도 아닙니다. 

신약에서도 마태복음에 '나를 따르려면 자기를 부인하고(forget self)..'라고 되어 있는데 기존 기독교에서 이것을 정확히 이해하고 가르치기보다 세속 권력과 함께 지배력을 유지 확대하는 데만 힘을 기울인 결과 오늘날 껍데기만 남은 것입니다. 어쨌든 편지에 따르면 에고를 지워내면 바로 우리는 천국에 든다고 하며 이때 천국이란 의식의 상태이지 어떤 장소나 사후에 도달하는 개념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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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목운

<그리스도가 말한다>:

 

아직 내 <편지>를 만나지 못한 사람과 현재로선 그것을 읽을 이유가 없는 사람에게 다가가기 위해 나는 할 수 있는 한 너희가 쓰는 말로 말하기 위해 왔다.’

 

실상 내 <편지>는 팔레스타인에서 내가 가르친 것을 설명하며 창조의 기원에 대하여 더 많은 설명을 담고 있어서 수용적인 사람에게는 살면서 겪는 모든 어려움을 극복할 수단을 제공할 것이다.’

 

이 말이 억지 주장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이다편지는 물질 원소를 통제하여 무에서 음식과 물질을 창조함으로써 존재의 원자 상태에 대한 통제력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었던 참된 스승들이 알고 있던 정보를 제공한다나도 물질 원소를 통제했고 치유를 했고 필수품들을 창조했으며 내가 편지에서 공유했던 깊고도 비밀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렇게 할 수 있었을 뿐이었다.

 

내 메시지를 다른 사람들에게서 온 것들과 비교하지 마라.

 

모든 사람은 인생에서 독자적인 임무와 목적을 가지고 있다내 경우는 현재 처한 존재의 불안에서 너희를 끌어올려줄 정확한 수단을 너희에게 <독점적으로> 제공하는 것이며 다른 게 아니다따라서 내 메시지는 자주 반복되지만 그것은 그 길이 아무리 어렵게 보이더라도 너희가 <그리스도의 길>(<나의 길>)을 따를 결단을 하도록 고무하고 돕기 위한 것일 뿐이다너희가 올바른 길로 확실히 들어섰다는 것이 입증되는 보상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너희는 견딜 것이다.

 

그러나 온 우주가 전기적 입자와 자기(磁氣)의 상호작용을 통하여 드러난 <의식>(<알아차림>)이라는 것을 온전하고도 완전하게 깨달을 때 비로소 내 길로 들어설 것이다.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 편지가 이것을 모두 설명하고 있다그러나 읽는 것만으로는 너희가 스승이 되는 게 아니다진정한 스승은 모든 창조의 <기원><우주 의식>이며 <그것>은 모든 사랑과 지성의 신성한 근원이라는 것을 이해한다참된 스승이 되려면 우주가 생성된 노하우를 이해해야 한다<우주 의식>의 참된 본성을 긴밀하게 알아야 하며 에고의 충동에서 자신을 정화하여 자신의 마음과 감정에 있는 에고의 불순물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한다.

 

이렇게 생각과 감정 그리고 행동이 내면에서 정화된 상태에 이르러너희가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가질 수 있음을 완전히 알기 때문에가진 것을 하나도 남김없이남에게서 요구하는 게 아니라 주려는 열의와 의향을 가지게 되면눈에 보이는 피조물로 된 이 세계 안에 존재하는 창조 <충동>이기도 한 <신 의식>의 완전히 열린 통로가 될 것이다.

 

너희가 내면에서 그렇게 정화된 상태에 도달하면 기쁨과 평화그리고 무조건적 사랑이 내면에 가득한 상태에서 살게 된다너희는 생물계와 생물들이 접하는 어려움을 이해하고 모두에 대해 즉각적이고 자연스러운 사랑과 자비를 느끼게 될 것이다.

 

너희는 세상을 초월하게 될 것이며 절망과 두려움복수와 증오중상헐뜯기타인의 거절 등에서 기인하는 세상의 수많은 이기적 행위방종체험을 벗어날 것이다세상에서 겪는 이 모든 일들이 너희 주변에서 지속되더라도 직접 겪지는 않을 것이다너희는 그저 다른 이들에 대하여 끝없는 자비와 사랑을 느끼게 될 것이다너희는 그저 사람들에게 <존재의 진실><가르치려고> 열렬히 간구하고 염원할 것이다.

 

너희는 다른 사람들이 진리를 이해하고 모든 사언행위를 <진리>에 따라 살도록 도울 수 있는 모든 희생을 즐겁게 할 것이다그렇게 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집요하게 자기 방식으로 생각하고 느끼고 반응하고 감정이 내키는 대로 삶으로써 거기서 빠져나오고 싶어 하는 똑같은 비극을 더욱 만들어내기만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혼란스러운 생각과 감정적 반응의 늪에서 빠져나오는 길을 마침내 발견하면 이것만이 행복으로 가는 바른 길임을 알고 그들을 전에 고통과 비참에 빠지게 했던 생각과 감정의 습관을 극복하게 된 것에 대해 매우 다행스러워하고 감사할 것이다.

 

너희에게 말하는 이가 나 <그리스도>임을 이상하게 여기거나 의심하지 말라나는 기록자의 마음과 심장이 완전히 비워진 후에 너희에게 말하기 위해 왔으며 과거에 너희를 슬프게 하고 절망하게 했던 것들을 치우기 시작하는 데 필요한 것들을 말하기 위해 왔으며 매일 명상하고 너희를 세상에 태어나게 한 신 의식을 인간 의식으로 끌어들이기 시작할 수 있는 용기와 자극을 주기 위해 왔다.

 

무엇보다도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 너희가 노력하는 데 너희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기를 바란다너희의 생각과 감정의 습관을 바꾸는 싸움에서 너희는 혼자가 아니다신 의식에 더 의탁할수록 그것이 단 한순간만 이어진 것이라도 너희가 인내하고 <용기를 잃지 않으면> 더 더욱 너희를 고무하는 신의 지성과 사랑이 있는 새로운 삶과 순간을 너희 의식 속으로 가져오고 있는 것이다.


너희가 나를 찾으면 내 그리스도 의식과 만나서 드디어는 의문이 있을 때 내 대답과 안내를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너희 생각과 감정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 대한 부정적 반응을 정화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기억하라.

 

분노와 신랄한 비판과 거절반감과 짜증에서 나오는 깊고 어두운 감정을 없애고 나면 내 음성을 들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너희가 침묵 중에 명상할 때나 내면이 침묵하는 순간에 내 첫 속삭임을 듣기 위해서는 너희 의식이 바뀌어야 하고 자유케 되는 유일한 길이 <사랑>이라는 것과 그러기 위해 인내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완전히 이해해야 한다.

 

너희는 혼자가 아니다영적 각성과 신 의식의 가장 높은 단계로 올라간 우리는 너희에 대한 사랑만 있으며 우리의 가장 긴박한 소망은 너희가 고통에서 벗어나 과 지혜 그리고 무조건적 사랑으로 진보해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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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05 13:40 복성서

따라서 성인이란 사람들 가운데 먼저 깨달은 사람입니다. 깨달으면 밝고 깨닫지 못하면 갈팡질팡하니 어둡습니다. 밝음과 어두움이 같지 않다고 하는데 밝음과 어두움이 본래 참나에 존재하지 않으며 둘다 참나와 떨어져 있습니다. 무릇 밝음이란 어두움에 대비하여 말하는 것이니 어두움은 없는 것이며 따라서 밝음도 없는 것입니다. (故聖人者, 人之先覺者也. 覺則明, 否則惑, 惑則昏. 明與昏謂之不同. 明與昏, 性本無有, 則同與不同, 二者離矣. 夫明者所以對昏, 昏旣滅, 則明亦不立矣.)


그런 때문에 진실하고 온전한 것이 성인의 참나로서 그것은 고요하고 움직임이 없고 확 트여 밝으며 천지를 비추어 온 세상을 두루 느껴 아는 때문에 행동하지 않고 말하지 않아도 미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참나로 돌아간다 함은 덕을 닦는 자가 쉬지 않고 실천하는 것으로서 그렇게 노력하길 그치지 않으면 그 근원에 이를 수 있게 됩니다. (是故誠者, 聖人之性也. 寂然不動, 廣大淸明, 照乎天地, 感而遂通天下之故. 行止語黙, 無不處於極也. 復其性者, 賢人循之而不已者也. 不已則能歸其源矣.)


자습노트) 

참나의 경지는 밝음 대 어두움이라는 이원성 세계마저도 초월한 것이며 참나에 이른 상태는 우리가 원래 태어난 상태이며 그 가장 큰 특성이 진실하고 온전한 것(誠)입니다. 여기서 참나 상태에 대하여 설명한 것을 보면 보조 스님이 공적영지(空寂靈知)로 요약하신 바와 같다고 생각합니다.참나로 돌아가는 데 덕과 쉬지 않는 노력을 거론한 것은 여섯 바라밀을 꾸준히 닦아야 한다는 가르침에 통한다고 봅니다.


참나 상태란 기독교 신비주의에 비추어보면 신인합일 상태로 볼 수 있습니다. 기독교 신비주의에서 신인합일에 이르기 위한 전단계로서 거비정화(purification)와 진덕명화(illumination)가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두번째 단계의 용어입니다. 즉 덕이 나아감으로써 밝아지는 것을 말하고 있고 밝아진 후에는 밝음과 어두움의 이원성을 벗어난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또 덕이 높은 자(賢人)가 쉬지 않고 노력할 때 참나에 이른다고 한 것도 정확히 기독교 신비주의 삼단계설에 부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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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19 08:25 단상
천국이란 우리 영혼을 낳은 '아버지'의 것이 된 마음의 상태로서 이 상태에서는 '아버지'가 우리의 머리가 된다고 합니다. 사실상 신이 우리 개체만을 빌려 자신의 뜻을 펴는 상태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창조 (또는 개체화) 과정에서 작동했던 소아(self, 에고)를 완전히 비우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마태오복음 16:24에 도식화되어 있습니다. 즉 "나와 같이 갈 사람은 자기를 잊고...나를 따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도 그렇고 교회에서 어떻게 자기를 잊는가에 대한 아무런 대책도 없고 제대로 가르치는 사람도 없습니다.

하지만 최소한 '홍익학당'처럼 매 순간 신 의식(또는 불성)에 깨어서 6바라밀을 실천하기 위한 노력을 할 수 있는 매뉴얼 같은 게 있었으면 좋았을 것입니다. 기독교의 경우 고백제도를 위시해서 대부분이 죄책을 불러일으키는 데 그치면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아마도 그게 (모르고 하는지 몰라도) 신도들을 붙잡아두고 다스리기 좋기 때문일 듯합니다.

어쨌든 천국의 '의식 상태'에 이르면 어떻게 되는지 봅시다. "그것은 너무나 아름답고 거룩하지요. 그것은 사랑이고 자비로움이며 자신을 아끼는 것과 같이 다른 이들을 아끼는 것이며 다른 이들을 정확히 있는 그대로 받아들임으로써 심판하지 않는 것이며 그들 또한 '아버지'의 보살핌 속에서 동등한 '하느님'의 자녀임을 아는 것입니다."

이 상태는 '무조건적 사랑'의 상태이며 호킨스 체제에서 깨달음의 시작이기도 한데 에고만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하며 반드시 신의 인도와 도움이 필요합니다. 제 소견으로 그것은, 목표삼을 무엇이라기보다 의식 상승(깨달음)의 결과 따라오는 효과처럼 생각됩니다. 그래서 스승이 필요한 것입니다.

실상 나와 남의 구분이 없이 황금률을 실천하는 것,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과 심판하지 않는 것 -- 이것을 이루는 게 천국에 드는 것입니다. 참으로 단순한데 제 60년 삶을 볼 때 내 힘만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체득했기에 오직 기도와 명상으로 매어달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 핵심에 멸정복성(또는 去非淨化, dissolving the ego)과 방하착(letting go)이 있습니다. 우리는 진기한 무엇을 찾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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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18 07:37 이 블로그는?

2013년초 개인적으로 큰 위기를 만났는데 유난히 마음에 와닿은 말씀이 선가귀감에 있는 '생사에서 자유케 되려면 탐욕과 애갈을 없애라'는 것입니다. 위기를 만나게 된 것은 덕과 지혜가 없기 때문이었고 덕과 지혜 결핍은 거짓된 삶이 원인이라고 직감했습니다. 즉 망가진 의식을 온전하게 가져가는 게 가장 시급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홍익학당 강의와 전에 읽던 백봉 선생 법어집 '도솔천에서 만납시다', '신과 나눈 이야기' 시리즈, 그리고 호킨스 박사의 깨달음 3부작 '내안의 참나를 만나다' 집중적으로 복습하며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2013년말 인천으로 이사한 후 기적적으로 직장을 잡아 일을 하면서 '기적수업'의 요약이라 할 수 있는 '에고로부터의 자유'를 2014년 상반기 동안 집중적으로 읽고 또 읽었습니다. 그러다가 호킨스 박사의 '실체, 영성과 현대인'를 읽었습니다. 그후 스티븐 데이비스의 '나비는 자유롭게 난다'라는 전자책을 읽는 김에 번역하게 되었습니다. 2015년에는 호킨스 박사의 '멸정복성(Dissolving the Ego, Realizing the Self)'을 번역해서 이곳에 전문을 올려두었습니다. 이어서 '방하착(Letting go ; The pathway of surrender)' 발췌해서 올렸습니다. 


2015년 10월에 우연히 '그리스도의 편지'를 만났는데 이 책은 그동안 간절히 구하던 기도에 대한 응답인 듯하여 십여 차례 읽으며 실천하고 있습니다. 결국 제가 가장 중점을 두고 공부한 것은, 에고라는 것이 무엇인지와 어떻게 그 손아귀에서 벗어날 것인지에 대한 것입니다. 그것은 '에고로부터의 자유', '멸정복성', '방하착'의 핵심 주제이기도 한데 서양 영성의 거비정화(purification)와 동양 영성의 극기복례(克己復禮)에 해당합니다. 그래서 제 경험에 비추어 말씀드리면 이 세권 가운데 한권 이상과 '그리스도의 편지'만 읽으시면 크게 유익하리라 생각합니다.


주1) 호킨스 박사의 깨달음 3부작은 '의식혁명(Power vs. Force)', '나의 눈(The Eye of the I)', 호모 스피리투스(I: Reality and Subjectivity)'를 말하며 세 권 모두 번역되어 있습니다.

주2) '멸정복성'과 '복성서'의 경우 혹여 필요하신 분은 연락 주시면 파일을 보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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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11 07:17 그리스도의 편지
'그리스도의 편지' 두번째를 보면 책 전체에서 계속 반복되는 주제가 또 나옵니다. 그런데 죄를 전제하는 회개(repenting)라는 말이 나오는데 '편지'는 기존 유태교-기독교의 죄와 속죄 개념을 부인하기 때문에 회개란 기독교 신비주의의 '아닌 것을 떠난다(去非)'는 말로 이해해야 합니다. 제가 볼 땐 에고 원리와 완전히 결별하겠다는 결단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자신을 에고에 묶어두는 가장 큰 구멍을 찾아야 합니다. 그것은 대개 소유욕, 엘리트 의식, 애갈, 선의의 거짓말 등과 같은 형태로 이미 우리 속에 깊이 뿌리내린 무엇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고 나서 지속적인 정화작업(편지도 cleansing이란 말을 씁니다)을 합니다. 이때 크게 도움이 되는 게 호킨스 님의 '레팅고'라고 봅니다.

그런 식으로 에고 영향력을 지워나가면 점진적으로 신 의식이 우리 존재와 환경, 체험을 지배하게 된다고 '편지'는 말합니다. 어느 순간 신 의식과 완전히 합일하게 되면 그때의 상태를 천국이라 하는 것이고 그 상태에서 신성을 표현하는 게 우리 존재와 삶의 목적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발을 들인 길이 바로 이 길입니다. 이상 118~119쪽에 대하여 주석삼아 해설을 붙여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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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9 08:03 그리스도의 편지

다섯번째 편지까지 두번 읽고 논설을 다 읽었습니다. 깊은 창조원리를 완전히 이해하려면 두어번 더 읽어야 할 듯하지만 한가지 되풀이되는 원리는 참으로 자명합니다. 즉 에고에 기반한 생각과 감정이 우리의 무한한 능력을 저해하는 원인이므로 그 힘에서 완전히 자유로와지는 게 급선무라는 것입니다(332쪽). 


이것은 모든 성현들이 얘기한 공통분모이기도 합니다. 유교의 극기복례도 이것을 말하는 것이고 기독교 신비주의의 거비정화도 이것을 말하는 것이며 호킨스 박사의 레팅고도 여기에 집중한 작업입니다. 이것이 성취되는 정도에 따라서 신 의식과 창조 권능이 우리 존재라는 통로를 통하여 온전히 구현되는 것인데 그것은 그야말로 무한한 가능성입니다.


이 작업은 '논설 15'에 있듯이 편지 5~8(특히 6의 21-24쪽[번역본 388~399쪽])의 신 의식에 대한 깨달음에 이르러야 가능하다고 합니다. 그 의식이 우리 마음과 심장을 채울 때 새로운 삶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합니다. 이것이 땅 위에서의 천국이라고 말할 때의 진정한 의미라고 합니다. 이것은 시크릿등에서 얘기하는 긍정사고만으로는 불가능하며(편지 275쪽) 존재의 근원 또는 궁극의 실체와 만남을 통해서 그리고 그쪽의 은총에 의해서(즉 혼자가 아님) 가능한 것입니다. 두어구절 직접 인용합니다.


"너희의 개체적 의식에서 부정적인 것들이 완전히 청소되면 너희는 자신도 또한 창조자인 '아버지' 의식의 정화된 통로가 되어 있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80쪽)"


"너희 존재의 근원과의 진정한 만남은 너희가 의식으로부터 거친 인간적 에고의 욕구를 충분히 닦아내고 일정시간 이상 명상을 하여 영을 접함으로써 존재를 새롭게 충전시키도록 애쓰면서 근원에 '가닿기를' 의식 속의 강력한 느낌으로써 규칙적으로 염원할 때만 경험된다.(2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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